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발소릴 들으며
자라는 귤나무들
겨울잠 깨고 있나 한 바퀴 돌아보다
지난해
따서 버린 귤
빙색이 웃고 있다
하나 까먹었더니
새콤달콤 그대로다
몇 개 주우려 하자 빤히 보며 하는 말
멋대로
데껴불지 맙써
그래그래 미안혀
-『불교신문/문태준의 詩 이야기』2023.09.26. -
이 시조는 오영호 시인의 신작 시조집 ‘농막 일기’에 실려 있다. 시인은 시조집을 펴내면서 ‘시인의 말’에서 “모든 생명체의 근원 땅과 물, 햇빛, 바람을 화두로 농막을 오가며, 그동안 발표했던 작품을 묶어 여섯 번째 시조집을 냅니다.”라고 썼다. 해방되던 해에 제주시 연동에서 태어난 시인의 이 시조에는 제주어가 실감 있게 사용되고 있다. “빙색이”는 웃는 모습을 나타내는 제주어이고, “데껴불지 맙써”는 던져버리지 말라는 뜻의 제주어이다.
귤밭에 간 시인은 예전에 따서 버려둔 귤을 다시 쥐어들어 맛을 본다. 새콤달콤하니 맛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 순간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귤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귤 농사를 짓는 이의 발소리를 듣고 귤은 굵어지고 익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 ‘잡초’에서도 “아들아,/ 잡초라고 함부로 뽑지 마라//(......)// 찬찬히/ 들여다보아라/ 숨소리가 들리니 않니”라고 써서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을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