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신불산

[모기]

※ 입산지: 영남알프스 신불산 

※ 입산일시: 2015년 9월 28일 13시 ~ 29일 11시 15분 

※ 입산구간: 간월산장 ~ 홍류폭포 ~ 칼바위 ~ 신불산 ~ 간월재 ~ 등억리 계곡길 ~ 간월산장 

※ 날씨: 구름 

한동안 사고의 흔적도 있고 게으름까지 한 몫 해서 산에서 머문 지 오래 되었다. 

산에서 머무는 것은 산을 깊숙히 느끼는 방법 중 하나다. 

산은 사람보다 오래된 존재이므로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기운이 있을 것이다. 그 기운이 모두 다르니 사람이 모두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을 두고 어찌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마는, 역시 산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람이 산줄기를 갈기갈기 찢고나서야 온전한 모습에 생명을 품은 산을 더 높게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산에서 머무는 것에서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이를 삶과 연결지어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배움에도 부침이 있어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경험했다. 산에서는 불편을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그 후로 산에서 머무는 것을 게을리 했다.산은 항상 그곳에 있지만 사람 마음은 그곳에 있는 산을 이 핑계, 저 핑계로 멀리하기도 한다. 

한가위. 그리고 영남알프스. 

산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느낌을 준 산이 바로 영남알프스다. 

자주 찾다보니 인연이 이어져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새해맞이 재약산 털보산장에서 즐거운 하룻밤. 신불산에서 몇 번 뵌 부산의 젊은(?) 형님. 신불산 산마루에서 만난 환갑의 고수. 첫 하룻밤을 맞은 간월재. 신불재에서 강한 바람에 폴대가 부러져 간월대피소에서 한 겨울 하룻밤 나던 일까지. 

첫 야영 산행지 영남알프스에서 난 다시 오래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월산장에서 신불산으로.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만큼 편하게 가자는 마음이 한 켠에서 불쑥 솟이오른다. 

아내도 부담스럽긴 마찬기지다. 

간월산장 주변은 예전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주차장도 늘었고, 새로운 건물도 지어졌다. 클라이밍 경기장도 생겼다. 계곡 주변 막걸리와 파전집은 그대로. 목을 축이며 마음을 가지런히 모아본다. 

겸손한 자세로 배운다는 심정으로 신불산을 느끼고 싶다. 편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산을 느끼고 싶은 마음. 편하고자 하는 마음을 걷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작은 도전정신이기도 했다. 아내와 난 칼바위로 향한다. 

▲ 배초향

홍류폭포 수량이 제법 많아졌다.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겨울에 칼바위에서 고생한 생각에 머리는 복잡해진다. 

무거워진 몸을 신불산이 넉넉히 받아줄 것인가? 산은 가끔 마음의 방심에 대해 따끔하게 혼내주곤 한다. 

자만심에 몇 차례 혼나 보니 긴장감이 제법 감돈다.

▲ 홍류폭포 

▲ 구절초 

완연한 가을빛은 아니지만 조금씩 나뭇잎의 색은 다르게 물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런 작은 변화도 새롭기만 하다. 

하늘은 더 높다. 더 파랗다. 이렇게 산은 사계절 다른 모습을 내게 보여준다. 한동안 그 넉넉함을 느끼지 못했구나. 

몇 차례 칼바위 구간으로 신불산을 접했지만 산오이풀을 이렇게 본 적 있는가 싶다. 

영남알프스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임도로 산의 생명이 훼손받았다는 것. 그러다보니 생명이 다양하지 않고, 산꽃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나는 물론 산꽃이 더 고프다. 

그러면서도 칼바위 구간이 사람 발길이 많지 않다보니 산꽃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임도와 이어지는 구간은 그만큼 생명의 흔적이 드문 법이다. 

▲ 산오이풀 

▲ 단풍취 

홍류폭포 앞에서 칼바위까지 1.7킬로 이정표는 아무래도 의심이 간다. 

칼바위까지가 제법 된비알이고 우회길과 암름길이 연이어 계속된다. 

칼바위 올라서기까지 제법 힘을 뺀다. 칼바위 앞에서 기를 죽이려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칼바위 구간에 닿으니 그 위용에 다시 긴장할 수밖에. 

