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심사를 가는 버스는 오지 않는다.
1187번 원효사행을 망설이다 타 버린다.
동화사터에 가서 잘까 하다가
보리비빔밥 한 그릇 먹고 의상봉으로 오른다.
불씨네들의 가호가 든든하다.
어두워진다. 빗방울 몇 개 떨어진다.
6시에 집을 나섰다.
집 앞 가게에서 너홉 소주와 작은 육포와 건전지를 산다.
원효사에는 7시 20분에 도착한다.
광천터미널 환승이라 돈을 들이지 않더니
광주역에 도청으로 승객도 없는 시내를 빙 돈다.
증심사쪽보다 못한 보리밥을 혼자 먹고
의상봉 쪽으로 오르니 어둑해진다.
바람 쐬러 나온 이들은 우산을 받쳐든다.
블루 문이라고 밝은 보름이라는데
그 덕인가 빗방울 몇 개 속에도 내 몸 그림자가 어린다.
겉옷을 벗고 보슬비를 맞다.
산장으로 오는 가로등이 켜졌다.
꽃인가, 폭력인가?
원효는 불을 켜고 의상을 건너다 본다.
검은 능선 너머로 도시의 불기운이 붉으스레하다.
산장의 차 소리며 전화 벨소리도 들린다.
새 두 마리가 울며 지난다.
무등의 하얀 구름이 중봉을 지나더니
동화사터까지 내려왔다.
보험 설계사가 준 하수오술을 담아 온 술병을
거꾸로 꼴짝거린다.
비옷을 꺼내 걸친다.
빗방울이 오락가락한다.
나도 오락가락한다.
모기도 오락가락한다.
난 손님인가, 침입자인가?
당시를 꺼내 불빛으로 월하독작 1, 2를 읽어본다.
비닐을 위로 덮고 수첩에 적어본다.
글씨가 날아간다.
서늘한 바람 속에 술기운이 퍼진다.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비는 굵어진다.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몸을 뒤척인다.
바위 아래에 바람이 부딪쳐 위로 덮은 비닐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날아가 버린다.
산장에서 폭죽 불꽃이 피더니 검은 구름이
능선 위로 오른다.
잠자 보자고 한다.
바위는 윗몸을 반쯤 일으키게 한다.
등뼈를 바위 쪽으로 붙여 무겁게 하여
흘러내려가지 않게 한다.
비는 점점 굵어진다.
소주를 마신다.
소주에 깔개에 침낭에 침낭 커버에 비닐공기 베개에
난 여전히 사치스럽다.
잠이 들었을까?
빗물이 새어들어 커버의 입구를 단속한다.
빗방울이 몸을 때린다.
견뎌 보자고 한다.
바위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허리께로 흐른다.
하늘을 가려줄 줄 알았던 소나무는
굵은 빗방울로 때린다.
물고문이다.
4만원짜리 침낭과 12만원짜리 침낭커버는
빗방울을 이기지 못한다.
철수하기로 한다.
핸드폰을 보니 낯선 7월이 되었고
00:47이다. 7월이로구나.
비옷을 걸치고, 젖은 커버와 침낭을 제대로
접지 못하고 꾸겨 넣는다.
조난자의 짐은 호사롭다.
하얀 나비가 따라온다.
그 불빛을 들여다보니 모기도 몇 마리 따라온다.
두번 미끄러진다.
티자 지팡이를 뒤로 하여 버팀목 삼는다.
개가 짖는다.
조용히! 미안해! 하고 어둠 속에서 소리내어본다.
조용하다가 또 짖는다.
폐쇄된 전깃줄에 비옷을 걸어놓고
침낭머버도 건다. 아래쪽으로 물이 고인다.
짜다가 깔개위로 침낭을 펼친다.
비는 그치지 않는다.
개가 개님에게 말을 걸어도 그는 기분이 나쁜가보다.
이제 새로운 잠자리로 든다.
개는, 비는 그치지 않는다.
나는 이제 하늘을 가렸다.
항우의 기개세는 나와 같다.
어둠 속에 소주를 훌쩍인다.
내일 아침을 위해 남겨둔다.
혜초나 원효나 의상이 아니다.
장준하나 장준환이나 송창욱도 아니다.
왜 지붕가린 침대를 두고 여기에 있는가?
4시 무렵인가 눈을 떴는데 또 잤다
일어나니 7시 30분이다.
나의 출근 시각을 넘겼다.
계곡에 가서 살을 씻고 세수를 하고
배낭을 챙겨 일어서니 9시가 되어간다.
아침 숲은 맑더니 금방 비가 쏟아진다.
꼬막재와 규봉암과 장불재와
입석대 서석대
그리고 중봉에서 맑아진 광주를 보고
증심으로 내려왔다.
증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