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3.
호2:14-23
“아골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언약 백성 사이의 관계는 항상 일방적이다.
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아이와 같이 작은 성 앞에서 패하고 아골 골짜기에서 탐욕으로 언약을 어긴 아간과 그가 훔친 물건을 돌로 치고 불살라 돌무더기를 쌓은 것처럼 그의 백성은 언제나 패역과 배신을 일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엄히 꾸짖고 치시되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거기서’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일으키신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아골 골짜기에 묻힌 아간은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이미 그의 죄값으로 죽었기에.
그처럼 죽었던 자를,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위로해 주시며 그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아 주신다.
아골 골짜기가 없으면 소망의 문이 없다.
말씀 앞에서 존재 자체가 죄인인 자기의 정체성을 깨닫는 그 곳, 언제나 옛 자아의 습성으로 돌아가려는 행위적인 죄가 발견되는 그곳, 아골 골짜기에서 완전히 죽어야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만질 수 있다. 하여 그곳은 소망의 문이 되는 것이다.
비열하고 찌질하며 때로는 타인의 기쁨을 배 아파하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나는 아간과 같은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는 없더라도 속은 그렇다.
최근에는 공휴일이 많은 이번 주에 무단히 욱 하고 화가 났다.
나는 소처럼 일해야만 하는데 남들은 모처럼 휴가를 보내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으이그, 찌질이!’
소처럼 일할 수 있게 하심이 얼마나 큰 감사요, 기적인지 아골 골짜기 돌무더기 안에 갇히면 볼 수 없다. 주님이 일하실 소망의 문으로 보면 오늘의 거친 들이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기적의 한 끝자락임을 보게 된다.
아골 골짜기에 오늘의 찌질함을 묻고 주님으로 소망의 옷을 입는다.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시고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실 주님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