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섬 기원으로서의 예술로 제주옹기, 사진 예술의 기원으로서의 칠실파려안이 만났다. 양극 너머 화산섬의 현재를 칠실파려안으로 본 제주옹기 혹은 두 개 유형의 초상사진을 통해 기록하고 싶었다.
1880년 전후로 초상사진은 낮은 감광도와 어두운 렌즈 때문에 초점 맞춤이 힘들어 움직이지 않고 정면만을 바라봤다고 하는데 나는 일부러 감광도를 낮추고 렌즈 대신 붓을 사용해 볼까? 아님 물료를 바꾸어볼까, 두 계절 동안 내내 생각이 많았다.
제주그릇의 내재적인 고유성 너머를 드러내는 일은 작업 과정 내내 흥미로웠다.
각계 각층의 초상을 동원한 아우구스트 잔더의 파사드까지는 아니라도. 욕심이 있다면 심방의 출현이나 사회성, 사회학적인 문제까지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좀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이제 유형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구하는데 이 나이에 이제 유형학의 범주에 드는 일이 민망한 일이기는 하나, 이도 본래 파사드적 경향을 지우고 작가가 의도한 바를 부각 과정이라 생각하면 서너번은 더 해봄직하다. 중립적인 시각 혹은 '표정 없는 얼굴처럼'
칠실파려안(漆室坡黎眼)에서 ‘칠실’은 암실, ‘파려안’은 유리(렌즈)를 일컫는 당시 단어로 카메라 옵스큐라의 순수한 우리식 명칭인 셈이다.
다산은 ‘여유당전서’에서 칠실파려안에 대해 상세히 서술했다. “어느 맑은 날 방의 창문을 모두 닫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모두 막아 실내를 칠흑과 같이 하고 구멍을 하나만 남겨 애체(볼록렌즈)를 그 구멍에 맞추어 끼운다. 투영된 영상은 눈처럼 희고 깨끗한 종이 판 위에 비친다.”
물론 ‘칠실파려안’은 현대의 카메라와 비교하면 매우 원시적이다. 다산의 기술은 렌즈를 통해 투영된 영상을 채색함으로써 실물과 똑같이 그려내는 데 쓰였을 뿐이다.
렌즈를 부착한 어두운 공간, 초상사진의 파사드로 난 묻는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정면성에 의한 무표정성처럼 현대 인물사진의 가장 큰 특징(혹은 일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또 어쩌면 화산섬 어느 작은 마을 옹기굴을 배경지로 제주 심방을 내세운 욕망의 재현인지 모른다. 영원히 다가설 수 없는 '친근함'에 대한 오마쥬랄까. 죽음 앞에 다시는 마주하지 못한 부친에 대한 사과라고나 할까.
현대 사진가들이 초상사진 중 즐겨하던 파사드를 재현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건축에서 출입구가 있는 건물의 정면을 뜻하는 건축용어라는 파사드는 결국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면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제주옹기를 건축물로 비유하면 불(우주)의 파사드(정면, 입구)에 해당될까? 무늬? 색깔? 아님 불, 흙이나 바람 물 나무의 은유?
대상의 정면성을 보여줌으로써 그 대상이 가진 전면성을 드러내고자 할때 주로 사용되는 방식이라는데 나는 제주그릇의 전면성을 무엇으로 봐야할지. 계속 궁금했다.
“일상과 맞닿아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나의 개인전이 화산섬의 문명, 시즌1으로 ‘바람 흙 불의 결정체_제주옹기’를 담았다. 기원으로서의 예술, 그 너머 화산섬의 존재를 제법 치밀하게 칠실파려안으로 기록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나의 열번째 사진전이 ‘시작부터 실패한 사진전’은 아니길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