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유바바의 머리 크기는 내 머리 크기랑 같지"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인터뷰
미야자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일본에 가져온 엄청난 흥행을 '의외'라고 말한다. '그 속에 등장하는 목욕탕은 바로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엉뚱한 답도 진작부터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 노련하면서도 천진한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종의 농담들이다. 그의 진심은 '지금 열 살짜리를 위한, 한때 열 살이었던 사람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의지 속에 담겨 있다.
“친구의 열 살짜리 딸을 보고 그 또래 아이를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생각해보니 내 작품 가운데 열 살 아이를 위한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초유의 히트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든 계기치고는 무척 단순하지 않은가. 어른이면서도 어린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술 더 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거국적인 흥행을 ‘의외’라고 말한다. “열 살 아이들이 즐거워할 거라는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여러 계층, 특히나 여성과 노인들까지 즐거워한다는 게 나로서도 놀라웠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원령공주>에 이르기까지 만드는 작품마다 일본 애니메이션사에 기록을 남긴 미야자키의 이런 말이야말로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백발의 미야자키는 자신의 아틀리에 ‘니바리키’에서 정자세로 인사하며 한국 취재진을 맞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방문객의 의표를 찌르는 인사말을 던졌다. “이 영화를 설명하는 게 귀찮아서 요즘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목욕탕을 스튜디오 지브리라고 말한다.” 일본에서만도 숱한 인터뷰 공세를 받아온 애니메이션 거장의 노련한 한수다. “목욕탕을 지배하는 마녀 유바바의 머리 크기는 내 머리 크기와 같고, 하는 일은 스즈키 프로듀서가 하는 일과 같다.(웃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지브리 스튜디오에 열 살짜리 아이가 찾아와서 일하게 해달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여 달라.” 그의 말대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린아이가 처음 사회에 나와 다른 사람이 주는 밥을 받아먹으며 느끼는 것을 담은” 성장의 기록이며 일본 사회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선물이다. 미야자키는 인사말 끝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악을 무찔러 세계 평화를 이루자는 식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르다. 진실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질문마다 곰곰이 생각하며 유머감각을 발휘한 그의 모습 역시 거장의 진심을 보여줬다.
지브리의 다른 작품처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자연친화적인 경향이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자연이란 어떤 의미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자연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문명이 형성된 후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연이 있다. 두번째는 문명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자연이다. 재해나 죽음도 포함한다. 이 두 가지 의미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인간은 문명을 버리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숙명적으로 자연을 이용해야만 하고 자연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자연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이 주인이고 자연이 종속물이라는 개념은 옳지 않다. 여러분이 둘러본 지브리 미술관 주변에는 나무가 많다. 가능한 한 이식할 수 있는 나무는 모두 옮겨 심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베어냈다. 10년 뒤 사람들이 미술관을 다시 찾았을 때 나무가 더 무성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브리 스튜디오 주변도 스튜디오를 짓고 나서 나무가 더 늘어났다. 자랑하는 건 아니다.(웃음) 아틀리에를 세울 때도 200년 묵은 옆집 나무가 아틀리에 지붕을 침범했지만 그 가지를 그대로 두었다. 자연에 대한 이런 배려야말로 우리의 생활을 훨씬 풍족하게 만든다.
치히로를 따라다니는 얼굴 없는 귀신 카오나시는 영화 개봉 후 치히로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카오나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애정이나 우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카오나시의 행동은 열 살짜리 아이한테 선물을 사들고 가서 그 아이의 관심을 끌려는 것과 같다. 알고 지내는 지인 가운데 초등학생이 있다. 그 학생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본 후 카오나시에게 매우 공감했다. 카오나시가 하는 행동을 자신도 학교에 가서 그대로 했다고 하더라. 내 어린 친구는 카오나시가 있을 곳을 발견해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난 무척 안심했다.
작품 초반부 목욕탕의 마녀 유바바가 치히로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다. 예의를 가르치려고 작품을 만들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지도 않는다. 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를 포함해 회사에 취직했을 때 서로 인사를 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미국 아이들을 일본에 보내 예의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야겠다고 한 적은 있다. 나도 일본 아이들이 예의가 없어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고 농담으로 응수했었다.
마녀, 숯검댕이 등 전작의 캐릭터를 재등장시킨 이유는? 유바바의 뚱보 아기 보우가 변한 쥐나 유바바의 얼굴을 한 새는 디즈니 영화가 자주 사용하는 조연 캐릭터 같다.
