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현업 일을 하고 있고, 방송기술 직군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 주변에 누군가가 방송기술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매우매우 말릴 겁니다.
방송기술은 최근들어, 정말 '사변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변화의 강도와 속도는 훨씬 더 심해질 겁니다.
물론 방송 기술 현직분들은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인정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제가 꺼내는 이야기는 그저 제 개인적인 소견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변적인 변화의 주요 키워드는 컴퓨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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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방송기술은 크게, 제작기술과 송출기술로 나줄 수 있습니다.
제작기술은 우리가 흔히 방송기술 하면 떠올리는, 음향, 조명, 영상, 기술감독, (종합)편집 등 방송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스태프(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스태프보다는 크루가 맞겠다는 생각이지만)를 이야기합니다.
제작기술이라고 생각하면 흔히 무언가 기계를 조작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최근 몇 년간.. 제작기술은 지난 수십년간 제작기술를 지배했던 '하드웨어'의 시대가 지나고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물론 새로 출시되는 방송장비들도 기본적으로는 하드웨어적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모든 방송기기의 운영체제와 조작에 있어서는 소프트웨어적인 컨트롤이 필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무언가 장비의 세팅을 바꾸기 위해서는 예전에는 매뉴얼을 보고 기기에 있는 여러 버튼과 다이얼을 돌려서 조작했지만, 요즘 기계들은 모니터 연결하고 키보드 달아서 구동프로그램을 돌려서 무언가 컴퓨터로 조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전에 방송이라는 산업이 지상파뿐인 상황이었을 때는 방송국에 기술직이 실제로 방송표준도 개발하고 장비도 개발하고 기타 등등 깊숙이에 관여했지만, 이제는 제작기술과 관련한 노하우와 테크닉을 가진 외부 전문업체들이 다들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사실상 방송기술이 무언가를 뜯고 옮기고 열어 보고 눌러보고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외부 업체에서 와서 장비를 세팅하고 그 이후에 조작은 컴퓨터를 통해 소프트웨어적으로 하게 되니까요.
여기부터가 중요한 이야기인데요.. 왜 방송기술이 중요한데 외주로 돌리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입니다.
단순히 음향콘솔에서 페더를 올리고 내리고 스위처에서 카메라나 비디오를 찍고 하는 기능적인 조작은 막말로 고졸 스무살짜리를 데려다가 기능적으로 훈련을 시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방송국에서 방송기술이라는 직군을 직원으로 뽑았던 이유는(운전, 문자그래픽, 경비 이런 부분들은 지금도 직원이 아니지요.) 단순한 기계적인 조작을 하는 요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전자공학적으로 방송기술의 근본을 이해하고 이것을 확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새로 개발하고 이런 엔지니어적인 요소가 필요해서였겠죠. 단순한 테크니션이나 매케닉을 바랐던 것이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했다는 거죠. 그런 엔지니어적인 부분은 인구 5000만의 대한민국 몇개 방송사가 지지고 볶고 안해도 세계적인 전문장비업체들이 다 기술을 선도하고 개발하고, 방송국에 들어와서 장비 세팅해주고 교육해주고 다 한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외부 장비업체들 엔지니어가 파견형식으로 몇 달간 방송사에 상주하면서 방송기술들이 그 기계에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가르치고 AS를 해주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송출기술의 경우는 제작기술보다 더 심각합니다.
이미 전파를 이용한 송출기술은 거의 완성(?)되어서 사실상 더 개발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고, 이제 송출기술을 방송콘텐츠를 파일화하고 압축하고 전송하고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이 송출기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풀 HD방송을 무압축으로 생각했을 때 데이터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1시간 기준에 300~400GB가 되죠. 이거를 1/10로 줄이고 1/100로 줄이는 기술, 그리고 줄이는 시간 자체를 또 줄여가는 기술.. 이런 것들이 송출기술의 핵심입니다. 당연히 소프트웨어적인 것이죠. 무언가 높은 송신탑을 오르고 드라이버들고 무엇을 열고, 조이고 하는 그런 모습들은 더 이상 송출분야의 방송기술 모습이 아니죠. 고전적인 영역의 송출기술 분야는 제작기술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표준을 갖고 있는 외부업체들이 다 와서 설치하고 문제 있으면 와서 AS해주고 다 하는 것이 현실이거든요.
