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태양은 빨리 진다.
그래서 밤이 더 길고 깊다.
3년 전 1월 어느 날, 퇴근하여 아내와 함께 식사를 마친 뒤에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 휴대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휴대폰 커버를 열고 화면을 보았다.
'죽마고우'인 고향친구 K였다.
무지 반가웠다.
"와우. 이게 누군가? 반갑네 친구"
"그랴. 오랜만일세. 자네도 별일 없지?"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한참 동안 수다를 떨며 서로의 안부를 교환했다.
살갑고 친밀한 통화였다.
안부인사가 끝나자 비로소 K가 용건을 꺼냈다.
"여보게. 고향에 있는 자네 논을 나에게 매각하는 게 어떻겠는가?"
뜬금이 없었다.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친구의 느닷없는 제안에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도대체 이런 시간에, 이런 얘기가 어찌 된 영문인지 나도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사람아. 차근차근 소상하게 얘기해봐.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말야"
K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비로소 친구의 제안을 조금은 납득할 수 있었다.
저간의 사정은 이랬다.
아버지는 위암으로 소천하셨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은 매우 또렸하셨다.
임종 직전에 11명을 부르셨다.
어머니와 3남 2녀 그리고 각각의 배우자였다.
아버지가 누워계신 침대 주위로 모두가 빙 둘러 앉았다.
잠싯동안 정적이 흘렀다.
"장남이 대표로 나의 유지를 기록하거라"
"예. 아버지"
아버지는 느렸지만 분명한 어조로 '어머니 케어', '유산상속', '신앙생활', '3세들 교육', '가문의 문화와 가풍' 등 평생 동안 당신의 삶을 견인했던 주요 인생 테마들에 대해 조목조목 절제된 말씀을 이어가셨다.
간절한 당부였다.
어쩌면 남겨진 가족을 향한 '최후의 기도'일 터였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과 한 가족으로 살았다는 것', '주님의 아들로 성심을 다해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 '현숙한 아내와 평생을 동반했다는 것', '열정과 열심을 다해 후회없이 인생을 살았다는 것' 등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고백하셨다.
시종일관 애절했고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먼 여행을 떠나신 뒤로 우리는 그 유지를 받들어 말씀 그대로 준수했고 실행했다.
가문의 어느 누구에게도 이견과 갈등이 존재할 여지는 없었다.
소천 후에도 모든 상황은 분명했고 깔끔했다.
나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농토를 상속 받았는데 동생의 논과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전답을 상속 받았지만 형제들 모두가 도시에 살았으므로 그 농토를 자경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향에 있는 K에게 농사를 맡겼고 그 친구가 십 년 이상 긴 세월 동안 잘 경작해 주었다.
K는 엄청난 면적에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영농 사업가'였다.
2021년 연초가 되자 동생이 K에게 먼저 제안했던 모양이었다.
"비즈니스에 자금이 필요하여 자신의 논을 매각하고 싶은데 K형이 매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나는 그런 얘기가 오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동생과 K는 몇 번의 상의 끝에 양수도 문제에 합의를 보았다고 했다.
"오호, 그런 일이 있었구만"
자고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했던가.
K가 그랬다.
"동생의 논을 매입하는 김에 바로 그 옆에 붙어 있는 내 농토도 함께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만 두 논의 경계를 해체하여 크게 하나로 만들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각종 농기계로 농사를 지을 때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으니 자신의 입장에선 더 효과적이고 편리하다고 했다.
"그러니 부탁 좀 하세. 친구야. 이번 참에 자네 농토도 동생처럼 나에게 일괄적으로 매각해 주면 고맙겠네"
그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내게 당부하고 있었다.
"오케이. 자네의 제안은 잘 알겠고 나에게도 며칠 생각할 시간을 주소. 아내와도 긴밀하게 상의해 봄세"
그후로 약 일주일 간 아내, 동생,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의견을 가감없이 교환했다.
나는 그 당시 딱히 돈이 필요 없었다.
그렇기도 했거니와 그 토지는 내가 노력해서 구입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땅이라 단 한번도 전답의 매각문제를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친구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고 동생은 이미 K와 매각을 합의한 상태였다.
친구의 갑작스런 제안이 뜬금없긴 했지만 여러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나도 절친한 K를 위해 승낙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아내와 함께 군산으로 가서 친구를 만났고 계약서에 인감도장을 날인했다.
매각대금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꽤 큰 금액이었다.
일단 '양도세'를 납부했다.
내가 논을 상속받은 지 십 년 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난 싯점이었지만 '양도세'도 만만치 않았다.
많은 액수였다.
세금을 제하고 나머지 대금은 10원짜리 하나 손대지 않았다.
그리고 백프로 '삼성전자' 주식에 묻어두었다.
2021년 연초였다.
농토 매각 자체가 느닷없이 이루어진 데다가 매각대금의 용처에 대해 깊게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그 당시 삼전의 시세가 바닥인지, 꼭지인지 따져볼 새도 없이 그냥 고스란히 쏟아부었다.
