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시 (琴詩) 거문고
만약 거문고 위에 거문고 소리가 있다면
거문고 집 속에서 어찌 울리지 않은가
만약에 그 소리가 손가락 끝에 있다면
그대 손가락 끝에선 어이 아니 들리나
소식은 시, 사, 산문, 서예, 그림 등 다방면에 최고의 경지를 이룬 문학가이면서, 특히 그의 시는 시의 제목과 소재가 광활하고 청신 호방하며, 과장 표현이라도 선용하였으며, 독창적인 시적 견해를 표방하여, '시신(詩神)'이라고 불렸다.
2. 시선(詩仙), 이백 (李白 701 ~ 762년) 호는 청련 거사 (靑蓮居士), 혹은 적선인(謫仙人 : 귀양온 신선)이며, 당나라 시대의 위대한 낭만주의 시인으로서 친구 사귀기와 술을 좋아한, 고대 낭만주의 문학가의 최고봉이다.
객중행 (客中行) 여행 중 난릉에서
난릉의 맛 좋은 술은 울금향
옥잔 가득 넘치는 호박 빛
주인이 나그네를 취하게 하여
어느 곳이 타향인지 모르게 하네
이백은 7언절구의 최고 시인으로서 후인들이 그를 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이백의 시상은 풍부하고 기이하지만, 풍격은 웅휘하고 자유분방하였으며, 세밀한 언어 구사와 청신한 자연미를 표현하여, 하늘에서 귀양 온 '시선(詩仙)'이라는 영예를 누렸다.
3. 시성 (詩聖), 두보 (杜甫 712 ~ 770년) 호는 소릉야노 (少陵野老) 다. 당대(唐代)의 위대한 현실주의 시인으로서 평생 3천 수의 시를 남겼으며, 특히 안록산의 난을 겪으면서 겪어야 했던 백성들의 고충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시를 썼다. 두보는 평생 제대로 된 관직을 맡지 못하고 방랑하여, 도연명 시인과 함께 가장 가난한 일생을 보낸 불우한 시인이었다.
춘망 (春望) 봄날을 멀리 바라보며
나라는 깨졌어도 산하는 변함없어서 봄이 온 성터엔 초목만이 우거졌네
세상이 이러하니 꽃 봐도 눈물 나고
한 많은 생이별에 새소리도 놀라
석 달을 연이어 봉화 피어오르니
기다리는 것은 오직 고향 소식뿐
흰머리는 굵을수록 더욱 드물어져
이제는 비녀조차 꽂을 수 없네
두보의 시는 세상살이에 대해서 실질적이면서도 종합적으로 논하고, 생각은 깊으며, 거론하는 것은 깊고 광활하여 사람들은 그를 '시성 (詩聖)'이라고 불렀다.
4. 시불 (詩佛), 왕유 (王維 701 ~ 761년 ) 자는 마힐(摩詰)로서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마힐거사를 표방하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당대의 시인이자 화가로서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의 대가임, 아울러 수묵 산수화에 뛰어나 남종문인화의 창시자로 명성이 높음.
송원이사안서 (送元二使安西) 원이를 보내며
위성의 아침 비가 먼지 적시니
객사의 버들잎 파릇파릇 새로 돋네
그대여 다시 한잔 마시고 가게나
이제 떠나면 다시 보기 어렵다네
왕유의 많은 시는 자연을 바탕으로 한 서정시로서 인생을 관조하는 불교 선종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선(禪)을 시에 반영하여 '시불(詩佛)'이라 불리게 되었다.
5. 시마 (詩魔), 백거이 (白居易 772 ~ 846년 ) 자는 낙천 (樂天), 호는 향산거사 (香山居士)다. 당대의 위대한 현실주의 시인으로서 대중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쓴 민중 시인이다.
낙화고조부 (落花古調賦) 지는 꽃잎을 보며
잡을 수 없는 봄이지만 머물렀으면
봄이 가면 남은 이만 쓸쓸해지니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은 그만 갔으면
바람 일어 무수한 꽃잎이 지네
백거이 시의 소재는 광범위하며 형식도 다양하고, 사용된 시어는 평이하고 통속적이며, 그는 시 작품 하나하나에 각고의 노력을 했다. 후세 사람들은 ' 술귀신이 시의 마성을 불러왔고, 오전의 비탄은 해 질 무렵까지 갔다'라고 하면서 '시마 (詩魔)'라는 별칭을 붙였다.