뼈아프고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까요?
메이저 방송사에서 20년 이상 종합편집 파트에서 일한 베테랑 편집감독이 20대 초짜 직원들에게(그것도 방송기술 직종이 아닌) 넌리니어 편집을 물어보고 배우고 합니다. 외부에 나가서 직접 강의도 듣고요. 왜냐하면 기계들이 너무 좋아져서 베테랑 편집감독이 하루 꼬박 걸려서 모든 자신의 감각과 철학을 발휘해 만든 결과물 보다, 개당 몇만원짜리 넌리니어 기반의 상용 템플릿들이 더 쌔끈하고 매력적인 것들이 많거든요. 작업시간도 순식간이고요. 물론 방송 전체를 아우르는 감성과 철학은 중요한 것이지만, 현실은 철학보다는 공학이 빠른 속도로 앞서가고 있으니까요.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현실적으로 방송국에 도움이 되는 방송기술 직군은 방송관련한 소프트웨어와 펌웨어들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래머 정도랄까요.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방송기술을 지원하는 구직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틀은 아니겠지요. 최근들어 방송기술을 뽑을 때 전산, 네트워크, 프로그래밍 관련한 것들을 가장 중시하는 것들이 이런 흐름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평생 드라이버 한번 안 들어보고 납땜 한번 안 해보고 RLC 이딴 게 무언지 몰라도, 컴퓨터에 능통해서 윈도우부터 맥까지, PC부터 서버까지 온갖 툴들에 금세 익숙해지고 갖고 놀고 할 수 있는 사람, 프로그래밍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미래에 선망되는 방송기술과 관련한 인재들이지요.
장차로 모든 방송기술은 외주로 돌아갈 공산이 큽니다. 그리고 당연히 방송기술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예전만큼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직종이라는 생각도 덜 들게 될 거고요. 기계가 그만큼 받쳐주고 사람은 기능만 하면 되니까요.
방송기술을 준비하고 고민하는 여러분들은 현재의 이런 흐름과 업계의 상황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반론 있겠지요
"제가 아는 방송기술직 선배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더라" 저도 수없이 많은 방송기술 선후배들 있거든요.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고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하는 일... 사실 절망적이야'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냥 원론적이고 장밋빛 미래만 강조하겠지요. 하지만 술자리에서 듣는 젊은 방송기술직군들의 푸념과 하소연들.. 이런 데에서는 제가 얘기한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또 다른 반론이 있겠지요. 40대 이상의 구세대(?) 방송기술인들... 그분들은 그냥 생각의 구조자체가 현대적인 방송기술의 흐름을 인정 안합니다. 본인들이 10년이상 만들어온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부정하기 어려워서죠.
씁쓸한 에피소드 하나 더 소개하고 끝내죠.
넌리니어 편집하는데 컴터가 자꾸 꺼집니다. OS가 꼬이거나 무언가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가 있어서겠죠. 방송기술을 부릅니다. 해결해 주세요 합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잘 모릅니다. 이건 컴퓨터니까요. 게다가 맥이니까요. 그렇게 고민하다가 직원 서너명이 우르르 달려들어 컴터 분해해서 에어 컴프레서로 먼지 제거를 합니다. 거의 대청소하는 분위깁니다. 그리고 곤조있게 한마디 합니다. 이렇게 장비 먼지 쌓이게 하면 망가진다. 직원들 다 돌아갑니다. 해결된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업체에 전화합니다. 직원이 와서 몇 분 뚝딱합니다. 이게 쓰레드가 어쩌구.. 시스템하드에서 어쩌구.. 설명합니다. 그리고 해결됩니다. 이게 현장의 현실입니다.
