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오픈 한지 겨우 2주, 잠시 쉴 겨를도 없이 클루즈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사돈이 포함 되어 있는 계원들 부부 다섯 팀과 함께 동행하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던 터이라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녀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8박9일의 여정으로 캐리비안의 섬나라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뉴욕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플로리다로 날아가서 마치 큰 아파트 3~4 동이 떠내려 가고 있는 듯한 큰 배 카니발호를 탔었지요. 아마도 타이타닉호를 상상하면 좋을 듯 싶군요.
10층까지 있는 호화로운 배 안에는 없는 것이 없더군요.
배의 옥상에는 큰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 주변에는 썬텐 하는 사람들이 가득 누워 있었지요. 그 앞 쪽으로는 공연장이 있어서 레게음악을 하는 흑인 가수들이 쫑쫑 땋은 머리를 흔들어가며 신나는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살사 춤을 추는 사람, 음식을 가지러 가면서도 리듬에 맞춰 흥겹게 몸을 흔들어대는 사람들로 배안은 움직이는 공연장 같았지요.
호화로운 식당에서는 저녁마다 정장과 드레스를 입고 디너파티가 열렸고, 저녁시간 이후에는 1층의 공연장에서 쇼가 열렸습니다. 쇼의 주제는 저녁마다 달랐으며 멋진 춤에 맞추어 댄서들은 춤을 추고 가수는 노래를 불렀지요.
그리고 미술품 경매, 다이야몬드 등 보석 경매, 빙고게임, 등등 다채로운 플렌들로써 승객들은 지루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9층에 있는 뷔페식당에서는 24시간 음식과 과일이며, 각 나라의 음식들이 푸짐히 준비되어 있었고, 승무원들 중 사진을 맡은 부서에서는 각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저녁이면 전시해 놓아 찾아갈 수 있도록 했더군요.
승객들은 거의 대부분이 백인이었고 그중에 저희그룹 열 명과 다른 쪽에서 온 한국인 가족 여섯 명이 있더군요. 그리고 몇 사람 안 되는 흑인이 있었지요. 가족끼리 온 팀이 많은지라 어린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어서 아이들 뺨에 예쁜 페인팅을 해서 줄을 세워 데리고 다니며 즐거운 게임과 수영도 하더군요.
늦은 밤, 소화를 시키려고 저희 팀들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쭈볏 쭈볏 하다가 함께 끼어 같이 춤을 춘 영국인 부부가 있었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부부 중 아내는 목사님이시라고, 은퇴 여행에 나섰다고 하더군요.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저희들 팀이 투숙한 방은 7층에 있는 객실로서 방 밖에는 빨코니가 있어서 밤낮으로 바다와 맞대면 하여 즐길 수가 있었지요. 일행 중에 우스개 소리 잘 하는 한 부부가 있었는데 그 사람 왈,
"이렇게 탁 트인 바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공간에서 꼬추를 말리십시오. 통채로 말리셔도 되고 쪼개어서 말려도 됩니다. 그것 못 하고 돌아가면 후회 하지요오~"
그래서 우리는 또 한바탕 웃었습니다.
우리가 탄 배에는 승객이 총 2250명, 승무원이 총 950명, 그래서 모두 3200 명 정도가 타고 있었지요. 워낙이 배가 크다보니 전혀 배를 탄 것 같은 느낌이 없었습니다. 가끔씩 식사 도중에 혹은, 공연 도중에 약간의 롤링을 느낄까 말까 할 정도였으니 그럴 때마다
"아, 참~ 내가 배를 타고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배 안의 벽 마다에는 호화로운 그림과 장식이 우아하게 전시되어 있었으며 쇼핑센터에는 각종의 면세물품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양주코너에 가지런히 세워진 술병들은 약간씩 흔들리는 선체의 미동에,
"찰찰 차알 찰~ " 하며 유리병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도 절대로 쓸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루에 세 끼를 꼬박꼬박 먹어대니 나날이 살 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지요. 그러나, 자고나면 한 쟁반 수북히 과일을 먹기 시작 하면서부터 산해진미는 끝이 없었으니 어찌 맛나는 음식 앞에서 초연해 질 수가 있었겠는지요. 어쩔 수 없이 먹어대고 이른 아침이면 핼스클럽에 가서 대서양 한 복판을 달리는 배 위의 머신에서 뜀박질을 하였습니다. 탁 트인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 물결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기분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스물 네 살에 멋도 모르고 결혼하여 십 년 간 아이 넷을 낳아서 길렀습니다. 그 다음 십 년은 아이들이 커나가는 것과 함께 곤두박질을 치며 살았지요.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갈 무렵까지 건전하게 키우랴, 공부시키랴, 시간과 세월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쉰이 되면서부터 내리 십 년간을 또 그 자식들 결혼시키는데 세월을 다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제 예순이 되어 이제서야 자유로운 시간을 맞았습니다. 평생에 처음으로 배 타고 대양을 누비며 호사를 부려본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지요.
