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파타야에서 번지점프 줄이 끊어져 관광객이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물 위로 떨어진 남성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고 해요. 사건 당사자가 홍콩 남성(39)인데 ‘창타이
타프라야 사파리 어드벤쳐 파크’ 건물 10층 높이의 번지점프대에서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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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렸다가 번지로프(발과 번지점프대 위를 연결한 줄)가 끊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추락한 거래요. 물에 빠진 그는 두 발이 번지로프로 묶여 있는 상태
에서 가까스로 헤엄쳐 물 위로 올라왔다 네요 글쎄. 마이크는 “점프대가
너무 높아 눈을 감고 뛰어내렸는데 눈을 떠보니 줄이 끊어져 물속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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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고 합디다. 저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놀이기구도 못 타는데
10층에서 줄 하나 매달고 뛰는 번지 점프는 처음부터 돌 아이가 아닙니까?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오래 전에 보았어요. 번지 점프 장소가 을지검문소
근처였고 비명에 간 이 은주 씨가 주인공이었던 것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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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기억하지 못하니.” 그 절절한 대사로 기억하고 있는 영화 '번지점프
를 하다'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어요. 여운이 대단한 영화였어요.
세상에 수많은 사랑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풋풋한 첫사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영화로 지금까지도 저는 이 영화를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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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녀 태희(이 은주), 그녀에게 반해 제 어깨가 젖는
줄도 모르고 우산을 씌워주던 인우(이 병헌). ‘당신에게 완전히 반 했어요’라는
말 대신 신발 끈을 묶어주던 인우와 ‘저도요.’라는 대답 대신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린 태희의 모습은 그 둘의 설렘을 스크린 넘어 가슴 벅차게 다가 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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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아요. 80년대 우리 나름대로 멋을 내고 유행따라 살았는데 스크린에
비친 인우의 모습은 영 악 없는 촌놈이 아닙니까? 무조건 아는 척, 강한 척하는
인우의 어설픔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대단한 사랑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
됐을 것입니다. 멜로 영화의 레전드로 꼽을 수 있는 이 영화가 뮤지컬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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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된다고 했을 때 그닥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원작의 아성이 워낙 탄탄
했기 때문이었는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내 예상 뿐 아니라 사람들의
상상 이상으로 선전했습니다. 스크린을 넘어서 무대 위로 튀어 나온 인우와
태희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해줬습니다. 으, 지금도 살짝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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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바늘 하나를 딱 꽂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 씨
하나 떨어뜨리는 거야. 그 밀 씨 하나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이 바늘 위에
딱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너희가 지금 이곳에서 만난 거다.
너희 옆에, 너희 앞에 앉은 친구들도 그렇게 엄청난 확률로 만난 거고,
나하고도 그렇게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른다. 인연이란 거, 좀
징글징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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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는 영화 속 명대사와 명장면이 압축되어 녹아
있습니다. 교사가 된 인우가 아이들 앞에서 인연을 설명하는 멋진 대사를
뮤지컬 무대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첫 장면에서 인우 역을 맡은 배우
강 필석은 칠판에 분필로 크게 인연의 줄을 그리는데, 이 연줄은 공연 끝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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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까지 무대 위에 걸쳐져 있었어요. 마치 이 무대와 그 앞에 마주앉은
관객의 놀라운 인연을 내내 상기시키듯 말입니다. 결국 '번지점프를 하다'
는 이 징글징글한 인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 감성을 고스란히
담은 무대 속에서 주인공 인우는 대학시절(1980)과 현재(2000)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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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며 태희와의 ‘인연’을 이어나갑니다. 두산 아트센터의 무대를 책임
지는 여 신동 무대디자이너가 구성한 80년대 풍의 배경과 원형 턴테이블
무대는 현재와 과거를 자연스럽고 짜임새 있게 이어주며 제 몫을 다합니다.
극적인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감성 넘치는 OST도 감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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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관람이 아련하고 설레는 경험이 될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과 좋은 뮤지컬 넘버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봐요.
노래 한 소절만으로, 관객들을 단숨에 몰입시키기 때문입니다. 뮤지컬이나
연극의 현장감을 저는 아내에게 배웠습니다. 시골 촌놈에게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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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을 처음 시켜 준 사람이 아내라는 말입니다. 당시 ‘바탕 골’ 관계자와
친분이 있었던 아내 덕에 20대에 대학로의 문화를 실컷 접할 수 있었습니다.
뮤지컬 '번지 점프'에서 다른 인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인우를
그려낸 강필석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사랑이라곤 한 번도 못해본 양 서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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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이 없는 인우의 모습 속에서 이병헌의 모습은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개성
있고 매력적인 강 필석만의 인우를 연기하더이다. 태희와 닮은 꼴로 인우를
당혹스럽게 하는 학생 현빈 역의 이 재균 역시 탄탄한 노래 실력과 설득력
있는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어요. 다만, 영화 속에서는 현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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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를 추측할 수밖에 없어 더욱 인우의 사랑이 애절했다면, 뮤지컬에서는
현빈의 입장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어 현빈과 인우의 내면 상태가 확실한
대신, 긴장감이 살짝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장면, 같은 대사를 연기
하는 데 원작 영화의 아우라를 거둬낸 데에는 배우들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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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필석, 이 재균 외에도 성 두섭, 윤 소호, 전미도, 김 지현 등이 주연으로
열연합니다. 인우의 친구로 등장하는 임 기홍, 진상현은 극 중간 중간에
코미디 부분을 확실한 책임집니다. 에예독! 영화보기 좋은 날이구나.
꿀꿀할 때, 뭘 하기에 어중간 할 때, 그리고 울적 할 때 영화가 최고지.
2023.3.25.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