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가 4학년인데 아직 한번도 자연속학교에 부모교사로 간 적이 없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자연속학교의 부모교사를 경험하지 않고 졸업하는 부모님들도 많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올해 교육일꾼을 맡고 보니 더더욱 참여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처음엔 누가 몇학년인지 모르는 경우도 더러 있었던 데다, 무엇보다 교육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넓힌운영모임에 가도 할말이 별로 없는 것이었다.
이번 여름자연속학교는 지수아버지와 함께 가기로 결정을 하고, 뒷자리에는 노학섭선생님과 6학년 두 명을 태우고 가게 되었다.
현준아버지와 현준어머니는 우리 도착한 날 과천으로 가셨다.
여러 부모님들의 도움이 함께 하는 것을 자연속학교 현장에서 보니 더 뜻깊었다.
자연속학교 부모교사는 밥하는 게 거의 일의 전부인 것 같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뜻이겠다.
금강산호텔은 단체합숙시설이 아니어서 부엌이 좁은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 부분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장점이 많은 곳이었다.
부모들이 따로 숙소를 가지게 된 것도 처음이라 하고, 아이들이 직접 바다로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바닷가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는 것도 자연속학교의 취지를 살리기에 알맞았다.
나는 당연히 다른 부모들이 만드신 자연속학교 반찬을 먹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놀랍게도 다 맛이 있는 것도 참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었다. 바닷가에 나와 있으니 더 맛이 좋게 느껴진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성이 한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맛있는 밥이 부모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심리적 허전함이나 피로감을 없애주는 것 같았다. 애들도 밥을 정말 잘 먹었다.
도윤어머니가 워낙 식사 준비에 신경을 잘 써주셔서 나는 보조적인 일만 도우면 되는 것도 일을 편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잘 모르는데 일을 총괄해야 하면 얼마나 골치아픈지 모른다. 그런데 도윤어머니는 경험도 있고 워낙 꼼꼼하게 잘 하시는 편이라 내가 한 일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오기, 설거지, 그릇정리... 이런 종류의 단순 노무직. 정확히 내가 자연속학교에서 하기를 꿈꿨던 일이었다.
음식 간보기 뭐 이런 것은 아직 좀 부담된다. 그런 건 다음에~~
이번에는 참여하신 부모들이 적지 않아서인지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 바닷가 나가 놀 때 같이 나들이를 하고 올 수 있었다.
나는 한번은 맨발로 모래사장 저 끝까지 산책했고, 또 한번은 바닷물 속에 거의 허리춤까지 들어갔다가 나왔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다 튜브도 없어서 바닷속에서 그냥 음...이쪽 저쪽으로 걸어다니다가 나왔는데 전정일 선생님이 이러시는 거다.
"음... 다 끝난 건가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잖아요;;"
아니다. 바닷속에서 걸어다니다가 나왔다는 건 나한테 아주 오랜만의 큰 일이었다.
바닷물과 모래바닥의 느낌이 엄청 신기했다. 우와 맞다 이런 게 바다였지~~♡
나는 아주 단순한 활동에서 즐거움을 얻는 종류의 인간이다.
이번 자연속학교 참여의 첫번째 목적은 자연속학교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살피는 것이었지만 사실 아이들의 면면을 더 가깝게 보게 된 것이 더 큰 소득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관계를 맺는 방법, 아이들이 토라지고 화해하는 과정들, 그 밖의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들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이석이가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형님들과의 관계에서 안정적인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석이가 형님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형님들이 이석이의 어려운 점을 챙겨주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부분적으로 이석이와 비슷한 기질이 있어서 이석이가 뭘 잘하면 내 일처럼 기쁘다)
형님들은 이석이 그림에 감탄했고,
이석이 역시 형님들이 자는 방의 자리가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굳이 형님들 방에서 자고 싶어했다고 한다.
나는 그 기분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줄곧 자기 힘으로 작은 승리를 만들면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속학교에서 이예지 선생님이 처음으로 '아침열기' ? 순서를 해주신 것도 뜻깊었다.
전날 교사 마침회(?) 시간에는 처음이라 긴장된다 하시더니 다음날 아침에 그렇게 준비를 잘 해오시다니....!!!!
아이들에게 그동안 배운 것을 질문하거나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침착하게 진행을 잘 해주셔서 아이들 모두 재미있는 시간이 됐다.
나는 자연속학교의 후반부에 도착해서 선생님들이 고단하신 모습이 너무 잘 보였다. 여러 날동안 낮에도 아이들을 하루종일 보면서 밤에도 긴장을 완전히 풀지 못하고 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피곤한 가운데에도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항상 먼저 챙겨주셔서 감사했다.
나와 같은 기간 있었던 부모교사분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특히 윤슬아버지가 거실에서 지성이 동생 지민이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실 때 너무 웃겼다. 지금은 잘 기억안나는데 암튼 방에서 듣다가 혼자 빵 터졌다. 윤슬아버지가 낚시를 할 줄 아셔서 아이들이 바다 낚시를 하며 일종의 체험활동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지수아버지는 윤슬아버지가 낚시 가르쳐주실 때 보조선생 역할을 충실히 하신듯...ㅎㅎ
도윤아버지는 주중에 내내 일하시고 고단하실텐데 고성까지 와서 일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다.
지성어머니는 강릉이었나? 근처에 친정에 다녀오시면서 부족한 음식들을 사주셔서 감사했다. (아이들도 잘 먹었지만 부모교사들도 이번에는 적지 않아서 마지막에는 조금 부족했다)
도윤어머니는 아마 일을 가장 많이 하셨을 거다. 도윤어머니 없는 자연속학교를 떠올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자연속학교 부모교사는 힘들어서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여러 분들이 함께 하고 도와주시기도 한 덕분에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자연속학교 끝나고는 지수와 지수아버지와 셋이서 설악산 토왕성 폭포까지 갔다. 지수는 자연속학교 때 설악산을 이미 올랐고 자연속학교 활동을 끝낸 후라 은근 고단함이 쌓여있을 것 같은데 다 잘 따라가는 걸 보고 지수아버지와 나 모두 내심 놀람. 맑은샘학교에서 여러 활동들을 하며 체력이 잘 다져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