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테러 대참사 이후 미국의 백악관에서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무수히 많은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9월 13일에는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 펜타곤에서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전세계 테러 단체들의 뿌리를 완전히 뽑을 때까지 우리의 군사적 보복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단순히 테러범을 심판 받게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테러지원 체계를 제거하고 테러 지원국을 모두 끝장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하면서 보복대상을 전세계 테러집단과 지원국으로 확대시켰다. 그리고 일부 미 국방부 관리들은 이번 기회에 대미(對美) 저항의지를 멈추지 않는 몇몇 아랍국가들도 그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경고한 테러단체들의 본부와 근거지를 살펴보면 하마스(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시리아 다마스쿠스), 헤즈볼라(레바논 남부),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팔레스타인) 등으로 주로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아랍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 핵심을 이루는 테러단체는 단연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Al-Qaeda)’이다. 현재 기반은 아프가니스탄에 있지만 세포조직들은 중동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수단 등 전세계 34개국에 세포 조직망을 확보하고 있다. 이곳 모두가 공격 대상지역이다. 또한 미국의 눈에 항상 가시 같았던 이라크의 후세인도 빼놓을 수 없는 공격대상이다.
이러한 점에서 폴 울포위츠 부장관의 성명과 동일한 발언들이 부시 행정부를 통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자 아랍권은 바짝 긴장함과 동시에 곳곳에서 반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간이 흐르자 테러를 비난하던 주요 아랍국들 사이에서도 “이번 테러참사로 미국도 다른 나라에 가한 고통을 느껴야 하며 아프가니스탄보다 이스라엘을 먼저 응징해야 한다.” 또는 “테러 응징은 필요하지만 특정 국가의 공격은 반대한다”며 오히려 미국의 보복공격에 대한 우려의 반응을 나타내는 쪽으로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민들이 국가적 위기를 맞아 단결하였던 것처럼 전(全)아랍권 역시 미국의 보복공격을 최대의 위기로 받아들이면서 미국민보다 더 긴밀히 단결하고 있다. 중립을 고수하고 있는 아랍 국가들도 지금은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번 미국의 보복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아랍 민간인들의 사상자가 속출하거나 미국의 공격이 도가 지나치다고 판단될 때에는 종파를 무시하고 전 아랍권이 일어나 성전(聖戰)을 외치며 저항의지를 불태울 것이다. 이러한 예상 사태는 어쩌면 생각보다 더 신속한 시일 내에 발생할 수도 있다.
미국이 9월 중순 무렵에 바로 보복공격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도 장기전으로 전개될 경우를 대비해 충분한 전쟁자금과 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군사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아랍권이 빈 라덴을 옹호하면서 이슬람 국가들과 아랍민족의 대미 저항의지로 증폭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부분도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예상사태 #2. 서방 연합국과 이스라엘의 참전
올해 들어 팔레스타인 사태를 관망해 온 아랍 국가들은 우회적으로는 미국을 비난하면서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의 대 테러보복전쟁에 대한 아랍권의 불만이 이스라엘에 대한 선전포고로 표출될 가능성도 크다. 그렇게 되면 현재로서는 이를 저지하거나 중재할 나라가 없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공격 당사국으로서 아랍국들을 설득할 자격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이스라엘을 위해 강공책을 택할 경우 아랍국들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국제사회로부터 명분을 확보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그렇다고 미국이 해마다 20억 달러 어치의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있는 동맹국 이스라엘을 아랍국가들에게 순순히 내어주지는 않을 것은 분명하다.
이 사태가 전쟁으로 진행되면 가장 발빠르게 움직일 인물이 이스라엘의 총리 아리엘 샤론이다. 그는 미국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스라엘을 지원할 것임을 알고 있다. 샤론은 오사마 빈 라덴에 버금가는 극우파이며 대(對)아랍 강경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오직 그의 목표는 첫째, 예루살렘 동편 성전산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을 걷어내는 것이고 둘째,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스라엘 영토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것인데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중동 아랍권은 샤론의 대(對)팔레스타인 강경 정책에 선전포고를 할 기회를 노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10년 전에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걸프전쟁에서도 전쟁이 중반을 돌입할 무렵 이라크는 공격 목표를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방향을 돌린 적이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아랍권을 대표해 성전을 펼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기 위한 의도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이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서도 아랍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사태가 또 다시 재현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샤론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에 대공세를 취할 것이다.
