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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오늘도 쾌청 (1998 戶田郁子)
●16. 두 개의 국적과 두 개의 이름 ― 가족 속의 아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작은 명수는 곧바로 남편 집안의 대스타가 되어버렸다. 시부모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손자의 얼굴을 보러 오신다. “아버님, 만약 여자아이였어도 이렇게 열심히 보러 오셨을까요?” 내가 농담처럼 묻자, 시아버지는 솔직하게 인정한다. “음, 역시 그렇겠지.”
하루에도 몇 번씩 “명수 뭐 하고 있어?”라는 전화를 가족 중 누군가가 걸어온다. 뭐 하긴 뭘 해, 자고 있거나 깨어 있거나 둘 중 하나인 아기다. 이쪽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두 시간마다 수유를 하고, 쉴 새 없이 기저귀를 갈아주느라 이미 녹초가 되어 있다. 잠이 부족해 짜증이 난 나는 아기 머리맡을 발로 툭 걷어찬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오늘도 명수를 목욕시키러 온 형님은 황홀한 눈빛으로 말한다. “어머, 너무 귀엽다. 정말 천사 같지 않니?” 동의를 구해도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형님 부부가 키우던 강아지 파두기는 그때까지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잘 자라고 있었는데, 명수가 태어나자마자 주인공 자리를 순식간에 아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형님 댁에서 “명수 얼굴 보고 싶으니까 데리고 와”라고 부르면 우리는 곧바로 차를 몰고 달려가야 한다. 그리고 아기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 바둑이는 모두에게 발길질을 당한다. “야, 저리 가!”
“명수한테 가까이 가지 마!” “어? 지금 명수를 올려다봤지? 개 주제에 사람을 올려다보다니 건방지네!” 불쌍한 파두기는 방 구석으로 내몰려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다.
모두가 아기를 떠받들고 있는 사이에 내가 몰래 바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면 곧바로 호통이 날아온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개 같은 거 만지지 말고 당장 손 씻어!” 내가 탯줄을 잘라주었던 바둑이. 차라리 아기를 여기 맡겨두고 내가 파두기를 데리고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하면 또 큰 소동이 날 게 뻔하다.
결국 파두기에게 불행이 닥쳤다. 얼마 전부터 샴푸를 너무 자주 해서인지 털이 심하게 빠지는 피부병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던 것도 화근이 되었다. 형님이 사는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개를 키우지 말라는 통보가 왔다. 무엇보다 아기가 막 태어난 시기라 상황이 나빴다. 결국 바둑이는 시골로 보내졌다.
형님 부부의 외아들은 끝까지 울면서 반대했지만, 어른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바둑이가 사라지고 며칠 동안 그 아이는 형님 몰래 책상 서랍에서 바둑이 사진을 꺼내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나도 슬펐다. 다시는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언젠가 개와 함께 살기 위해 시골의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자고 남편과 약속했다.
한국의 가족은 아이와의 관계 밀도가 매우 높다. 아기는 나의 아이이기 이전에 가족의 일원이다. 시부모님은 하루라도 손자 얼굴을 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아기가 세네 달쯤 되었을 때, 남편이 친구에게 빌려온 흔들의자에 눕혀 흔들어 주면 늘 얌전해졌다.
어느 날 마감이 촉박해 나는 발밑에 흔들의자를 두고, 아기가 울 때마다 발로 툭툭 차며 워드프로세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을 빨리 끝내려고 조급해 울음을 잠시 내버려 두고 있었을 때 시부모님이 들어왔다. “아기가 울고 있는데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아이구, 불쌍해라, 명수야. 이렇게 울고…” “아이를 울려가면서까지 일을 하면 안 되지!”
그러면서 시부모님은 나를 나무라며 아이를 안고 데리고 가버렸다. 이러니 일이 바쁘다고 아이를 어디 맡기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게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손자라는 게 그렇게까지 귀여운 걸까. 나도 손자가 생기면 그렇게 될까. 좀처럼 믿기 어렵다. 그래도 그 후로는 종종 시어머니나 형님에게 아이를 맡긴다. 나는 늘 미안하지만, 맡는 쪽은 언제나 기꺼이 돌봐주니 고맙다.
사촌들도 이 아이를 친동생처럼 귀여워해 준다. 자기 사촌이 몇 명인지도 모르는 일본인인 나에게는 이런 가족관계가 놀랍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인생이 풍요로워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느낄 여유가 없다. 아직 한 살도 안 된 손이 많이 가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아이가 있어 즐거운 일도 있지만, 아이에게 쓰는 시간은 예전에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던, 나에게 소중한 충전 시간이었다. 지금은 그 시간을 아이가 전부 차지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왠지 내 머리가 퇴화하는 것만 같다.
그래도 이 시기를 지나면 오히려 아이에게서 배우는 것도 생길지 모른다. 아이의 부드러운 감성에 감동하는 부모도 많다.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리게도 해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아이에게만 기대며 살고 싶지는 않다.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로, 남편과 자식이 전부였다. 특히 장남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그런데 최근 가톨릭 신자가 된 뒤로 마음의 의지처가 생겼는지 성격도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남편은 말한다. 시어머니는 자주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아들이란 게 아무리 정성껏 키워도 결혼하면 그걸로 끝이야. 엄마, 엄마 하며 따르는 건 어릴 때뿐이야. 차라리 아들을 신부로 만들 걸 그랬어. 신부는 평생 결혼 안 하니까 평생 어머니를 잘 모시잖아. 너도 아들을 너무 귀여워해봤자 소용없어.”
내가 그렇게 좋은 엄마로 보일까. 이상하다. 나는 늘 아기 손톱을 깎아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빨리 커서 손톱 정도는 스스로 깎아. 밥도 혼자 먹고 화장실도 혼자 가고. 빨리 커서 학교 가고 밖에서 친구들이랑 놀아. 아, 빨리 커서 나를 자유롭게 해줘!”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의 그런 푸념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어머니가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이를 낳은 뒤 나는 한국과 일본의 육아 방식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아이가 버릇없이 굴면 “주변 사람에게 폐가 되니까 그만둬라”고 타이르지만, 한국은 다르다. 병원이나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주의시키면, 옆에 있던 엄마가 오히려 “우리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화를 낸다.
아이는 조금 시끄러워도 활기차게 뛰어놀아야 하고, 너무 야단치면 기가 죽는다는 생각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느냐보다 자기 아이가 당당히 자기주장을 할 수 있기를 더 바란다. 장난도 비교적 마음껏 하게 둔다. 친척 아이가 와서 가구에 낙서를 해도 그 자리에서 살짝 타이르는 정도로 끝내고, 피해를 본 어른은 참고 넘긴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한국 아이들은 무척 버릇이 없어 보인다. 형님은 자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맞으면 되갚아라. 싸움에서 지고 울면서 돌아오지 마라. 상대를 다치게 해도 괜찮다. 치료비는 아빠가 낼 테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아파트 위층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 둘이 있다. 둘 다 피아노를 배우는데 밤늦게까지 친다. 연습곡뿐 아니라 막 건반을 두드리거나 ‘고양이 밟기’를 반복하며 노는 소리가 밤 11시가 넘어서도 들릴 때가 있다. 새벽 4시에 피아노 소리로 깬 적도 있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싫어하지만 아무도 그 집 아줌마에게 항의하지 못한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밤 10시 이후에는 치지 말게 하라고 말하러 갔다가 되려 면박을 당했다. “낮에 공부하느라 연습 못 한 날은 밤에 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자 시어머니도 지지 않고 “그럼 낮에 피아노 치고 밤에 공부하면 되잖아요. 우리뿐 아니라 다른 주민들도 다 피해 보고 있어요.” 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아이들에게 “이 할머니가 너희 피아노 친다고 화내러 온대!” 라고 말하고 문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씩씩거리며 돌아온 시어머니는 “우리 명수도 좀 더 크면 이웃에게 폐 끼칠 테니 나도 참아야지” 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한국의 방식은 겉보기엔 매우 무질서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에게 절대 복종한다.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하면 절대 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뛰는 아이를 말리는 부모도 있지만, 일본처럼 “남에게 피해가 되니까”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거기서 뛰지 마. 넘어지면 어떡해.” “위험하니까 의자 위에 올라가지 마.” 이렇게 키우니 한국 젊은이들이 자기주장이 강한 것이다. 대학 수업에서 “질문 있습니까?”라고 하면 앞다투어 손을 들고, 지목되면 장황하게 자기 의견을 말한다. “저는 선생님의 이 의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좋았지만 저것은 납득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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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질문은 아주 단순한데도 10분 이상 서서 말한다. TV 토론도 마찬가지다. 한 시청자가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집안 이야기부터 길게 늘어놓는다. 진행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제지해도 한참을 계속 말한다. 나는 토론 내용보다 시계를 신경 쓰는 진행자의 표정이 더 재미있었다.
