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들이쉬고
지난 삼일절 이튿날 신학기가 시작되어 한 주를 보낸 삼월 초순 둘째 화요일이다. 엊그제 주말을 맞아 창원으로 건너가 근교 산행을 다녀와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아내가 망막 출혈이 와 안과에서 해결 안 되어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 전문의 진료를 받아야 해 염려가 된다. 망막 출혈의 원인은 여러 가지라는데 수술까지 가지 않고 레이저 치료로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중 연초 연사에 머물면 새벽과 일과 후 시간 관리가 마음 쓰인다. 나는 일찍 잠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 어린이다. 초저녁인 여덟 시 전후 잠들면 남들은 잠들 무렵일 자정이 지나면 잠을 깬다. 한밤중 미적대다가 실내등을 켜고 노트북을 켜 뉴스를 검색하거나 생활 속 글을 몇 줄 남긴다. 텔레비전은 잘 켜지 않는데 어쩌다 ‘나는 자연인이다’ 재방송 프로그램을 보기는 한다.
새벽에 일어나 와실 근처 연사 들녘이나 연초천 천변을 산책하고 싶어도 인적이 너무 뜸해 나서질 않는다. 대신 아침밥을 일찍 지어 먹고 출근길 연사 들녘을 지나 천변 산책로를 걸어 학교로 향한다. 저녁 설거지를 하면서 씻어 둔 쌀을 전기밥솥 전원을 넣어 간단한 찌개와 소박한 찬으로 아침밥을 해결한다. 퇴근 후 저녁 식사도 아침과 마찬가지인데 곡차 반주를 곁들임이 다르다.
근래 ‘어디서 한 달 살기’라는 여가 문화가 뜨는 모양이다. 어느 자리서 귀동냥으로 들어본 정도다. 그런 생활 방식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나오는지 나는 방송을 보질 않아 잘 모른다. 카페에서나 유튜브로도 소개되는지 모른다. 풍광 좋은 곳에서 한 달 살아가는 이야기인 듯했다. 주변에 퇴직하면 어디도 얽매이지 않고 한두 해 동안 전국을 유랑하려는 지인이 있기도 하다.
나는 이태 전 전혀 뜻하지 않은 낯선 거제로 임지가 정해졌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연초 연사 와실에 둥지를 튼 지 삼 년째다. 올 한 해만 보내면 정년이라 더 머물고 싶어도 떠나야 한다. 재작년 창원에서 지역 만기를 채워 근무지가 거제로 정해졌을 때 난감했다. 정년까지 남은 삼 년은 다 채우지 않고 그냥 명예퇴직할 걸 싶기도 했으나 신청 서류가 마감된 이후라 후회막급이었다.
거제도 사람이 사는 동네였다. 거제는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거나 교육장이 되어 가는 곳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면 음주 운전이나 비리로 징계를 받아 가는 줄 알았다. 다행히 그해 창원권에서 거제로 건너온 국어과 동료가 셋이 더 있어 마음이 놓였다. 내 근무지에 여교사가 한 명과 이웃 학교에는 또래가 둘 더 왔다. 그들은 나처럼 원룸에 지내거나 가족과 이사를 오기도 했다.
거제살이는 예상보다 순조롭게 잘 적응했다. 근무지 동료들이 마음 편히 잘 대해 주었다. 첫해는 한문 교과를 지도 맡아 교재 연구가 필요 없어 안식년처럼 보냈다. 작년에는 교양 교과 논술을 맡아 평가에서 부담을 들었다. 첫차 운행 버스로 새벽 포구를 서성이다 출근하기도 했다. 퇴근 후 서둘러 와실 근처 산자락을 누비거나 칠천도나 가조도로 들어가 낙조를 완상하기도 했다.
이태 동안 거제 곳곳에 내 발자국을 남겼다. 작년에는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어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면서 주말에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고 거제에 머문 경우도 더러 있었다. 원주민 토박이보다도 거제를 훤하게 꿰뚫을 정도다. 고갯마루 서린 전설이나 정려각 효자나 열녀의 비문도 자세하게 익혔다. 알려진 산도 오르고 해안선 트레킹도 했다. 누룩 내음 나게 빚은 곡차도 음미했다.
거제살이 삼 년째 접어들었다. 이제 해안선 답사나 산자락을 누비기도 심드렁해졌다. 아침 출근길 들녘 산책은 꾸준하다만 퇴근 후 옷차림을 바꾸어 나서는 걸음은 줄였다. 거제로 건너와 다녀볼 곳은 웬만큼 다녀 호기심이나 신선감이 덜하다. 금년은 나의 교단생활에서 마지막 남은 한 해다. 운기조식(運氣調息)이라고, 기를 돌게 하려면 숨을 들이쉬고 고르는 절차가 필요한 듯하다. 2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