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6일(주일) 오전예배
말씀 : 마태복음 26:6~13
제목 : 온전한 헌신
도입 :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일
오늘 이 말씀은 베다니에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입니다. 1~2Km 정도 떨어진 곳이며 안식일을 지키기 좋은 곳입니다. 베다니에는 나사로의 집이 있습니다. 나사로는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실 때에는 이 집에 잘 들리고 또 그 집에 지내며 가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을 때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 장례를 치루어 무덤에 두었는데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주님이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리아가 그것에 감사해서 나드향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동생을 살려주셨으니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 일이 있었던 집은 베다니에서도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몬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시몬이 예수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가 동네의 나사로를 살려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식사에 초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추측하기로는 이 시몬이 나사로의 아버지 혹은 마르다 누나의 남편 등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동네 사람으로서 이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가족과 가까이 지내는 친척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삼촌쯤 되어서 마르다 형제를 돌보아 주는 친척이 아닌가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몬을 성경에서 표현하기를 나병환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병환자의 집에 무작정 간 것은 아닐테고 이전에 나병환자 였는데 주님이 치료해주신 것이 아닌가 봅니다. 이 시몬은 여러모로 주님께 감사하고 그리하여 식사에 초대를 한 것입니다.
그 때에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값비싼 나드향을 부어서 주님께 감사하니 주님이 이는 ‘나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온전한 헌신은 감사함으로 출발합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7절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한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장에는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12:2~3절 중반에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라고 했습니다.
성경예화)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불과 한 주 전에 나사로를 주님이 살리신 것입니다. 당시 나사로는 병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리고 쪽에 제자들과 전도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에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일을 하시다가 늦게 오신 것입니다.
사실은 주님이 뜻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부활의 주님이 되심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곳 유다는 매우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베다니로 오십니다. 나사로를 보기 위함입니다.
와서 보니 나사로는 죽었고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 명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은 나사로 살아서 흰 붕대를 감은 채로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풀어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 베다니에서 나병환자였던 시몬이 예수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함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할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3절에 ‘예수의 발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향유는 아주 비쌉니다. 그리고 그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도 붓고 또 주님의 발에도 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주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 입장에서 죽은 자신의 오라비를 주님이 살려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하겠습니까! 이 뿐 아닙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오실 때 늘 그 가정에 들려서 함께 식사도 하고 또 귀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에 손님이 집에 오면 발 씻을 물을 줍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는 향을 가지고 주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어 준 것입니다. 마리아의 감사와 헌신이 온전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으로 볼 때 주님은 십자가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희생으로 그 죽임당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주님의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그 주님의 손과 발에서 흘리신 피가 나의 죄를 씻겨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는 것이 대수이겠습니까! 우리는 온전한 헌신으로 주님께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그 헌신은 주님께 감사함으로 시작합니다. 아멘
둘째, 온전한 헌신은 희생이 따릅니다.
7절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아주 값비싼 나드 향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들이 보고 왜 이렇게 비싼 것을 허비하느냐고 비판을 했습니다.
8~9절에 [8.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을 텐데 이렇게 한 번에 쏟아버리느냐는 식으로 비난을 합니다. 요한복음 12:5절에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고 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오늘날 하루 10만원씩 계산해도 300데나리온은 3천만 원입니다. 오늘날 환산에서 3천~4천만원 되는 돈입니다. 값비싼 금액입니다. 당시 젊은 여인으로서 그 정도의 금액이면 아마도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물려준 것인지 모르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가진 것을 다 팔아 이 나드향 한 옥합을 샀는지 모르지만 그 여인은 이것을 다 주님께 부은 것입니다. 아주 값진 헌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온전한 헌신’이라 부릅니다. 주님을 위해 자신의 옥합을 깨뜨려 부어버린 것입니다. 옥합은 옥으로 만든 병과 같은 것입니다. 이 비싼 나드향을 담는 비싼 옥합입니다. 그것을 깨뜨려 그 가치 있는 나드향을 주님께 다 쏟아부은 것입니다. 왜입니까?
오늘날 우리로 비유한다면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철저히 죽임당하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이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양 손과 발을 깨뜨려서 그 피로 내 죄를 씻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헌신은 그 어떤 헌신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값진 헌신으로 주님께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께 내 인생을 온전히 드리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을 다 드리고 나의 삶을 다 드리며 나의 온전한 헌신을 주님께 드리는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아멘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님께 감사와 헌신과 영광을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그런데 이 말씀 중에 요한복음에는 아주 정확하게 꼬집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요 12:4에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겨버릴 배도자 가룟 유다가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분개했다고 기록을 했을까? 가룟 유다가 욕을 하고 방방 뛰니 다른 제자 중 일부고 약간 동조를 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된 분개와 주장에 동조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용도 모르고 또 뜻도 모르고 그리고 속사정도 모르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이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돈 궤를 맡고 있어서 훔쳐가려고 한 의도였습니다.
요 12:6에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돈궤를 맡고 있었는데 그가 그것을 훔쳐가려고 한 것입니다. 겉으로 말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허비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하니 말입니다. 듣는 사람도 혹하고 넘어갈 뻔합니다. 그러나 그 속마음과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교회 생활에서 이런 것을 잘 판단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런 속마음을 다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10에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속마음까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이 여인이 좋은 일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너희와 항상 함께 있느니라, 그러나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제 곧 제자들을 떠나 십자가의 죽음과 그리고 부활과 승천을 미리 아셨습니다. 물론 주님이 영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몸으로 함께 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어 주님은 이 일은 주님의 장례를 위한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12절에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경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종교의식으로 거룩하게 할 때 기름을 붓습니다. 성전 기물에 기름을 바르거나 제사장에게 기름을 붓기도 합니다. 2)직분을 세울 때, 왕과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어 세웁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니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3)그리고 장례를 위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에 기름을 바릅니다. 몰약을 바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죽고 나서 여러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약을 바르기 위해 동산에 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사건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주님 자신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12절에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곧 체포되시고 그리고 십자가형에 죽임당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장례를 위한 것이며 이 일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기억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이 일이 기억되리라!
13절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아멘 즉 천하만국에 이 복음이 전파될 때 이 마리아의 한 일도 증거되어 사람들이 말하게 될 것이며 기억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마리아의 헌신이 참으로 고귀하여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면 이 일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말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한 여인이 한 이 행동 하나가 지금도 2천 년이 지난 지금에 머나먼 땅 대한민국 21세기에 교회마다 지금도 알려집니다. 복음서를 설교할 때면 항상 이 일이 전해집니다. 주님이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를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헌신했을 때 우리 주님은 그것을 기억하시고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도 주님은 놓치지 않고 우리에게 복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께 온전한 헌신을 드린다면 주님은 영원히 우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