이렇게 되면 한일 토론회가 열리면 결국 일본 쪽이 지게 될 것이다.
형님 부부는 둘 다 초등학교 교사라서, “맞으면 맞받아쳐라” 식의 가정교육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얼마 전 아버지가 아들에게 욕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친구나 후배에게 업신여김을 당했을 때 제대로 받아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맞으면 되갚아라.” “욕을 들으면 되받아쳐라.” 나도 한국에 살게 된다면 내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 걸까. 그건 좀 자신이 없다.
늘 울면서 돌아오는 것도 곤란하지만, 싸움만 하고 다니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식으로 변해버린 부분도 있다. 어느 날 김포공항에서 일본에서 온 수학여행단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공손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제대로 줄을 서 주세요.” “잡담하지 말고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세요.”
그런데 오히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반말로 말을 건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하면 돼요?” “선생님도 재밌었어요?” 이런 일은 한국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대화 속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었다. 한국의 선생님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어느 학교 학생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사회 질서를 잘 지켜라” 라고 말했을 것 같다.
아이를 낳기 며칠 전, 시어머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는 무사히 태어날까 걱정이었는데, 이제 막 태어나려고 하니까 또 다른 걱정이 생긴다. 이 아이가 일본에서 자라든 한국에서 자라든 차별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야. 아이들끼리 싸울 때 마음에 큰 상처를 입지 않을까 생각하면 정말 걱정이 된다.
국제결혼이라는 건 당사자가 아니라 아이가 불쌍한 거야… 만약 괴롭힘을 당하면 되받아칠 수 있는 강한 아이로 키워라.” 지금의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나 역시 아이의 장래가 걱정될 때가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아이가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육아도 교육도 처음이라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인이니까, 한국인이니까 하며 괜히 비굴해지거나 우월감을 갖지 않도록 하고 싶다. 그리고 어디에서 살든 아버지의 나라 문화와 어머니의 나라 문화를 모두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 형님은 남편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명수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명수 엄마 국적을 한국으로 바꿀 수 없겠니?” 교사 입장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일제강점기의 역사나 일본에 대한 감정, 민족 의식과 관련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희 엄마 쪽바리야.” “너 반쪽바리야.” 그렇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학교를 보내려고 해도, 한일 관계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는 지금 일본과 한국, 두 개의 국적과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리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아이의 이중국적 신고를 하러 갔을 때 담당자에게 “왜 굳이 한국 국적으로 하지 않고 번거롭게 이중국적을 하느냐” 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 그러나 우리의 의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단순히 번거로움만 늘리는 어리석은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중국적이라고 해도 아이의 여권은 일본 것(처음에는 내 여권에 ‘동반자녀’로 기재되었다가 나중에 독립)이며, 한국에 체류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일본에 갈 때는 비자가 필요 없으므로 일반 일본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 절차도 나와 완전히 똑같다. 아기 주제에 수수료도 나와 똑같이 든다. 얼마 전 두 사람의 비자 연장과 재입국 신청, 아이의 외국인 등록을 하는 데 무려 15만 원이나 들어서 깜짝 놀랐다.
아이에게는 22세까지 어느 한쪽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 점을 아이 스스로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라고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남편은 아이의 이중국적에 반대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만약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도망쳐라. 그러면 우리 집안은 끊기지 않는다.”
그런 생각도 있었구나 하고 나는 감탄했다. 일본인의 피가 반 섞여 있다고는 해도, 명수 역시 가문의 일원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끔 “북한과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퍼져 소동이 벌어진다. 일본에서 “언제 대지진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빈도다. 그럴 때마다 시부모님은 “명수를 데리고 빨리 일본이든 중국이든 가라” 며 우리를 재촉한다.
만약 남편 가족이 나에게 명수를 훌륭한(?) 한국인으로 키우라고 기대한다 해도, 그건 무리다. 나는 아이에게 불러줄 동요나 자장가도 일본 것밖에 모른다. 한국어를 잘한다고들 하지만 사실 아직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일본인에게 어려운 한국어 발음은 ‘받침’이다. ‘ㄴ’ 소리만 해도 세 종류가 있는데 그 구별이 되지 않는다. 들려도 모르니 말하는 것도 어렵다.
나름 구별해서 말한다고 생각해도 상대에게는 다른 발음으로 들리는 경우가 많다. 대화 중에는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지만, 이름이나 지명은 특히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아이의 이름을 한국어로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 이름을 지을 때 받침이 없는 한자를 찾고 싶었지만, 조건에 맞는 것이 없었다.
정확히 “명수”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조카에게 지적받았을 때는 정말 부끄러웠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나에게는 심각한 고민이다. 또 어른과의 대화는 괜찮지만, 아이와의 대화는 힘들다. 아이 말이 잘 들리지 않을 때도 많고, 아이에게 타이르듯 말하는 표현도 잘 모르겠다.
의성어와 의태어도 잘 모른다. 얼마 전 초등학생 조카가 쓴 시를 읽고, 나는 내 한국어 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 시에는 내가 평소 쓰지 않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만약 아이가 한국 학교에 다닌다면 나도 같이 따라가 교실 한쪽에서 공부할 수는 없을까 하고. 전 과목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어·사회·도덕 시간만이라도.
요즘 한국에서는 유아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유행이라, 생후 6개월용 영어·일본어 교재도 잘 팔린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를 하게 될 거라고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걱정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걱정을 해봤자 소용없다. 아이가 자랄 즈음에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도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서울은 오늘도 쾌청 (1998 토다 이쿠코)
●17.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 한국의 교육열
한국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치마바람’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치마는 스커트, 바람은 風. 어머니들이 자식 교육을 위해 스커트를 휘날리며 활보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예부터 무(武)보다 문(文)이 중시되어 왔다. 엄격한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등용되는 길이야말로 최고의 성공 스토리였다는 역사도 있다.
과거에는 동란이나 빈곤 등으로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던 부모들이 논밭이나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만큼은 최고 학부에 보내려 애썼지만, 요즘의 고학력 젊은 어머니들도 이에 못지않게 열성적이다. 도시의 어머니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골 쪽이 가계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고, 학원이나 과외도 크게 번성하고 있다고 한다.
꽤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한국교육개발원이 정리한 「1990년 한국의 교육지표」에 따르면 각 학교의 취학률은 중학교 96.9%, 고등학교 87.6%, 전문대 이상이 38.1%이다. 인구 1만 명당 전문대 이상 재학생 수는 395.2명으로, 미국의 514명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참고로 일본은 프랑스, 독일에 이어 4위(197명)이다.