등성이에 닿자 단풍도 제법 각각의 색으로 자신을 뽐낸다. 겨울 날 준비를 마쳤다고. 

▲ 칼바위능선

신불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가위 연휴지만 많은 산객들이 찾은 듯하다. 

오랜만에 찾는 신불산 산마루는 어떨까 살짝 걱정이다. 

칼바위 구간은 생각보다 짧게 지나쳤다. 

한 겨울 우회하는 길도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가서 그럴까? 적당히 날등을 걷다가 우회도 하니 긴장과 여유가 마주하며 짧게 등성이를 마무리 한 느낌이다. 

산마루에는 역시 많은 산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가위 연휴 기간 중 찾은 신불산 중 가장 많을 거다. 

산마루에서 영축산을 바라보고 높은 마루에 자리를 잡았다. 좋다. 이 기분을 한동안 잊고 있었나 싶다. 

신불산 장관 중 하나는 일몰이다. 

간월재에서 일몰을 맞으며 신불산 산마루를 걷는 것은 마치 하늘의 축복을 온몸으로 받는 것과 같다. 

미리 올라 일몰을 보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오늘은 오직 신불산을 향해 올랐다. 다른 곳을 거치기 보다 오직 신불산만을 위해 발걸음했다. 

그렇게 마주한 일몰. 괜찮다. 

아내와 술 한잔하며 지난 시간을 떠올려본다. 

매번 오면 만나던 분들 못 만나니 영남알프스를 찾는 분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나 싶었다. 

진한 된장찌개와 술 한잔. 

어느 순간 고기를 뺀 간단한 차림이다. 

선선한 바람이 아직 짙은 가을이 아님을 알려줬고, 자다가 깬 새벽녘 달은 왜 큰 달이라고 불리는지 증명해줬다. 

새벽 4시. 잠시 잠에 깨서 달빛 구경하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주변에 일출이 다가왔다는 소근거림에 덩달아 밖을 향했다. 

동쪽이 벌개질수록 서쪽은 하얘진다. 

해와 달이 잠시 공존 서로 빛을 경쟁하는 순간이다. 

일출 보고 나니 아침이 빨라진다. 

어제 된장은 끓을 때 맛 보다가 간을 짜게 했다. 

아침도 된장라면으로. 

항상 그러하듯, 신불산 산마루에서 자고 나면 간월재 지나 샘터에서 물맛보고 간월산장으로 간다. 

산부추는 자주 봤지 싶다. 알알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그 자태는 사뭇 비장하다. 

▲ 산부추

아마 억새는 10월에야 더 넉넉할 듯하다. 

하지만 지금도 담백한 맛이 있다. 흐드러지지 않았지만 꼿꼿한 느낌. 

억새가 워낙 이리 꼿꼿하지 않던가? 

다만 바람에 흩날릴 뿐. 

간월산이 마주 보이는 곳 장면은 언제나 한눈에 담고 싶다. 

항상 내 눈보다 감성이 떨어지는 사진기는 뭐 그저 그렇게 찍히고 만다. 

하지만 내 눈은 더 그윽하게 들어온다. 

더 좋은 렌즈로 현장을 응시해도 내 눈이 채우지 못하는 그 감성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법. 

아무리 넉넉하게 보인 들, 푸근하게 보인 들, 내 눈이 보여주는 만큼 둥글고 싶은 곳일까? 

다만 운해가 불어닥치는 순간은 내 눈보다 사진기가 더 솔직하다고 할까? 

속리산에서 술패랭이꽃을 봤다. 

내 첫 만남은 간월재였다. 술패랭이꽃은 가녀린 꽃잎의 자유분방한 뻗침이 매력이다. 

가지런하지 않은 그 자유로움 말이다. 색은 또 어떤가? 짙은 원색이 아닌 바람에 날린 연분홍이다. 

한번 보면 그 연약한 강렬함에 넋을 잠깐 놓아야 한다. 

요때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눈여겨 보며 걷는데...

용담이 새파랗게 반긴다. 

▲ 용담 

내가 기다리던 술패랭이. 

많이 상했다. 절정을 지난 것이다. 하지만 그 멋은 영남알프스가 최고 아닐까 싶다. 

산꽃이야말로 산이 주는 소중한 가르침, 감성의 속삼임이다. 

