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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거하신 처소(엡2장19-22)
성경본문: 에베소서2:19-22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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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은 둘로스 교회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3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주일인 관계로 창립기념에 합당한 설교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계속하여 강해해 가는 에베소서의 말씀이 이에 합당한 메시지를 다룰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교회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놀라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교회” 하면 쉽게 그저 어느 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당과 그 가운데 모여 예배하는 성도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교회가 무엇이며 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그 교회는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기관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기회는 별로 해 본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교회란 무엇일까요? 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일까요? 교회가 이 땅에서 감당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무엇을 하려고 하신 것일까요? 등등 많은 질문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오늘날의 교회에 대한 유감
여러분들은 “교회!” 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이 교회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학교로 따져서 몇 점 정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마 6:13-14)고 신분을 규정해 주셨습니다.
* 마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과연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성도와 교회가 세상 가운데서 소금과 빛의 신분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성도로서 또 모이는 교회로서 자신 있게 “네!” 라고 답하기가 쉽지 않을 상황인 것이 사실입니다.
2. 교회에 관하여
교회란 말의 원어는 ekklesia 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단어는 복합어로, ek + kleo 로 그 뜻은 불러내었다(to call out)입니다. 어디서부터 불러내었습니까? 바로 죄가 판을 치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온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세상과 분리된 사람들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또한 한문으로는 교회(敎會) 즉 가르치는 모임이라는 말을 쓰는 데 이 역시 의미 있는 말입니다. 바로 성경을 가르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불러내신 이유, 또 모아서 가르치는 모임을 만드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스럽습니다. 19절에서 보듯이 “이제부터” 라는 말로 새로운 문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본서의 저자 바울은 11절과 12절에서 “그 때에”란 말을 쓰더니, 13절에서는 “이제는” 이란 말을 사용했고, 19절에서는 “이제부터”란 말을 썼습니다.
이들 각각의 단어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 즉 시기적 구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들은 불신 상태로 있던 자들 즉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영적 상태가 3 단계로 구분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성도의 3 단계 변화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제 1 단계는 예수 믿기 전의 옛 모습, 제 2 단계는 화평케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상태, 제 3 단계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으로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탄의 종이 되어 살던 비참한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형성되는 화해를 통하여 공동체 즉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바로 이 신비롭고 고귀한 복음을 다루는 복된 말씀입니다. 이 진리는 엡 2:13-22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음을 봅니다. 이 가운데 특히 17절 이하의 말씀이 소중합니다.
* 엡 2:17-22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말씀의 흐름을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선명하고 단순하며 호소력 있는 서술입니까!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단절되었던 자들이었는데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이제는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란 신분이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말씀에서 교회에 대한 진리를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의 구성원
*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건을 믿는 성도는 유대인과 이방인과 같은 인종적 차별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차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거대한 장애요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이루신 구속사건 즉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차별이 없이 동일한 신분과 특권과 권리를 갖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의 의미를 더욱 더 확대하여 갈라디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 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사도 베드로도 말씀합니다.
* 벧전 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어 더 이상 외인(Out Sider)도, 손님(Visitor, Guest)도 아닙니다. 그 어떤 자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장인이든 종이든 신분과 지위, 소유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백성입니다.
성도는 그 어떤 구분과 차별이 있을 수가 없는 거룩한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 되게도 오늘날의 교회 안에는 얼마나 많은 차별과 구분이 있는지요? 성경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둘째, 교회의 배경
* 엡 2:20a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바울은 20 절에서,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에 세워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누구일까요? 다양한 설명이 있습니다. 우선, 칼빈의 설명입니다. 칼빈 선생은 이 표현은 구약과 신약에 기초한 교회를 말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이해는 교회가 구약과 신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칼빈의 이러한 이해에 있어서 한 가지 갖게 되는 간단한 의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순서대로 ‘선지자들과 사도들’라고 하지 않고 ‘사도들과 선지자들’ 이라고 했을까요?
이 점에 주목할 때, 3:5에서도 같은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2장의 표현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 하는 것입니다. 해서 박 형용 교수는 2:20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바울 당시 활동했던 사역자들을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 엡 3:5-6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들은 예수 십자가와 부활 이후, 오순절에 오신 성령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로 부름 받아 바울과 같이 사역하는 자들 곧 사도와 선지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교회 사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배경은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이에 부름 받아 헌신적으로 활동하여 이루어지는 역사인 것입니다.