숯검댕이 캐릭터는 내가 워낙 좋아해서 다시 등장시켰다. 쥐는 뚱보 아기 보우라는 캐릭터가 너무 커서 그리기 피곤해 작게 변형시킨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이런 조연 캐릭터를 만든 것은 아니다. 마녀 유바바의 얼굴을 한 새는 원래 유바바 옆에 끝까지 맴돌게 하려고 했는데 작품을 진행하다보니 그 캐릭터를 그리는 게 너무 귀찮았다. 일단 등장시켰으니 바로 없앨 수도 없고... 해서 파리로 만들어 가볍게 처리했다.(웃음) 처음에는 일을 하기 싫어 땡땡이치고 있는 사람들을 유바바 새가 엿보고 있다든지 하는 식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했었다. 결국 다 귀찮아져서 그만두고 말았다.(웃음)
목욕탕이 지브리 스튜디오라고 설명하니, 치히로가 하쿠에게 주먹밥을 얻어먹는 장면은 신입사원이 선배에게 격려받는 듯한 느낌이다.
지브리 안에서 신입이 선배에게 주먹밥을 받아먹은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하고자 하는 열의를 보인다면 그것을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엔딩에서 터널을 빠져나온 치히로는 오랜 망설임 없이 부모를 따라간다. 더이상 완전한 아이도 어른도 아닌 치히로의 성장이 이 작품을 성인층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준 듯하다.
어린이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체험해야 한다. 이번 여름이 지나야 다음 여름이 온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 미래가 올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내 친구의 딸인 열 살 소녀는 지금 많이 성장했다. 어린이들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영화니까 이런 좋은 결말이 생기지, 영화니까 이렇게 해결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원치 않았다. 이야기 자체는 물론 거짓이고 만든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결말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 치히로가 겪은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내 어린 친구와 모든 어린이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작년 한국에서 개봉한 <이웃집 토토로>는 흥행에 실패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국 흥행을 기대하나?
한국 관객이 <이웃집 토토로>를 많이 찾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 만든 지 오래됐고, 이미 볼 사람은 비디오로 다 봤기 때문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역시 흥행하리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다. 그저 이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손해보지 않기만 바란다.(웃음) <원령공주>의 미국 개봉 당시 미국 배급사 사장과 개봉 전날까지 논쟁을 했다. <원령공주>가 너무 길어 미국 시장에서 불리하니 작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매우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난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흥행은 그 영화가 지닌 운이다. 이 작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스즈키 프로듀서 앞에서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완성도를 평가한다면?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은 모두 발휘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판타지의 세계를 그린 애니메이션이 CG와 신화를 이용한 판타지 영화와 차별되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
두 장르는 경계가 없을 만큼 가깝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종이에 연필로 배경과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을 통해 그리는 사람이 지닌 실력을 기술적으로 가장 크게 살려준다. 그리는 데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실사 영화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적용하는 경향이 점점 늘고 있다. 앞으로 두 분야를 구분하기가 훨씬 힘들어질 것이다.
차기작 역시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인가?
차기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차기작의 영화화 가능성 자체를 논의중이기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만들겠다고 생각할 상황도 아니다. 지브리 미술관을 만들자는 발언을 한 이후로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 나 또한 미술관에 관여하느라 시간을 많이 뺏겨 다른 일을 진행하기가 어렵다. 자업자득이다.(웃음) 신작 구상은 미술관 일을 하는 틈틈이 하고 있다.
지브리와는 다른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지브리 작품 이외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전혀 보지 않는다.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잠깐 봤다. 안노, 오시이 마모루와는 친구 사이인데 만나면 친구라고 하지만 사실 뒤에서는 욕만 해대는 사이다.(웃음) 서로 ‘다들 뭔가 만들고 있겠지’라고 생각할 뿐이다.
새 작품 <고양이의 보은>의 캐릭터는 지금까지의 지브리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이다.
새 작품을 보면 여러 가지 참견을 하게 되고 그러면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진행하려다가도 신경 쓰여 그만둘 우려가 있어 완성될 때까지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
<이웃집 토토로>를 만들고 일본 사회에 부채를 갚았다고 말했었다. <원령공주>는 구체적인 일본의 시대가 드러나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역시 일본색이 더욱 짙어지고 일본이 무대다. 점점 더 일본적이 되어간다.
어떻게 말해도 난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자라온 일본의 땅을 젊은 일본인들보다 많이 알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일본 전통을 더 많이 드러내고 싶지만 요즘에는 일본만 고집할 수는 없다. 굳이 일본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대다수의 일본인이 일본이라는 것 자체를 잘 모른다. 일본 전통을 좀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알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