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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사르가 프랑스 영유권을 주장 | 1682 |
최초의 영속적 식민 입주 (세인트 제네브에브) | 1735 |
루이지애나 매수 | 1803 |
루이스와 클라크에 의한 탐험 | 1804-1806 |
미합중국에 23번째 주로 들어감 | 1812 |
세인트 죠셉에 포니 속달편 개통 | 1821 |
남북전쟁(전투의 11%가 미주리주 안에서 교전되었다.) | 1839 |
미주리 대학에 세계 최초의 저널리즘 학과 개설 | 1908 |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 부활절, 추수 감사절 등을 제외하고는 평상시 거의 무료로 안내 받으며 구경할 수 있다.
주의 새
미주리 원산인 시알리아 (Sialia, Sialis)는 1927년 3월 30일 제 54회 주의회 총회에서 승인된 법안에 따라 정식으로 주의 새로 지정되었다.
법률 원문은 다음과 같다. [미주리 주는 이에 미주리 주 원산 시알리아(학명:시아리스)를 공인 새로 지정한다. 그 후 시알리아는 미주리 주의 정식 새로 인정키로 한다.]
주의 깃발
1913년 제 47회 미주리 주 의회 총회는 미주리 주의 공식 주기 채택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 조문에는 다음과 같이 정해져 있다. [이에 미주리 주는 공식 주기 채택을 결정한다. 깃발 형태는 장방형, 세로와 가로길이 비율은 7:12로 하고, 가로를 같은 폭의 적, 백,청색 3등분 된 띠 모양으로 나누고, 맨 위가 적색, 아래가 청색이 되게 한다. 기의 중심 백색 띠 위에 주의 문장을, 그리고 그 둘레는 둥근 푸른 띠로 두른다. 푸른 띠의 폭은 기 세로 길이의 14분의 1로 하고, 원의 직경은 기 가로 길이의 3분의 1이 되게 한다. 푸른 띠 안에는 같은 간격으로 24개의 별을 그려 넣는다. 구기는 상기 기준에 따르기로 하고, 디자인 원본은 내무부장실에 보관키로 한다.]
미주리의 기후
미주리의 기후는 여름이 길고, 기상 조건이 잘 변하는 대륙성 습윤 기후라고 말할 수 있다. 날씨가 잘 변하는 시기와, 안정된 시기가 있다.
겨울은 해에 따라 또 지리적 조건에 따라 변화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상쾌하고 몸을 긴장시켜주는 정도의 기후이며, 대단한 추위는 거의 없다. 단 한파나 이상 난동이 일시적으로 닥치는 때가 있고, 기온은 남. 북 차이가 있는데, 1월의 하루 평균 기온은 북서부에서 섭씨 영하 4o , 남동부 '부츠의 뒤꿈치' 지역에서 1o 정도이다. 여름은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습기가 많아진다. 하루 평균 기온은 섭씨 25도에서 27도 정도이며, 7월의 전형적 하루 평균 기온을 보면, 최저 19도, 최고 29도 내지 32도로 되어 있다.
연간 평균 강우량은 겨울은 건조하고, 대부분 비가 여름에 오는 미주리 북서부에서는 36인치, 봄과 가을에 비가 많이 오는 동남부에서는 47인치로 되어 있으며, 북서부의 강우량의 46%는 5월에서 8월까지 작물 육성기에 오는 것에 비해, 같은 시기 동남부의 강우량은 연간 강우량의 34%에 불과하다.
미주리의 지리
미주리는 중,서부 중앙에 위치한 주로서 미국 대륙 중심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북위 36o 30' 과 40 o 30' 사이, 서경 91o과 95o 사이에 위치한 미주리 주는 북부 아이오와 주에 남부는 아칸시스 주에 동부는 일리노이주, 켄터키주, 테네시주와 서부는 네브라스카주, 캔사스주, 오클라호마주에 접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8개의 주와 인접하는 주는 두개가 있는데, 미주리가 그 중 하나이다.
