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 <복적복적>, 오일 스크래칭, 100*70 2008
긍정의 힘으로 부정의 어두움을 이길수 있다는 것.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이 공간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일종의 계율이자, 하루의 일상을 시작하는 제의 속에 드리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최근들어 환경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고 관련 작품들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유독 환하게 채색된 화면구성으로 제 눈을 끄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이종근의 그림들이죠. 화가 이종근은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사물에서 희망의 메세지를 뽑아냅니다. 그의 복숭아는 사람의 영혼을 닮았습니다. 발그스레 익어 고개를 숙인 과실의 달콤한 영혼을 그린듯 합니다. 그림만 보고 있어도 복이 북적북적 내게 붙을것만 같습니다.
이종근 <행복한 황금빛 지구> 오일 스크래칭, 72.2*60.5, 2008
어린시절 살았던 부산의 작은 하꼬방집들, 물질적으론 풍성하지 않아도,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자라난 금빛 호박을 나누어 죽을 끓이거나 전을 부치거나 하던 추억이 있습니다. 오랜 곰삭임의 시간, 발효의 시간을 거쳐 자연에서 잉태한 호박들. 이들은 수많은 신산함과 변덕스런 날씨를 통과해 지금의 모습으로 환하게 피어납니다. 마치 세월의 인고를 이겨낸 사람같습니다.
이종근 <네잎 클로버 나무> 오일 스크래칭, 162*130, 2008년
그가 그린 보랏빛 수국은 네잎 클로버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강한 보색대비를 이루며, 눈길을 사로잡지요. 그 속에서 쉬고 있는 아이의 모습 아마도 아토피를 앓고 있는 작가의 아들이 모델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회화에 판화의 에칭 기법을 활용하여 특유의 작품을 만듭니다. 물감을 칠하고 마르기 전에 사무용칼로 하나하나 섬세하게 긁어내 사실적인 질감을 만들어내죠.
이종근 <네잎 클로버 나무-2> 오일 스크래칭, 162*130, 2008년
작가에게 긁어낸다는 과정은 그린 녹록치만은 않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하나 세밀하게 표현해야 하는 이 작업은 반복의 지루함을 견뎌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작가가 꿈꾸는 세상을 그려보게 되지요.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들을 매일 매일 긁어주면서 화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그림속에 아들의 치유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을 투영시킵니다. 그에게 있어 그림작업은 아토피 환우들과 아들을 향한 일종의 기도인 셈입니다.
이종근 <야간비행> 오일 스크래칭, 2008
브이자 편대를 하고 하늘을 비상하는 새들을 봅니다. 함께 날아감으로써 에너지를 축적하는 자연의 지혜를 가르치는 새들의 활공형태에도, 일상속 소소한 사물에게까지 배어나는 조형자의 지문이 묻어있음을 배웁니다.
이종근 <승리자>오일 스크래칭, 162*112 2007
나팔꽃 줄기의 머리를 한 아이의 모습에서 환한 희망의 빛깔이 배어나옵니다.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는 이유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우주적인 진실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구란 별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에 대한 확인입니다.
결국 그의 그림 속 꽃과 아이는 불교적 화엄의 세계속에 연결된 우리들의 인연이기도 하고 시간의 결을 하나하나 오롯하게 더듬어가며, 서로를 보듬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죠.
이종근 <머리카락 보일라> 오일 스크래칭, 100*70, 2008
복숭아와 새, 보랏빛 수국을 한 아이가 한 화면속에 정연한 질서감을 창조하며 나타납니다. 그림 속 세계가 그립습니다. 현실의 질서에, 불투명한 삶의 부조리에 부딛힐때마다, 화가의 그림 속 세계가 그리운 것은 단순한 퇴행이나, 부정의를 그저 단순하게 넘겨, 심리적 공황상태를 견뎌보려는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 투명성과 발그레한 과실의 수액처럼 달콤한 영양이 가득한 세상, 아토피로 온통 피부가 벌겋게 되도록 매일 긁어야 하는 환우들의 고통이 없는 세상, 인간이 이상을 그저 이상(ideal)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사실 그 이상에 대한 비전과 꿈은 무너지고 말듯, 그림을 보며 오늘 하루도 시작합니다......다시 외쳐보면서
이종근 <행복한 붉은색 지구> 오일 스크래칭, 117*91,2007
붉은빛의 온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 차가움 보다는 따스함이 아직은 반절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소박한 믿음. 그 속에서 타인에게 손을 뻗는 우리가 있기에 아름다운 이 지구별을 여행하는 소명자인 우리들에겐 하루의 일상은 그저 습관이 아닌 거룩한 제사이고 힘이며, 소망인것을 그렇게 믿어보고 싶습니다.
이종근 <행복한 핑크빛 지구> 오일 스크래칭, 117*91, 2007
떨어진 단추를 제 자리에 달고 있는 나의 손등 위에 배시시 웃고 있는 고운 햇살 오늘이라는 새 옷 위에 나는 어떤 모양의 단추를 달까 산다는 일은 끊임없이 새 옷을 갈아 입어도 떨어진 단추를 제 자리에 달 듯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지 탄탄한 실을 바늘에 꿰어 하나의 단추를 달 듯 제 자리를 찾으며 살아야겠네 보는 이 없어도 함부로 살아 버릴 수 없는 나의 삶을 확인하며 단추를 다는 이 시간 그리 낯설던 행복이 가까이 웃고 있네
이해인의 <단추를 달며> 전편
오늘 아침 출근 길, 봄을 맞아 입은 옅은 치자빛 셔츠 소매의 단추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관리를 잘 못한 탓이겠지요. 서랍에 곱게 넣어둔 진주 커프스 단추를 꺼내 바꾸어 버렸습니다. 오늘 나의 하루가 진주빛으로 환하게 변하기를 꿈꾸면서 말이죠. 요즘 저도 아토피 기운이 돌아서 피부과에 가보려고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요 항상 잊지 마세요. 우리를 들어 높이는 저 조형자의 지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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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 원문보기 글쓴이: 김홍기
첫댓글 이 아침에 평온함을 주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특히 나팔꽃 줄기의 머리를 한 아이의 모습...은 저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네요. 잘지내고 계시죠?^^ 청도에서도 여기에 계실때처럼 왕성한 활동을 기다려 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