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정신력 때문에 '아이스맨'으로 통한 핀란드 당구 챔피언 미카 이모넨이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다음날 전했다. 그의 나이 쉰둘이었다.
친구인 알렉스 마수치가 고인이 병원에서 스러진 사실을 확인했는데 사망 원인은 암이라고 전했다. 이모넨은 2023년 말에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당구는 체력 단련을 할 필요가 없는 운동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고인은 매일 운동하고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는 것을 철저히 지켰다. 운동에 집중하는 것이 경기 중 집중력 향상으로 이어졌다며, 운동을 하지 않는 당구 선수는 경기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곤 했다.
최근 몇 년 이모넨이 경기에 출전했던 맨해튼의 소사이어티 당구 앤 바의 하우스 프로 당구 선수 조나단 스미스는 "가장 좋아하는 표현이 '자비는 질병이다'였다. 상대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전염성이 있다. 그는 경이로운 샷메이커였고, 매우 빠른 클립으로 플레이했기 때문에 그와의 경기는 더욱 위협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모넨은 2001년 세계풀당구협회(WPA) 나인볼 월드 챔피언십을 포함해 미국 및 국제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2008년과 2009년 연속 US 오픈 나인볼 챔피언십 타이틀, 2009년 WPA 텐볼 월드 챔피언십, 2016년 당구계의 마이클 조던으로 통하는 자신의 멘토 얼 스트릭랜드를 꺾고 뉴욕시에서 열린 스트레이트 풀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를 엘리트 서클로 끌어올린 경기는 2001년 독일의 랄프 수켓을 누른 것이었다. 마지막 9번 공을 구멍 안에 떨구자 이모넨은 테이블에 쓰러져 눈물을 흘렸고 관중들은 "미카! 미카!"를 연호했다. 그는 2010년 맞춤형 당구 큐 케이스 제조업체인 짐 무르낙과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모두가 나를 알고 있었다"면서 "나는 속으로 '이게 뭐지? 내가 유명하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승리는 그의 자부심을 키웠다.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는 2001년 그의 프로필에 "챔피언에 오른 뒤 일주일 동안 전화를 받으며 '안녕하세요, 세계 챔피언 미카 이모넨'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테이블 위에서 늘 차가운 시선, 강철 같은 태도를 보여 '아이스맨'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오만한 것으로도 비쳤다. 그는 2006년 인터뷰에서 "그들은 내가 TV에서 못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내가 플레이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진지한 비즈니스"라고 털어놓았다.
미카 일라리 이모넨은 1972년 12월 17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핀란드 베스트셀러 작가 미카 발타리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부친 일카는 재단사였고, 모친 라우라 팔로헤이모는 실내 건축을 전공했는데 미카와 쌍둥이 남동생, 누나를 양육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
부모가 이혼했을 때 미카는 세 살이었다. 4년 뒤 모친은 아이들을 데리고 핀란드 수도 헬싱키로 이주했다. 그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집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당구장과 아케이드가 문을 열어 그와 형제들, 친구들은 혹독한 추위에 아이스하키 스틱 대신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당구 큐대를 잡았다.
그에게 잠재력이 있음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일 년 뒤 당구장 주인은 그에게 근처 도시에서 열리는 토너먼트에 참가하도록 권유했고, 그는 우승했다. 상금은 햄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100달러에 팔았다. 열일곱 살 때는 러시아 프로 선수 아쇼트 포티키안을 꺾었다.
이모넨은 스누커와 다른 게임을 시작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경쟁해 종종 우승했으며 상금을 여행과 더 많은 대회에 출전하는 데 썼다. 스무 살이던 1992년, 그는 담배를 끊고 달리기를 시작해 마침내 마라톤도 즐겼다. 그는 마라톤을 순수한 형태의 지구력 훈련, 그리고 물론 당구를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010년 인터뷰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당구를 할 때 공감할 수 있다"면서 "가끔 머릿속에 '이봐, 지금은 이러고 싶지 않아'라는 의심이나 어리석은 생각이 들지만, 그러다가 '어서, 계속 싸워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2014년 미국 당구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유족으로는 모친, 파트너 에밀리 엘리자베스 블레어 커 키티, 누나 레아 팔로헤이모, 세 명의 의붓형제 자코 네바스토, 미코 이모넨, 크리스티앙 올센을 남겼다. 쌍둥이 동생 카리 잘마리 팔로헤이모는 연초에 세상을 등졌다.
이모넨은 2023년 대회 참가를 위해 여행하던 중 허리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그는 코스타리카에서 종양학자인 친구와 대화한 뒤에야 암에 걸렸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해 12월 팟캐스트 'Doggin' It'에서 몰리나 마이크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코스타리카에서 화학요법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계속 운동하고 지역 토너먼트에 출전했다고 팟캐스트에 밝혔다.
인터뷰 중 채팅방의 팬들은 불굴의 회복력을 뜻하는 핀란드어 'SISU'가 들어간 격려 메시지를 공유했다. 이모넨은 "많은 것을 요약하는 단어"라며 "순수한 의지와 결단력,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라고 말했다. "진부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돌아오면 더 강해질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산악회 | [OTT로 읽는 세상] 허접한 B급 영화라고? 핀란드 아픈 역사 돌아보게 하는 '시수'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