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한강의 시작은 오대산 우통수와 더불어 태백 검룡소가 발원지입니다. 그런데 검룡소 골짜기 이름이 골지천입니다. 이 물은 정선 아우라지에서 길동무를 만나게 되는데, 대관령 황병산 자락에서 흘러내려온 송천이 바로 길동무랍니다. 골지천 물은 정선 아우라지에서 송천 물과 아우라 져 조양강이란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동강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산을 보고 그 속에서 뛰놀던 악동(岳童)들의 모임 여럿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선자령을 갈 기회가 없었다는 투정을 접한 것이 수차례 듣다, 길 일을 잡아 여행을 기획하게 됩니다. 자신의 일상생활과 맞춰 살다 보니 정주(定住)하는 곳도 제각각입니다. 가장 동선이 긴 악동의 차량동선을 살펴 살듯하게 중점을 두어 계획을 잡았습니다. 오고 가는 길과 접근에 대한 여러 가지 형편을 도모한 후 정한 집합장소는 서울 잠실운동장 역 2번 출구, 아시아 선수촌 공원이었습니다. 10분 전 전원이 도착하여 지체 없이 출발하였습니다. 여름휴가철 영동고속도로 장애가 따르는 것을 알기에 동안 개선된 국도를 이용하여 자동차 전용도로를 편안하게 달려 대관령에 도착하였습니다. 여름 풍광에 알맞게 능선을 버리고 계곡 따라 걸으며 물소리와 새소리와 여름 야생화를 친견하면서 걷다 점심까지 계곡에서 챙긴 후 능선 걸음 여행하며 초원을 감상하고 잠시 초원에 머물며 별 바래기라도 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바람의 속도에 따라 울부짖는 풍차 소리가 거슬리기도 하겠지만 강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별 빛과 은하수의 물결을 타고 출렁거릴 쪽배의 서정성이 능히 돈키호테 집착을 허물어버릴 것이라는 결단이 더 커 보였습니다. 아무튼 물, 바람, 별빛이란 감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오늘 걸음 여행의 주제입니다. 도착한 대관령 부근의 일조량과 풍속과 온도에 맞춰 행장을 다시 꾸리고 불필요한 것들은 다시 차에 놔두고 걸음 여행을 나섰습니다.
초원의 끝자락 삼양목장 모습입니다. 삼양목장, 한일목장 등은 70년대 초반에 식량 자급자족 목적으로 세워진 식생활 목적 전형적인 목축업이라 한다면
양때 목장은 1988년에 관광을 목적으로 한 목장이었습니다. 서울올림픽과 일정 소득에 도달하면 관광은 필연적으로 따른다는 미래를 내다 본 정확한 예측이 빛을 발휘한 것이 대관령 양때 목장입니다. 새로운 영동고속도로 설립으로 고속도로 기능이 상실되어 유명세를 떨쳤던 상행선 대관령 휴게소도 폐건물이 되었던 것을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시킨 주범은 바로 양때 목장이었습니다. 더욱 더 관광 명소로 거듭나기 위하여 개척자 정신으로 장갑을 벗지 않는 대표자의 인사가 인상적인 곳도 바로 양때 목장입니다. 선자령으로 가는 길목이 양때목장 철조망 옆으로 새롭게 개설된 것도 목장의 역할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관령 구 휴게소 주차장과 달리 국사 성황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주차장을 깃점으로 출발하면 일정구간 양때목장 철조망을 따라 걸어 숲 터널을 빠져 나오면 양때목장, 계곡, 성황당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나게 됩니다. 이 지점부터 선자령으로 가는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 일때는 화전민 부락을 이루던 곳이었습니다. 화전민들의 영향으로 산림이 황폐화 되어갈 무렵 당시 집권자였던 박대통령은 차관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독일방문하였을 때 독일 산림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이후 화전민의 터전을 산 아래로 강제 이주시키기 위하여 산 아래에 새마을을 만들어 초,중학교를 신설하고 집터와 신축자금을 빌려 줍니다. 그래도 이주를 하지 않는 화전민에게는 각종 특혜와 더불어 종자와 비료를 제공을 중지시켜버립니다. 이러한 제도 영향으로 전국에 산지에 흩어져 있던 화전민 촌락을 사라지게 됩니다. 화전민이 사라진 산지에 산림녹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특히 대관령은 높새바람 여향으로 눈과 비가 많고 강풍이 부는 곳이라 녹화사업이 계속 실패를 겪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조림하며 특수한 조림방법을 개발하여 성공한 조림지역입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화전민을 소개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1976년부터 조림사업을 시작하여 약 11년 만에 성공의 신화를 쓴 곳이 바로 대관령입니다. 국사 성황당은 강릉 단오제의 주신인 대관령 국사성황을 모신 곳으로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한 곳입니다.
