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나무
김홍희
수령 500년이 넘는 신목을 친견한다는 것, 그것은 거룩한 인연이다. 나무를 보자 우선 마음을다해 예를 올렸다. 사람이 나무에게 예를 올리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예를 올리는 것과 다름없다. 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도저히 사람의 가슴속에 담아둘 수 없었던 아픈 기원을 그저 온몸의 상처로 받았다.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고 다시 예만 드리고 내려왔다.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찾은 수영공원. 예를 드린 후 무릎을 꿇고 나무를 우러러보자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푸조나무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보이는 듯, 두 사람이 보이는 듯. 그러고는 사라졌다 또다시 나타난다. 이윽고 사바세계를 굽어보며 조용히 날개를 펴는 이가 계시더니 조용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고맙습니다. 보여주신 모습 잘 담아갑니다.”
기쁜 마음에 팔도시장에서 곱창과 소주 한 병을 비우는데 갑자기 눈이 충혈되고 아프다.
안약을 넣으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무님, 나무님. 저나 제 친구들이 님의 사진 곱게 쓰겠습니다. 부디 눈을 아프게 하지 마시고 당신과 함께 이 격랑의 시련을 견디게 해주십시오.’
---김홍희 시집 {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