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정릉동 126 번지.
이곳이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갑자기 어머니께서 "옛날에 살았던 집을 찾아가 보자!" 고 하십니다.
개나리가 연두빛 싹을 덧니처럼 내밀었지만 아직까지는 바람이 쌀쌀하네요.
우리 사남매가 모두 태어난 집.
아마도 어머니에게는 당신께서 '과부'소리를 듣기 전까지, 짧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집으로 기억되겠지요.
"여긴가?...아니야 저 쯤 될 거야!"
꼭 찾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처럼 열심히 두리번거리십니다.
마루에 있던 가구에 포도나무 넝쿨을 조각하시던 아버지의 손재주를 보고 감탄했다는 일본인 조각가는 이 쪽에 살았고...
저를 낳으시던 날 출장 가신 아버지가 너무 늦게 오셔서 엉금엉금 기어 가셨다는, 여의사가 원장이던 조산원은 저기쯤에 있었고...
산후통으로 고생하실 때 한약을 지으러 가면 공짜로 침도 놔주고 계피조각도 한 웅큼씩 주셨다는 한의원은 저 쪽 길 건너에 있었고...
우리가 살던 집이 있었던 자리는 하늘을 찌르게 높게 세운 아파트 단지 진입로가 되었다네요.
뿌연 비닐로 겨우 바람막이를 한 허름한 칼국수집에 들어갔습니다.
청양고추로 매콤하게 만든 양념간장을 넣기도 전에 "천천히 많이 먹어라!" 하시며 당신 것 절반을 제 그릇에 덜어주십니다.
김에 서린 두툼한 안경을 연실 끌어 올리시며 맛있게 잡수시면서
"칼국수를 먹을 때는 싸락눈이 문창호지를 때려 사각거리던... 그 시절 겨울밤이 생각난다!" 하시네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밥 대신 칼국수를 지겹게 잡수셨겠지요.
돌아오는 길. 힘이 드시는지 좀 더 천천히 걸어가자고 하십니다.
아직도 아주 오랜 추억이 아른거리는지 짐작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하십니다.
그 때는 마땅한 반찬이 그것 밖에 없었다는 마포나루 새우젓 이야기며...
천변(川邊)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양잿물을 넣어 하얗게 빨래를 해줬다는 청계천 이야기...
어머니 어렸을 때 그네줄을 매어놓고 타고 노셨다는, 아직도 그 나무가 한강로 2가에 살아있다는 느티나무 이야기까지...
언제 또 이런 날이 있으려나요... 꼬박 반나절을 어머니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어제 보다 더 화사해진 오후 햇빛처럼 밝아진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제 마음이 따뜻해져 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개나리가 노란 물감을 쏟아내는 봄이 올 때마다...아니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의 애틋한 추억을 함께 더듬었던 오늘이 많이 생각날 것 같네요.
[2005, 2. 28] 칼국수를 먹으며 마음이 찌르르 하던 날.
단풍나무가 보이는 창가에서 - 4B연필 -
첫댓글 그 힘들었던 예전 추억과 오늘 어머님과의 함께 했던 시간들 고이 간직하세요 *^^* 4B연필님의 글을 보면 언제나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집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형님..많이 행복하셨겠습니다...^---^*
창호지에 물 번지듯... 제 마음에도 그 기운이 그렇게 번지네요......고맙고 감사합니다...()
참~~나!! 4남매에, 아버님 일찍 여의고,밀가루 음식으로 끼니때우고......뭔 인연일까?? 4B님하고...... 꼭 내 예기네요..허 허~!
그날의 풍경이 한폭의 그림같네요. 참 효자시네요.내일은 혼자 사시는 친정어머니를 챙겨봐야겠어요.
지난 주 한가운데 있던 '정월 대보름 날'에는 오곡밥이랑 부럼은 드셨겠지요. 2월이 가는 마지막 날에 모처럼 어머니와 데이트를 하였습니다. 내일부터는 또 새로운 달이 시작되네요.'꽃피는 춘삼월'이라는 말처럼 님 들 마음 속에도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길 기원합니다.
보고싶어도 이젠 볼수 없는 어머니...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사는 어머님... 이글을 보니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싶네요... 뵈러가야겠네요... 잘계신지 천국에서 나를 예뻐하고 계실텐데... 어머니 보고싶고 사랑합니다... 편히 쉬세요...
서울에서도 이런 시골스러운 옛이야기가 있었을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4B연필님 얘기를 들어보니............................................................^^
옛날의 정경이 되살아나는것 같습니다^^
세상 어떤 님보다도 좋으신 분과 데이트 하셨네요.... 4b님 부럽습니다... "단풍나무가 보이는 창가"
아름답고,따뜻한 이야기 입니다.저도 형제가 사남매 랍니다. 효도 라는단어가 생각나네요.
나도 .. 엄마 손 꼭 잡고.. 걸어야지..
4B연필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오늘이 삼일절 ..뜻깊은 날 되십시요 ^^*
저희 엄마는 참 멋쟁이에요. 그리고 도시적이지요. 늘 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우아한 커피숍에서 차한잔 하고 싶다 그러는데 이제는 아예 촌으로 내려와 그 원 한번 못 풀어드리네요.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얼마전 휴가내서 시골에 갔을때...지나가는 말로 어릴적 맛보았던 강냉이 죽이 먹고 싶다고 하였는데, 어머닌 곧장 장터로 가자십니다. 동동 싸매고 앞서거니 뒷서거니...그러다 나란히 걷던...그 시장길...새삼 그리워 집니다. 4B연필님의 글을 읽다보니 그분이 또 보고싶어집니다.
어머님 참~ 행복하셨겠습니다. 한 주의 첫날 기분이 좋아 집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아~~님의 글을 보노라면 갑자기 저도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싶으 집니다...그 시절의 어머님상~~어찌 다~말로 표현이 될까요? 가슴 한켠에 쏴하게 바람이 이네요...잦은 외출로 어머님께 님의 맘을 전하시길~~
......어머니...어머니...엄마....늘 가슴에 사무치는.
오늘은 제 어머니가 학원에서 멋진 할아버지를 만나신 것 같습니다..전화를 드리니 목소리가 하늘처럼 맑으네요. 님들께서도 좋은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