대학원 진학률도 일본보다 높다. 그런데 최근 ‘박사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과라면 연구소 등에 취직할 수도 있지만, 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어도 교수 자리가 없어, 대졸 회사원보다 훨씬 낮은 급여로 대학 시간강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박사라는 타이틀 때문에 체면을 의식해 학원 강사도 하지 못하고 실업 상태인 사람도 있다. 외국에서 고생해서 박사 학위를 따고 귀국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일을 찾지 못해, 결국 전공을 바꾸어 올해 한의학을 다시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재입학했다는 여성의 이야기도 있었다.
한때는 대학만 나오면 미래가 밝았다. 기업에 취직하면 승진도 순조로웠다. 대학원을 나오면 교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고, 신문사나 방송국에도 취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졸·고졸로 사회에 나갔다가 학력 사회 속에서 결심을 굳히고 공부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렸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이미 먼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곳이 없는 고학력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입시 지옥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나는 그것이 몹시 허무하게 느껴진다. “남자도 취직할 곳이 없는데 여자가 취직 못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여대생 취업의 어려움은 아마 일본보다 더 심할지도 모른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대학을 졸업한 뒤 요리학교에 다니거나 외국어를 배우며 유학을 생각한다.
또는 대졸이라는 간판을 들고 더 좋은 조건의 상대를 찾기 위해 맞선을 반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취직하고 싶은 사람은 이력서를 들고 몇 달씩 회사를 찾아다니고, 취업 시즌이 지나도 혹시 결원이 나지 않을까 신문 구인란을 들여다본다.
그래도 취직이 안 되면 입시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과외로 돈을 번다. 웬만한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은 벌 수 있지만 안정성은 없다. 이런 이야기가 이미 당연해졌는데도 부모들의 의식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어쨌든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한다. 어린아이에게까지 그런 말을 한다. 나는 그것이 견딜 수 없이 싫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유아 대상 ‘영재교육’ 교재도 잘 팔린다.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에게 영어다 컴퓨터다 하는 건 좀 이상한 것 아닌가 싶다. 여유 있는 집에서는 필리핀인 도우미를 베이비시터로 고용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영어 환경에 아이를 두기 위해서라고 한다.
참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국제화를 위해 아이들이 필리핀 억양의 영어를 배우고 타갈로그어 자장가를 들으며 잠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도 오늘은 피아노, 내일은 영어, 모레는 서예, 그다음은 컴퓨터로 놀 틈이 없다. 안쓰럽지만 친구들도 모두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오히려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와도 놀 수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쥬크(塾)"를 학원이라 하고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는 것을 ‘과외’라고 하는데, 방학 때 유명 학원에 보내려고 밤새 줄을 서는 어머니도 있다. 과외는 한 과목에 수십만 원 단위로 상당히 비싸고, 초등학생은 그룹 과외를 받는 경우도 많다. 과외를 여러 개 맡는 대학생은 직장인보다 훨씬 풍족한 생활을 한다. 이렇게 되면 교육비가 감당이 안 된다.
예전에 신문에서 도시 근로자의 평균 월수입이 140만 원이고 지출 중 가장 큰 비중이 교육비(25%)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평균치일 뿐, 실제로는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교육비로 쓰는 가정도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식비와 생필품 가격도 상승하지만 교육비는 줄일 수 없다. 그래서 우유 배달, 신문 배달, 가사 도우미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부도 많다고 한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교육비는 더 늘어나고, 한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가족 전체가 무리를 해야 한다. 일본도 그럴까.
예를 들어 대학 사진학과를 지망하면 실기시험에도 합격해야 한다. 현상과 인화 기술이 요구되고 작품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결국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하게 된다. 남편의 후배가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당 월 30만 원, 입시 시즌에는 10명 정도 모인다. 학원 인가는 받지 않고 ‘스튜디오’라는 명목으로 암실 등을 갖춘 공간을 운영하지만, 가르치느라 바빠 자기 사진을 찍으러 갈 시간은 없다. 봄과 여름에는 학생이 줄어 겨울에 최대한 벌고 나머지 계절에는 빈둥거린다.
마치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의 대학 수준은 점점 올라가고 있어, 돈은 있지만 실력이 따라가지 못하면 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도 많다. 특히 의대 지망자는 처음부터 국내 대학을 포기하고 필리핀으로 유학 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중국 유학 설명회에 갔을 때 학생보다 어머니가 더 많아 놀랐다. 자녀를 한방의학 공부시키려고 중국에 보내려는 문의가 많았고, 병역을 피하기 위해 유학시키는 방법을 묻는 질문도 많았다.
중국에는 입시에 실패한 일본 젊은이들도 많이 유학하고 있는데,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결국 일본이나 한국이나 입시 지옥과 부모의 마음은 비슷한 것 같다.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왜 토요일이나 일요일 신문에 ‘대입 만점 교실’ 같은 문제집이 끼워져 오는지, 또 왜 입시 직전이 되면 방송에서 ‘수험생 주의사항’만 계속 이야기하는지 말이다.
한국은 사립·공립 모두 전국 공통 시험을 먼저 봐야 하므로 소동이 커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시험 당일에는 교통 체증 때문에 회사와 관공서도 한 시간 늦게 시작한다. 합격자 발표가 되면 또 대소동이다. “서울대 수석 합격자와 부모의 웃음”, “수석 합격자의 체험담”이 신문에 연일 실린다. 수석 합격자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장애를 극복하고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미담이 나오면 장학금 지원자가 줄을 잇는다.
제주도에서 어느 초등학교 앞에 “우리 학교 출신 ○○○군 서울대 수석 졸업”이라는 현수막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그만큼 서울대는 위대하다. 하지만 대학 입시로 이렇게 떠들썩하니 치마바람이 더 거세지는 건 아닐까. 나는 내 동생이 어느 대학에 가든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다. 아,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다. 여기서의 가족은 부모와 자식만이 아니다. 게다가 남편의 가족은 한국에서도 특히 가족 간의 결속이 매우 강한 집안이었다!
아, 맞다. 생각났다. 남편의 형님의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할 때, 그러고 보니 가족 열한 명이 총출동해서 축하하러 갔었지. 비디오카메라를 돌리고 사진을 찍고 하느라, 평소에는 장난만 치던 말썽꾸러기 조카가 완전히 스타라도 된 듯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어머니만 오거나, 가끔은 부모가 함께 온 집도 있었지만, 작은어머니까지 동원된 것은 우리 집뿐이었다.
그리고 시누이의 아들이 초등학교에서 보이스카우트 같은 단체의 대표로 뽑혀, 모두 앞에서 선서를 하게 되었을 때도 우리는 불려갔다. “왜 우리가 꼭 가야 하는 거야?” 남편은 퉁명스럽게 말했고,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안 간다”고 했다가는 뒤탈이 무서워서 결국 달려갔다. 가보니 깜짝 놀랐다. 그 단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반에서 우등생뿐이라고 하는데, 운동장에 모인 어머니들의 옷차림이 얼마나 화려한지. 그렇다, 그날은 아이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일종의 ‘큰 무대’였던 것이다.
그래도 일본과는 옷차림 감각이 달라서, 내 눈에는 그저 화려하기만 한 아줌마 무리로 보일 뿐이었다. 형수도 선명한 핑크색 원피스에 립스틱까지 바르고 있었다. 우리가 평소처럼 청바지 차림으로 간 것을 보고 형수는 노려보았다. 조카는 성적이 좋다. 체육을 제외하면 전 과목 A다. 집에서는 응석을 부리는 편이지만, 밖에 나가면 말하는 것도 매우 똑부러지고 듬직하다. 그런데도 형수는 아들이 혼자 버스를 타고 친구 집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당에서 아이들끼리만 모이는 일이 있을 때도 절대로 혼자 보내지 않고 차로 데려다준다. 차를 쓸 수 없을 때는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와서 이 아이를 성당에 데려다줘”라고, 동생인 내 남편에게 명령한다. 싫다고 거절이라도 하면 큰 소동이 벌어진다. “뭐야, 당신은 귀여운 조카를 위해 그 정도도 못 하겠다는 거야? 그래, 알았어!”