6. 시귀 (詩鬼), 이하 (李賀 791년~ 817년 ) 자는 장길 (長吉)이며, 어려서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당 황족의 후예로 알려졌다. 그의 시 대부분은 생전에 맛보지 못한 비탄과 내적인 고민을 토로한 시가 많았으며, 이상과 포부에 대한 추구 시가 많았는데, 이는 당시의 환관과 권신들의 횡포에 핍박받는 민중의 고통을 반영하였다.
몽천 (夢天) 하늘의 꿈
늙은 토끼와 두꺼비 하늘에서 우는 듯
반쯤 열린 구름 사이로 밤하늘이 열린다
달 수레 이슬을 밟았는지 달무리 졌고
난새 패옥 드리운 선녀 계수향 가득한 길에서 만나네
신선의 산 아래 육지는 바다가 되고
천년의 세월도 말 달리듯 변해 가는데
멀리서 내려다보니 아홉 점 연기 같고
넘실대는 바닷물은 술잔에 떨어지는 한 방울
이하의 시는 용광로 속에서 아름답게 용해되어 조화를 이루는 시의 언어들이며, 생각의 나래는 끝이 없고, 상상 속의 시어는 고금 신화를 넘나들며,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신비경을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 시귀(詩鬼)'라고 불렀다.
7. 시골 (詩骨) 진자앙 (陳子昻 659년 ~ 700년 ) 자는 백옥 (伯玉)이며, 초당 시기의 저명 시인이자 문학가임. 그의 시풍은 질박하고 순수하였으며, 당대의 두보, 한유 등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음.
등유주대가 (登幽州臺歌) 유주의 누대에 올라
앞으로는 옛사람 보지 못하고
뒤로는 오는 사람 보지 못하네
천지의 유유함을 생각하다
홀로 슬퍼져 눈물 흐르네
진자앙의 시어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풍격은 높고 준수하였으며, 기개는 높고 험준하면서 고아하면서 힘이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한위풍골 (漢魏風骨)' 혹은 '시골(詩骨)'로 불렀다.
8. 시걸 (詩杰 ), 왕발 (王勃 650년 ~ 676년) 자는 자안(子安)이며, 유학자 가문 출신으로 당나라 초기 ' 초당사걸 (初唐四杰)' 중의 선두를 차지하는 인물이었으나, 아버지를 냇가에서 기다리다 익사하여 26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촉중구일 (蜀中九日) 중양절에 촉 땅에서
구월 구일 중양절 망향대에 올라
낯선 타향에서 이별의 잔을 나누네
이제 이 남국에 머물기 괴로운데
기러기는 어찌 북쪽에서 또 오는가
왕발은 5 언 절구 시에 달인이며, 시의 흐름이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고, 표현된 시어는 자유롭고 소박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적 풍격을 지녔다. 따라서 후세 사람들은 짧은 인생에서 시의 언어를 맘깟 구사한 그를 '시걸 (詩杰)'이라고 불렀다.
9. 시광 (詩狂) 하지장 (賀知章 659년 ~ 744년 ) 자는 계진 (季眞), 만년에 스스로 호를 짓기를 '사명광객 (四明狂客)'이라고 불렀다. 어릴 적부터 시문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백을 조정에 천거하는 등 많은 사람과 교유하여, '청담 풍류'라는 미명을 얻기도 하였다.
영류 (咏柳) 버드나무를 노래하다
벽옥으로 치장 한 높다란 나무
가지가지 초록 실 늘어뜨렸네
자그만 잎새들 그 누가 말랐나
2월 봄바람이 가위질을 했다네
하지장의 시문은 시 문단 하나하나가 절구이며, 마치 제문을 낭독하듯이 자연스럽고, 시어는 경치를 그림으로 그려내듯이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마음속의 추억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독특한 시풍을 개척하였고, 참신하면서도 호방하였다. 따라서 후세 사람들은 시에 미친 그를 그를 '시광 (詩狂)'이라고 불렀다.
10. 시수 (詩囚), 맹교 (孟郊 751년 ~ 815년) 당대의 저명 시인으로 관직에서는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해서 한적한 산림에 은거하여 자신을 수양하며 일생을 보낸 청빈 선비다.