어느 악동의 표현대로 멕시코와 미국국경지대 철조망 느낌같다는 표현대로 그러한 느낌의 철조망을 약 1km를 걸어 곡점을 넘어서면 본격적인 숲 길을 만나게 됩니다.
여름향기~~ 여름 야생 꽃을 떠 올리게합니다. 고도 1000m에서나 볼 수 있는 여름 야생화들 보기 좋아 가던 길을 멈추고 살피다 만져보고 향에 취해보다, 놔두고 온 마이크로 랜즈가 자꾸 후회를 키웁니다.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수차례 반복끝에 포기한 어리석움이 속을 상하게 합니다. 사실 카메라 몸체와 랜주 무게가 장난이 아니라 포기했던 것인데, 막상 숲 속 현장에서 만난 여름 야생화가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야생화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일행들은 숲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준비한 카메라를 이용하여 속사로 찍은 후 자리를 떠나려 할 때 즈음 다시 여름 야생화가 발목을 잡습니다.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생초. 뱀무를 만났습니다. 무 잎을 닮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꽃말은 만족한 사랑, 참 근사하죠. 사랑에 만족함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완성된 사랑일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사랑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랑은 목마름이지요. 늘 서성거리게 만들기도 하고 다가 가려고도 하지만... 가장 이해되고 가장 아름답다 느껴지지만 또한 무한대의 외 줄 같은 것도 사랑입니다. 어느 조건에서도 선택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사랑... 그래서 무 잎을 닮은 꽃 뱀무, 칭칭 감는 뱀의 성격을 붙여 사랑의 완성을 표현했나 봅니다. 가끔 주황색도 만날 수 있습니다. 동자꽃 빛과 아주 흡사한 색입니다.
여름 야생화는 습지고 물이 많은 곳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열기 영향으로 흰색이 대부분입니다. 야생화를 들이나 산지를 떠나 사람들이 키우는 화단으로 끌어 드린 이는 바로 용인에 있는 한택식물원 주인장입니다. 여러가지 환경요인으로 멸종되어 가는 야생초들이 걱정되어 생업으로 하던 건축업도 포기하고 용인에 대단위 대지를 매수하여 식물원을 개장하고 전국을 돌며 야생초를 모아 만든 식물원이 바로 한택식물원입니다. 이후 사람들은 야생화에 관심을 갖고 몇 포기씩 구매하여 뜰에 심기 시작합니다. 지천으로 핀 야생초 꽃을 보면서 산막에 야생화 꽃 열을 생각하면서 빙그레 웃고 말았습니다.
요즘 산막에서 피기 시작한 야생화 금꿩다리입니다. 여름을 몰아낼 만큼 아름다운 꽃입니다. 벌써 시간은 12 시경~~ 속보를 발휘하여 일행을 앞찌룬 후 기억해 두었던 계곡 암반으로 내려갔습니다. 물소리가 새소리와 섞여 얼마나 근사한지 동영상을 만들며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한 참만에 도착한 일행 암반에 모여 앉도록 하고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식사준비토록 하였습니다. 악우 중 한 사람의 아내 朴女史께서 모든 일행을 위해 삶은 달걀과 유부초밥과 찬을 보내주셔서 다른 음식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성찬을 나누고 잠시 오수를 즐기고 가자는 악우도 있었지만 이 또한 혼자 웃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추운 계곡인데...... 식사 후 다들 부산떨며 짐을 챙겨 달아나기 바뻐습니다. 단숨에 계곡에서 빠져 나와 정상적인 목장길을 향해 걸어나갔습니다.
걷는 사이 숲 안으로 스며드는 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샷터를 느리게하면서 카메라를 패닝 (panning) 시켜보았습니다. 삼각대에 고정시켜 놓고 찍어야 하는데.... 광대뼈가 으스러지도록 부착시킨 후 , 숨을 멈추고~~~^&^ 하하하
산막에 꿀꽃은 벌써 낙화되고 씨방에 씨가 가득 채워졌는데... 대관령은 꿀꽃이 아직도 꽃자리입니다.