“일본에서는 귀여운 자식일수록 여행을 시키라고 하잖아.”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지만, 남편은 늘 체념한 듯 “우리 집에서는 그런 거 안 통한다”며 나가버린다. 같은 반 아이들은 혼자 버스를 타고 친척 집까지 가기도 한다는데, 정말 지나칠 정도로 과보호다. 내가 그걸 비꼬면 시누이는 “우리 아이는 유난히 귀여워서 혼자 다니면 납치라도 당할까 봐 걱정돼서 못 견디겠어”라고 대답한다.
사실 시부모님이 시누이 부부와 함께 사는 것도 이 아이 때문이었다. 형수는 산휴가가 끝나자마자 바로 직장(초등학교 교사)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아이는 할머니가 돌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뒤에도 엄마가 아들보다 늦게 집에 오는 일이 많아 “혼자 열쇠를 열고 집에 들어오게 하는 건 안쓰럽다”는 이유로 계속 같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라면 사춘기에 삐뚤어지지만 않는다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틀림없을 거라고 나도 생각한다. 물론 부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래, 나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합격 기원을 해야 하게 되겠지. 시험 전날에는 떡을 사 와야 할 테고, 어쩌면 서울대 정문에 엿을 붙이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신문의 ‘대입 만점 교실’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라디오의 ‘수험생 유의사항’을 꼼꼼히 메모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아…. 우리 명수 때도 분명 큰 소동이 벌어지겠지. 유치원 입학이다, 초등학교 입학이다 할 때마다 가족 전원이 학교에 몰려올 테고, 그날은 당연히 내가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야 할 것이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하면 나와 남편이 불려가 잔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학원에 보내라, 과외를 붙여라 하는 압력도 들어올지 모른다. 아아… 차라리 학원도 과외도 없는 시골 학교에 보내면 안 될까. 아니면 어디 외국으로 가버릴까. 나와 남편은 아이를 시골에서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의 눈이 닿는 곳에 있는 한 교육 문제 역시 우리 뜻대로 쉽게 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12월에 대학입시 공통시험이 끝나면 2월쯤에는 매년처럼 ‘부정 입시’ 사건이 드러나 큰 소동이 벌어진다. 특히 작년(93년)은 대단했다. 2월 중순까지의 수사로 전국 11개 대학에서 총 78억 원이 거래되고, 150명 이상이 사건에 직접 관련되어 구속·조사·수배되었다는, 전례 없는 규모의 대사건으로 발전했다.
사건이 밝혀지면서 관계자들의 각기 다른 입장도 화제가 되었다.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조직적인 브로커가 되어 신문 광고로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모집하고, 1인당 500만 원을 받고 대리시험을 치르게 했다는 사실. 명문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낼 수 없어 부정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대리시험을 맡았다는 학생.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머니가 브로커를 통해 점수를 조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고등학생. 모피 코트를 입고 경찰에 연행되면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내 돈을 내가 쓰는데 왜 간섭하느냐”고 버티던 어머니. 아내와 자식이 부정 입시에 연루된 사실을 몰랐던 아버지. 사건이 보도되자 가족 전체가 자취를 감춘 사람들….
그중에서도 교육학으로 유명한 어느 대학 교수의 아내가 아들의 부정 입시에 관여하고 있었던 일, 월수입 160만 원인 육군 군인의 아내가 브로커에게 2억 원이라는 거액을 건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대학 입시 시즌에 가장 돈을 버는 것은 대학 근처의 여관이나 하숙집이다.
일류 호텔도 아닌데 하룻밤에 10만 원 이상은 흔하다. 지방 학생의 경우 어머니가 함께 올라와 며칠씩 머문다고 한다. 이런 경쟁 사회 속에 있다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한국 청소년의 73%가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두려워진다.
선생님에게 선물을 건네는 풍조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소풍 버스 뒤를 부모들이 자가용으로 따라가고, 호화로운 도시락으로 선생님을 대접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껏들 하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그 화려한 아줌마 패션을 따라 할 용기조차 없다.
나는 아직 돌도 안 된 아이에게 지금부터 이렇게 타이르고 있다. “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네 용돈 정도는 스스로 벌어라. 아르바이트는 좋은 사회 공부가 되니까. 네가 원한다면 고등학교까지는 보내줄 생각이지만, 그 이후는 스스로 알아서 해라. 대학 같은 건 무리해서 가지 않아도 되니까,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을 제대로 익혀라.”
●18. 피곤하니까 이제 그만둘래―신세대의 노동 의식
한국의 ‘오렌지족’은 일본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모양이다. 압구정동 근처에 어슬렁거리며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하룻밤에 백만 원이나 되는 용돈을 써버리고, 여자들에게 작업을 걸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전에 신문에서 오렌지족의 정의를 본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일본의 유아용품을 쓰고 일본 식품을 먹으며 자라 자연스럽게 일본 제품과 일본 문화에 친숙함을 느낀다. 10대에는 연필, 지우개, 가방 같은 일본제 학용품을 사용해 공부하고, 닌텐도의 패미컴에 심취한다. 20대가 되면 헤어스타일부터 옷, 신발까지 전부 일본 제품으로 치장하고, 서울 압구정동 등의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발견하면 오렌지 주스를 건네고, 상대가 그것을 마시면 함께 나이트클럽, 그리고 호텔로 향한다.”
이걸 읽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나, 나 오렌지족이었네. 일본 학용품도 썼고, 지금 입고 있는 속옷도 일본제니까 틀림없이 오렌지족이네. 아니, 우리 명수야말로 진짜 오렌지족이지. 일본 할머니가 보내준 장난감으로 놀고 있잖아. 봐, 이렇게 어린데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 있잖아!” 그러자 남편이 소리쳤다. “오렌지족은 부모가 엄청 부자인 사람들이야!”
오렌지족이 화제가 되었을 때, 나는 새삼 “유행은 만들어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왜 하필 오렌지족이냐 하면, 오렌지를 건네며 데이트를 신청하기 때문이라느니, 오렌지색을 좋아해서라느니, 압구정동을 지나는 지하철 3호선이 오렌지색이라서라느니 하는 엉뚱한 설명까지 눈에 띄었다. 사실 나는 오렌지족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당시,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
어느 잡지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압구정동 가이드 특집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맛있는 집이나 멋진 카페를 소개하는 기사가 아니라, 좀 더 자극적인 것을 만들자,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편집자의 의도였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거리인 압구정동. 그 거리와 어울리는 색은 강한 개성을 상징하는 오렌지.
그래, ‘오렌지족’으로 가자—라고 제안한 것은 중년의 일본인이었다. 그는 “옛날 일본에도 ‘미유키족’ 같은 게 있었지”라며 웃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오렌지족이라는 말은 혼자서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낭비벽이 심하고, 순간적이며, 퇴폐적인 젊은이의 상징이 되었다. ‘사회 질서 확립’을 내세운 김영삼 정권이 오렌지족 일제 단속에 나선 것도 화제가 되었다.
히로폰 상습 사용 등의 혐의로 연행된 오렌지족의 생활이 공개되고, 그 부모의 재산과 수입원까지 추궁되었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신흥 부자들이 세금을 탈루했다느니 하면서, 이번에는 오렌지족의 부모가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해외 유학 중이다가 휴가를 맞아 귀국한 ‘수입 오렌지족’이 여기저기서 소동을 일으켜 골칫거리라며 경찰이 머리를 싸매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고급 승용차 ‘그랜저’를 타고 여자에게 작업을 걸던 ‘수입 오렌지족’이, 주행 중 자기 앞에 소형차 ‘프라이드’가 끼어들자 화가 나서 “프라이드 따위가 감히 그랜저 앞에 끼어들다니 건방지다”며 집단 폭행을 가해 체포되었다. 가해자 다섯 명은 영국과 미국에 유학 중인 부유층 자제들이었고, 그중 한 명은 어느 재벌 기업 부회장의 장남이라고 보도되었다.