면적
미주리주의 면적은 전부 69,674 평방 마일로써 미국 내에서 열 아홉째로 큰 주이다. 또 미주리는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는 주로서는 미네소타에 이어 두 번째로 크고 미시시피강 동 쪽에 위치한 주 중에서는 제일 큰 주이다.
지형
미주리주는 지리적으로는 다음 네부분으로 나눈다:
빙하평원은 지금도 두께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빙하로 덮여 있는 지역이다. 그 중 일부 지역에서는 평원이 침식과 퇴적으로 구상을 하고 있다. 빙하 평원 지역은 빙하에 의한 퇴적물로 두텁고 비옥한 표토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농업에는 최적의 땅으로 평가된다. 서부 평원에는 전체적으로 큰 언덕이나 계곡은 없다. 빙하의 영향이 없었기 때문에 이 평원은 암상의 분해로써 특징지어져 있다. 이 지역의 농업은 일모작과 낙농으로 대표된다.
이에 비해 오자크 산지는 구릉과 계곡으로 이루어졌고, 토지의 기복은 특히 미주리 남단부의 군 몇 곳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계곡 부근 구릉과 단애의 고도차는 500피트까지 이른다. 남부 저지는 고도가 아주 낮은 지역으로 저지 서쪽을 횡단하는 크로리즈 릿지가 유일한 침식 작용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비옥한 충적토로 된 남동부의 저지대에서는 집약적 농업이 행해지고, 콩과 목화가 주요 작물이다. 주내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지점은 아이안군의 타움사이크 산으로서 해발 1,772피트, 반대로 가장 낮은 곳은 주 동남단 '부츠의 뒤꿈치'에 해당하는 아바트 부근으로써 해발 230피트이다.
지질
미주리 주내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은 동남부에서 볼 수 있는 화성암이다. 화강암과 반암 등으로 대표되는 화성암, 그리고 그보다 오래된 변성암이 주전체에 존재한다. 미주리에서는 또 석회암, 사암, 이판암등 다양한 암석이 발견되고 있다. 건축용 또는 기념비용의 아름다운 붉은색 화강암은 그라나이트 빛에서 산출되며, 또 가르타고는 백대리석으로 유명하다.
주의 악기
1987년 제 84회 주의회 총회에서 바이올린이 주의 악기로 선정되었다. 여러 종류, 다양한 모양의 어떤 음악에도 잘 어울리는 바이올린은 미주리의 자랑스런 전통이 되었다. 주내에서 개최되는 음악 축제 중 오랜 역사를 지닌 바이올린 연주 콘테스트는 미주리 주민에게 대단한 인기가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이 변화 무쌍한 재주꾼 악기를 즐기는 것이다.
주의 돌
1967년 제 47회 주의회 총회에서 모자카이트가 정식으로 주의 돌로 지정되었다. 전국의 수집가가 다투어 찾는 모자카이트는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로는 이른바 부싯돌의 일종이다. 이 돌은 오직 미주리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자크 산지 특히 벤튼 군에 많이 있다. 모자카이트의 색은 다양한데 대개 빨강, 보라, 초록, 붉은 다갈색 등을 띠고 있고, 장식용으로 절단, 연마하면 더 아름다운 모습을 띠게 된다.
주의 꽃
1923년 3월 16일 제 52회 미주리주 의회 총회의 승인을 얻어, 산사나무 꽃(Hawthorn)이 미주리를 상징하는 꽃으로 정식 채택되었다. 법률 원문은 다음과 같다. [이에 산사나무(소경 '레드호'로 불리는 나무에 피는 꽃으로 학명 그라다에그스)를 미주리주의 상징인 정식 꽃으로 선언함과 아울러, 농업원예위원회는 이를 인지하고 나아가 그 꽃, 열매 및 잎의 아름다움을 들어 그 나무의 재배를 장려하는 의무를 가진다.] 산사자는 장미과에 속하지만 사과나무 꽃과도 비슷하다. 4월에서 5월에 걸쳐 사과 꽃처럼 탐스러운 흰 꽃송이를 피운다.