일단 이스라엘이 아랍권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이에 응전하게 되면 미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대(對)아랍과의 전쟁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유엔에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국제사회로부터 지지를 얻으려 할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보복전쟁을 선언했을 때 영국을 제외한 나머지 서방 유럽국들이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 아랍전쟁을 향한 중지가 모아지면 연합군을 형성해 일제히 전쟁터로 나올 확률이 높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테러를 반대한다는 성명과 함께 미국을 지지하는 사태 초기의 입장과는 달리 유엔 안보리의 결정에 십중팔구 이의를 제기하고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미사일 방어(MD)와 같이 전세계로 확대하는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사태 #3. 러시아-중국-북한의 연합전선 형성, 대(對)아랍 군사지원
미국은 전세계를 5대 지역으로 나누어 각각 사령부를 두고 관할하고 있는데, 현재는 테러분자들과 아프가니스탄을 응징하기 위해 타 관할 지역의 전력까지 속속히 인도양과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주변 접경지역으로 집결시키고 있는 상태다.
중동은 원칙적으로 미군의 중부사령부가 관할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미 태평양함대 소속으로 주일 오키나와 기지에 머물러 있던 ‘카우펜스’, ‘커티스 윌버’, ‘빈센스’ 등 첨단을 과시하는 모든 이지스함들은 물론 항공모함 ‘키티호크’호까지 동원되었다. 미군은 타 관할 전력의 동원을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럽사령부 소속의 대다수 병력과 화력들도 아프가니스탄 인근으로 모으고 있다. 페르시아만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전력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와 ‘칼빈슨 호’를 비롯해 잠수함 10여 척과 병력 3만 명이 포진한 상태이며 미 본토에서 대기하고 있던 항공모함 ‘루즈벨트 호’까지 이 해역으로 가세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공격명령뿐이다.
한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밝힌 것과 같이 중동의 모든 테러단체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아왔던 테러를 모두 쏟아 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 아랍권으로 전쟁이 확대되면 1차 때와는 한 차원 높은 테러가 다시 서방과 미 본토에 걸쳐 동시 다발적이고 조직적으로 2차, 3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조지 테닛 CIA 국장은 오사마 빈 라덴이 생화학무기 제조공장을 소유하고 있다고 1998년도 미(美)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보고한 적이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최후의 순간이 오기 전에 자신이 양성한 수많은 세포조직들에게 생화학 폭탄들을 들고 일시에 미 본토와 서방 전역으로 돌진하라는 명령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테러가 또다시 발생하게 되면 전세계적으로도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모른다. 1차 테러를 당하고 난 뒤에 미국 정부는 기자회견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핵무기의 사용은 미국이 전쟁을 이기고도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으며 신뢰를 완전히 잃을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동맹국과 적대국을 막론하고 위협과 큰 위험을 안겨 줄 수 있어 일단 자제하는 쪽으로 중지를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2차, 3차로 이어지는 테러가 미 본토에서 일어날 경우 미국은 거리낌없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 확실하다.
핵무기 사용은 아랍권 외에 미국 측에서 적대국으로 인식해 온 러시아-중국-북한을 극도로 위협하는 사태로 몰고 갈 수 있다. 그리고 국제정세는 과거 냉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상황으로 급속도로 얼어붙게 되고 러시아-중국-북한을 전쟁터로 이끌어 낼 것이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세 나라 중 한 나라는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을 개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이 윈-윈 전략을 포기한 현 상황에서 지금 태평양 함대의 주력이 중동으로 빠져나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중동에서 전쟁이 확산될 때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등 태평양사령부 관할의 전력이 추가로 이동할 때에는 동북아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9월 11일 테러가 일어나던 날 미국을 방문중이었던 중국 기자단이 이들을 안내하던 미국 정부 관리가 보는 자리에서 환호성을 질렀다가 일정이 취소되고 곧바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쳤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위시한 아랍인들과 동일한 정서를 중국인들이 표출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리고 북한은 오래 전부터 아랍국가들에게 개량된 스커드미사일과 무기들을 팔아 왔는데 이 점에 대해 미국이 노골적으로 경고할 수도 있다. 미사일 방어(MD)체제와 관련해서는 걸림돌이 되어 왔던 ABM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을 이번 전쟁기간 중에 미국이 이를 독단적으로 파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군사패권에 대항하는 러시아-중국-북한이 연합전선을 형성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측면들이 이번 전쟁을 내다보는 예상 사태들과 뒤엉켜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그 폭발력은 전세계를 삼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예상 사태의 수순들 속에서는 제외됐지만 전쟁이 몇 개월 이상 장기화될 때 세계경제가 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음은 별도로 생각해볼 문제이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경우에는 주식시장도 국제 유가도 큰 동요 없이 안정을 회복하겠지만 장기화될 경우 세계 경제에 밀어닥칠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하루가 다르게 시시각각 숨가쁘게 준비되고 진행되고 있는 이번 전쟁의 끝이 어딘지 지켜보는 일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