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그치니
삼월 중순 일요일 점심나절 거제로 건너와 두 밤 보낸 화요일을 맞았다. 초저녁에 잠에 드니 일찍 깸은 당연했다. 한밤중 자시가 지난 축시로 드는 시간이었다. 와실 바깥은 비가 오는지 베란다 우수관으로 가는 빗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기예보에 새벽녘 비가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날이 밝아오면 한반도로 황사가 덮칠까 염려다. 북경 일대 심한 황사가 일고 있단다.
코로나 때문이지 작년 한 해 대기는 맑은 편이다. 자동차 운행이 줄고 공장 가동이 떨어져서인지 미세먼지가 적었을 수 있다. 그런데 올봄은 비는 비대로 자주 오는데 대기가 깨끗한 편이 못 된다. 연일 우중충한 하늘에 비가 잦았고 대기는 희뿌옇다. 그래도 봄이 되니 여기저기 꽃이 피고 잎이 돋으려 한다. 그나마 주말은 비가 오지 않아 산행이나 산책에 지장은 받지 않아 다행이다.
노트북을 켜 날씨와 뉴스를 검색하다 재방송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했다. 날이 밝아오기까지 한참 남았는지라 네 시 지나 아침밥을 해결했다. 그새 비는 그쳤는지 빗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날이 밝아오려면 아직 두 시간이 남았다. 출근을 위한 세면을 끝내고도 여유가 있어 와실 바닥을 닦아 놓고 우두커니 앉았느니 워드로 생활 속 남기는 글을 몇 자 입력했다.
새벽녘 남은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찻물을 대용하는 약차를 끓이면서 어둠이 가시길 기다렸다. 여섯 시 반이 되어 와실을 나서니 비는 그쳤다. 살짝 내렸다가 그친 비에 길바닥은 젖은 채였다. 학교 방향이 아닌 시내버스 정류소로 나가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 들녘으로 나갔다. 새벽에 내린 비로 대기 중 습도가 높아 주변 산자락은 안개가 걸쳐 수묵담채화를 보는 듯했다.
방송 일기예보 기상캐스터는 오늘과 내일 중국에서 덮치는 황사가 건너올 것이라더니만 남녘 해안 대기 상태는 괜찮은 편이었다. 들녘 복판을 지나니 수로에는 농사철이 아님에도 맑은 물이 제법 흘렀다. 추수를 끝내고 겨울이 오기 전 깊이갈이를 해둔 논바닥은 겨우내 얼고 녹길 반복했다. 서릿발이 숭숭 솟았던 땅심을 봄이 되니 스르르 다 녹아 봄비에 논바닥 물이 고여 있었다.
곁으로 물길이 흐르는 농로를 따라 걸으니 논두렁에 좁쌀처럼 자잘한 꽃들이 보였다. 허리를 굽혀 살피니 냉이의 한 종류인 듯했다. 짐작 되건데 물기가 많은 논바닥에 잘 자라는 논냉이인 듯했다. 들녘 한복판에서 연초천 둑으로 올랐다. 수위 조절용 댐에서 가두어진 물이 알맞게 채워진 연초천이었다. 가장자리는 세대교체를 앞둔 갈대와 물억새는 야위고 색이 바랜 채 봄을 맞았다.
연초천 둑길은 고현에서 연초삼거리까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행정 당국에서 꽃길을 조성해 늦은 봄이면 금계국이 피고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볼 수 있다. 가로수로 심어둔 벚나무는 흙살이 얇아 그런지 생육이 더뎠다. 버팀목을 세워도 태풍에 몇 그루는 기울어진 체 자랐다. 그 가운데 한 그루는 유난히 일찍 꽃을 피웠다. 벚꽃이 매화나 살구꽃처럼 활활 피어 눈길을 끌었다.
새벽에 비가 온 뒤여서인지 둑길에는 평소보다 산책객이 적었다. 연효교를 지난 연사천 둑길을 걸어 횡단보도를 건너 연사마을 입구로 들었다. 동네와 떨어진 산기슭 근무지 교정으로 드니 일곱 시 조금 지나는 무렵이었다. 이른 시각인지라 동료나 학생들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배움터 지킴이는 출근해 하루 업무가 시작되었다. 올봄은 비가 잦다는 날씨 얘기로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교정 앞뜰 며칠 만개했던 목련은 비를 맞아 꽃잎이 바닥에 떨어져 지저분해 낙화의 쓸쓸하고 허무함이 느껴졌다. 뒤뜰로 가보니 절개지 옹벽에 심어둔 개나리가 노란 꽃잎을 펼쳐 화사했다. 꽃이 핀 개나리 가지는 넌출을 드리웠다. 남향이긴 해도 본관 건물이 앞을 가려 응달과 마찬가지라 개화가 늦은 편이었다. 겨울에 핀 산다화와 동백꽃에 이어 교정을 밝게 해주는 개나리꽃이었다. 21.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