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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적 여성 고학력화와 혁명적 가치관의 변화
여성 고등교육 이수 세대간 차이, 세계의 3배
국제 비교-한국여성들 가장 급진적 남녀평등의식
여성의식의 혁명적 변화-변하지 않은 사회 충돌
물꼬 돌리려면 직장, 가정에서 젠더평등 길 찾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국가적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부처 신설을 위한 입법에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촉구했다. 사진은 10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2024.5.10. 연합뉴스
“한국정부가 많은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투입해 왔음에도 저출산 진행이 멈추지 않는 것은 이제까지의 정책이 기혼 자녀양육 세대의 ‘일과 가정 양립’ 지원에 너무 치우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내’ ‘엄마’ 역할을 여성에게 강요하지 말고, 이미 바뀌어 버린 여성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 추구를 받아들여 공사(公私) 영역에서의 젠더 평등, 즉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남녀가 평등하게 역할을 분담해 가는 방향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의식을 개혁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여성의 압축적 고학력화와 혁명적 가치관 변화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 2024년 6월호에 실린 ‘한국의 저출산은 왜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나-한일 저출산 배경의 ’차이‘를 들여다본다’는 글의 결론 부분에 나와 있는 한국 저출산 사태에 대한 나름의 ‘처방’이다.
저자 사사노 미사에 이바라키대학 인문사회과학부 강사는 일본과 구미 주요국들에서도 저출산 문제를 안고 있지만, 한국의 저출산은 이들 나라와는 현저히 다른 한국만의 특성이 있으며, 그것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 저출산의 핵심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 특성은 한국 저출산화의 속도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빠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젊은 세대 여성들의 “폭발적인 교육수준 향상”과 그로 인한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폭발적인 교육수준 향상’을 한국사회가 경험한 근대화를 ‘압축적 근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장경섭 서울대 교수(사회학)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부연 설명했다.
“이 ‘압축적 근대’를 통해 단기간에 실현한 것은 단지 경제성장만이 아니다. 결혼이나 출산 등 가족과 관련한 여러 지표와 교육수준, 평균수명 향상 등의 ‘라이프 코스’(인생 과정)도 또한 ‘압축적’으로 변화해 온 것이다. 그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의 ‘압축적 고학력화’다.”
2006년에서 2022년까지 16년간 한국에 거주하면서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사회를 관찰, 분석했다는 사사노 강사는 한국 젊은 세대 여성들의 이 ‘압축적 고학력화’를 한국의 초저출산과 연관된 “가장 중요한 변화”로 꼽는다. 이것과 그 파급효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저출산 문제의 본질도, 나아가 그 해결방안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 이 일본 전문연구자의 시각인 듯하다.
한국 젊은 세대의 급격한 고학력화는 이미 잘 알려진, 새삼스러울 게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혁명적 사건’인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지 않고는 실감하기 어렵다. 사사노 강사는 일본, 그리고 구미 주요국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것을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돈 또는 경제문제가 저출산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이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2일 서울광장에서 직장갑질119 주최로 열린 '일터가 변해야 출생률도 변한다! 출산·육아 갑질 이제 그만!'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5.2. 연합뉴스
일본과의 비교-닮았지만 다르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우선 일본과의 비교부터 살펴보자.
지난 2월에 보도된 일본의 2023년 출생수는 사상 최저치인 75만 8천 명으로, 2년 연속 80만 명을 밑돌았다.(2022년 일본인구 1억 2510만 명, 한국은 5163만 명) 한국은 2023년 합계특수출산률(이하 ‘출산률’로 통칭)이 0.72로, 2018년에 1 아래로 내려간 뒤 6년 연속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도시 쪽 상황이 심각한데, 서울의 출산률은 0.55로 전국 최하였으며, 제2 도시 부산의 출산률은 0.66으로 그 다음이었다. 17개 광역시 중 가장 출산률이 높았던 세종도 0.97로, 광역시 모두가 1 아래로 떨어졌다.
