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이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다큐멘타리가 아닌 극영화는 관객과의 이런 암묵적 동의아래 전개된다. 그러나 영화적 소재 중에서는 현실 속에서 직접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권투선수 [알리]나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JFK] 혹은 워터게이트로 실각한 [닉슨]같은 영화처럼 할리우드에서는 무수히 많다.
국내에서도 [실미도]나 [이중간첩][살인의 추억]처럼 역사적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오든, 혹은 [동갑내기 과외하기]나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개인적 현실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든,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오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드라마틱한 극적 전개를 만드는 대부분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사건들이 현실 속에는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오더라도 그것이 영화로 제작되는 순간, 그것은 허구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가 하는 것은 영화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들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나 연극 역시 마찬가지인데, 있는 그대로를 기록한 다큐멘타리 혹은 논픽션이 아니라면, 비록 1%의 허구적 양념이 첨가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허구라고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실재했던 이야기 혹은 실존인물의 삶을 현실과 똑같이 있었던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극적 전개를 위해 그리고 관객(혹은 독자)의 입맛을 위해, 영화 혹은 소설이라는 양식으로 재구성되는 순간, 현실은 허구로 전이된다.
특히 실존인물의 일대기를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들의 관심은 사건 자체보다도 사람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조선조말 화가 장승업의 삶을 그린 것이었고,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은 세계 타이틀 매치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난 권투선수 김득구의 이야기다. 또 세계 최장기 무기수 김선명씨는 [선택]으로 만들어졌고, 청계천 피복상가 노동자였던 전태일의 삶은 박광수 감독에 의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영화화되었다.
현재 제작 예정중인 영화 중에서도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유독 눈에 띈다. 당수로 상대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며 천하무적 신화적 존재가 되었던 재일 한국인 레슬러 [역도산], 맨손으로 소를 때려 잡았다는 격투기의 일인자 최영의의 이야기 [바람의 파이터],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의 삶을 그린 [청연], 만주 벌판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사회주의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 [아리랑], 삼미슈퍼스타즈의 패전전문 투수 감사용의 이야기 [슈퍼스타 감사용],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삔역에서 처단한 [도마 안중근] 등등, 이것은 영화적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 아니다.
비록 영화라는 허구적 구조물이지만 관객들은 그것이 현실과의 더 튼튼한 관계망을 형성하기를 희망한다. 영화를 보는 순간, 100퍼센트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나 사건이라고 해도, 관객들은 극장에 들어가서는 그것을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감정이입한다. 이것이 영화의 매력이다. 이른바 허구적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모순되는 단어인 허구적 진실은, 예술의 효과를 설명하는 중요한 용어이다.
현실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관객들이 찰라의 쾌락만을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는 중요하다. 그러나 말초적 감성에 호소하는 재미는 유효기간이 짧다. 영화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다. 영화는 삶을 지혜롭게 살펴볼 수 있는 허구적 진실, 스크린이라는 전자적 거울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고 자신의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창조적 허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