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바드기타를 우연히 읽었다. 동족의 죽음을 보고싶지않아 소경상태를 지속하고 싶어하는 왕과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설파한 크리슈나는 인간적인 고뇌와 그런 고뇌도 무상함을 보여준다. 사실 삶과 죽은은 개인에게는 중대할 지 몰라도 지구의 입장에서는 수십억분의 일에 해당하는 미미한 것이고 이러한 진리조차 우주의 입장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진리는 반하던 따르던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왕을 죽이지 않고 둔 것과 동일하다.
아르주나는 판다왕의 세째아들로 활의 달인이다. 큰아버지가 소경이어서 왕위계승을 못해 아버지가 즉위했지만, 그가 일찍 죽어 큰아버지가 섭정을 맡으면서 판다왕의 아들들도 키워준다. 눈이 멀었지만 좋은 사람인 큰아버지와는 달리 그의 아들은 사악하다. 그래서 성인이 되면 섭정을 마치고 원래 왕위를 계승해야할 판다왕의 큰 아들을 해하려하고 그의 약점인 노름을 통해 이를 달성한다. 판다왕의 다섯 아들과 부인은 추방되고 아르주나는 활의 달인을 부마로 뽑겠다고 하는 다른 나라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
그의 모친은 아르주나가 보물을 얻었다는 말에 보물이 무엇인지 확인도 하지않고 다른 아들들과 똑 같이 나누라고 하고 공주는 다섯 아들과 결혼하여 각자에게서 자식을 가지게된다. 다섯아들은 추방중에 수행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면서 섭정중에 익힌 기본에 추가하여 무예도 익혔고 결국 그들은 사촌들과 전쟁을 통해 정당한 왕위계승에 나서게 되는 것이 바가바드기타의 배경이다. 아르주나는 전쟁에 참가하지만 고민한다. 승리를 하더라도 자신을 교육했던 사부와 같이 자랐던 사촌들을 죽인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기본적인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크리슈나는 우선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하면서,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죽으면 그렇게 기억되므로 좋고 이긴다면 정의를 구현했기에 좋으므로 꽃놀이패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진리와의 합일하는 요가방식에 대해 세속을 포기하고 은둔하여 진리를 깨닫는 방식과 결과에 집착하지않고 행위를 함으로서 진리와 합일하는 방식을 설명하는데 전사계급인 아르주나에게는 두번째 방식에 집중하여 설명한다.
생물은 행위없이 생존할 수없는데 하나의 행위는 다음 행위의 원인이 되기에 끝없는 행위의 연속이 이루어진다. 다만 행위에 집중하고 그 결과에 신경쓰지않으면 그런 순환에서 빠져나올수있는데 전사인 크샤트리아의 경우는 정의를 위해 승패에 상관없이 싸우거나 정치에 전념하는 것이 그런 무념의 행위에 해당한다. 다른 계급으로 브라만은 제사에, 바이샤는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여 생산을 하고 납세하는 것에, 그리고 아리아인이 정복한 선주민인 수드라는 아리아인에 봉사하는 것이 그러한 행위다.
그리고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수행만 하다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아르주나의 질문에 크리슈나는 죽어서 수행단계에 해당하는 상태로 다시 태어난다고 대답한다. 즉, 진리와 합일하기전에는 윤회가 지속되며 수행정도가 높을 수록 상류층이니 더 높은 수행자의 가문에 태어난다고 설명한다. 글쎄 우주의 원리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위지만 이를 위해 금욕하거나 반대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윤회되는 것이 진리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생물은 유기체가 모여서 형성되고 다시 분해되기에 원자는 보존되겠지만, 그 그릇에 담기는 영혼이 과연 영속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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