일본은 ‘1억 총중류화’라고 하지만, 한국은 빈부 격차가 꽤 크다. 오렌지족 보도만 보고 있으면 그 반대편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서울 안에도 가난해서 도시락을 쌀 수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오렌지족과 그 부모는 더욱 엄격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일부 특출난 사람들보다도, 평범한 ‘중산층’의 의식 변화가 더 심각한 것 같다.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풍조가 한국 사회에 꽤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래 뇌물이 통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형편이 좋았다. 예를 들어 경찰은 교통 단속에 나가면 상당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나도 경험했다. 고속도로에서 제한 속도를 몇 킬로 초과했다가 단속에 걸렸다. 다가온 경찰이 “교통 안전에 협조해 주십시오”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남편이 재빨리 경찰의 손에 오천 원짜리 지폐를 쥐여주자, “안전 운전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떠나갔다. 초과한 속도에 따라 건네는 금액이 달라진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삿짐을 가져왔을 때도 그랬다. 부탁했던 이사업체와 함께 세관에 짐을 찾으러 갔다. 목록과 대조하며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는데 세관 직원이 다가왔다. 새 냉장고와 세탁기(이건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선물), TV와 비디오 등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내가 몇 년이나 사용한 전자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건 수입 금지 품목이라 안 된다”고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판매하려고 가져온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쓰려고 가져온 건데 왜 안 된다는 거죠?” 나와 남편은 항의했다. “팔 건지 아닐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원하면 세금을 내도 좋다.” 누가 봐도 중고품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느냐고 묻자,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만 원 이상은 될 겁니다.”
200만 원? 말도 안 돼! 그럼 정가의 두 배가 넘는다. 나는 이걸 정가의 절반 가격으로 중고로 산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우리가 아무리 따져도 직원은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남편이 소리쳤다. “됐어요. 그런 부당한 세금 낼 바에야 일본 본가로 다시 보내버리겠어요!” 그러자 세관 직원과 이사업체가 갑자기 당황했다.
“제가 잘 말해서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잠깐만 조용히 계세요.” 이사업체가 세관 직원을 구석으로 데려가 둘이서 뭔가 수군거렸다. 잠시 후 돌아온 업체가 말했다. “40만 원(약 5만 7천 엔)으로 정리했습니다.” 세관 직원에게 뇌물을 주라는 것이다. “200만 원 세금 내는 것보다 싸잖아요.”
업체는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피아노가 중고라는 걸 증명하면 애초에 그런 세금을 낼 필요도 없을 터였다. 왠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세관 직원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무 일도 모른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됐어. 귀찮으니까 그냥 내버리자.” 업체에 돈을 건네자, 그들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업체가 서류를 들고 돌아왔다. “이걸로 절차는 다 끝났습니다. 자, 이제 짐을 옮기죠.”
건네받은 서류에는 우리 짐의 내역이 상세히 적힌 목록이 있었고, 거기에 ‘무과세’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도장 옆에 ‘별도로 40만 원 수령 완료’라고 적어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그 40만 원 중 일부는 이사업체의 주머니로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됐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귀찮다. 아차, 그만 흥분해서 길게 써버렸다.
교육계에도 뇌물은 만연해 있다. 초등학교 교사에게까지 돈을 건넨다고 한다. 아이 일로 부모가 학교에 갈 때나 가정 방문 때, 봉투에 돈을 넣어 건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내 아이를 한국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1993년에 출범한 김영삼 정권은 사회에 만연한 검은 돈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잘하고 있다며 나도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시작된 지 겨우 1년 남짓.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돈으로 해결한다’는 사고방식이 남아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어떻게 될까. ‘노동의 대가로서의 돈의 가치’를 모르는 신세대에게 휘둘린 경험을 나 역시 가지고 있다.
한국의 한 출판사에서 일하던 때, 명문 이화여대를 졸업했다는 여자아이가 아르바이트로 들어와 편집 작업이나 취재 방법 등을 내가 가르치게 되었다. 마침 마감 직전이라 바빠서 차근차근 가르칠 여유가 없었고, 직원들은 각자 일을 맡아 분주한 가운데 그녀만 혼자 멍하니 있게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당장 맡길 일도 없었다. 그녀는 소설책을 가져와 혼자 읽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그건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전화가 울려도 책에 몰두해 받지 않는다. 다른 직원들은 바빠서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내가 차가운 음료를 사 오라거나 커피를 타라고 부탁하면 그것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읽고 난 자료들이 흩어져 있으니 책장에 정리하라고 하면 싫다고 한다.
그래서 취재 요령을 대충 가르쳐 내보냈더니 돌아와서는 “역시 어려워서 못 하겠다”고 한다. 교정을 시켜보면 틀린 데 투성이다. 어느 날 밤 10시까지 야근을 시켰더니 집에서 아버지가 ‘그랜저’를 몰고 데리러 왔다.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고졸로 경리에 있던 여자아이는 하루 종일 사적인 전화나 수다에 빠져 있고, 책상 위에는 늘 과자 봉지를 꺼내 놓고 바삭바삭 먹고 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나는 그녀들을 불러 주의를 주었다. 대졸인 여자아이는 울면서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나는 안심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그녀의 일하는 태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일을 해서 돈을 받고 있다는 자각이 전혀 없다. 열심히 하겠다는 의욕조차 보이지 않는다.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눈앞에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얼마 전에는 남편이 그런 신세대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시누이 동료의 딸이 대학 사진학과에 입학했는데, 입시 때도 시누이의 부탁으로 남편이 몇 번이나 촬영과 현상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 학생이 직접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머니가 시누이에게 연락하고, 다시 시누이를 통해 남편에게 전달된다는 점이다. 자료를 빌려달라, 현상 장비를 빌려달라 같은 부탁까지도. 그것만이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달라는 요구가 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사진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누이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남편은 후배의 사진 스튜디오를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사진학과라고 해도 1학년을 막 마친 수준이라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침 9시에 나오라고 했는데 오는 건 11시가 넘어서다. 이유를 물으니 “운전면허를 따려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오후 4시에 오늘은 못 간다고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 이유가 기가 막히다. “아버지 차가 고장 나서 못 갑니다.”
어느 날 남편이 그 스튜디오에 가보니, 그녀가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먼저 가겠습니다. 방향이 같으니까 집까지 태워 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후 7시였다. 남편은 순간 “지하철 타고 가!”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2주쯤 지나서, 일방적으로 “피곤해서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끝. 맡겨둔 스튜디오 열쇠도 돌려주지 않은 채다. 특별히 부유한 집안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딸에게는 남편이 가진 카메라보다 더 고급 카메라를 사주었다고, 남편은 분통을 터뜨린다. 촬영 여행이며 장비며 학비며 해서, 딸은 한 달 평균 100만 원(약 14만 엔) 정도를 쓴다고 한다. 어머니 월급보다 많은 액수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라는데, 도대체 집에서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이 상식을 벗어나 있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본적인 접객 매너조차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고 느낄 때가 있다. 주문을 해도 대답도 하지 않고, 불쾌한 표정으로 가버린다. 껌을 쩝쩝 소리 내며 씹는다. 손님에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그럴 때마다 허탈해진다. 사회에 나와 사람을 대할 때의 예절이나 일을 할 때의 태도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주변에서 가르쳐주는 어른은 없는 걸까. 그런 것들이야말로 학력보다 훨씬 중요한 것일 텐데.