이를 멈춰 세우기 위해 한국정부는 2006년부터 2023년까지 380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한 해 출생수는 같은 기간에 45만 명에서 23만 명으로 줄었으며, 출산률도 1.13에서 0.72로 내려갔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 여야당은 경쟁하듯 각종 지원책들을 내놨으나, 총선 뒤 별다른 변화는 없었으며 저출산이 멈출 기미도 없다.
한국이 실시하고 있는 ‘제4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과 일본에서 실시 중인 ‘제4차 저출산사회대책 대강’을 비교해 보면, 두 나라 모두 저출산 요인을 주로 경제적 요인(젊은 세대의 고용, 경제적 불안정성, 양육비 부담)과 문화적 요인(젠더 불평등의 가족문화와 노동시장, 어려운 ‘일과 가정의 양립’, 결혼과 출산연령의 상승, 가족가치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을 통해 한일 두 나라에 공통적인 저출산의 배경 요인은 지적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저출산이 왜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가속도적인 한국의 출산율 저하 1980`2022년. 검은 점선이 한국. 1980년대부터 급강하하기 시작한 뒤 2015년부터 다시 급격히 내려가고 있다. 삼각선은 일본, 맨 위 점선은 미국. 2024년 6월호
한국의 저출산 실태 국제비교, 2015년이 변곡점
한국의 출산률은 1980년의 2.8에서 2000년에 1.5까지 내려갔고, 2005년에는 1.09를 기록했다. 그때부터 한국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으나 지금까지 아무 소용이 없었다.
2000년대 들어 2015년 무렵까지 비교적 완만하게 내려가던 한국의 출산률은 그 뒤 가속도적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가족과 관련한 여러 지표들은 2015년이 변화가 가속되는 티핑 포인트(변곡점)임을 보여준다. 특히 여성고용률이 50%를 넘은 것도 2015년이며, 그 중에서도 30대 연령의 여성 고용률은 2015년에 56.9%였으나 2023년에는 68.0%로 급증했다. 연간 결혼건수도 2015년(30만 3천 건)을 경계로 30만 건을 밑돌기 시작했고 2023년에는 15만 4천 건으로 반토막이 났다.
1980년부터 2023년까지 연간 출생수는 일본의 경우 약 158만 명에서 약 76만 명으로 절반 정도 줄었다.(후생노동성 ‘인구동태통계’) 한국에서는 같은 기간에 약 86만 명에서 약 23만명으로 무려 73%가 줄었다.(한국통계청 ‘인구동태조사’)
게다가 한국의 감소폭은 2000년 이후 더욱 가속화한다. 1980년에서 2000년까지 25.8%가 줄어든데 비해 2000년부터 2020년까지는 57.5%나 줄었다.
앞서 2015년이 티핑 포인트라고 했지만, 출산률도 2015년부터 2023년까지 47.5%나 줄었다. 같은 기간 일본의 감소폭 24.6%와 비교해도 2배나 그 속도가 빨랐다.
따라서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들 출생수가 가속적으로 줄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 한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특히 2015년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OECD 자료, 여성교육수준의 세대간 차이. 위의 검은 점은 각국의 25-34세 여성들의 고등교육 이수 비율. 아래 옅은 점은 55-64세 여성들의 고등교육 이수 비율. 맨 왼쪽 인도, 이탈리아부터 오른 쪽으로 호주, 일본,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평균 20%의 세대간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맨 오른쪽의 한국만 유독 그 차이가 60%에 달한다. 2024년 6월호
여성 고등교육 이수 비율 세대간 차이, 세계의 3배
2000년대 이후에 저출산과 관련해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여성 교육수준의 폭발적 상승’과, 그로 인한 ‘젊은 여성의 급격한 가치관 변화’라고 사사노 강사는 지적한다. 앞서 얘기한 장경섭 교수의 ‘압축적 근대’(compressed modernity)라는 개념, 즉 구미 국가들이 2세기 이상 걸려 실현한 근대화 과정을 한국은 반 세기만에 달성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사사노 강사는, 한국의 압축적 근대가 경제성장에서만이 아니라 여성의 교육에서도 진행(‘압축적 고학력화’)된 사실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맹국들과의 비교를 통해 보여준다.
