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옛날 말로 한다면 소위 ‘만화영화’인데 누가 보라고 만든 것일까? 그야 만화영화이니 첫 번째 대상은 어린이들이겠지요. 그런데 어린이들이 과연 이 영화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옛날보다 조숙하다고 해도 초등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나마 고학년 즉 5,6 학년 정도라면 글쎄, 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학년만 대상으로 만들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텐데. 아무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은 그래도 성인이지 싶습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게 차라리 낫다고 봅니다.
하늘이 1년 열두 달 맑고 청명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뻔합니다. 큰일 납니다. 여기저기 물 타령으로 야단날 것입니다. 농사도 끝장나고 양식 타령 나올 것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여러 가지 행사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고 기분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맑은 날씨만 있다면 그야말로 큰일 납니다. 궂은 날씨가 불편하고 때로는 짜증도 나고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비는 와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매일 웃기만 하고 1년을 살 수는 없습니다. 또한 웃음만이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라일리는 어려서부터 밝고 명랑하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특히 아이스학키를 무척 좋아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늘 잘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경험하며 무난히 자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를 해야 하게 됩니다. 가족이 모두 가고 싶지 않은 길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웃도 떠나야 하고 학교도 친구도 떠나야 합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모든 것을 다 두고 떠나야 하지요. 새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환경도 사람도 새롭습니다. 자꾸 이전 집이 생각납니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라일리의 마음속에 자리하던 기쁨이는 늘 라일리가 기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다른 동료들이 넷이나 있습니다. 소심이도 있고 까칠이도 있고 그런가 하면 버럭이도 있고 슬픔이도 있습니다. 모두가 라일리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도록 노력합니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든 이 라일리에게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가 닥친 것입니다. 그에 따른 감정의 변화가 몰아칩니다. 까칠이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심이는 새 환경에 잘 적응을 할지 불안하기만 하지요. 그러자니 버럭이는 툭하면 성질을 부립니다. 슬픔이는 자꾸 옛날 생각이 나서 우울해집니다. 그 속에서 기쁨이가 고군분투합니다.
서로가 티격태격하다 그만 감정의 미로에 빠집니다. 기쁨이와 슬픔이가 그만 길을 잃고 헤매게 되지요. 남아있는 소심이 버럭이 까칠이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릅니다. 처음 당하는 일인지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지요. 버럭은 버럭버럭 화만 내고 까칠이는 남 탓만 하는가 하면 소심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합니다. 한편 라일리는 엄마 아빠에게 신경질을 부리는가 하면 혼자 꿍꿍 앓다가 집을 나갈 생각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아빠엄마 때문이야. 왜 이사를 해가지고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거지? 아무래도 안 되겠어, 혼자서라도 돌아가야 해. 그러고는 아빠엄마 몰래 짐을 쌓습니다.
감정의 미로에 빠진 기쁨이와 슬픔이는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곳을 방황합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돌아가려고 애씁니다. 빨리 돌아가야 해, 그 일념으로 의식 무의식의 세계를 헤매고 다닙니다. 정말 그 동안 알지도 못했던 것들이 보입니다. 잊고 있던 것들 - 즐거웠던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짧지만 그 시간들 속에는 즐거움도 아픔도 함께 있었습니다. 기쁨만이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아프고 힘들었을 때 엄마아빠의 품은 따스하기만 했지요. 그 품에서 눈물을 쏟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쁨이 돌아옵니다. 맞아, 슬픔이가 늘 부정적인 것은 아니야. 슬픔아, 지금은 네가 필요해. 기쁨이가 깨닫습니다. 그리고 풀죽어 있는 슬픔이를 품어줍니다. 자, 힘내! 어서 돌아가야 해.
라일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습니다. 그러나 이게 정말 바른 선택일까, 마음속은 여전히 오락가락합니다. 그리고 번쩍 정신이 돌아오는 듯합니다. 라일리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아빠엄마도 힘들겠지요. 크든 작든 우리는 힘들 때를 지나가기도 합니다. 그 때 서로 안고 아픔을 나누며 위로하여주었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며 품에 안으면 새 힘이 솟아납니다. 그 기억이 새롭게 마음을 녹입니다. 그래서 버스를 정지시키고 집으로 돌아오지요. 걱정하고 있던 엄마아빠가 반가이 맞아줍니다. 그 품에서 눈물을 흘리며 평안함과 기쁨을 회복합니다.
우리 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얽혀 있습니다. 그 감정들을 의인화하여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아마 사람으로 구성하여 드라마를 만들기에는 좀 어색하고 어려운 점들이 있을 것입니다. 만화가 만들 수 있는 이점을 최대한 살린 것이지요. 어린이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싶습니다. 우리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공감하고 그래서 눈물도 찔끔 나옵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