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아침을 다 먹고 엄마가 설거지를 시작한지 5분도 안돼서 집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웠다. 언니가 울고 나도 울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우리를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빨리 피하라고 소리치셨다. 울음을 참고 할머니 집으로 갔는데 엄마는 다시 집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창 밖을 보며 제발 우리 부모님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빌었다”(4학년 최지원)
강릉을 폐허로 만든 태풍 루사는 강릉지역 초등학생들의 동심에도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큰 피해를 본 강릉시 장현동 묘산초등학교 학생들의 일기에는 그날의 절박했던 상황과 아픔이 그대로 기록돼 있었다. 전교생이 68명밖에 되지않는 묘산초등학교는 태풍이 강릉을 휩쓸기 시작한 지난달 31일 이후 휴교에 들어갔다가 지난 10일 정상수업을 시작했다.
한 학생은 태풍이 쓸고 간 참담한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태풍이 와 홍수가 났다. 우리가 살던 집은 없어졌다. 용우형하고 승미네 집도 없어졌다. 도로도 없어지고 비닐하우스도 없어졌다. 라면만 먹었다. 나는 지금 목이 마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무섭다”(4학년 임영진)
수해복구로 고생하는 부모에 대한 심경도 진솔하게 표현했다. 4학년 홍지혜양은 “동생 준표는 무섭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엄마 아빠를 불렀다. 나도 무서웠다. 엄마 아빠께서는 비를 맞고 일하다가 우리가 걱정되어 몇 번이나 집으로 들르셨다. 나도 따라 나가서 큰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는데 아직 어려서 못 도와드리는 것이 죄송스럽다”고 썼다. 5학년 권두형군은 “엄마와 나는 드라마를,아빠는 뉴스와 인간극장을 좋아한다. 오늘도 TV를 보다가 엄마가 ‘비 피해로 일을 많이 해 팔이 늘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안마를 했는데 마음은 슬펐다. 우리 가족을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 힘내세요”라고 적었다.
복구가 진행되면서부터 학생들의 일기에는 서서히 안도하는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3학년 김상현군은 9월8일 일기에서 “전기가 들어왔다. 하지만 물은 나오지 않는다. TV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동생은 전기가 들어오니까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3학년 백은진양은 집이 제 모습을 찾아가자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오늘 집에 있는 가구를 다 새로 바꾸고 전화기도 바꿨다. 전화기는 누가 전화했는지 전화한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찍히도록 돼 있는 것이다. 무거운 것들은 다음에 들어온다. 이제는 나도 수재민이 아니라 옛날처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다”고 썼다.
학생들은 온정의 손길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김상현군은 12일 일기에서 “학교에서 학용품을 내주었다. 피해를 봤기 때문에 준거다. 가방,실내화,색칠공부 2개를 받았다. 나는 도움을 받아 고맙게 생각한다”고 적었다.
수해를 통해 학생들은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6학년 최세희양은 10일 일기에서 “수해때문에 우리 이웃들과 더욱 친해졌다. 다른 동네처럼 먹을 것을 가지고 싸우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먹을 음식도 보통 때보다 더 많이 나눠먹는다. 나도 동네에 계신 어른들께 더욱 인사를 잘해야겠다”고 했다.
묘산초등학교 함은식 교사(29)는 “부모들이 대피하며 급한 물건을 챙기라고 했을 때 교과서를 가방에 가득 넣고 피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며 “아이들이 수해로 인해 마음의 상처도 크게 입었지만 가족애와 이웃사랑을 몸으로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