여성의 세대를 ‘엄마 세대’(55~64세)와 ‘딸 세대’(25~34세)로 나눠 고등교육 이수 수준 차이를 비교할 경우 한국의 세대간 고등교육 이수 수준 차이는 다른 OECD 국가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벌어진다. OECD의 2022년도 자료 ‘여성교육수준의 세대간 차이’(제3차 교육 인구비율)’를 보면, 한국의 엄마 세대가 고등교육을 이수한 비율은 20%에 지나지 않아 인도와 이탈리아를 뺀 다른 모든 비교대상 국가들보다 훨씬 낮다. 하지만 딸 세대의 고등교육 이수 비율은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 높은 세계 최고수준인 80%에 가깝다. 엄마 세대와 딸 세대의 교육수준 차이가 무려 60%나 되는데, 이는 다른 모든 비교대상 국가들의 엄마 세대와 딸 세대간 차이가 평균 20% 정도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 무려 3배나 된다.
각 세대마다 교육수준이 평균 20% 정도씩 올라가는 것을 토대로 생각하면, 다른 나라들에서는 증조모로부터 조모, 엄마, 그리고 딸에 이르는 3세대에 걸쳐 경험하는 변화를 한국에서는 단 한 세대만에 이뤄냈다.
1990년대생 여성들에게 일어난 혁명적 변화
연간 출생수도 한 세대만에 4분의 1로 줄었듯이, 다른 나라들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경험한 교육변화 과정을 한국은 한 세대만에 ‘압축적’으로 이뤄낸 것이다. “이 ‘여성교육 수준의 폭발적 상승’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가속도적 저출산의 가장 중요한 배경요인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고 사사노 강사는 썼다. 한국 남성에게서는 이런 정도의 세대간 교육수준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2022년을 기준으로 25세부터 34세에 해당하는 한국의 세대는 주로 1990년대에 태어났고, 지금 바로 가족을 꾸릴 나이가 된 세대인데, 이들에게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저토록 가파른 초저출산 사태가 빚어진 것인가.
이 문제를 살펴보기 전에 사사노 강사는 먼저 어떻게 해서 한국에서 그 정도의 단기간에 여성의 고학력화를 실현할 수 있었는지 한국 특유의 배경을 먼저 살핀다.
한국도 일본도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공적 지원이 낮기 때문에 딸의 고학력화를 위해서는 많은 경우 부모의 이해와 지원이 필수요건이 된다. 그런데 부모의 교육수준이나 자녀의 성별에 따라 자식에게 기대하는 교육수준에 차이가 있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부모의 학력이나 소득, 거주지 등과 무관하게 딸의 교육 지원에 부모가 전력을 기울였다. 6.25전쟁 뒤의 빈곤한 시대를 헤쳐 온 한국의 엄마 세대는 가족의 생활과 형제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등교육 받는 것을 체념할 수밖에 없었고, 일찍부터 공장에 일하러 가는 등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살아 온 세대다.
지난 24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농협 본점에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왼쪽 다섯 번째), 여영현 농협 상호금융대표이사(왼쪽 첫 번째), 김명수 의정부농협조합장(왼쪽 일곱 번째)과 임직원들이 저출생 극복을 위한 사회공헌형 상품 NH상생+아이희망적금 출시를 축하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5.26. 연합뉴스
여성 대졸 비율 80% 육박 “젠더 혁명”
그런 사정은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82년생 김지영>(조남주)에서도 묘사돼 있는데, 엄마들은 딸에게는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들의 희생이 더는 이어지지 않도록 딸의 교육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열심히 지원했다. 그 결과 딸 세대의 한국 여성들은 무려 80% 가까이가 대학을 졸업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수준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1990년대에 30%대에서 급상승한 대학 진학률은 2005년에 80%를 넘었으며, 2008년 이후는 여성이 남성을 추월했다. 이는 1990년대생 한국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높은 교육수준을 지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 세대의 열성적인 지원으로 단기간에 달성된 한국의 이런 딸 세대의 고학력화를 두고 사사노 강사는 “여성 라이프 코스의 엄청난 혁신이며, 실로 젠더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딸 세대의 고학력화와 같은 시기에 한국은 1990년대 후반에 아시아 통화위기(‘IMF 사태’)로 국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그때 노동시장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고용 유동화로 많은 아버지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런 세월 속에서 고학력화한 딸 세대의 목표는 더 좋은 배우자를 얻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화해 갔다.