직부사 (織婦辭) 베 짜는 아낙네
그이는 밭에 사는 농군이고요
나 또한 농사짓는 아낙네지요
올해 그이에게 시집와서
그이를 위해 북을 잡았지요
날이 갈수록 일이 힘에 부쳐도
창 아래 베틀은 쉬지 않지요
어찌 희고 고운 비단을 짜면서
남루한 옷만 입어야 하나요
관가에서 동네 길에 방을 부쳤는데
뽕나무 더 심으라네요
맹교는 스스로 고단함을 자초한 시인으로서, 그의 시어는 내심의 고통을 베틀 짜듯이 풀어내고 있으며, 고독한 삶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시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말 그대로 시속에 자신을 가둔 ' 시수 (詩囚)'라고 불렀던 것이다.
11. 시노 (詩奴) , 가도 (賈島 779년 ~ 843년 ) 자는 랑선 (浪仙)으로 유년 시절에 승려가 되었으나, 그 유명한 문을 밀 것이냐 (推), 아니면 두드릴(敲) 것이냐,의 시어 선택에 골돌 하다 당시 경조부윤이던 한유의 가마와 부딪힌 인연으로, 환속하고 벼슬길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가난한 시인 생활을 면치 못했다.
심은자불우 (尋隱者不遇) 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은 약초 캐러 가셨다 하네
이 산속 어디엔가 있기는 하겠지만
구름이 너무 짙어 알 수가 없네
가도는 가난한 시인으로서 시작(詩作)은 호구지책이었다. 시어는 한때 승려였던 점을 감안하여 깊은 선정의 의미를 담은 시가 많으나, 일생 동안 가난으로 시문으로 연명해야 하는 가도를 후세 사람들은 그를 '시노 (詩奴)'라고 불렀다.
12. 시호 (詩豪) , 유우석 (劉禹錫 772년 ~ 842년 ) 당대의 문학가, 철학가이다. 당시의 대시인 유종원과 함께 '劉柳'라고 불렸으며, 위응물(爲應物), 백거이와 함께 '삼걸 (三杰)'로 불렸다.
추풍인 (秋風引) 가을바람
가을바람 어디에서 불어 오기에
쓸쓸히 기러기 떼 보내오는가
아침에 뜰에 들어 나무 흔드니
외로운 나그네가 맨 먼저 아네
유우석의 시문은 아름답고 유창하며, 자연의 품격을 살려 저속함을 배제하고, 삶의 깊은 뜻을 되살려 내는 뛰어난 작품이 많았다. 백거이는 그를 "시호 (詩豪)'라고 명예롭게 불렀다.
13. ' 시혼 (詩魂)', '중화 시조(中華詩祖), 굴원 (屈原 기원전 340년 ~ 278년) 전국시대 초나라 대부였으나, 소인배의 참소와 음해로 궁중에서 밀려나 전국을 돌며 시와 사를 지으며 초나라의 애달픔을 노래했다. 굴원은 중국 역사상 제일의 애국시인이며, 그의 출현으로 중국 시가는 한 단계 상승하는 독창적인 신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명한 그의 작품으로는 '이소', '어부사' 가 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를 '시혼 (詩魂)', ' 중화 시조 (中華詩祖)', '사부 지조 (辭賦之祖)'로 불렀다.
14. 능운 시재 (凌云詩材), 이상은 (李商隱 813년 ~ 858년) 당나라 말기 시절의 저명 시인으로, 이상은 시인은 불과 46세에 요절하였으나, 사실 당나라 시절의 수천 명 시인 중 재능이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 명이다.
락유원 (樂遊原) 낙유원에 올라
날 저무니 마음이 울적해져서
수레 몰아 옛 언덕 위에 올랐네
석양은 한없이 좋기만 한데
이미 저물고 있는 나의 인생아
이상은의 시적 구성은 자유분방하며 진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특히 인간의 애정 표현에 대해서 제목을 정하지 않고, 무제(無題)라는 명목으로 사랑과 아름다움을 미화하고 간절한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해서, 민중들로 하여금 널리 애송하게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이상은에게 뛰어난 재질을 갖춘 시인이라는 '능운 시재 (凌云詩材)'라는 미명을 선사했다.