애초에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를 너무 응석받이로 키우는 게 문제다. 그러니 아이들은 몇 살이 되어도 부모에게 용돈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부모가 지나치게 감싸주기 때문에 독립하지 못하면서도 부모에게 효도는 하게 되는 걸까. 어쨌든 한국의 신세대는 결코 돌연변이처럼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10대 초반부터 30대까지를 ‘신세대’라고 부르며, 기존 세대와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다르다고 구분한다. 같은 30대라도 전반과 후반은 가치관이 꽤 다르다. 예전에 흥미로운 조사가 신문에 발표된 적이 있다. 한국청년회의소가 1989년에 전국의 20~40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다.
ㅡ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원해서 싸운다” 34.3%
“강제로 징집되지 않으면 자원하지 않는다” 41.6%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전쟁을 피한다” 23.1%
ㅡ 남북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 44.7%
“개인이 희생된다면 통일은 필요 없다” 38.7%
“모르겠다” 16.2%
ㅡ 결혼 후 장남은 부모와 동거해야 하는가
“그렇다” 19.4%
“다른 형제가 동거한다면 괜찮다” 65%
“다른 형제가 하지 않아도 장남이 할 필요는 없다” 15%
지금 같은 조사를 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병역 의무가 있음에도 전쟁이 나면 피하겠다고 답한 사람이 4분의 1 가까이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꽤 충격적인 일이다. 한편 광고회사 ‘제일기획’이 93년에 서울·부산·대구·인천·대전·광주 등 6대 도시에 사는 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생활에 불만이 있다” 26%
“만족한다” 37%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41%
“돈보다 여가 시간을 갖고 싶다” 48%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7%
“어떤 일이 있어도 이혼은 안 된다” 48%
“스트레스가 많다” 51%
또 ‘현대리서치’가 최근 Y대 학생 9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요즘 대학생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가 81.2%였다. GNP 차이가 아무리 크고 사회 환경이 아무리 달라도, 젊은이들의 의식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보다 가족이나 여가를 중시하는 생각은, 오히려 가족 유대가 강한 한국인에게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상사가 야근을 시켜도 거부하는 젊은 회사원이 늘었다거나, 회사 동료끼리의 회식도 저녁에는 모이기 어려워 점심으로 바꾸는 곳이 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새 둥지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 시아버지는 말하자면 ‘원조 새 둥지족’일 것이다.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는 날이 1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가정적인 건 아주 좋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분이라 나는 좀 괴롭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여기 시원한 맥주 한 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며느리 입장에서는 혼자 맥주 병을 따기는 어렵다.
아니, 며느리라서가 아니라 한국에서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 앞에서 술이나 담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낮에 원고를 다 쓰고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갑자기 김치를 들고 찾아와서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 나는 시부모 눈에는 역시 ‘신세대’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은 오늘도 쾌청 (1998 도다 이쿠코)
●19. 세탁기로 삶은 달걀 — 이상한 습관에 대하여
일본과 한국은 매우 닮아 있지만, 일상생활 속에는 아직도 나로서는 풀 수 없는 신기한 것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혹은 한국만의 생활의 지혜도 있다.
■ 빨래를 왜 삶는가
표백 비누라는 고형 비누를 문질러 바른 흰 속옷이나 양말 등을 큰 금속 대야에 넣는다. 그리고 가루비누를 뿌려 보글보글 삶는다. 부엌에서 이걸 하면 표백제 냄새가 가득 차서 나는 견딜 수가 없는데,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렇게 한다. 왜일까?
“소독에는 끓이는 게 제일이다. 게다가 표백 효과도 높다”는 대답이다. 정말? 내 관찰로는 여러 번 푹 삶은 속옷은 섬유가 약해져서 구멍이 나기 쉽고, 뻣뻣해진다. 그런데 이것을 바삭하고 기분 좋다고 많은 한국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게다가 왜 소독이 필요한 걸까. 기생충 때문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요즘은 그런 얘기도 듣지 못했고, 그냥 보통 세탁만 하면 왜 안 되는지 몇 년이 지나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무려 한국의 전자회사가 세계 최초로 ‘삶는 세탁기’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세탁기 안에서 삶은 달걀을 만들 수 있다”는 광고에 나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누가 세탁기에서 삶은 달걀을 만든다는 거지? 그건 그렇다 치고, 한국 말고 빨래를 삶는 나라가 또 있을까. 없다면 이것은 세계 최초이자 동시에 세계 최후의 위대한 세탁기다. 과연 판매는 어땠을까 궁금했는데, 출시된 지 1년쯤 지나자 이 ‘삶는 세탁기’는 매장에서 사라져 있었다. 안 팔린 걸까, 아니면 뭔가 중대한 결함이 있었던 걸까.
■ 번거로운 걸레질의 복음, 걸레 청소기
이건 솔직히 나도 갖고 싶다. 온돌 바닥 청소는 먼저 청소기나 빗자루로 먼지를 제거하고, 마지막에 걸레질을 한다. 나는 한국 가사 중에서도 이 걸레질이 가장 싫다. 미끄러워서 바닥에 엎드리듯이 닦아야 한다. 일본처럼 방이 양실과 다다미로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니라, 모든 방이 기본적으로 걸레질이 필요한 바닥이다.
전에 살던 15평 아파트에서도 꽤 힘들었는데, 지금의 38평에서는 집 안을 전부 걸레질하고 나면 땀투성이가 되고 어지러울 정도다. 이 걸레 청소기. 겉모습은 보통 청소기와 같다. 흡입구 중앙에 회전식 스펀지가 달려 있어서, 이것을 사용하면 사람이 걸레질하는 것보다 3~4배 깨끗해진다는 것이 광고 문구다. 사용 후에는 스펀지를 떼어 물로 씻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사줘요~.
■ 김치가 맛있게 익는 냉장고
이것도 한국다운 발명이다! 맛있는 김치는 식탁에 필수다. 원래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에 대량으로 담가,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김치 항아리를 묻어두는 것이 최고의 저장법이었다. 그런데 마당이 없는 집이 늘어나고, 겨울에도 배추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에는 예전처럼 한 번에 수백 포기를 담글 필요는 없다. 조금씩 담가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조금’이라 해도 일본과는 가족 수가 달라 일본인의 눈에는 꽤 많은 양이다. 큰 밀폐용기 두 개 정도는 담근다. 그래서 한국의 냉장고는 일본 것과 구조가 다르다. 채소칸은 작고 대신 윗칸이 크다. 그리고 김치가 맛있게 익도록 온도를 따로 조절할 수 있는 김치 전용 칸이 있는 제품이 인기가 있다.
■ 전동 깨갈이
이것도 사려고 생각 중이다. 한국 요리에 깨는 필수다. 볶은 깨를 갈아 쓰면 향이 좋다. 손전등 정도 크기에 건전지를 넣어 사용한다. 형님이 쓰는 것을 보고 나도 한눈에 반해버렸다.
■ 전자제품이 크다
결혼하고 전자제품을 사려고 하면서 일본과 크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전기밥솥은 8~10인용이 일반적이다. 더 큰 것도 있다.
일본의 가전제품 매장이라면 오히려 1인용으로 작고 귀여운 제품이 많이 갖춰져 있을 것이다. 세탁기도 크다. 7kg 이상이 대부분이라, 나는 겨우 가장 작은 5.2kg짜리를 찾아서 샀다. 지금까지 불편한 적은 없지만, 시누이네나 시형네 것과 비교하면 꽤 작아 보인다.
■ 주부가 믿지 않는 것
참기름과 고춧가루. 둘 다 식탁의 필수품이다. 그런데 슈퍼 등에서 파는 이들 제품은 “믿을 수 없다”고 현명한 주부들은 말한다. 참기름은 먼저 깨를 사서 시장에 가서 짜게 한다. 100% 순수 참기름이 완성된다.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참기름 제조기도 본 적이 있다.
