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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강원도 평창 오대산에는 유명한 사찰이 있습니다. 이 정도만 소개해 드리면 '월정사'라고 대답하실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제주에도 '월정사'가 있답니다. 제주는 지난 설날을 전후해서 계속 눈이 내렸고, 중·산간지방은 지금도 체인이 없이는 차량운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쌓였습니다.
벌써 1월 초 제주 월정사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자마자 월정사로 달려가 몇 장의 매화사진을 찍었습니다. 제주에 며칠 째 눈이 왔으니 월정사만 가면 설중매를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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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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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가는 길부터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평지에는 눈이 다 녹았는데 산간으로 접어드니 체인을 감지 않은 차량에 대해 운행제한을 합니다. 체인이 없는 관계로 우회를 하며, 미끄러지며 우여곡절 끝에 평소라면 40여분이면 도착할 월정사를 두 시간만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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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그러나 눈만 내린 것이 아니라 기온도 영하의 날씨였기에 피었던 매화도 죄다 얼어버렸습니다. 꽃망울을 맺고 있는 매화들만 신이 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설중매를 못 본들 아쉽지 않은 월정사의 풍경이 반겨주었습니다.
월정사(月井寺)라는 이름이 정겹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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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마침 타종시간, 타종소리가 은은하게 월정사를 감싸고 있습니다. '평안'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봅니다. 아주 편안한 느낌이 온누리에 퍼지는 저 타종소리처럼 고루고루 평안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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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대웅전 처마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하고, 단청의 무늬와 어울려 새로운 모습으로 반겨줍니다.
'죄 지은 사람은 대웅전에 드나들지도 못하겠다. 섣불리 드나들다가 저 고드름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종교간의 경계. 타종교를 비난하고 무너뜨려야만 되는 것처럼 믿고 살아가는 이들을 누가 만든 것인지…. 스스로 왜곡된 종교적인 아집으로 귀를 닫아버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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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단청, 풍경. 특별히 풍경을 좋아하면서도 보수적인 나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서 자유롭게 처마 밑에 풍경 하나 달아두질 못합니다. 아직도 남을 의식하는 것이기도 하고, 행여 누군가가 상처를 받는다면 그것도 나의 책임이니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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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월정사를 천천히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돕니다. 하얀 백구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쫓아다닙니다.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스님들이니 이 백구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을까요.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그 백구도 다른 개들에 비해서는 좀더 넓은 도량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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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하늘과 지붕의 경계가 분명했는데 흰눈이 쌓이니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이렇게 때로는 흑과 백이 아니라 모호한 경계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중용의 도가 아닐는지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미지근하고 두루뭉술한 것이 아닌 온전한 중요의 도를 깨우쳐 주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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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돌탑 안에는 누군가 소원을 빌기 위해서 켜놓은 촛불이 타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찰에서 늘 그렇게 켜놓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소원, 꿈이 있다는 것, 간절히 고대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뭔가 소망이 있고 꿈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거든요. 그 희망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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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김민수 |
| 그렇게 월정사를 거닐면서 설중매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에 돌아서려고 할 때 비록 활짝 피지는 못했지만 돌에 기대어진 작은 매화가지가 눈 속에서도 매화를 피웠습니다.
'와, 이것이 설중매다!'
살포시 눈을 이고 있는 모양새라면 더 좋았겠지만 눈 속에 핀 매화니 엄연한 '설중매'입니다. 한참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한참을 보게 했습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세상을 살아가라고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설중매를 바라보니 문득 '목사, 사찰에서 설중매에 취하다!'라는 발칙한(?)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하얀 눈으로 인해 요즘 제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운 날씨에도 자꾸만 밖으로 향하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