30여분 일행을 기다리며 곳곳을 뒤지며 야생화 탐방에 나섰습니다. 맑은 하늘이 인상적인 하늘빛 곤신봉쪽으로는 뭉개구름이 깔려 초원과 풍차가 상호보완해 가며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계곡에서 임도로 올라 오는 순간을 풍차를 배경으로 개인 사진을 아무도 모르게 스넵으로 찍어준 후 앞서 나갔습니다. 한일목장 초창기에 서울 본사에 취직을 한 친구의 초대로 다녀간 적이 있어 늘 이 자리에 서면 옛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른니다. 아주 친했던 친구였는데 케나다로 이민을 가 대도시에 살다가 은퇴 후 록키산맥 언저리로 들어 가 산악활동을 하며 멋진 전원생활으로 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 사진은 본의 아니게 찍힌 사진입니다. 액정 화면에서도 샷다를 누를 수 있게 해 놓고 이동할 때 기능을 정지 시켜야 합니다. 깜박 잊고 이동하다 나의 신체일부가 스치자 자동으로 찍힌 사진입니다. 피사 탑처럼 기우뚱~~~
벌써 선자령 반환점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우측 산비탈로 올라서서 0.3km 가면 바로 선자령표지석이 있는 곳에 도달합니다. 표지석 도달하기 전에 곧장 바로 넘어가면 강릉 보광사로 넘어 가는 길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직진하면 곤신봉 매봉을 경유하여 소황병산, 노인봉, 진고개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다. 주문진으로 넘어가는 진고개에서 이곳까지 도상거리는 약 13km 이고 이곳에서 대관령까지는 약 5km이므로 진고개에서 대관령까지 도상거리는 약 18km가 된답니다. 선자령보다 고도가 높고 평전이 아름다워 평원의 풍광과 각종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는 곳이지요. 또한 조망권이 폭 넓고 깊게 열려 있어 경치가 뛰어난 곳입니다. 야간산행을 하면 동해의 오징어배 불빛이 근사하고 평원 안쪽에서 바라보는 은하수 또한 장관인 곳이랍니다.
고도를 높이면서 보이는 전경을 입체적으로 찍어 두었습니다. 03km 오르면 바로 직진하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강릉 보광사 방향으로 내려 가는 길이다. 지표석으로 가려면은 약간 우측으로 틀어나가야 합니다.
선발대는 이미 이 지점을 통과한 후 아래 초원을 내려서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선자령 지표석, 모자를 스틱에 씌우고 사진을 남겼습니다.
잠시 후발이 올라왔습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드론을 띄어 동영상을 만들 계획이라 시간을 지체할 것이기에 짐을 챙긴 후 내려가려 하자 사진를 찍어준다하여 잠시 지표석에 잠시 섰습니다.
잠시 후 드론이 떠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목초지로 내려섰습니다. 아주 작은 녀석이 얼마나 소리가 요란한지~~~~
선발은 앞서 가 있고
초롱꽃도 찍어 두고~~~~
실타래 난꽃이라 ~~~ 야생화 이름도 작명해 주고~~~
선자령 아래 작은 평전 목초는 무릎까지 자라 있었습니다. 5월엔 어느 가정의 관리가 잘 된 정원의 잔디처럼 고운 모습인데 어느새 세월은 목초의 본성으로 성장시켜 놓았습니다. 결국 이 목초를 먹고 자란 양과 소들은 우유로 보답하여 사람들의 식탁에 올려지겠지요. 선한시작은 결국 끝없이 선함으로 이어지는 것이 선한 귀결임을 증명한다는 생각을 하며 목초를 살피던 시선을 가리왕산 방향으로 돌려 보았습니다. 인류의 제전이라 불리며 약속된 시간에 맞춰 열리는 동, 하계 올림픽행사, 인류의 행사를 준비하려면 자연의 훼손은 피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인간이 그리고 싶어 안달하는 문명의 그림, 자연을 뭉개놓고 그려야하는 모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여러모로 성가시게 합니다. 재정적인 문제, 자연을 훼손한 환경적 문제 늘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면서도 고작 한 달의 축제를 위한 일치고는 너무 지구의 상처가 크군요. 시지프스와 같은 무제한적 반복행위가 상스럽게 느껴집니다.
저 멀리 동계 올림픽 스키 점프대도 보이고~~ 동계 올림픽을 치룬 후 횡계, 평창방향은 마을이 커졌고 시설도 많아졌습니다. 이후 제법 불빛도 많이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바라보는 야경과 하늘의 별과 은하수 관찰은 압권이랍니다. 특히 한 여름밤에 이곳에 천막치고 별을 보다 늦게까지 여름밤을 보내다 하산하면 기가막히는 명당 자리랍니다.
미풍이 한움큼 다가왔다가 모래시계의 모래가 가느다란 목줄을 통과하듯 그렇게 구름 사이로 사라져갔습니다. 산촌의 밤은 도시문명과 달리 빨리 어두움이 내립니다. 산그림자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낮고 길게 드려지는 석양빛의 속성을 산촌에선 산그림자로 표현합니다.
드론을 띄우던 일행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언덕을 살피며 혼자 피식 웃어보았습니다. 언덕이 터지는 지점이 바로 노루목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습니다. 속(俗)과 선(仙)계로 구분되는 것은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지요. 산중에서 살아가는 동물들도 민가를 접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산중생활을 하던 노루가 민가 언저리까지 내려와 인간들의 기척을 살피려 긴목을 내밀고 살피던 목이 바로 노루목이라던가! 이러한 형편으로 목초 사이로 열려 있는 외줄기 길목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안도의 숨을 몰아 쉬고~~
평전에서의 여유를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