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海海氏(김해해씨)
▣ 由來
始祖 : 海瑞必(해서필)
始祖 海瑞必의 號는 陽村이다. 中國 明나라 사람으로 明나라 太祖 때 吏部尙書(이부상서)를 지냈고 明나라 太祖의 命을 받아 大都督(대도독)으로 우리나라에 온 뒤 功을세워 太祖 李成桂(이성계)로부터 金海君(김해군)에 封해져 子孫들이 本貫을 삼았다고 한다.
- 始祖의 墓는 全南 靈巖군 美岩面(미암면) 採芝里(채지리)에 있다.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慶尙南道金海
金海는 慶尙南道 金海市 一帶(경상남도 김헤시 일대)의 옛 地名으로 洛東江 河口(낙동강하구) 南西쪽에 位治하여 일찍부터 駕洛國(가락국)의 文化 中心地로 發展하여 왔다. 532年(新羅 法興王19) 新羅에 倂合되어 金官郡(금관군)이 되었다. 680年(文武王20)에 金官小京(금관소경)이 되었다가, 757年(景德王16) 金海小京(김해소경)으로 바꾸어 良州(양주):(梁山)의 管割(관할)로 두었다. 940年(高麗 太祖 23) 金海府(김해부)로 改稱(개칭)되었고 臨海縣(임해현)으로 다시 降等되었다가 곧 臨海郡(임해군)으로 昇格(승격)되었다. 995年(成宗14)에 金海安東都護府(김해안동도호부)로 改稱하여 嶺東道(영동도)에 屬하였다가 1012年(顯宗4) 金海郡防禦使(김해군방어사)로 降等되었으나 1018年부터는 義安郡(의안군:昌原)·咸安郡(함안군)·漆原縣(칠원현:漆原面)·熊神縣(웅신현:鎭海)等을 領縣(영현)으로 삼았다. 1270年(元宗11) 防禦使(방어사) 金晅(김훤)이 隣接地域(인접지역)인 密城(밀성)의 亂을 平征(평정)하여 金寧都護府(김녕도호부)로 昇格되었다가 1293年(忠烈王19) 縣으로 降等되었다.1308年 金州牧(금주목)으로 昇格하였으나 1310年(忠宣王2) 金海府(김해부)로 格下되었다. 1413年(太宗13) 金海都護府(김해도호부)로 昇格되어 世祖 때 鎭(진)을 두었다. 1895年(高宗32) 地方制度 改正(지방제도 개정)으로 金海郡(김해군)이 되었고, 1918年에 左部面(좌부면)과 右部面(우부면)이 金海面(김해면)으로 統合되었다.1 931年에는 金海面이 金海邑으로 昇格되었고 1981年 金海郡의 金海邑이 金海市로 昇格하여 分離 되었으며 1995年에는 金海郡과 統合하여 金海市가 되었다.
▣人口數
統計廳의 人口調査에 依하면 金海海氏는
1985年에는 總 44家口 150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