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열기가 연일 지각을 달구던 7월 하순에 열하의 나라 베트남을 다녀왔다. 국제노동조합단체 인더스트리올(Global Union industriALL)의 아시아지역 코디네이터인 윤효원 동지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노동총연맹(VGCL, 베트남노총) 간부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인더스트리올은 세계 140개 나라 5천만 명의 노동자가 속한 광산․에너지․제조업 관련 국제노동조합조직이다. 베트남은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의 하나였다. 1,100년 넘게 중국의 침략과 복속의 시련을 겪은데 이어 1859년부터 1975년까지 116년 동안 프랑스, 일본, 미국의 제국주의와 신식민지 지배를 받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민족해방과 통일을 이룩한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공존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인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노동운동과 노사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짧은 기간에 깊은 내용까지 다 볼 수는 없겠지만 생동감있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여정에 올랐다.
사회주의 공화국 베트남의 노동상황
베트남의 노동조합 규모는 우리와 비교가 안될 만큼 크다. 먼저 노조는 국영부문과 민간부문으로 구분된다. 국영부문은 산업․업종별 국영기업 노조들이 산업별조직체계를 이루고 있고 조합원은 약 370만여 명이다. 민간부문은 사기업과 외국투자기업의 노조들로 조합원은 약 310만여 명이다. 기업별노조를 단위노조로 하여 지역별․산업단지별 연맹체로 편제되어 있고 이들이 모여 성 연맹(한국의 도 지역본부)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들 63개의 성 연맹(중앙직할시 5개, 58개 성)이 모인 조직이 1929년 7월28일에 창립한 베트남노총이다. 베트남노총의 단위노조 수는 11만 3천여 개이며 조합원은 770만 명, 조직률은 80% 수준이다. 조합비는 조합원이 임금의 1%를 내고 모든 사용자가 2%(일종의 조합세)를 내는데, 조합비의 40%와 사용자 부담분의 35%는 상급단체에 납부한다. 베트남노총은 상근자가 전국적으로 8천여 명에 이르고, 각 지역에 호텔, 휴양소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최저임금은 지역별․산업별로 정해진다. 지역별 최저임금은 국가임금위원회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최소한의 생계비, 사회경제적 상황 및 노동시장의 임금수준을 고려하여 권고한 수준을 기초로 정부가 결정한다. 국가임금위원회는 15인(노동보훈사회부, 베트남노총, 중앙사용자대표 각 5인)으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노동보훈사회부 차관이다. 산업별 최저임금은 산업별 단체교섭을 통해 정하고 산업별 단체협약에 명시하되 지역별 최저임금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 올해 지역별 월 최저임금은 제1지역 270만 동(약 13만 5천 원), 제2지역 240만 동(약 12만 원), 제3지역 210만 동(약 10만 5천 원), 제4지역 190만 동(약 9만 5천 원)이다.
노동시간은 1일 8시간 주 48시간을 원칙으로 하며 초과근로는 1일 4시간, 월 30시간, 연 200시간 이내로 하되, 국가는 1주 40시간 근무를 사용자에게 권장하고 있다. 파업은 대부분 불법파업으로 2010년 424건, 2011년 978건, 2012년 548건이 발생했고, 그 중 75~80%가 외국인기업에서 발생했다. 원인은 임금문제가 대부분이며 과도한 근무목표 할당, 지나친 잔업, 일방적 근로계약 종료, 불법 해고, 체벌․협박․욕설 등 인권모독도 주요 요인이다.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수도 하노이까지 가는 비행기는 대부분 베트남 사람들로 차있었고 드문드문 한국인과 유럽인이 끼어 있었다. 한류의 영향인지 최근 한국을 찾는 여행객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 스튜어디스가 전했다. 약 네 시간 걸려 도착한 하노이 공항의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더위에 습기가 매우 많아 끈적거렸다.
