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고백의 마음. 들어주는 그 마음
두산 ㆍ 이 병 준
고백의 빛깔은 고운 색깔을 띄고 있을거
다. 일단 고백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
나 한편 슬픔의 비의(秘意)을 내포하고 있기에 신비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어머니의 그 신비스런 고백을 존경하고 숭모하는 멘토 누님을 통해 전해 들었을 적에 아픔과 비애의 그 비밀의 함, 심장 속 아주 깊숙한 곳에 조갯살 속에 진주처럼 박혀버린 아주 슬픈 이야기, 이승에선 누
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비밀의 얘기, 죽어 차마 무덤 속에도 뭍지 못하고 가지
고 가야할 슬픈 이야기.
어쩌면 수천년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전
설 속 얘기같은 아득한 그러면서도 기막
히는 고백의 고해성사를 어머니는 선종하
기 2년여 전 그 숨겨 두었던 비밀함을 깨
뜨려 친딸보다 더 딸 같은 멘토, 누님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서른한 살의 청상의 엄
마가 근친에게 덮침을 당했던 얘기다.
언젠가는 누구에게 이 비담(秘談)을 풀
어 놓고 가고 싶었지만 그 대상은 아들도 딸도 며느리도 아니었다. 자식보다도 더 자식같은 딸보다도 더 딸같은 수양딸에게 그 비밀의 심장 한구석을 허물어 보여준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다한 천명 앞에서 이 기막힌 사연을 이승에서 털어 망각의 강에 흘러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아픈 기억을 하늘나라에까지 가지고 가서 미리
내에 담궈 휑그고 싶진 않았을 게다. 결국
엔 두번째로 나는 누님에게서 이미 전해 들은 고백과 똑같은 얘기를 엄마에게서 들었다.
"엄마, 누님한테서 전해 들었어요."
무어라고 한 말씀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전혀 생각은 지워지고 캄캄한 동
굴 속 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엄마, 그때는 이쁘셨잖아요? 엄마의 처지를 생각하며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다
가 동정심이 지나쳐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일겁니다. 누님에게도 고백했고 아들인 저에게도 고백했으니, 이젠 먼지 털듯이 털어 버려요."
"안그래도 나도 그리할 생각으로 털어놓
은게다. 참으로 이상하제. 삼십여 년 성당
을 다니면서도 신부님께 일찌감치 고해성
사를 할 생각을 왜 못 했는지, 호적상 남인
데도 수양 딸에게 아무 거리낌도 없이 맨 먼저 고백하고 또 자식에겐 뒤에 고백한
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좀 이상스럽긴 해
도 아들에게 바로 털어놓기는 참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어서 너한테 먼저 얘기하지 못한건 미안하다."
"엄마, 미안해할 건 아니고요. 그런 아픔
을 평생 간직하고 있으면서 말 못하고 견
디셨던 그 아픔이 오죽하셨겠어요.이제는 전설같은 심장 속 진주를 더 아프게 자라
지 못하게 '망각의 보석'으로 개내어 버렸
으니 기억에서 싹 지우시고 그 흔적도 지
워버리세요."
고백이란 들을 수 있다는 게 행운인지도 모른다. 아무나에게 할 수 없는 게 고백이
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비밀스런 얘기
를 듣고 상대가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건 정말 안함만 못한 무의미한 짓이 되
고 말기 때문이다. 세 분의 고백을 들은 일이 있다. 사별함으로서 결국 치유가 종
결된 의처증 남편에 얽힌 고백, 자식 남매
를 낳고 생식불능이 된 남편과 그걸 빌미
로 잡지 않고 20여 년을 운우지정 주고 받으며 살고 있는 참 아름답지만 어느 한 구석이 조금은 슬픈 이야기. 최근 인천대
공원에서 우연히 고백처럼 듣게된 결혼 삼 개월만에 남편의 의처증과 폭력으로 이혼한 서른다섯 살 여인의 이야기.
그 치유의 역할은 인간사의 일이니 그 당사자인 사람이, 사람들 속에서 고백할 사람을 선택해 고백했으니 그 분을 통해
서 치유받고 위로받으며 해결해 나갈 지
상에서의 일이다. 결코 무작정 신에게 매
달려 해결의 실마리를 간구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일차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서로 이심전심 한마음으로 새기고 공감하고 배
려하고 존중하며 치유의 역할을 해주며 해결해 갈 일이지 처음부터 만능의 신께
서 해결해 줄 영역은 아니다. 사람과 사
람 사이 공동생존에서 해결해 가야 할 사
명이다. 이승에서 神이 자신의 임무 중 에서 인간들에게 위임한 가장 아름다운 사명은 고백하고 그 고백을 받아주는 일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홀로 해본다. 고백한 자와 그 고백을 들어준 사람과 사
이에서 맨 먼저 최선을 다해 그 해결의 실 마리를 꾸준히 모색해 보는 게 옳을 듯 여 겨진다. 그러나 결국엔 자기의 의지가 선
행해야 하고 실천이 뒤따라야 하고 무엇
보다 지극한 사랑의 자애와 대자비의 보 살심이 발효되야함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 지닌 지혜의 신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