필요할 때 바로 신선한 참기름을 짤 수 있다는 광고인데, 나는 그때까지 참기름의 신선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어서, 그 기계 자체가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고춧가루도 마찬가지다. 맑게 개인 하늘 아래 빨간 고추가 늘어선 풍경은 한국의 가을 풍물이다. 바싹 마르면 하나하나 정성껏 행주로 닦아 시장에서 빻는다.
하지만 한 집에서 1년 동안 쓰는 양은 상당해서, 그것을 닦는 데만 하루가 걸린다. “왜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하세요. 시장에서 이미 가루로 된 걸 사면 되잖아요…” 시어머니는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얼굴로 대답한다. “시장에 파는 고춧가루는 일일이 닦아서 만드는 게 아니잖아.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그대로 빻는 거니까, 집에서 먹을 건 깨끗이 닦아서 빻는 거지.”
과연 일부러 집에서 말리는 것은 단순히 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신경을 쓴다면 외식해서 김치를 먹을 수 없을 텐데, 모두 아무렇지 않게 잘 먹는다. 내 생각에는 그 매운맛으로 먼지나 오염물질이 다 살균되는 게 아닐까 싶다.
■ 믿는 것, 메주
한국 가정에서는 어디서나 김치를 담근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도 집에서 만들어 항아리에 넣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둔다. 반대로 김치는 온도가 높아지면 금방 발효되어 시어지기 때문에 햇볕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된장이나 간장을 만든다고 하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황토색 벽돌 같은 ‘메주’라는 완성된 덩어리를 사서 그것을 가공하는 것이다. 주부들은 고춧가루는 믿지 못하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메주는 믿는 모양이다. 집에서 만들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대부분 시장에서 산다. 나는 속으로 이 콩이 수입산일지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한다.
■ 애국심에 반하는 수입품 범람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왜 칫솔이나 고무장갑, 설거지 스펀지까지 외국 제품이 넘쳐나는 걸까. 한국 제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생활용품 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일본 제품이다. 프라이팬, 칼, 식기 등도 많다. 물론 한국 제품보다 상당히 비싸다. 그런데 왜 살까? “여러분, 일본 싫어하지 않았나요?”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반일 감정과 일본 제품 신앙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참고로 ‘일제(日帝)’와 ‘일제(日製-일본 제품)’는 발음도 같다. 미국 제품도 많다. 문구점에서 볼펜을 사려고 했다. 한국산 350원, 미국산도 350원, 일본산은 800원이었다. 자, 무엇을 고를까. 나는 미국산을 골랐다. 아마 한국인도 그럴 것이다. 참고로 ‘미제(美製)’와 ‘미제(美帝-미국 제국주의)’도 발음이 같다.
최근에는 중국산도 많다. 고사리, 밀가루, 쌀, 콩, 고추, 마늘 등 식재료도 상당히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겉보기로는 원산지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농산물을 먹자”는 캠페인도 힘을 잃기 쉽다. 케이크 장식용 꽃 과자나 생일 카드도 중국산이 많다고 한다.
“그런 것까지 수입하다니 말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 것을 씁시다.” 라디오 아나운서는 한탄하는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한국은 반대로 공업제품이나 기계 등 단가가 높은 물건을 중국에 수출해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 이가 나간 접시는 불길하다
조금이라도 가장자리가 깨지면 시원할 정도로 바로 버린다. 나도 알면서도 큰 접시 같은 건 아까워서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런 한국 사람이 중국에 가면 식사할 때마다 불평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멀쩡한 접시를 찾는 게 더 드물기 때문이다.
■ 중고는 싫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남편 가족의 경우는 철저하다. 우리가 어디선가 책상을 주워오면 “당장 버려라”고 난리가 난다. 그 정도이니 중고 가구를 사겠다고 하면 큰일이다. 일본에는 흔하지만 장난감 대여도 거의 없다. 있어도 이용자가 적다. 친척에게 물려받은 건 괜찮지만, “남의 중고는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 옷은 금방 작아지니 중고로 충분하다고 믿는데 말이다.
■ 골동품 이야기
나와 남편은 골동품도 좋아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취미지만, 가끔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오는 게 즐겁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1950년대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선풍기를 우리가 없는 사이에 버리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버려지지 않도록 숨겨두고 있다.
광주 시장에서 일제시대 책을 파는 걸 본 적이 있다. 교과서나 잡지 속에 사토 하치로의 친필 사인 시집도 있었다. 일제시대를 조사하는 것이 취미인 나에게는 보물산이었지만, 판매자는 가치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나는 다섯 권을 집어 들고 “아저씨, 어차피 안 팔릴 거죠? 다섯 권에 5천 원이에요” 하고 돈을 놓고 왔다.
■ 약수 신앙
한국 가정에서는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을 때는 끓여 마신다. 그렇다면 물은 어떻게 구할까. 하나는 생수, 또 하나는 ‘약수’다. 약수는 산에서 솟는 물이다. 해발 수천 미터 산이 아니라 서울 시내 500미터 정도 산 중턱의 물이라도 모두 “깨끗하고 건강에 최고”라고 믿고 그대로 마신다.
가끔 세균이나 오염물질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있어도, 모두 “내가 마시는 약수는 괜찮다”고 믿는다. 나 같은 사람은 생으로 마시는 게 찝찝하다. 남편 가족도 여기저기서 약수를 떠온다. 시아버지의 아침 일과는 물통을 메고 산에 가서 약수를 떠오는 것. “저 약수 마시고 건강해진 것 같아”라고도 말씀하신다.
내 생각에는 물 자체보다 매일 등산하고 물을 마시는 습관이 건강에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약수도 있다. 신경통이나 피부병에 좋다고 소문난 곳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심지어 그 근처에 아예 눌러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거의 신앙이다.
나도 어느 유명한 약수를 마셔본 적이 있다. 겉보기엔 그냥 물이지만, 입에 넣으면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과 탄산 같은 자극이 확 퍼져 놀랐다. 이 물에 인스턴트 커피를 넣었더니 바로 새파랗게 변했다. 이런 신기한 물이라 몸에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걸 마셔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서울은 오늘도 쾌청 (1998 도다 이쿠코)
●21. 한국을 통해 보이는 일본 ― 혐한과 반일 사이에서 ―
언제부터인지 일본인은 혐한, 한국인은 반일이라는 공식이 서로의 잠재의식 속에 입력되어 버린 듯하다. 그것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까지. 예를 들어 일본의 중학생에게 한국에 가보고 싶은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한다. “가고 싶지 않아.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을 싫어한다고 하니까.” 한국의 중학생도 같은 질문에 비슷하게 대답할 것이다. “일본은 싫어. 한국을 싫어하니까.”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매스컴이 혐한·반일을 외칠 때마다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든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한국의 학교에서 철저한 반일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도한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자신들이 반일 교육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없다. 단지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배우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이미 양측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한국에서 살면서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일본인은 이렇다”, “한국인은 저렇다” 식의 논의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와 당신이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인격을 가진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신기한 것은 일본에서는 미국인이 쓴 일본인론이 많이 읽히고, 서양인의 눈에 일본인이 어떻게 비치는지에 대해 꽤 신경을 쓰면서도, 유독 한국에 관해서는 일본인이 한국인을 어떻게 보는가에 관한 책들만 출판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이 쓴 일본인론은 한국에서 많이 출판되지만, 그 번역본이 일본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한다.
세상에 나온 수많은 한국 문화론만 읽고 한국인을 다 안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보다는 가까이에 사는 한국인 유학생이나 재일 코리안에게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책에 적힌 내용은 이웃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발판)일 뿐이며,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인간 관찰의 참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가지고 한국인은 이렇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일본에서 잘 팔린 한국론의 내용을 보면, 이웃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일본과 비교하여 어디가 뒤떨어졌는지, 어디가 부족한지를 나열한 것들이 적지 않다. 나는 그런 것에 질려버린다. 그 저자에게는 일본인야말로 세계의 모범이 되어야 할 우수한 민족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논리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다.