술패랭이가 저물어가는 것이 아쉽구나 한탄하는 순간 바람이 흔들어주는 억새의 물결도 장관이다. 

신불산 산들바람과 달리 간월재는 센 바람이다. 

센바람이 억새와는 찰떡궁합인 것이다. 

▲ 술패랭이꽃

간월재 샘터에 대해 물맛을 말할 필요도 없다. 

왜 그런고 하니 주변 산꽃을 보면 안다. 

산꽃은 바람과 햇볕, 그리고 물로 자란다. 

물가에 산꽃이 많은 법이다. 물이 없어도 바람과 햇볕이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물은 이슬로 받는다. 

간월재 샘터는 투구꽃, 가는장구채, 달개비, 이질풀, 고마리 천국이다. 

이런 곳에서 물맛 타령하면 바보다. 

▲ 가는장구채 

▲ 고마리 

워낙 임도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터에 임도를 가로지르는 산길을 찾다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투구꽃을 만났다. 

그토록 지나다니던 곳에서 투구꽃이라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영남알프스에서 술패랭이면 만족할 일인데... 내가 좋아하는 투구꽃을 만나다니. 설악, 덕유, 일월 등 높고 한적한 곳에 많은 투구꽃을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말이다. 

이렇게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선 산이 내게 보여준 선물이려니 싶다. 

▲ 투구꽃 

임도는 싫어 계속 비탈 산길로 이어서 내려선다. 

그러다가 산길과 연결된다. 근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계속 이어지는 비탈로 내려서는데 어째 분위기 싸하다. 

산에서 길을 잃기를 밥 먹듯 하다보니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 없다. 

왼편으로 사람들 소리 들리고, 너덜이 더욱 심해진다. 느낌으로 여긴 임도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다. 

한참을 가도 임도는 보이지 않고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길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가끔 오래된 리본이 눈에 들어오긴 한다.

지금은 다시 돌아올라가기도 힘들고, 내려서는 것도 확신이 없는 상황. 

이 때 들리는 물소리는 구세주와도 같다. 

어떤 상황이라도 물이 내려가면 속세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계곡 따라 내려간다는 마음으로 발길을 옮기니 사람흔적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사람흔적 있다는 것이 관심이 아니라 계곡 자체에 빠져든다. 

길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계곡은 작은 폭포와 소, 담을 만들며 또 작은 폭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정도면 신선이 사는 곳 아닌가 싶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푸르다 못해 시리다. 

마음은 머물러 즐겨야 하나, 길을 확신할 수 없으니 지나칠 뿐이다. 

이렇게 얼마나 가야하나 싶은데 먼 곳에 인적이 느껴진다. 

유유자적하는 한 분을 만났다. 막걸리 남았으면 한잔 나누고 싶다고 하셨는데, 참 넉넉한 분이다. 

계곡이름은 모른다고 하시고, 우연찮게 길을 잃어 여기 닿았는데 참 좋다고 하신다. 

신선계곡이라 부르고 싶은 곳이다. 

막상 간월산장과 이어진 곳을 만나서 다시금 생각한다. 

영남알프스는 천 고지를 넘는 산군이 모여있는 곳이다. 산이 모이면 골로 물이 이어지는 법이다. 

여기를 임도로 가로지르면 물길도 훼손되는 법이다. 

그럼에도 운문산, 간월재로 물길이 이어지는 것은 산이 품은 자신의 격이다. 더 이상 영남알프스에 대한 훼손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굴뚝 같다. 

천황산 쪽으로 이어진 케이블카도 안타까운데, 신불산 케이블카도 여전히 노리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산은 역사, 문화, 기운이다 .

제발 함부로 하지 말라. 

이렇게 산에 오래 머무는 법을 다시 일깨웠다. 

[7년후여관사장]

와 저는 집도 강원도 현재 사는곳도 경기도라 영남 알프스 말만 들었고 요즘 많이 가시는거 같은데 정말 좋아보입니다 ㅠㅠㅠ 사진으로나마 감상해볼랍니당 ^^

[알마]

같은 날, 같은 공간속에 머물렀네요.
저도 신불산에서 길을 읽은 적이 있어서 몹시 당황한 적이 있어요.
산은 노력한 자에게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인으로서 케이블카는 극구 반대하지만, 경제논리에 집중하는 지자체의 의지를 과연 꺽을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