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프로야구가 어느덧 페넌트레이스의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베이스볼긱은 다사다난했던 올 시즌 프로야구 전반기를 결산하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투수들의 여건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반면 타자들은 각종 장비와 야구장 환경 변화로 호기를 맞았다. 이쯤 되면 투수들에게 '마이너리티 우대 정책'을 줘도 될 정도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 전반기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투고타저'였다. 9개 구단 전체 평균자책점이 5점이 넘는다. 반면 타자들은 전성시대가 열렸다. 같은 기간 수준급 타자의 상징인 3할대 고타율을 자랑하는 선수들은 30명을 훌쩍 넘었다. 삼성 등 일부 구단에는 주전급 상당수가 3할 타자다. 이재원(SK)은 4할대 타율을 오르내렸다. 도대체 2014년의 투고타저 현상은 왜 벌어지게 된 걸까. 필자는 크게 네 가지 이유를 꼽고 싶다.
잠실구장 익사이팅존
수준 하락·방송기술 … 투수들의 지옥
올해 프로야구에는 독보적인 투수들이 줄었다. 류현진(LA 다저스)과 윤석민(볼티모어 산하 마이너리그)·오승환(한신)등 대들보들이 속속 해외에 진출하면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을 볼 기회도 드물어졌다. 하지만 투수력 저하를 거물급 투수들의 대거 해외행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2010년 이후 야구계는 투수들의 기량 자체가 점차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투수는 야수와 달리 성장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타자는 아마추어 시절 잘못된 폼이나 습관을 가졌더라도,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다. 그러나 투수는 다르다. 어린 시절 익힌 폼을 한 번에 고치기 어렵다. 설사 수정한다고 해도 제구가 완벽하게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메커니즘이 타격보다 훨씬 더 어렵다.
생각해보자. 야구공은 투수가 공의 실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구종이 달라지고 회전력에 차이가 난다. 게다가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하게 꽂아 넣을 수 있는 제구력이 필요하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선수 개인의 센스와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아무리 밤낮 공을 던져도 감각이 없는 선수들은 기본도 하기 어렵다.
방송기술의 발달도 타고투저 현상을 부채질한다.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방송사들은 타자가 타석에 설 때마다 스트라이크존을 표시하는 '피칭존'을 운영하고 있다. 투수는 18.44m 거리에서 두어 뼘 정도 되는 크기의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아 넣어야 한다. 문제는 '피칭존'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심판진이다. TV 중계를 지켜본 팬들이 '스트라이크 존 밖에 나간 공을 왜 스트라이크로 잡느냐'며 항의하자, 심판들도 스트라이크존을 소극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가령 투수가 낮게 떨어지는 공을 던졌다고 해보자. '피칭존'에 공이 살짝 걸치면서 심판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했다. 그러나 야구인들이 보기에 그 공은 타자들이 치기 어려운 터무니없이 낮은 공이었다. 안 그래도 제구력이 떨어지는 투수들이 스트라이크존마저 야박해지면서 고전하고 있다. 투고타저 현상이 지속하면 프로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방송사들이 내년 시즌부터는 '피칭존'을 운영하지 않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낮아진 마운드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야구규칙에는 마운드의 높이를 10인치(25.4cm)로 규정하고 있다. 2007년 '투고타저' 현상이 나오자 기존 13인치(33.02cm)에서 낮췄다. 높이가 낮아지면 공의 각도 줄어든다. 안 그래도 제구력도 떨어지고, 수준도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 마운드까지 낮아지면 어려운 상황만 반복된다.
장비 발전·야구장 변화 … 타자들의 낙원
야수들은 천국을 만났다. 배트와 공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최근 들어 배트의 압축이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 방망이의 밀도가 높아지면 타격을 했을 때 반발력이 커진다. 경기 중 배트가 부러지는 장면만 봐도 안다. 지난해에는 방망이가 금이 가거나 살짝 꺾이는 정도였다. 이번 시즌에는 방망이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나서 한 쪽이 멀리 나가 떨어진다. 압축이 강할수록 그런 현상이 심해진다.
공의 반발력도 세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조사 결과 야구공 반발계수가 정상범위(0.4134~0.4374) 안에 들어온다고 하지만, 현장의 체감은 사뭇 다르다. 살짝만 맞혀도 내야를 넘어가고 빗맞은 타구도 담장을 넘기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지금 공의 상태라면 타고투저 현상은 절대 해결되지 않을 듯 하다.
설상가상으로 야구장까지 타자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다. 팬들이 좀 더 가까이에서 경기를 관람하길 원하면서 구단들은 그라운드를 기꺼이 관중에게 내어줬다. 관중석 확장은 파울 지역 축소와 직결된다. 평범한 파울 뜬공이 관중석으로 들어가 타자들은 기회를 더 얻는다. 투수는 투구수만 늘리고 아웃카운트를 잡기 어려워졌다.
최근 상당수의 구장에서 익사이팅존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구장은 포수 뒤 관중석을 만들었다. 불펜이 외야 파울라인 옆에 설치됐고, 더그아웃도 확장돼 파울 지역이 많이 줄어들었다. 올해 개장한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도 종전 무등구장과 비교해 파울 지역이 좁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처럼 관중석이 파울지역까지 확장되면 타자는 투수와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종합하면 결국 타자들의 환경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투수들은 마운드 높이부터 스트라이크존, 타자들의 강세까지 넘어야 할 산이 높다. 1980~2000년대와 비교하면 힘과 제구력, 정신력까지 3박자를 고루 겸비한 신인 투수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 9개 구단 중 확실한 마무리 투수를 갖춘 팀이 몇 개나 되는가. 다 이긴 경기도 계투진이 실점하며 역전패하는 구단이 많다. "2군에서 올릴 투수도 없다"며 울상 짓는 수장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난국을 벗어나려면 일시적이나마 투수들의 어려운 상황을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방송사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피칭존'을 운영하지 않던가, 심판들이 스트라이크존을 조금 더 넓게 보는 방안을 검토해보자. 마운드를 다시 높이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쏠림 현상이 지속되면 야구의 재미가 반감된다. 야구인들과 KBO의 적극적인 해결책 모색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