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 오는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언제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맞다. 혜화동 노랫말처럼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나는 친구들을 만나러 혜화동으로 간다. 어릴적이 아니라 여고시절 친구들이지만, 칠십이 가까워진 나이에 되돌아보면, 여고시절도 어릴적이라는 표현에 들어간다.
이번 총무님 관순은 재작년까지는 집안일로 몸이 열 개인 것처럼 움직였다. 누워계신 노모를 모시고 살았고 딸네와는 일이층으로 함께 살아 세명의 손녀들을 돌봐주었다. 그 와중에 시간을 내서 그림을 배우러 다니고 전시회에도 꼬박꼬박 참가했다. 열정적이었다. 이제 노모는 돌아가시고 손녀들은 다 자라서 할머니의 손을 떠났다. 난 자유부인이야.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다. 시간이 많아 여유로워지니 총무님으로서 생각도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그동안 만나던 장소들이 아닌 새로운, 혜화동 서울프랑스 음식점을 예약했고 드림아트소극장 뮤지컬을 예약했다. 총무님 만세 만만세!
모두들 찬성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가을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무엇이 문제이랴. 우아하게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소극장에 앉아 뮤지컬을 보는 일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애석하게도 성당에서 막중한 직책을 맡고 있는 분홍이가 그날 성당 행사로 불참하였다. 안타까웠다. 건강음료를 가져오기도 하고 코로나 때는 마스크를 매번 나눠주기도 했던, 나눔을 실천하는 성모님의 어리고 귀한 양이다.
혜화동, 47년 전이다.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일반 대학은 가지 못하고 대신 혜화동에 있는 방송통신대학에 다녔다. 아침저녁으로 라디오로 방송을 듣고 공부했다. 매일매일 듣지 않으면 진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성실근면하지 않으면 성적을 낼 수 없는 공부방식이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한 달씩 동숭동 방송통신대에 가서 직접 교수의 강의를 듣고 리포트를 작성하고 시험을 봤다. 2학년때부터는 입학생이 많아지면서 강의실은 부족했다. 동승동을 떠나 신림동에 막 옮겨진 신림동 서울대에서 강의를 들었다.
영광스럽게도 철학과 교수를 비롯한 몇몇 서울대 교수에게 강의를 들었고 서울대에서 졸업식을 했다. 눈이 많이 내려 온통 눈이 쌓인 날이었다. 친구 두 명이, 셋째언니가 어린 조카를 데리고 와 주었다. 큰형부는 슬쩍 용돈을 쥐어주셨다. 고만고만한 자식이 다섯이니 근검절약하시던 시절이었다. 애석하게도 같이 공부한 여섯명의 친구들은 졸업을 하지 못하였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 나도 평균 C학점을 겨우 넘겨 졸업하였다. 공부방을 정해놓고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때 그 모임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정보를 공유하지 못했다. 사람들과 어깨동무하지 못하였다. 그 시절을 되돌아볼 친구를 만들지 못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간관계에 미숙한 나다.
소중한 우리 친구들!
가울비가 조용히 겸손히 고운 단풍 물들라고 내리는 아침!
인천에서 창동에서 부천에서 광명에서 위례에서 동탄에서 인덕원에서
모두모두 기쁜마음으로 달려오세요
자랑스런 분홍이는 하느님 일 열심히 하고 다음엔 꼭꼭 함께해요
오늘 분홍이가 그 자리에 없어서 모두모두 아쉬울거예요
분홍이 몫까지 행복하게 보낼께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혜림이 아침 일찍 단톡방에 카톡을 올렸다. 참으로 따스하고 정겨운 친구 덕분에 네 번이나 갈아타야 당도하는 혜화역에 나는 지루한 줄 모르고 도착했다. 방통대에 다니던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애썼지만, 마로니에 공원 말고는, 동승동 학교건물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약도를 따라 골목길을 들어서니 총무님이 예약해 놓은 음식점 서울프랑스가 눈에 뜨인다. 3층이다. 정갈하다.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그곳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혜화동 노래를 흥얼거렸다.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노랫말처럼 입구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기다렸다.
화자와 경희와 학영이가 노랫말처럼 활짝 웃으며 나타났다. 허리가 좋지 않아 지난번 모임 때는 어둡던 학영이가 보기 좋은 얼굴이다. 경제적인 문제를 풀지 못해 힘들어하던 경희는 지혜롭게 차근차근 풀어나가고 있다. 언제나처럼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도대체가 나이를 먹지 않는다. 혜림은 나이에 걸맞게 자신만의 취향으로 옷을 입을 줄 안다. 주홍빛 긴치마에 디자인이 현대적인 청색 자켓은 잘 어울린다. 가장 눈에 띄는 우아하고 당당한 꽃이다.