깜깜한 바다 위에서 뱃전을 누비며 부서지는 물살과 흰 거품을 바라보며 섬뜩한 무서움이 일더군요. 밤 하늘에는 총총 별이 떠 있더군요. 육지에서는 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던 별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는 그리도 가즉하게 다가올 줄이야!
별은 잡힐 듯 가까왔으며 어떤 별들은 우리보다 더 아래 쪽에서 명멸하고 있더군요.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잠시 잊었던지 그, 눈 높이 아래로 떠 있는 별이 참 이상했습니다. 별들을 보면서 우리 별박사 이수웅 선배님을 생각했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얼까? 죽는다는 것은 또 무얼까? 저렇게 흔연히 출렁이는 물이란 또 무엇일까? 삶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소리에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무섬끼로 다가오던 바다가 나중에는 짙은 어둠 속에서 하얀 물거품을 마냥 내뱉고 있었지만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습니다.
바다와 자신이 혼연일치 된 것만 같았습니다. 뭐 이러다 죽어도 하나 이쉽거나 원망스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여 살아온 삶이었기에,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된 삶이었기에 핏줄들과 멀리멀리 떨어져 외톨이가 되어 한 나약한 개체로 바다에 떠 있는 동안 다시 또 한 번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묶고 있는 모든 연줄로부터 떨어질 준비를 하였는가 봅니다.
항해 도중에 세 번은 육지에 내려서 파나마와 포에토리코와 벨리제 라는 적도 지방의 나라에 들렀습니다. 그곳에서 갓 잡은 팔뚝만한 생선을 구어 먹고 랍스타를 먹었는데 참으로 일품이었습니다.
무더운 적도 부근엘 다니다 플로리다를 거쳐 뉴욕에 돌아오니 뉴욕에는 하루 종일 눈이 내리고 있더군요. 참으로 넓고도 큰 세상이었습니다.
가게가 마감 할 시간이어서 글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군요.
안녕히.
<가게는 예상에 빗나가지 않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평균 하루에 200~300 명이 와서 와인을 사 갑니다. 지금까지는 전 주인 형제가 도와주고 있는데 3월 이후 그들이 손을 떼어도 잘 될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자세한 글은 다음에 올리지요. 감사합니다.>
참고로, 8박9일의 크루즈여행 경비는 일인 당 약160만원 정도였습니다. 멋진 휴가를 계획하여 보심이 어떨른지요.
무한한 능력과 자신의 모든 욕망을 접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시고 또한 자녀들을 국제적인 인물로 훌륭하게 키워내신 선배님은 호강을 맘껏 누리실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라 자신할 수 있는 그 모습이 정말 부럽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에는 숙연해집니다.
첫댓글 여생을 즐길 줄 아는 정금자 부회장님, 축하해요. 사업장위에 신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무한한 능력과 자신의 모든 욕망을 접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시고 또한 자녀들을 국제적인 인물로 훌륭하게 키워내신 선배님은 호강을 맘껏 누리실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라 자신할 수 있는 그 모습이 정말 부럽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에는 숙연해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선배님이 안 계시는 동문회의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는 사실 아세요? 물론 마음은 늘 함께 하고 계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