주의 나무
1955년 제 68회 주의회 총회는 말채나무(Dog Wood)를 정식 미주리 주의 나무로 정했다. 바위가 많은 넓은 숲, 낭떠러지 잡목 숲 등에서 가득히 꽃을 피우고, 해마다 많은 관광객을 오자크 고원에 끌어 들이는데 5월 초에 꽃이 핀다.
주의 문장
미주리 주의 문장은 1820년에 채택된 미주리주 헌법에 따라 인가 되었다. 문장의 디자인을 정한 법률은 1822년 1월 11일에 서명, 발효하였다. 문장의 중심부는 발톱에 화살을 움켜쥔 독수리와 곰과 초생달의 심볼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는 격언이 새겨진 벨트로 둘러쳐져 있고, 그 위에는 여섯 가닥의 줄기가 달린 투구, 또 그 맨 위에는 미주리 주를 나타내는 큰 별이 그려져 있다. 이외에도 23개의 별이 있는데, 이는 미주리 주가 24번째로 합중국의 주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 방패 부분의 양쪽에는 '국민의 복지를 최고의 법으로 한다'라는 표어가 씌어진 띠 위에 두 마리의 곰이 서있다. 띠 밑에는 미주리 주가 주로서 기능을 개시한 1820년을 나타내는 로마숫자 MIDCCCXX가 새겨져 있다. (단, 미주리주가 정식 주로서 미합중국에 든 것은 1821년 이다.)
주의 표어
미주리주 출신의 저명 인사
해리 S. 트루먼, 제 33대 미국 대통령으로 미주리주에서 난 가장 유명한 인물중 한 사람이다. 트루먼은 1884년 미주리 주의 라마르에서 출생, 잭슨 군 판사, 연방 상원 의원, 부통령 등을 역임했고, 1945년부터 대통령으로서 일했다. 트루먼은 '인디펜던스 지구 출신 사람'으로 별칭될 만큼 그 유적이 인디펜던스 지구에 몰려 있다. 어릴 때 살던 집, 하계절용 백악관, 그가 최초로 부임했던 법정, 트루먼 도서관, 박물관 그리고 무덤이 모두 인디펜던스에 있다.
사뮤엘 크레멘스, 한니발에서 미시시피강을 오가는 배를 보며 자란 이 사람의 필명이 유명한 마크 트웨인인데, 이 이름은 배에서 쓰는 말을 따서 지은 것이다. 그가 미시시피 강과 미주리에서의 어린 시절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는 것은 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트웨인의 집과, 톰과 허클베리의 조각상은 지금도 한니발에 가면 볼 수 있다. 그 근처인 미주리 주 플로리다에는 트웨인의 생가가 사적지로서 보존되어 있다.
존 J. 퍼싱, 1860년 미주리주 라크라드 근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군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오랜 군 생활은 육군 사관 학교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전쟁, 멕시코의 판초비라 토벌 작전으로 이어진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럽 전선에서 미군 지휘의 책임을 맡았다. 라크라드에 있는 퍼싱의 소년 시절 집은 오랜 가구와 함께 보존되어 현재 무의 기념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제시 제임스, 서부영화로도 너무나 유명한 이 악한은 1837년 9월 5일 미주리 출생이다. 제시와 그의 형제 플랭크가 자란 농가와 제시의 무덤이 카니에 있다. 이 총잡이 무법자에 관한 가장 흥미를 끄는 구격어리는 제시가 1882년 10,000 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상태에서 사살된 세인트 죠셉의 집이다. 이 조그만 목조집은 페티 하우스 박물관 부지 안에 지금도 제시가 '하와드'란 별명으로 숨어 살던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대 초원의 작은 집'등 일곱 권의 어린이 동화책"작은 비"시리즈의 저자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류 작가이다. 가족과 한께 캔사스, 미네소타, 아이오와, 사우스 다코타 등으로 전전했지만 1894년에 미주리주 오자크 산지의 맨스필드에 정착했다. 1932년 첫 권 '대초원의 작은 집'을 썼을 때 그녀는 이미 65세 였다. 1943년 마지막 권이 나왔고, 1957년 죽을 때까지 맨스필드의 로커릿지 농장에서 꽃과 정원을 가꾸며 살았다. 