같은 급끼리의 결혼(동류혼) 지향성이 강했던 한국에서 높은 교육수준은 같은 수준의 배우자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으나, 경제위기 뒤에 그것은 커리어(경력) 쌓기의 자원이 됐다. 여성의 고학력화가 남성을 추월한 배경도 이런 변화를 촉진시켰다. 단지 수입을 얻기 위한 ‘일’에서 평생고용을 향한 ‘커리어’ 지향으로의 변화(from job to career)는 여성들의 가족관계와 가족주의를 재편해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이처럼 2000년대의 한국에서는 고학력화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게 되고 제한된 안정적인 자리를 둘러싼 남녀간의 경쟁이 격화됐다.
같은 시기인 2000년대 초에 여성의 지위향상을 겨냥한 ‘여성부’(여성가족부)가 설립되고, 국회에 쿼터제(할당제)가 도입되면서 여성 의원들이 비약적으로 늘고 남녀평등을 자향하는 법 정비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세대 내 남녀간 대립
급속한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같은 세대의 남성들 사이에서는 불만과 반발이 일어나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커졌다. 세대간 격차만이 아니라 세대 내의 격차도 확대돼 갔다. 노동시장에서는 성별이 아니라 교육력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쪽으로의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 우대정책으로 성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됐다. 남녀의 대립은 온라인상에서 퍼져나갔고, 2010년 이후 점점 더 거세졌다.
2016년에 일어난 ‘강남역 무차별 살인사건’을 계기로 그것은 더욱 격화됐고 <1982년생 김지영>이 그 사건 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여성운동에 동력을 보탰다. 2018년에는 서지현 검사의 성차별 피해 고백이 미투(MeToo)운동의 기폭제가 돼 여성 인권문제가 부각됐으며, 그 주체는 같은 세대의 80%가 고학력자가 된 199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이었다. “#MeToo 우리가 세계를 바꾼다”는 것이 그들의 구호였다.
이런 사회변화를 배경으로 젊은 여성들의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7개국 비교조사-한국여성 “아이 필요없다” 40%
일본의 내각부가 7개국(일본 한국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의 젊은이들(13~29세)을 상대로 조사한 ‘우리나라(일본)와 외국 젊은이들의 의식에 관한 조사’(2018년)의 분석결과를 보면, 전통적으로 성별 역할분담 의식을 묻는 질문인 ‘남자는 바깥에서 일하고, 여자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문항에 한국의 젊은 여성은 90% 이상이 반대했다. 또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 돌보기를 엄마가 해야 한다’에 반대한 한국 여성도 80%가 넘었다. 이는 모두 남녀평등이 앞서간다는 구미 나라들보다 높아, 조사대상국들 중에서 가장 강한 반대의견을 보였다.
결혼에 대한 태도를 보면,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게 좋다’는 강한 반대의견을 지닌 여성이 20%를 차지했다. 이처럼 결혼에 대한 강한 반대의견이 7개국 중에서 가장 많았으며, ‘결혼해야만 한다’고 응답한 여성은 5%도 되지 않아 7개국 중에서 가장 적었다.
희망 자녀수에 대해서 일본을 비롯한 6개국에서는 ‘2명’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가장 많았으나, 한국에서는 ‘2명’이나 ‘3명’을 선택한 여성이 7개국 중 가장 적었고, ‘아이는 필요없다’를 선택한 여성이 무려 40% 가까이나 됐다.