애초에 일본, 일본인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식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나 민족으로 묶지 말고, 한 개인으로서 외국인과 사귀는 것.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한국인이나 이란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자. 매스컴에서는 최근 일본에 오는 한국인이나 이란인이 급증하고 있다고 덧붙일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무서운 거야.” “이란인은 조심해야 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것은 많은 사람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때 “그런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분명하게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예를 들어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를 계기로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소름이 끼친다.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한국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일본과 한국 사이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 반일·혐한 감정이 폭발했을 때, 나를 믿고 목숨을 걸고 지켜줄 사람이 곁에 있을까.
혹은 내 가족이 일본에 살고 있는 상태에서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주변 모든 일본인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목숨을 걸고 가족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생각하면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떠올라 이야기가 비장해지기 쉽지만, 지금 나의 솔직한 마음은 하나로 묶인 국가나 민족보다도 내 가족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 측뿐 아니라 한국 측에도 반성해주었으면 한다. 한국의 매스컴은 개인의 의견을 일본인의 대표 의견으로 다루는 것을 그만두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일본인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일본인은 왜 저러냐”는 식으로 불똥이 튀는 것에 나는 이제 진저리가 난다. 한국인이 쓴 일본인론을 보면 반드시 나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인은 솔직하게 속마음을 드러내지만 일본인은 결코 상대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인은 본심과 겉치레를 구분하는 이중성을 가진 민족이다.” 하지만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처음 만난 상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물며 매스컴을 상대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게다가 일본이든 한국이든 정치인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직한 사람도 있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일상에서 일본인끼리 하나의 문제를 두고 진지하게 토론할 기회가 거의 사라졌고, 자기주장이 서툰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성이 아니라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친구끼리 식사를 할 때 서로 무엇을 먹을지 묻고, 비슷한 음식이나 가격이 같은 것을 주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따르는 형태가 된다. 나에게는 한국에 와서 받은 첫 문화 충격이 사실 이것이었다. 몇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러 갔을 때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내가 “다들 뭐 먹을 거야?”라고 묻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뭘 먹든 상관없어. 당신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먼저 정해.” 나는 어떤 메뉴가 있고 무엇이 맛있는지도 몰랐고, 일본에서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지금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으면 바로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일본에 돌아가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도 내 고집을 조금은 받아주게 하고 있다. 이런 것은 단순한 습관의 차이에 불과하다.
그것을 마치 국민성의 차이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한다. “오천 년 민족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그에 비해 일본은 겨우 이천 년도 안 되는 역사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한국인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되묻는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곰의 자손입니까?” 그런 신화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한국인이 일본을 잘 모른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 역시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일제(日帝)’라는 말조차 몰랐고, 식민 통치에 대해서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으며, 관심도 없었다. 반공주의라고 들으면 빨간 옷을 입고 다니면 안 되는 건가 생각했고, 학생 시위 장면을 보면 서울이 전부 잿더미가 된 줄 알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마 한국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피장파장이다. 이제 한국에 산 지도 오래되었고, 일상적으로 쓰는 한국어는 거의 한국인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칭찬도 듣지만, 지금도 미용실과 병원에 가는 것은 여전히 꺼려진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말이 많아서 당황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나는 외국인이다”라고 털어놓는 것은 어쩐지 억울하다. 왜 여기 있느냐, 어디서 왔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는 등 호기심 가득한 질문 공세를 받으면 하나하나 대답하는 것도 지친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무난하게 넘기고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 외에는 외국인이라고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가끔은 한국어로 잠꼬대도 한다고 한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평소에는 일본어와 한국어 중 어느 쪽으로 생각하세요?” 특별히 일본어만, 혹은 한국어만으로 생각하려고 의식하지 않는 한, 내 머릿속에서는 두 언어가 뒤섞여 공존하고 있다고 답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나의 문장 안에 두 언어의 단어가 섞여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りんごタソッケサルカ(사과 다섯 개 살까)” “ピヘンギピョ予約しなくちゃ(비행기 표 예약해야지)” “メクチュ買ってこよう(맥주 사오자)” 하지만 나는 결코 완전한 이중언어 화자는 아니다.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는 단어는 도무지 외워지지 않아서 곤충이나 물고기, 식물 이름 등은 사전을 찾아봐도 금방 잊어버린다.
또 신문이나 잡지를 읽으면 반드시 몇 군데는 처음 보는 표현이나,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의미를 정확히 몰랐던 표현이 나와서 사전을 찾게 된다. 또 사회 문제나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풍자성이 강한 한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웃을 수가 없다. 모르는 것이 나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새로운 표현을 접할 때마다 신선한 기분으로 노트에 메모해 둔다.
그런데 외모만 보면 나는 한국인처럼 보인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참고로 중국에서는 반드시 “조선족”이라고 불렸다). 반대로 남편은 어디를 가든 일본인으로 오해받는다. 예전에 남대문 시장에 송이버섯을 사러 갔을 때, 나는 가게 아저씨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저 일본 아저씨한테 잘 말해서 이거 좀 사게 해봐.” 순간 남편과 얼굴을 마주보고 크게 웃었다.
가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농담을 하기도 한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고, 남편은 한국에서 자란 일본인이에요.” 그러면 상대는 “아, 그렇군요” 하고 완전히 믿어버려서 오히려 내가 당황할 때도 있다. 서울 시내의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는 웨이트리스가 계산서에 손님이 내국인(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체크하는 칸이 있는데, 언제 봐도 나는 내국인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 내가 만약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더라도 일본인이 비난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 반대로 도쿄에서는 내가 남편을 곤란하게 만든 적도 있다. 오랜만에 유학생 친구들과 신주쿠에서 잔뜩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일본인 친구와 둘이 큰 소리로 한국어로 떠들다가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일본인 때문에 한국인이 오해받을 만한 짓은 제발 하지 말아줘.” 두 사람 몫의 짐을 들고 있던 남편은 곤란한 얼굴로 우리에게 애원했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은 많다. 그중에는 무엇을 하든 “나는 일본인이다”라고 굳이 밝히는 사람도 있다. 본인은 거만하게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처음부터 특별대우를 기대하는 속셈이 보이는 것 같아서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제로 내국인에게는 불친절하던 한국인이 상대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태도가 확 바뀌는 장면을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게다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유명 재계 인사를 인터뷰할 때, 한국 잡지 기자보다 일본 프리랜서 작가 쪽이 약속을 잡기 더 쉽다. 덕분에 나는 한국에서 일하기가 수월해 고맙지만, 남편은 가끔 이런 한국인의 역차별(?)에 분개한다.
확실히 한국 기자는 못 믿겠다고 인터뷰를 거절하면서 일본인과는 만나주는 것은 생각해보면 어딘가 이상한 이야기다. 나를 ‘친한파’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 유학하고, 이후 이 나라의 문화를 일본 매스컴을 통해 소개하는 일을 하며, 지금은 한국인과 결혼해 서울에 살고 있는 나를 주변 한국인들이 친근감을 담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친한파’라는 말을 들어도 나는 전혀 기쁘지 않다. 왠지 한국 정부 편에 선 사람처럼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혹은 ‘한국 워처’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별로 와닿지 않는다. 나는 한국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을 통해 일본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직함을 붙이라면 뭐라고 해야 할까. 일본인이면서도 일상적인 사고방식은 상당히 한국인에 가까워져버린 나…. 굳이 말하자면 ‘반쪽일본인(パンチョッパリ)’ 일까. 뭐라고? 직함 따위 필요 없다고? 나는 ‘명수 엄마’라고? 네네, 맞는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