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Andromeda"
안드로메다는 하늘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88개의 공식 별자리 중 하나로, 북쪽 천문대에 위치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공주 안드로메다의 이름을 따온 별자리로, 천국의 모습을 형상화 한다.
안드로메다 별자리에는 여러 개의 밝은 별들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알파 안드로메다 (알파 Andromedae)는 가장 밝은 별로 알려져 있다. 또한, M31 또는 안드로메다 은하로도 알려진 안드로메다은하 (Andromeda Galaxy)가 있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운 큰 은하로, 맨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는 밝은 은하다.
안드로메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관련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안드로메다는 세페우스과 카시오페이아 왕비의 딸로, 부모의 자랑스러운 딸임에도 불구하고 신이 원한을 품어 해가 잠기는 지역에 거대한 해신 케토스에게 제물로 바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고마한 히로스 세리포스에 의해 안드로메다는 구출되었고, 그녀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하늘에 별자리가 되었다.
에티오피아의 왕 세페우스와 뛰어난 미모의 왕비 카시오피아 사이에는 외동딸 안드로메다 공주가 있었다. 그런데 카시오피아 왕비는 늘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다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네레이드 님프보다 더 아름답다.”
이 말은 바람을 타고 물결을 따라 흘러서 결국 바다의 님프 네레이드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고야 말았다. 화가 난 네레이드들은 이를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고해바쳤다. 포세이돈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 카시오피아 왕비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매일 폭풍과 풍랑을 일으켜 온 나라를 덮치게 했다. 이에 놀란 왕이 신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델포이 신전에 물었다가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왕비 카시오피아는 자신의 미모를 지나치게 자랑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격노케 하였다. 이를 가라앉히려면 외동딸 안드로메다 공주를 바다의 괴물고래에게 바쳐야 한다.”
이 말을 들은 안드로메다 공주는 나라만 평온해질 수 있다면 자기 몸 하나쯤은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고 결심한다. 왕은 허영심 가득한 어머니를 위해 용감하게 나서준 공주의 선택에 감동했지만, 그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세페우스는 공주를 바닷가 바위에 쇠사슬로 칭칭 묶는 동안 내내 울었다.
그런데 때마침 괴물 히드라의 머리를 잘라 페가수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페르세우스가 에티오피아 하늘을 날다가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페르세우스자리’ 참조) 그는 당장 안드로메다 공주에게 다가가 사연을 물었다. 그때였습니다. 바다의 괴물고래가 공주를 향해 큰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놀란 페르세우스가 히드라의 머리를 높이 쳐들었고, 그러자 괴물고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돌로 변하면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안드로메다 공주는 자신을 구해준 페르세우스와 함께 궁궐로 돌아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왕과 왕비는 두 사람을 결혼시켜 부부의 연으로 맺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안드로메다 공주는 페르세우스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이 사연에 따라 페르세우스는 물론이고 공주 안드로메다, 카시오피아, 세페우스 그리고 고래자리를 합해 에티오피아 왕가의 별자리라 통칭해 부른다. 세페우스자리와 카시오피아자리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은 부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역시 나란히 놓여 있다.
안드로메다 별자리는 가을철 초저녁 동쪽하늘에서 올라오는데, 그에 속한 별 중 α별이 페가수스자리와 접해 있으며 대사각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별자리를 찾는 기준이 됩니다. 특히 안드로메다 β별 북쪽의 안드로메다은하는 비록 희미하게나마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돌로 변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괴물고래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다. 가을 밤하늘 남쪽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은하계에서 254만 광년 떨어진 곳에는, 은하계와 쌍둥이처럼 닮은꼴인 또 다른 나선형 은하가 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잘라 돌아가던 중에, 바닷가 암벽에 쇠사슬로 묶여서 바다 괴물의 제물이 될 처지였던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해낸 이야기에서 유래된 안드로메다 은하(대성운이라고도 불린다.)이다. 카시오페이아 왕비의 미모 자랑질에 열 받은 포세이돈 신이 바다괴물을 풀어서 나라를 어지럽히자, 신탁에 따라 딸을 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단테의 『신곡』 삽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귀스타브 도레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삽화가이자 판화가, 풍자화가였는데 작가는 불과 5세 때부터 판화에 대한 대단한 재능을 드러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불가사의한 천재라는 칭송을 들으며 성장해서 15세 때 이미 스케치북을 출판하면서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문이나 잡지의 삽화 제작에 있어 소년 잡화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발표되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큼 참으로 대단한 인기 스타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대단히 왕성한 활동으로 제작된 작품 일부는 본의 아니게 어떤 일부 사람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했으나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결과 많은 작품을 팔아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이렇게 작가로서 승승장구의 길을 걸으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작품을 남기고 성공한 예술가로서 결혼도 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어머니가 죽자, 삶의 생기를 잃고 50세 나이에 안타깝게도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는 작품도 낭만적인 것으로 표현했지만 삶 역시 낭만적인 삶을 살았다.
예술가의 길은 가난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그의 작품이 사람들의 호응과 사랑을 받으면서 많은 돈도 모을 수 있었고 프랑스인들의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도 받을 만큼 행운이 삶을 살았다.
또한 그는 신구약 전체를 그림으로 된 성서를 만들면서 당시 가톨릭 교리 교육에 대단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사실 변변한 교리 교재가 없던 당시에 그의 작품은 대단히 효과적인 인기를 끄는 교리교재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성서를 주제로 한 판화 작품들은 예술성을 뛰어넘어 당시에 꼭 필요한 복음화 도구로서의 대단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누구 뭐라 해도 가톨릭 신자로서 교회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앙 교리를 말로써 설명하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 없던 당시 교리교육에 그가 제작한 성화들은 극적이며 대단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선교 수단이 되었다.
사실 현대적 의미의 시청각 교재가 교회에 시작되기 전까지 작가의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교회 안에서 거의 독보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어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돈키호테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55
증언판을 들고 내려오는 모세
조롱고를 춤추는 집시
안드로메다
실낙원의 삽화
신데렐라 삽화
신곡의 삽화
신곡 중 ‘천국’ 삽화
신곡 중 ‘지옥’편 삽화
승천 (1879)
성경 속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
런던의 꽃 파는 사람들(1875년경)
서재의 돈키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