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사 삼월
삼월 둘째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새벽이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한 후 셔츠를 세 장 다림질하며 날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여섯 시 반에 와실을 나섰다. 아직 아침 공기는 쌀쌀해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꼈다. 머리숱이 적은 나는 이마가 시려 와 방한용 모직 헌팅캡도 잊지 않고 챙겨 썼다. 골목길에서 조선소 옷차림 사내가 통근버스를 타려고 나를 앞서 연사 정류소로 향해 갔다.
사라진 어둠과 함께 성글던 별들이 빛을 감추었다. 들판 건너 산언덕 교회 십자가 네온 불빛도 꺼졌다. 연효교에는 밤새워 들어온 야간 조명은 날이 밝아와 주탑과 쇠줄 윤곽이 드러났다. 약수봉 위 허공에 스무닷새 조각달이 걸려 있었다. 새벽이나 이른 아침 들녘으로 나서면 하늘에 걸린 하현이나 그믐달을 쳐다보면서 음력이 가는 날을 알게 된다. 오는 주말이 이월 초하루다.
학교와는 반대 방향인 연사 들녘으로 나갔다. 아침 출근길 와실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너무 가까워 동선을 길게 잡아 들녘을 빙글 들러 교정으로 들어선다. 연사마을과 연초삼거리에는 날이 새면서 엷은 안개가 끼었다. 일전 흡족히 내린 비로 대기 중 습도가 높을 때 나타나는 기상현상이었다. 맞은편 효촌마을과 수월지구와 고현을 에워싼 계룡산에도 엷은 안개가 걸쳐져 있었다.
들녘 한복판 농로를 지나 연초천 둑으로 올랐다. 산책을 나서 연초천 하류로부터 올라온 두 아낙이 스쳐 지났다. 연초천은 수위 조절용 댐으로 물이 알맞게 채워져 있었다. 상류에서 무슨 공사가 있는지 흙탕물이었다. 하천 가장자리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은 갈대와 물억새는 잎줄기가 야위어 갔다. 늘 보이던 흰뺨검둥오리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 먹이활동을 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연효교를 지나 연사천 둑길로 들었다. 건너편은 주중 내가 머무는 연사마을이 펼쳐졌다. 전형적인 농촌인데 조선소 근로자들이 늘어 주택 부족을 겪자 원룸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동네다, 내가 주중 머무는 와실 주인은 오래도록 다녔던 조선소에서 퇴직해 원룸을 지어 임대사업을 하는 이다. 그는 연사뿐만 아니라 인근 하청면 소재지에도 원룸을 한 동 더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연사천 둑길에서 거제대로와 나란한 농로를 따라 걸었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산기슭에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보였다. 차도에는 출근 시간대를 맞아 조선소 통근버스들이 늘어갔다. 고현에서 장승포와 능포로 운행하는 시내버스들도 다녔다. 칠천도와 장목 구영으로 가는 버스편도 있고, 지세포와 구조라로로 가는 20번대 노선도 있었다. 고현에서 연초삼거리까지는 교통량이 많았다.
연사마을 입구에서 학교로 방향을 틀었다. 외국인출입국사무소를 지나 교정으로 들어섰다. 일찍 출근한 배움터 지킴이는 하루 업무를 시작되었다. 나는 현관으로 바로 들지 않고 교정 수목을 살폈다. 지난 주말까지 봉오리가 봉긋했던 목련이 꽃잎을 펼쳐 화사했다. 그 곁에 한 그루 매실나무에서도 연분홍 매화가 활활 피었다. 거제 고현과 연초의 봄은 창원보다 늦게 오는 듯했다.
뒤뜰로 돌아가 청소 시간이면 내가 지도를 맡은 쓰레기 분리배출 장소를 살폈다. 모아둔 폐휴지는 주말을 틈타 수거업자가 치워 깔끔했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 묶어둔 쓰레기들도 치워져 주변이 깨끗했다. 뒤뜰 절개지 개나리는 노란 꽃잎을 펼치는 즈음이었다. 개나리는 넌출이 나가듯 주렁주렁 가지를 드리웠다. 남향이긴 해도 바로 앞에 본관 건물이 가려 응달이나 마찬가지였다.
현관에서 계단을 올라 긴 복도를 따라 걸어 문화보건부실로 들었다. 실내등과 노트북을 켜고 하루를 시작했다. 잠시 뒤 학생 등교 시간에 맞추어 다시 현관으로 내려가 열화상카메라를 살피고 올라왔다. 2학년은 지난 첫 주 원격 수업이었는데 이번 주 등교 수업이 이루어진다. 내가 수업에 들어갈 학급을 챙겼다. 오전 한 시간과 오후 두 시간 수업할 내용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21.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