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불통4.3
4.3이 권력화 되었다는 소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에는 4.3유족단체가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성명까지 낼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그 권력은 무소불위에 가깝다. 공무원들은 4.3단체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의원에 출마하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4.3에 대해 립서비스를 해야만 정치인으로 대우받는다. 4.3은 제주도를 통치하는 궁전이었고, 그 누구도 반대해서는 안 되는 범접할 수 없는 성소였다.
제주의 4.3에는 ‘주인’이 있다. 4.3단체라고 불려지는 단체들과 일부 인사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어느 누구도 이들을 4.3의 ‘주인’으로 임명하지도 않았고 인정하지도 않았지만 어느 새 이들은 온갖 밥상에 콩 놔라 배 놔라 호령을 하고, 이에 반대했다가는 불벼락을 감수해야 한다. 이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4.3에 관한 방송 출연이나 언론 인터뷰 등에는 빠지는 일이 제주의 4.3을 주무르는 지배자들이었고, 그래서 그들끼리 높은 울타리를 치고 타의 근접을 불허하는 그들만의 ‘4.3동아리’였다.
제주4.3이 다시 시끄럽다. 제주4.3평화재단에 경우회 인사가 재단 이사로 선임된 것을 두고 이들 ‘4.3동아리’가 4.3재단 김영훈 이사장의 독단이라며 딴지를 걸고 나섰다. 경우회 인사가 이사로 선임될 때 ‘4.3동아리’의 일부 인사들도 이사로 선임되었다, 같은 날 같은 방법으로 이사에 선임되고도 자기 선임은 민주이고 타인 선임은 폭거라는 주장이 우습기까지 하다. 경우회 인사 이사 선임이 ‘폭거’라면 4.3동아리 3인의 이사 선임은 기득권일까.
경우회 인사가 4.3재단 이사에 선임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그들끼리 만의 울타리를 고수하겠다는 오만이며, 그들 역시도 편향된 시각의 독선에 빠져있다는 증거이다. 이들이 이런 주장을 부끄럽지 않게 태연히 할 수 있다는 것은 권력화한 ‘4.3동아리’가 이제 폐쇄적으로 진화하고 사유화 되어간다는 증거의 척도이다. 경우회 인사가 재단 이사로 적절치 않다면 폐쇄적 편향적 ‘4.3동아리’들도 재단 이사로 적절치 않은 것은 불문가지이다. 언제쯤에나 입으로는 화해 상생을 외치면서 손으로는 자기들만 독식하는 두 얼굴의 ‘폭거’를 끝낼 수 있을까. 경우회 이사 선임이 폭거라면 그동안 4.3을 지배했던 동아리패들에게 이사 선임을 하는 것도, 이들이 돌아가며 회전문 이사를 맡는 것도 폭거이기 때문이다.
‘민주’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기와 다른 낯선 타인에 대한 관대와 배려이다. 언제나 좌우익이 대립하는 4.3에서 자기들만의 고집을 주장하는 쪽은 위험한 집단이다. 1948년의 4.3도 그렇게 해서 발발했기 때문이다. 재단이사의 선임은 좌우익이 공히 평등하게 나눠져야 탈이 없고 시끄럽지 않은 법이다. 공정하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측의 인사에 대해서는 트집을 삼가고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상대측 인사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인사야말로 재단이사로는 적절치 않은 인물이다.
4.3진상조사에 대한 경우회의 입장에는 수긍할 점이 있다. 그간의 4.3진상조사가 일방적 편향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3진상보고서에는 선동과 왜곡이 넘쳐나고 집필자들에게는 종북 성향이 넘실거린다. 공산당에는 면죄부를 주고 대한민국에는 중오를 뿜어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우익인사들이 사퇴하면서 진상조사업무가 좌편향으로 기울었기 때문이었다. 좌우인사 불균형이 화해와 상생보다는 오늘의 일방과 독선, 증오와 저주를 초래한 것이었다. 4.3평화재단의 이사 선임에는 언제나 평등과 공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공정하면 싸움이 생기지 않고, 그리고 서로에게 공정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이고, 공정은 서로의 의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