끝으로 ‘삶에서 가장 소중히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을 보면, 다른 나라들에서는 ‘가정’을 선택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경향을 보인데 비해 한국에서는 ‘가정’을 선택하지 않은 여성이 많았다. 그 대신 ‘일’이나 ‘지역사회’ ‘개인’을 택한 여성이 많았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압축적으로 달성한 고학력화를 배경으로 199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 사이에서 가치관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7개국 중에서도 가장 강한 남녀평등 의식을 지녔고, 결혼이나 자녀 양육보다 자신의 생활이나 커리어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너무 빠른 변화속도
한일의 가족가치를 면밀히 비교분석해 온 사사노 강사의 연구에서도 한국에서는 가족가치의 여러 측면에서 사회 변화의 속도를 반영하듯 세대간에 가치관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결혼보다도 자녀 갖기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급속하게 퍼져 있었다. 실제로 최근에는 결혼은 하겠지만 출산은 피하겠다는 DINKs(Double Income No Kids: 아이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 세대가 급증하고 있고, 2022년 현재 결혼 5년째가 되는 신혼세대 중에서 DINKs가 24.7%가 될 정도로 늘고 있다.(통계청 2022년 ‘신혼부부통계’)
이에 비해 일본의 저출산은 가족형성이나 기존 가족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증가한 결과가 아니다. 지금도 ‘언젠가는 결혼할 생각’이라고 응답한 독신자들이 80%를 넘고, 기혼여성들은 지금도 평균 2명의 아이를 낳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일본 여성들의 라이프 코스가 남편의 부양에 기댐으로써 생활이 안정되도록 제도적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한일의 가족가치를 비교해 보면 가족형성에 대한 태도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 퍼져가는 급격한 가치변화가 남성만이 아니라 윗 세대의 가치관과도 크게 상충하고 있어 변화가 늦은 다른 세대나 남성들과의 사이에 큰 마찰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가치관의 변화 자체는 어느 나라나 다 경험하고 있고, 그것 자체가 갈등을 유발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속도다. 한국이 맹렬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간이나 젠더간에 가치관이 거세게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는 ‘여성의 고학력화’ ‘남성고용의 불안정화와 여성의 사회진출’ ‘여성의 법적 지위향상’ 등 남녀평등으로 가는 일련의 과정이 동시에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반동으로 특히 2010년 이후 남녀간의 대립 갈등이 가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확산된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가 ‘압축적 고학력화’를 달성한 1990년대 출생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남녀평등으로 가는 움직임이 너무 급속하게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변화된 젊은 여성들의 가치관과 기존 사회 시스템, 가치규범이 크게 충돌하면서 결혼이나 출산을 피하려는 여성이 증가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저출산은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혁명적으로 바뀐 여성 가치관과 바뀌지 않은 사회
역사적으로 과거제도를 채용해 온 한국에서는 교육이 사회경제적 지위상승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요소이며, 교육이 인생선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기능해 온 것은 누구나 다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고학력화와 사회진출이 눈에 띄게 진행되는 한편으로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가족문화나 자녀들 교육책임자로서의 엄마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 이제까지 ‘아내’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이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딸 세대의 다수는, 엄마 세대로부터 교육투자를 받아 높은 인적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엄마 세대와는 다른 선택지를 손에 넣게 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전히 자기희생을 강요당하는 ‘엄마’가 되는 삶을 딸 세대는 선택하지 않게 됐다.
따라서 한국 초저출산 진행을 막는 해법은 서두에 올렸듯이 평범해 보일 정도로 간단 명료하다. “‘아내’ ‘엄마’ 역할을 여성에게 강요하지 말고, 이미 바뀌어 버린 여성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 추구를 받아들여 공사(公私) 영역에서의 젠더 평등, 즉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남녀가 평등하게 역할을 분담해 가는 방향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가 의식을 개혁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출처 : 한국은 왜? 저출산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될까 < 국제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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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토끼가 새끼를 낳아도 환경이 아니다 싶으면 금방 죽여버립니다.
토끼도 아는걸 사람이 모를리 없겠죠......
토끼는 새끼를 스스로 죽이지만 사람은 낙태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