15. 시가 천자 (詩家天子) , 칠절성수 (七絶聖手) , 왕창령 (王昌齡 698년 ~ 757년) 왕창령 시인은 성당 (盛唐) 시기 변방 국경지역을 노래한 저명한 시인으로서 칠언 절구의 달인이었다.
출새 (出塞) 변방을 나서며
진나라 때 떴던 달 한나라 때 관문을 비추건만
만 리 먼 길 출정 간 사람들 돌아오지 못했네
지금 만약 용성에 비장군 이광이 있다면
흉노들 감히 음산을 넘지 못했겠지
왕창령의 7 언 절구는 "깊은 정과 한을 노래했지만, 말하는 바는 아련하다."라고 하면서 언어의 마술사라는 '시가 천자 (詩家天子)'라고 미명을 붙였다.
16. 사중지룡 (詞中之龍) , 신기질 (辛棄疾 1140년 ~ 1207년 ) 신기질은 남송 때 문학가로서 강렬한 애국주의자이며, 본인이 직접 반금(反金) 항쟁에 나서서 전투를 하였으며, 전투정신을 바탕으로 시와 사를 써서 전쟁 예술로 승화시켰다.
청옥안· 원석 (靑玉案 · 元夕) 정월 대보름 밤
저녁 봄바람에 천 그루 꽃
송이 송이 떨어지고 불 빛도 비처럼 쏟아진다
귀하고 아름다운 마차는 길을 향기로 메우고
퉁소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목 항아리 같은 달빛은 구르는데
밤새 물고기와 용 같은 등불이 한들거린다
금색 실로 만든 아아와 설류로 장식하고
웃으며 재잘거리는 그녀들의 그윽한 향기가 그윽하다
인파 속에서 그녀를 천 번 백 번 찾아보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더니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있네요
희미한 등불 아래..
신기질 시인은 성격부터 호방하고 남자다웠으며, 금나라 침입으로 국가가 위난에 처해 있을 때 분연히 일어서서 전투에 나서는 행동주의 시인이었다. 그의 문장은 호방 주의로서 시어를 자유롭게 동원하고 표현함으로써 내용면에 있어서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대상을 자유롭게 묘사할 수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중지룡 (詞中之龍)'으로 불렀다.
17.오언장성 (五言長城) 유장경 (劉長卿 726년 ~ 786년) 당대의 시인으로 자연과 풍경을 담은 시는 맑고 깨끗하였으며, 당시의 대시인 왕유, 맹호연과 교유가 깊었다.
봉설숙부용산주인 (逢雪宿芙蓉山主人) 눈을 만나 하룻밤 자면서
해는 지고 푸른 산 더욱 먼데
날씨는 춥고 초가집 더욱 초라해
사립문 개 짖는 소리 들리노니
눈보라 속 찾아오는 사람 있나 보다
유장경 시인은 짧은 5 언 절구 시의 대가다. 그의 오언 절구는 전체 시 작품의 7~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음으로, 사람들은 그를 '오언장성 (五言長城)'이라고 칭했다.
18. 은일시인지종 (隱逸詩人之宗) 도연명 (陶淵明 352년, 혹은 365년 ~ 427년 ) 자는 원량 (元亮), 정절 (靖節)이라고 하며, 일명 정절 선생이라고 한다. 그는 동진 (東晉) 말에서 남송 (南宋) 초기의 위대한 대 시인이자 사부(辭賦)의 대가이며, 중국 제일의 전원시인이다.
음주 5 (飮酒 5) 초막을 짓고 인가에 살아도
초막을 치고 인가 근처에 살아도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 모르겠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하면
속세에서 마음 머니 사는 곳도 외지다네
동쪽 울타리 밑 국화를 따서
여유로이 남산을 바라보니
산 빛은 해 질 녘에 더 아름답고
날던 새들도 무리 지어 돌아오네
여기에 자연의 참뜻이 있으니
말하려다 말 잊었네
도연명의 전원을 읊은 시의 수량은 가장 많으며, 수준 또한 가장 높은 전원시의 창시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연에 귀의해서 은일 생활을 하면서 뿜어내는 그의 시어는 순박하고 탈속한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중국 한시의 수준을 한 단계를 높여 놓았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 은일시인지종 (隱逸詩人之宗)'이라고 칭했다.
다음검색
|
첫댓글 유익한 글 고맙습니다.
들어본 이름도 있고 처음 듣는 이름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