첫댓글 방송기술직 지망은 아닙니다만 모두가 읽어볼만한 글이군요. 방송환경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 진심어린 조언 잘 듣고 갑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변해가는 추세가 외주를 줄 수 있고, 또 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맞는 말이네요. 그런데 '카메라'는 좀 다르다고 보는데요. 카메라를 찍는 일을 외주로 돌리는게 지금 논란의 핵심 아닌가요. 영상 취재의 기동성과 전문성 둘 다 담보 할 수 없는 방송 이 있을 수 있나요.
별 이상하게 쓴 글들 보다 오랜만에 아랑에서 읽어볼만한 글을 봤네요. 잘 봤습니다.
그렇죠
추천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근데 현실적으로, 네트워크만 공부하면, 합격하지는 않겠죠...기타 다른분야도 많이 나오니까요...근데 또 아이러니한 것은, 글쓴님 의견처럼 모두가 다 공감하는 사실인데...왜 kbs 는 이번에도 30명인가 - 다른 년도에 비해서 많은 인원인듯 한데.. 뽑고, mbc 도 꾸준히 인원을 뽑는뎁쇼...그래도 아직까정 살만한거 같은디요..
그래도 현재로서는 mbc kbs sbs 기술직군 구조조정 없는거같은데요...급여 삭감도 없고...음...근데 일은 널럴하다고 하는데요....
기술이 인간을 몰아내겠죠...러다이트 운동이라도..해야할지..
큰 흐름으로는 일정부분 동의하는데 세부적으로는 너무 겉만 보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의 발전이 기술인을 내치고 있네요... -방송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1人-
프로듀서도 외주시키면 드라마 잘만들어와요~
어찌보면 공감되는 부분의 글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제가 보기에는 방송기술에 대해서 깊숙히는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님꼐서 올리신 글이 물론 현업에서 어느정도 직접 생기는 일이고 들리는 일일수는 있으나, 그 이유에 대해선 너무 편협하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반론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방송기술에는 제작기술, 송출기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송기술을 연구하는 분야도 전략을 세워서 기술을 기획하는 분야도 있습니다. 제작기술분야에서 물론 글쓴님께서 말씀하시는 현상이 발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음향이나 조명 분야는 현재까지도 엔지니어의 역량이 매우 의미있게 작용하는 분야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쪽으로 기술이 변화하고 있다는 말씀! 물론 당연히 맞는 말씀이고 그것이 기존의 선배님들에 비해 아무래도 저희같이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여 기존 엔지니어의 역량은 줄어들고 외주의 역할이 크다고는 할 수 있지만, 현업 엔지니어로서 말씀 드리면 전자회로나 통신이론, 전자기학과 같은 학문! 분명 도움 됩니다. 그리고 송출 기술 부분 말씀 해주셨는데 정확히 말하면 송출외에도 송신기술이 있습니다. 물론 지상파의 직접수신시청 가구가 매우 줄어 전파의 송수신을 이용한 방송에 회의적으로 보시는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전파처럼 안정적으로 방송을 전달할수 있는 매체 또한 있을까요? 또한 2012년 12월 말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수신환경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재난 방송관련해서도 전파의 도달범위, 송수신의 용이성을 따져 볼때 RF를 다루는 송출기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넌리니어 편집부분에서 방송기술엔지니어의 일화를 말씀 하셨는데요. 요즘 신입 엔지니어같은 경우 넌리니어 편집은 기본이고, 시스템 구성은 기본입니다. 편집능력에 있어서 아트적인 요소가 좀 부족할 수는 있으나, 작업툴의 기능이나 시스템 구성은 숙지하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새로운 버젼의 넌리니어 시스템또한 엔지니어가 결정합니다.
예전, 고유의 방송기술이라는 특수한 분야가 대중에게 많이 개방 되었고, 통신과의 융합을 통해 기존 엔지니어에게는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 것 이지요. 꼭 방송기술뿐만 아니라 평생 공부해야 하는 엔지니어의 숙명상!
열정이 있는 엔지니어에게는 지금의 변화가 딱히 이상하지도 않은 상황인 것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