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수줍은 듯 조용한 미소로 기아 덕아웃을 훤히 밝히는 선참이 있다. 그가 없으면 금세 빈 자리가 도드라져 보이는 벤치의 맏형.지난 1989년 데뷔한 이후 13년째 모범적인 현역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언더핸드스로 투수 이강철(36)이 그 주인공이다. 항상 온화한 얼굴에서는 국내 프로야구 사상 유일하게 10년연속 두자릿수 승리의 대기록을 쌓은 ‘파이터’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프로세계에서는 독해야 뭐든 잘한다고 하니까.그러나 이강철은 사람도 좋고 야구도 잘했다. 지난해까지 2년간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그는 뜨거운 재활 의지로 싱싱한 구위를 회복해 다시 돌아왔다.올 시즌 기아 돌풍의 숨은 주역으로 활약하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짧지만 긴 침묵을 마친 그는 올시즌 누구보다 힘을 내 통산 2번째로 지난 2일 개인 통산 2000이닝과 1600탈삼진 달성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그리고 5일 아시안게임 1차 엔트리에 선발돼 14년만에 ‘태극마크’를 목전에 두게 됐다.‘고목나무에 핀 꽃’이다.
●“치질수술이 오늘을 만들었다?”
지난 76년 서림초등학교 5학년 시절 사촌형 차영화(당시 아마추어 롯데)의 권유로 야구에 입문한 그도 광주일고 2학년까지는 보통 투수였다.그런 이강철이 될 성부른 나무로 큰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였다.83년 가을 젋은 날의 그를 괴롭혔던 치질수술을 받고나서 야구인생이 바뀌었다.무슨 영문인지 수술뒤 쉬는 한달동안 키가 165㎝에서 13㎝가 자라며 기량도 일취월장했다.수술뒤 배변의 고통 때문에 먹지 못하다가 보상 심리에서 엄청나게 먹어댄 덕분인지 키와 몸무게가 몰라보게 크고 늘었다.당시 배터리를 이룬 정회열은 그해 겨울 이강철의 볼을 받아보더니 “엄청나게 구속이 빨라졌다”며 혀를 내둘렀다.기본기에 파워가 보태지자 볼끝이 세지고 강해졌다.고교 3학년 때인 이듬해 84년 봄철 대통령배고교대회부터 두각을 나타내더니 황금사자기에서는 광주일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행운이 붙어다닌다!
그의 인생은 좌절이란 단어를 모른다.어쩌다 있었던 인생의 아픔도 불운으로 남지 않았다.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항상 행운아로 남았다.평탄한 인생을 걸어오던 그에게 가장 큰 좌절은 지난 99년 하와이 전지훈련에서의 오른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이었다.중도귀국을 했고,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수술대 위에 올랐다.87년 동국대 3학년 시절 연세대 야구부와 친선 농구경기를 하다가 무릎 연골이 파손됐고,수술로 어렵지 않게 재기했지만 이번에는 인대가 끊어진 것이다.매년 고통이 찾아왔지만 남몰래 재활훈련으로 가라앉히고 마운드에 올랐다. 수술 뒤 실망과 좌절의 1년이 지났다.말할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성적이 없어 그해 겨울 프로 데뷔이후 단 한번도 깎이지 않은 연봉감소를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었다.그렇지만 예상치 않은 행운이 또 찾아왔다.자유계약선수제도(FA)가 처음 생겨난 덕분에 이적FA 1호를 기록하며 3년간 8억여원,그때로서는 상상못할 거금을 받고 삼성으로 옮겼다.불운속에서 행운을 잡은 셈이다. 재활과 재기가 여의치 않아 안돼 삼성에서 1년 6개월여를 자책감으로 보냈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2001년 여름 해태가 재벌그룹 기아에 인수되면서 돈이 많아진 친정이 그를 불렀다.주위에서는 친정사정이 여의치 않을때는 나가더니 살림이 펴자 돌아왔다는 비아냥도 들렸다.그러나 “지금까지 열심히 산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라”고 위로하는 쪽도 있었다.
●순탄한 인생,모나지 않은 성격
성격은 그 사람의 살아온 이력이 그대로 녹아들기 마련이다.인생의 굴곡이 많으면 성격도 그만큼 모가 난다.그의 성격은 걸어온 순탄한 길처럼 특별히 굴곡이 없다.그렇다고 유약하지도 않다.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후배들이 그를 이종범과 함께 실질적인 팀내 리더로서 존중하고 깊은 존경심으로 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사실 김성한 감독이 그를 데려온 데는 기량 때문이 아니었다.그가 올 무렵에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연봉이 얼만데…”라는 둥 부정적인 얘기가 많았다.그러나 김 감독은 이강철이 복귀하면 강한 리더십과 모범적인 선수생활로 팀 분위기를 살릴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
김인식과 김응룡 김성한 감독 등 해태의 전 현직 사령탑들은 모두 이강철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김인식 감독은 동국대 시절 이강철을 1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키운 은사였고,김응룡 감독은 해태와 삼성을 거치는 동안 함께 하면서 그를 적극 후원했다.김 감독은 지난해 삼성에서 이강철이 더 이상 활로를 찾지 못하자 기아로 흔쾌히 보내줬다.이강철은 삼성 시절 ‘거액의 FA용병’이란 원죄(?)로 제몫을 못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단다.대학 선배기도 한 김성한 감독은 자신의 U턴을 추진해 고마운 인물로 꼽았다.
●“더도,덜도 말고…”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딱 3년만 더 현역생활을 하는 것이고,꿈이라면 은퇴 후에도 프로에 남아 지도자의 길을 걷는 것이다.3년을 꼽은 이유는 7일 현재 개인 통산 140에다 10승을 보태 올 시즌 초반 한화 송진우가 밟은 150승 고지를 두번째로 밟아보기 위해서다.지도자의 길을 꿈꾸는 데는 그동안 쌓았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전수해주고 싶어서다
●이강철 프로필
1. 생년월일=1966년 5월24일2. 체격조건=180㎝ 76㎏3. 투타=우투우타
4. 학력=광주 서림초(79)-진흥중(82)-광주일고(85)-동국대(89) 졸 5.경력=동국대 1학년부터 4년간 국가대표,96한국시리즈 MVP,99년 11월 FA로 삼성이적,92년 최다 탈삼진(155),89∼98년 10시즌 연속 세자리수 탈삼진 및 10년 연속 두자리수 승. 6. 병역결혼=면제기혼(2윤지혜씨와 사이에 딸 가은) 7. 취미특기=골프농구 8. 프로입단=89년 해태 입단(계약금 3700만원) 9. 2002시즌 연봉=1억80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