사도와 선지자들은 초대교회 당시 승천하신 그리스도 주께서 교회에 내려주신 은사를 받아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던 사역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들은 11 사도는 물론이요,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고 또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특별한 소명과 은사를 받아 헌신한 사역자들 곧 야고보와 바울과 야고보와 같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들이 하는 일이 후에 이 부분을 다루어 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사도와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말씀에 수종들게 하여 교회를 섬기게 하심으로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 엡 4:10-12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셋째, 교회의 기초
* 엡 2:20b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이 말씀은 바로 교회가 어디에 기초를 두고 세워지는 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은 개념을 사도 베드로도 시편 118:22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봅니다.
* 벧전 2:4-6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특히 “모퉁이 돌(Corner Stone)” 이란 표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모퉁이 돌이란 무엇입니까? 건물은 이 모퉁이 돌 위에 세워진 기둥들에 의하여 지탱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있어서 이 점을 항상 잊지 않았고 철저하게 준수했음을 강조하며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역자들에게도 경고했던 것입니다.
* 고전 3:10-11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이는 교회를 세울 때 예수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이 고백과 함께 철저하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라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마치 시장(Markets)과 같고 공연장(Concert Hall)과 같은 4H Club, Community Service Center, Information Center와 같은 모습은 결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넷째, 교회의 성격
* 엡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말씀에서 다양한 교회의 성격과 특징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와의 연결성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사도는 건물을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마치 건물에서 모든 부분들이 연결되어야 세워지듯이 교회는 기초이며 모퉁이 돌이신 예수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생각해야 하는 점이 각각의 연결재들이 튼튼하고 좋을수록 좋고 아름다운 건물이 될 수 있듯이 예수와 연결된 성도들의 수준과 성숙도가 높아야 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진행성
교회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진행되어 가는 즉 공사 중인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절대로 정체되거나 고착될 수 없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는 살아있는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생명체와 같이 변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무한대로 자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고 구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이는 숫자와 규모를 말하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영적으로 성숙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사역을 닮아 가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또한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건축 중이고 진행 중임을 의미합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하여 진행 중이다!
우리가 고백하는 개혁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대로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는 교회(ekkel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Reformed church is always reformed)”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예수의 온전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3) 성령의 역사
22절의 말씀은 바로 사도가 말하고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교회의 역사는 바로 이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시작과 역사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원동력입니다. 인간적인 그 어떤 시도와 노력과 헌신도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 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고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성령께서 그들의 영속에서 역사하셔서 항상 그리스도 예수의 완전하심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격려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점입니다.
* John Calvin 모든 인간의 능력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만 가치가 있으며 유대인, 이방인 모두에게 이 성령의 능력은 발휘가 된다.
4) 하나님의 처소
마지막으로 사도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전으로 설명합니다. 우리 주께서는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을 시장바닥과 같이 만드는 행위를 철저하게 정화하셨습니다.
* 요 2:16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이 성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며 이곳에 나오는 성도들은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 어떤 자신의 성공과 영달을 위하여 과시하거나 주장하거나 그 어떤 사업을 벌이는 곳이 될 수 없는 거룩한 곳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이 점을 가장 싫어 하셨고 또한 징벌하셨음을 확인합니다.
* 마 21: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을 정도의 수준과 영적 분위기와 사역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영적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둘로스 교회가 23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헌신과 애씀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왔다가 갔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교회가 이 세상에서 과시하고 자랑하며 세상을 향하여 그 어떤 사업을 벌이는 단체로서의 둘로스 교회가 아니라, 항상 주님의 몸된 지체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한 고백 단체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처소로서 예수 안에서 함께 지금도 끊임없이 지어져 가는 거룩한 공사가 계속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난 23년간에 헌신한 주님의 종들을 교회의 머리되시고 기초되시는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합니다. 또한 지금까지 모든 시간과 정성을 다 바쳐 헌신해 오신 여러 성도님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되신 우리 주님께서 신령한 모든 복을 내려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적은 힘과 헌신이지만 항상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성경말씀대로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세워져 가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신령한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