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춘천에서 시작됐다.
2003년, 남편 따라 클럽에 점심이나 먹으러 왔다 갔다 하던 때였다. 그해 10월, 춘천마라톤에 1박2일로
단체 참가한다고 했다. 1박2일 여행이라? 혼자 집에 있으면 뭐하나 싶어서 같이 ‘놀러’ 가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클럽 회원 30여명을 태운 버스가 출발했고, 얼마 후에 춘천 인근의 유스호
스텔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대부분은 “내일을 위해 일찍 쉰다”며 취침 모드로 들어갔다. 그중 일부는
“알콜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잘 뛴다”며 술을 마시러 나갔다. 풀코스를 술마신 후 뛰어? 신기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새내기 축에도 못끼고 자봉이 뭔지도 몰랐던 터라 하릴없는 구경꾼이 됐다. 춘천공설운동장
스탠드 위에 올라가서 출발하는 선수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출발! 소리와 함께 끝없이 밀려나가는 2만명의
‘물결’은 정말 멋지다, 가슴이 뭉클하다는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도 그 자리에 서봐야지,
하는 다짐을 했고, 춘천 이후 본격적으로 연습에 참여했다.
처음 눈물을 흘린 곳도 춘천이었다.
반 년간 열심히 연습한 끝에 이듬해 봄 풀코스를 4:13으로 완주했다. 의외로 힘이 별로 들지 않아서 ‘생각보
다 쉽네~’하는 느낌이었다. 지속적으로 4시간 초반대를 유지하면서 2005년에는 서브4라는 목표를 잡았다.
춘천에서 하기로 마음먹고 꾸준히 연습했다. 마라톤 주자로는 처음 찾은 춘천. 단풍이고 뭐고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 초보운전자 마냥 앞만 보고 뛰었다. 35km 넘어서 죽도록 힘들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페메를 맡
았던 남편에게서 ‘조금만 더 가면 골인지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주루룩 쏟아졌다. 눈에 티끌이 들
어간 척 하며 쓱~ 닦아가면서 뛰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라톤 첫 완주 때도 별반 느낌이 없었는데...
너무 힘들게 서브4를 해서 그런가.
첫 3:30 실패도 춘천이었다.
마라톤에 대한 사랑(?)이 깊어가려는데 부상이 왔다. 족저근막염은 아닌데 발바닥 앞쪽이 아파서 도무지 뛸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백병원 족부정형외과를 찾아가서 온갖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모른다며
평발 기형에 가깝단다. 앞으론 뛰지 말라고 했다. 달리기를 포기해야 하나. 아니다, 발바닥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3년간의 재활훈련(?) 끝에 발바닥 부상을 치료했다.(재활훈련은 별 게
아니다. 조금씩 뛰는 거리를 늘리면서 발바닥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때 완치한 이후에는 발바닥 때문
에 고생한 적이 거의 없다)
2010년, 발바닥도 나았겠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목표를 3:30으로 잡았다. 역시 춘천에서 기록을 세워야 제
맛 아니겠는가. 여름철 내내 인터벌 훈련을 통해 자신감도 길렀다. 드디어 춘천. 오르막에 유난히 약한데 긴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코스라 여전히 쉽지 않았다. 30km를 지나면서 체크해보니 예상시간이 3:31이다.
힘이 쭉 빠졌고, 결국 3:38에 그쳤다. 춘천에서 온 힘을 다 썼던 탓에 중앙에서도 3:37로 또 다시 실패.(전략
미스라고 판단해서 2011년에는 아예 춘천은 신청하지 않고 중앙만 신청했다.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3:29
기록, 목표 달성. 끝난 후 다리에 쥐가 나서 엠뷸란스에 실려갔던 흑역사도 이 때다)
그리고 올해.
자신 있었다. 스피드도 괜찮았고 지구력도 길렀다. 한규철 감독, 이석초 님과 같이 뛸까 망설였지만 페메없
이 3:30을 해보리라는 욕심에 사로잡혔다. 지나친 자만심은 독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20km를 넘어가면서
이유 없이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지금도 왜 그런 현상이 생겼는지 의아하다) 같이 뛰지 않은 것을 백번도
넘게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30km에서 체크해보니 예상시간이 또 3:31이다.
아~쫌! 춘천에서 3:30 해보고 싶다고! 혼자서 소리쳐봐야 때늦은 후회였다. 35km를 넘어선 이후에는 ‘다시
는 풀코스 뛰나 봐라~’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결국 3:35로 들어왔다.
춘천이 끝난 후 겨우 사흘. 벌써부터 다음을 기약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인생인가~^^;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첫댓글 부회장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해 유스호스텔에서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새벽에 황인걸 님이 허리통증으로 꼼짝하지 못할 때 응급처치를 해준 일, 박 회장님은 음주 후에 서브-3를 하여 저 양반은 전날 음주를 해야 서브-3를 한다고 회자되던 일 등 무엇보다도 이영란 부회장님의 마라톤에 대한 열정에 감복하면서도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여건이 부럽기만 합니다. 꾸준히 달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음이 기대됩니다.
재미(?)있는 수기 실감나게 표현하심에 부러움 만땅
의지의 하늘 노을 님으로 인정 합니다
부회장님의 마라톤 역사가 굴곡이 심했군요.훈련의 효과가 한해가 지난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년 동아 마라톤에는 화련한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황이팅!믿으시면 Go!!!!
항상 도전을 두려워하지않는 모습이 넘 멋져요
한두번의 좌절은 있을지언정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화이팅!!!!
클럽 활동시작하면서 부회장님은 사람이 아닌줄로 알았어요.저에게는 하늘같이 높아 보였거든요. 많은것을 배울수 있어서 존경합니다.
저보다 더 묵묵히 꾸준히 연습하시는 많은 분들이 계신데
괜히 잘난척 한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더 열심히 연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회장님 역시 멋져요^^
내년에 330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