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北漢山 津寬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북한산(삼각산) 서쪽 기슭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찰로, 불암사, 삼막사, 보개산 심원사와 함께 조선시대에는 한양 근교의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원래는 신라 진덕왕 때 원효가 삼천사와 함께 창건하여 신혈사라 했다.제8대 현종이 승려 진관대사를 위해 다시 창건.
고려 경종이 죽자 젊은 왕비는 왕태후가 되어 파계승 김치양(金致陽)과 정을 나누다가 사생아를 낳았다. 그 때 목종에게 아들이 없어 태조의 아들이던 왕욱(王郁: 安宗)의 직손이며 법통을 이어받을 대랑원군(大良院君)이 왕위 계승자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왕태후는 대랑원군을 없애고 자신의 사생아를 옹립하기 위하여 목종에게 참소하여 숭경사(崇慶寺)에 가두고 죽일 틈을 엿보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삼각산 신혈사로 옮기도록 하였다. 신혈사는 진관(津寬)이 혼자서 수도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살해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이 사실을 눈치 챈 진관이 본존 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지하굴을 파서 열두 살인 대랑원군을 숨겼으므로 왕태후가 보낸 자객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3년 뒤 목종이 죽자 대랑원군은 개경으로 돌아가 현종 이 되었고,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하였다. 그 뒤 진관사는 임금을 보살핀 은혜로운 곳이어서 여러 임금의 각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1090년(선종 7)에 왕이 행차하여 오백나한재를 베풀 었고, 1099년(숙종 4)과 1110년(예종 5)에도 왕이 행 차하여 참배하고 시주하였다.
조선에서는 1397년(태조 6) 태조는 이 절에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여러 번 행차하여 법식(法食)을 공양 하는 수륙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와 왕실의 안 녕을 기원하는 수륙재(水陸齋)가 열리는 근본 도량 으 로 춘추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수륙재란 물과 육지 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식으로, 이곳 에서 조상의 명복을 빌고, 나랏일로 죽었어도 제사조차 받지 못하는 굶주린 영혼을 위해 재를 올렸다.
이를 본받아 척불왕이던 태종도 1413년(태종 13) 이 절에서 성녕대군(誠寧大君)을 위한 수륙재를 열고, 향과 제교서(祭敎書)를 내렸으며, 수륙재위전(水陸齋位田) 100결을 하사하여 재를 계속하게 하였다. 이후부터 이 절에서는 매년 1월 또는 2월 15일에 수륙 재를 열었다
그뒤 1463년(세조 9) 화재로 소실된 것을 성종때
벽운이 중건. 이후 여러번 중수. 1879년(고종 16)에 경운(慶雲)이 대방을 중수하였고, 1908년에는 송암(松庵)이 오층석탑을 세우고 1910년에 대웅전의 삼존상 을 개금하였으며 명부전을 중수, 지장보살상을 개금, 독성전과 칠성각을 새로 지었다. 이후에도 몇 번의 중수가 있었으며, 한국전쟁으로 나한전 등 3동만 남기고 모두 불탔다. 1964년 이후 복원되었다.
진관사 법전으로는 대웅전, 명부전, 홍제루, 동정각(動靜閣), 나한전, 독성전, 칠성각, 나가원(那迦院), 객실 등의 건물이 있다.비구니의 수도도량.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안에 석가모니 불상과 미륵보살상, 제화갈라보살상을 모셨고, 비로자나 후불탱화와 석가모니 후불탱화, 노사나 후불탱화를 봉안하였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지장보살과 도명존자상, 시왕상, 동자상 등이 있으며 지장보살상 뒤편에 지장 후불탱화가 있다. 명부전 옆의 독성전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독성상과 독성탱화, 산신탱화를 모셨다.
대웅전에 봉안된 본존불은 고려 현종을 구해준 불상이라 전하며, 홍제루의 고색이 깃든 초석이나 축대, 대웅전 후면의 축대나 석불 등은 이 절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다. 법당 앞에는 석탑 대신 석등 2기가 있다.
진관사의 수륙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 칠성각에서 발견된 항일독립운동승려 백초월(白初月)의 태극기 (보물)와 독립신문류 등이 등록문화재 제458호로 지정되었다.
그 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는 제143호부터 149호까지 지정된 소삼존불상(塑三尊佛像), 소십육나한상(塑十六羅漢像),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십육나한도(十六羅漢圖), 칠성도(七星圖, ․명호스님초, 산신도(山神圖), 문화재자료로는 제10호 석불좌상, 제11호 독성상(獨聖像), 제12호 독성도(獨聖圖), 제33호 칠성각, 34호 독성전 등이 있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 (서울 津寬寺 太極旗) 보물,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태극기로 진관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 독립운동가인 백초 월과 연관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진관사에서 북한산 정상방향 동쪽으로 이어진 계곡이 진관사계곡으로 암반이 잘 발달되어 있다. 급한 경사의 암반 계곡,작은 폭포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진관사계곡을 따라 정상쪽으로 산길을 오르면 북한산 사모바위와 비봉을 만나고 이어 향로봉과 승가봉이 근처에 있다.주변일대는 북한산국립공원으로 도봉산, 북한산성, 도선사, 문수사, 망월사, 승가사, 천축사, 화계사, 서오릉, 정릉 진흥왕순수비유지 등의 관광지가 있다. 교통은 구파발역에서 진관사입구까지 버스가 운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