그 큰 돈은 아버지의 땀과 열정의 결과였다.
단지 그 생각 하나 뿐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21년 연초가 하필이면 삼성전자의 '상투'였다는 것을.
그야말로 '꼭지점'이었다.
몇 개월 후에 계좌를 열어보니 정말로 한심하고 참혹했다.
내가 들어간 다음부터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절벽으로 급전직하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찌 이런 일이. 오오 주여"
오비이락도 유분수지 형언할 수 없는 열패감이 나를 엄습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심사숙고 하지 못했고, 공부하지 않았던 나의 패착이요 씻을 수 없는 불찰이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성격도 제각각이다.
나는 대입에 한번 미끄러져 재수를 했고 84학번이 되었다.
2번째 연합고사(현재의 수능)를 마치고 내 인생에서 첫 미팅을 했는데 그때 만났던 여인과 8년 연애했고, 어느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결혼하여 지금까지 33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다.
내가 잘났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성격적 기질이 그렇다는 얘기다.
조변석개 하지 않으며 좀처럼 일희일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한번 결정하면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가는, 단순무식한 스타일이다.
그런 까닭에 내 증권계좌도 자주 보지 않았다.
2-3개월에 한번씩 들여다 보는 정도였다.
그래도 그렇지 계좌를 체크할 때마다 끝없이 추락했고 또 추락했다.
하염 없었다.
아예 날개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야말로 끝 모를 나락이었다.
확인하고 나면 매번 아내와 공유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그냥 배시시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긴 호흡으로 묵묵하게 가자고 했다.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삼전도 망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미래의 트렌드는 디지털 경제로 갈 것이며 'AI', '로보틱스', '자율주행'이 메인 스트림일 거라고 믿었다.
급기야 나의 삼전이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지만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그래도 공포와 암흑의 터널일 때가 기회라는 생각했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조금씩 조금씩 더 투자해 수량을 늘렸고 매입단가도 낮췄다.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2023년 12월 27일, 수요일이다.
금년의 끄트머리이자 세밑이다.
나는 오늘, 나의 'HISTORY 파일'에 두 문장을 새로 기입했다.
하나는 '배우 이선균님, 하늘의 별이되다' 였고 다른 하나는 '만 3년 만에 삼전이 드디어 수면 위로 상승했다(양전)'였다.
주식 평가액이 3년 동안 줄곧 '파란색'이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빨간색'으로 돌변했다.
나도 사람인데 솔직히 기뻤다.
그리고 기분이 삼삼했다.
그래서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사유의 편린을 몇 자 적어보자고 생각했다.
글제를 '3년만에 양전'으로 잡았다.
93년 동안 긴 인생길을 스마트하게 가면서 '살아있는 전설'이자 '투자의 귀재'로 통하는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 형님이 들으시면 불쌍하고 가엾은 마음에 혀를 끌끌 차실 테지만 그래도 나는 내 나름대로 아버지에 대한 신의와 예의를 지키고 싶었고, 나만의 투자원칙을 준수하고 싶었다.
그냥 잘 수 없어 몇 자 남겨두려 컴을 켰다.
돈 몇 푼, 주식 몇 주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지속적인 공부와 학습', '기다림과 깊은 사유', '세상의 도도한 흐름과 그에 따른 현명한 대응', '공포 앞에서의 용기', '탐욕 앞에서의 절제', '왕성한 호기심과 학구열' 등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가 항상 배우고 익히며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한번 더 상기하며 리마인드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도 긴 호흡과 먼 시선으로 일관되게 말이다.
혹자는 '손절'을 못했으면 '익절'이라도 잘 하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HBM', '온 다바이스 AI', '매그니피센트 7'과 혁신의 회오리, AI 베이스의 '바이오'와 '로보틱스' 그리고 '자율주행', '엔터', '항공우주' 등등 미래의 제반 분야에서 이제는 산업의 쌀인 '반도체'를 빼고는 더 이상 한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작금의 세태 속에서 삼전의 무서운 가능성과 놀라운 잠재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렇기에 계속 치열하게 공부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의 문을 열심히 두드려 볼 참이다.
투자는 빈번하게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상장기업의 주인이 되어 긴 세월 동안 함께 고민하며 성장해 가는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법정스님'.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승에서 우리가 멋지게 삶을 엮어가야 하는 이유는 '풍부한 소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풍성한 존재', 그 자체를 위해서"라고.
곱씹을수록 깊은 지혜와 통찰이 느껴지는 잠언이자 기막힌 아포리즘이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진리다.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하고 학습하며 걸어간 만큼, 딱 그 만큼만이 내 인생이고 내 삶이다.
책이나 논문 한 편 읽었다고 그 책의 컨텐츠가 내 삶이 되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앞으로도 그런 생각과 태도엔 조금도 변함이 없을 성싶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편안하고 안락한 겨울밤이 되길 소망한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