혼저 옵서예 / 정선례
오라방 환갑이다. 예전에는 사람의 수명이 짧아서 잔치를 열어 축하했다. 그러나 백 세 시대인 요즘은 팔순에 모여 지인들에게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기념으로 수건을 돌린다. 우리 형제 계모임 ‘정 가네’ 3남 2녀 형제자매들이 여러 의견을 냈다. 큰 병원의 건강검진, 안마의자, 금반지와 목걸이 선물, 여행이었다. 그중에 여동생이 제안한 가족 여행이 선택되었다. 오빠네는 식당을 운영하느라 신혼여행 다녀온 뒤로는 한 번도 어느 곳에도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이들이 아빠 회갑 뭐 준비하고 있을까요?” 물으니 별 계획이 없단다. 평소 집안 대소사를 주관하는 바로 아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 다 같이 해서 제주도 여행 다녀오면 어떻겠느냐“고 내 생각을 묻는다. “당연히 좋지!” 3남 2녀 형제 계모 임 총무인 나는 오빠네와 다른 형제들에게 이러한 계획을 알렸다. 다들 좋다고 한다. 아버지는 다리가 아파서 못 가시고 시애틀에 사는 남동생은 다음을 기약했다. 숙소는 크고 작은 야자수가 곳곳에 서 있어 이국적인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서귀포시 금호리조트의 마주 보고 있는 방이다.
3박 4일 일정이다. 어머니와 오빠네 부부, 작은 조카까지 일곱 명이 제주도에서 만나기로 했다. 완도항에서는 새벽 2시 30분 배와 오후 3시 배 2회 운항하는지라 선택의 여지 없이 밤에 출발했다. 제주항에 도착하니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울팀은 9시쯤에 공항에 도착해 데리러 오는 데 3시간의 텀이 있다. 막내에게 문자가 와 있다. 제주항 맞은편 사라봉 산책 정보와 근처 사우나 지도다. 사라봉을 지나 별도 봉을 오르락내리락 걸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운동시설에서는 스트레칭을 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에 커다란 배들이 정박해 있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제주의 해돋이가 눈부시다. 여행 마지막 날 배 시간 보다 일찍 와서 소나무 숲길 걷기와 하늘과 바다에 붉게 물드는 일몰을 보고 완도 가는 배를 타야지.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서둘러 내려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지. 에메랄드빛 바다 넓은 모래사장에서 오빠네가 준비해 온 참치, 치즈, 야채김밥을 먹었다. 11월 말인데도 햇볕이 따뜻하다. 예전에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형제들과 제주도 동쪽을 여행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서쪽 위주로 일정을 잡았다. 바다 조망이 멋진 객실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다에 눈 호강 제대로다.
첫날은 용두암, 알작지 몽돌해변, 천연기념물인 산천단 곰솔 군을 돌았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가는 길이 험하고 날씨가 나쁠 때는 이 곰솔이 있는 산천단(山川壇)에서 제사를 올렸다 한다. 산천단 곰솔은 우리나라 곰솔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곰솔은 모두 8그루로 500~600년가량 자란 것으로 추정. 이틀과 삼일에는 쇠소깍, 용머리해안, 우도 산호 해변, 섭지코지, 천제연폭포, 정방폭포, 곽지해수욕장, 주상절리대, 삼양해수욕장의 검은 모래사장, 거대한 해상풍력 단지, 해안선 따라 백련초가 군락을 이뤄 자생하는 월령 선인장 마을이다. 제주는 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야외 온실이다. 늦가을인데도 노랗고 빨간 꽃이 피어 눈길을 사라 잡는다. 서귀포 민속 오일시장에서 갈치를 사서 택배 부치고 18,000년 전 화산활동으로 지층이 형성된 화산쇄설층 수월봉 지오트레일, 풍차 해안도로, 예전에 와서 묵었던 절물비자림로 숲길을 걸었다.
마지막 날은 억새 만발한 새별오름에 올라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남겼다. 경사가 완만한 동쪽 등산로를 선택해서 해발 519.3m로 정상에 올라 서쪽으로 내려왔다. 평소 당뇨 고혈압을 지병으로 달고 사는 팔십 넘은 우리 어멍이 올레길은 물론이거니와 오름도 거뜬하게 올라 정말 고마웠다. 자식들 고생시키면 안 된다며 약도 빠짐없이 챙겨 드시고 유산소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는 말씀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부모 마음이다. 걷는 코스가 제법 되었는데도 발 편한 신발을 신고와서 잘 걸어 주셔서 일정에 차질이 없었다. 피곤할 텐데 안전 운전해준 막내, 오빠의 환갑을 맞이하여 가족여행을 추진하고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준 여동생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멀리 미국에서 사진으로나마 함께 해줄 둘째 동생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서울에서 홀로 조금은 쓸쓸하셨을 할아버지께 술과 족발을 사와서 함박웃음을 선사한 ㅈㅇ가 대견스럽다.
공항 근처에서 이른 저녁을 먹으며 소감 한마디씩 남기라며 영상을 찍었다. 먼저 어머니께서 탁 트인 바다를 눈앞에서 보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하셨다. 오빠는 “며칠 동안 왕이 되어 휴식을 누렸다고” 말해서 뭉클했다. 온 가족 함께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고 언니가 말해줘서 고마웠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교통비 포함 지출 전부를 ‘정 가네’ 단톡방에 올려 달라고 협조 문자를 올렸다. 이번 여행 경비 일체를 회비에서 지출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총무인 내가 살림을 잘해서 일 년에 한 번씩은 가족 모임 여행을 추진해야겠다.
제주도는 화산 활동으로 탄생한 섬이다. 검은 돌이 이색적이다. 현무암의 척박한 땅으로 화산석, 용암 돌의 구멍마다 이끼가 끼고 바람과 물이 깃들어 식물의 뿌리가 얼기설기 생명을 틔워 오늘날 사람이 살만한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펼쳐진 수평선을 보며 와 이쁘다, 와 너무 좋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 해녀 석상과 귤밭, 여행 곳곳에서 옷을 바꿔입으며 사진을 남긴 덕분에 멋진 사진을 많이 남겨 흐뭇했다.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으로는 회 정식, 흑돼지 참숯구이, 생갈치조림, 보말칼국수 간장, 양념게장이 맛있었다.
저렴한 여행경비로 만족스러웠다고 한결같이 이번 여행을 평가해 줘서 총무로서 보람이 있었다. 특히나 변덕스럽다는 제주도 날씨가 여행 내내 따뜻해서 ‘행사에는 날씨가 큰 부조’라는 말을 실감했다. 여행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보는 재미, 먹는 재미는 제주도만 한 곳이 없다. 나는 해안 둘레길 숲 오솔길 비렁길 황토, 흙길 걷는 걸 즐긴다. 제주 올레길은 27개 코스로 437km 완주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편집장을 역임한 언론인인 서명숙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어 추진한 코스라고. 제주를 오가는 비행기가 항로인지 우리 집 위로 긴 꼬리를 드리우며 지나간다. 제주도는 걷기 좋은 길이 참 많다. 평화, 자연, 공존, 배려, 행복의 올레길 전 코스를 완주하고 싶다. 해안선 따라 펼쳐진 올레길이 눈에 선하다.
첫댓글 오라버니 환갑 선물로 가족 여행, 아주 좋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저도 곧 환갑이라 딸들이 계속 물어오는데, 선생님의 좋은 글을 읽었네요.
요즈음은 환갑은 누가 돌아보지도 않는데 좋은 여행하셨습니다.
형제의 우애다지기로 여행만큼 좋은 게 없을 듯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