정희와 서현이는 나중에 조금 늦게 왔다. 집안 경제를 쥐고 있다보니까 나한테는 돈을 쓸 수가 없네 10년 전 입은 옷을 아직도 입어 정희가 말했다. 나도 그래 십년이 뭐야 이십년 된 옷들도 있어 내가 대답했다. 정희도 나도 수수한 얼굴처럼 사는 것도 수수하나 그것에 불만은 없다. 서현이는 그림을 시작하면서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이야기도 잘하고 댓글도 잘 달고 얼굴은 생기가 돈다. 어제는 밤 2시까지 그림을 그려서 살짝 피곤하다며 웃는데 행복해 보인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일, 진정한 행복이다.
스테이크와 파스타와 셀러드와 와인. 거기에 감칠맛 도는 수다를 곁들였다. 더없이 맛있는 시간이었다. 아예 그곳에서 눌러앉아 커피까지 마시고 야외공연을 구경했다. 북과 장구와 꽹과리와 나팔을 신나게 연주했다. 박자에 맞춰 탈을 쓴 사람이 흥겹게 춤을 추었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함께 춤을 추자고 한다면 서슴치 않고 나설 듯 했다.
드림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제시의 일기를 보았다. 구한말 독립운동가 양우조와 최선화 부부가 8년간 쓴 일기 모음이란다. 딱 세 명이 90분 동안 연기하고 노래했다. 무대는 뒷배경을 영상으로 바꾸어갔다. 내용도 무대도 사람도 단순하지만 구한말 독립운동가 아버지와 아내와 딸의 사랑을 애틋하게 그려냈다.
저녁을 먹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이지만 다들 집이 멀어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순대국집이다. 이른 저녁이 맞나 싶게 사람들이 북적인다. 저녁은 정희가 냈다. 군인 아들이 이번에 대대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장한 어머니며 장한 아들이다. 자랑스러운 아들이며 자랑스러운 어머니다. 오랜 시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실천해온 전도사님 정희의 기도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낌없는 축하와 칭찬을 보내주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감사함으로 집으로 향했다.
총무님 카톡이지요 친구들아 건강한 모습으로 잼나는 공연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행복 한 하루입니다. 끝까지 못한 학영이 바쁜데도 와줘서 고맙고요 분홍이가 없어 서운했어요 다음엔 얼굴 봅시다
헤림의 카톡이지요 우리 총무님 덕분에 행복했쪄요 우리 친구들 모두모두 감사하고 사랑 해요 오늘 김진학 대대장님 취임 순대국 맛있게 잘 먹었쪄요 주님께 다다 잘 이끌어주실거예요
정희 카톡이지요 나도 집에 도착. 평안하기를 늘 행복한 모습으로 만나기를...
분홍 카톡이지요 우리 친구들 모두 보여줘서 고마워요 편안해 보여서 모두에게 감사 다음 모임에 봅시다
찬미의 카톡이지요 감사 감사! 막 도착했어유 행복했어유
서현의 카톡이지요 오늘 넘 즐거웠어요 보고싶은 친구들도 만나서 즐거웠고 맛난것도 먹고 눈호강도 잘하고 살맛나는 하루였는데 분홍이를 못 봐서 섭섭합 니당 다음엔 꼭 만납시다 총무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당
얼마나 다정한가! 얼마나 따스한가! 얼마나 착한가! 이만한 친구들이 곁에 있으니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한가! 파이팅! 파이팅! 내 친구들이여! 관순 총무님이 다음번에는 얼마나 새롭고 신나고 행복한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인가! 총무님 고맙습니다. 회비 계산도 철저하게 하고 다음번 약속까지 미리 공지한 총무님! 고맙습니다. 기대됩니다 기대됩니다.
그날이여 쏜살같이 오라! 친구들이여 아프지 마라!
첫댓글 장기미접속으로
다시들어왔져요ㆍ
만남이있고나면
네글이궁금하고요ㆍ
이번에도글을올 리려나
하면서기다려지곤하지요
조용히재잘거리는친구들에비해
항상조용히들어주며
이미머리에선글소재찾아가는친구
고맙고고마워
건강하게지내자
홧팅
다시 들어와주셔서 감사하지요
기다려주니 그것도 감사하구요
친구들이 없다면 총무님이 없다면
어떤 이야기도 없는거겠지요
혜화동! 일부러 가는 일은 없었으니
혜화동에서 이번 모임은 신선했어요
감사 감사!
건강하시고 그림에 더 몰두하시지요
조금씩이라도 매일매일 끈을 놓지 않는 일이
예술가의 고독한 길이라고들 하네요
꼭 정상에 도달하지 못해도 이름을 날리지 않아도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아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