그녀가 일곱 권 시리즈를 모두 집필했던 소작한 목조 집과 원고와 기념품 등을 소장한 박물관은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토마스 하트 벤튼 , 이 저명한 예술가는 1889년 미주리 주 네오쇼 출생이다. 벤튼의 걸작품 두 점이 하나는 제퍼슨 시티의 주의회 의사당에 또 하나는 인디펜던스의 해리 S. 트루먼 도서관에 벽화로서 남아 있다. 주의회 의사당 벽화는 미주리 역사를 그렸고 트루먼 도서관의 벽화는 서부 개척기에 인디펜던스가 해낸 역할을 그리고 있다. 1937년에서 75년 죽을 때까지 벤튼이 살고 그림을 그렸던 캔사스 시티의 그의 집은 현재 주의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오마 S. 브래드리, 1893년 미주리주 모바에서 태어난 브래드리는 제 2차 세게 대전 중 한 사람이 지휘하는 병력으로 역사상 최대라 할 130만 병력을 옹립한 미 제 12군의 지휘권은 한 손에 쥐었었다. 전 후 그는 통합 참모 본부 의장으로 임명되었고 또 재임 중 남북 전쟁 이후로는 다섯번째로 별 다섯짜리 육군 대장으로 진급했다. 1981년 죽을 때까지 69년간을 군인으로 활약 했는데, 이 것은 미국 역사상 최장 기록이기도 하다.
조지 캐러드 빙함, 미국 태생의 최고의 예술가로 불리는 빙함은 그 일생의 대부분을 미주리에서 지냈다. 그는 특히 초상화와 미주리주 변경 생활상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또 공무의 경험도 있는데, 미주리 주 주의원, 주 재무 장관 등으로도 근무했다. 빙함이 1837년에서 45까지 살았던 애로 로크의 집은 주의 사적지로 정비되어 있다.
조셉 스미스, 예수 그리스도 말일성도 교화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는 1831년 신자들과 함께 비주리 주 인디펜던스로 이주해 왔다. 1838년에서 39년에 걸친 겨울, 스미스는 근처 리버티 형무소에 투옥되어 있었는데, 신도들에 의하면 그는 이때 감옥 안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리버티 형무소는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인디펜던스에는 아름다운 몰몬교도 순례 센터가 있고, 교회 본부가 솔트레이크 시티로 이사해 간 지금도 중요한 몰몬교 성지의 하나로 되어 있다.
다니엘 분 생전에 이미 전설적 인물이 된 분으로 처음에 개척자, 정찰자, 인디언 정발자 등으로 시작해서 후에 미주리 사람이 되었다.
유진 필드 작가, 신문 기자 겸 칼럼니스트인 필드는 1850년 세인트 루이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어린이를 위한 일련의 동시 작가로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리틀보이블루','위킨, 브린킨, 앤드 낫트' 등이 유명하다. 세인트 루이스의 시내에 있는 소년 시절에 살던 집은 옛날 장난감 인형 등 많은 수집품이 갖춰진 어린이 박물관이 되어 있다.
스코트 조프린, 조프린은 텍사스에서 출생했지만 생애의 대부분을 미주리 주에서 지냈다. 원래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그는 창조적 음악 재능을 발휘, 후에 '래그타임의 아버지'로까지 물리는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다. 세다리아와 세인트 루이스에서 살았던 조프린은 이 곳에서 많은 작곡 활동을 했고, '메이플 프래그','엔터 테이너' 등의 곡이 유명하다. 세다리아에서는 매년 6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가들이 모여들어 그의 업적을 기리며 '스코트 조프린 래그 타임 페스티벌'을 갖는다.
조지 워싱톤 카버, 카버는 미주리 주 다이아몬드 근처에서 태어나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실용적인 연구로 크게 알려졌는데 한정된 토지의 농민 생활을 어떻게 향상 시킬 것인가 하는 연구에 공헌했다. 다이아몬드 근교에 있는 그의 기념관에 가보면 그가 출생한 오두막 집터, 소년시절 카버의 조각상, 카버 일가의 집, 묘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