노조간부 훈련프로그램은 중부지역인 후에시와 다낭시에 있는 베트남노총 소유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주제는 노동조합 역할과 기능, 국제노동기준, 단체교섭 등이었고, 방식은 안내강의와 그룹토론 그리고 정리하는 강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참가자 수는 중부지역인 후에시․쾅빈성․쾅트리성과 다낭시․광남성․광아이성에서 온 50명이었다. 이들의 직책은 대부분 단위노조의 대표, 지역연맹의 간부, 산업단지연맹의 간부였다.
노조의 역할을 생산성 향상으로 보는 베트남노총
후에시는 남북베트남 당시의 군사경계선 바로 밑에 있는 도시로 19세기 이후 왕조의 도읍지였다. 치열한 접전으로 많이 파괴되었지만 왕조의 위용을 드러내는 유산이 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농업도시의 풍광에 섬유․봉제부문이 주산업이다. 노동자의 숙련도가 낮고 노동이동이 심한데다 단체교섭은 행해지고 있으나 단체협약은 32%가 미체결상태이고 내용도 빈약하다고 한다. 파업은 단위노조를 무시하고 상급단체에 해결을 기대하는 형식의 들고양이 파업(wildcat strike)이 대부분이다. 그에 따라 지역연맹 대의원대회에서는 숙련향상과 조화로운 노사관계를 운동기조로 단체교섭의 활성화, 단체협약 내용개선, 노조민주주의 발전, 조직 확대를 실천과제로 설정하고 있었다. 참가자들도 이번 교육을 통해 단체교섭의 방법 개발과 단체협약 내용의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다낭시의 경우 공업단지는 6개, 조합원 수는 7만여 명이며, 노조조직률은 70%이고, 노조조직률 중 40%는 외지인이다. 주로 봉제, 양초, 신발, 전자부품, 식품 등 경공업이 주류이며 한국기업도 많이 진출해 있었다. 매년 파업이 2~3건씩 발생하는 가운데 단체협약 체결율은 72%이며 그 내용도 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안정적인 활동을 하는 노조는 53%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근로계약도 없이 인턴이나 기간제 노동자를 임의로 해고하는 등 노조가 고용불안을 해결하지 못하자, 노조에 대한 불신과 참여를 기피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무노조기업에 대한 조직화대책과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사용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외국인 교육과정은 윤효원 동지의 열강 덕분에 역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들의 의식상태는 조별 그룹작업 결과에서 잘 드러났다. 그 하나가 ‘노조란 무엇인가’였다. 노동조합의 생성․발전은 자본주의의 속성 때문에 필연이라고 하지만 노동조합운동이 수백 년의 나이테를 새기는데 여전히 되풀이되는 질문에 대한 사회주의 국가 노동자들의 답은 무엇일까? 참가자들은 노조의 정의에 대해 이해하며,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노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는 대부분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들었다. 노동생산성 향상은 분배의 원천과 노동자의 몫을 늘려 노사 모두에게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임금 결정의 첫째 기준으로 한결같이 노동생산성을 들었다. 그리고 노동생산성을 늘리는 방법도 나름대로 제시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을 실제로 계산해보거나 노동생산성 향상만큼 실질임금이 올랐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사용자의 논리인 생산성 임금론이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중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법률규정이었다. 노동법 제90조는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노동생산성 및 근로의 질에 따라 결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베트남노총과 지역연맹은 숙련향상을 통한 노동생산성 증대를 기본과제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베트남노총 간부가 생산성 임금론에 대한 강사의 강한 문제제기에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면서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참가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법률상으로 매우 중요하게 규정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단체교섭은 민간기업이나 산업단지의 경우 기업별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단체교섭의 목표설정이나 구체적인 진행과정, 전술에 대해 참가자들은 거의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참가자들은 단체교섭의 목표가 요구조건의 획득만이 아니라 조직력의 강화에 있고, 강한 현장조직력이 단체교섭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설명이나 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단체교섭을 열심히 해야 좋은 단체협약을 맺을 수 있다는데는 동의하면서도 굳이 긴장을 조성하고 파업을 하면서까지 교섭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매년 10%씩 사용자가 알아서 임금을 올려주는데 일을 많이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었다. 단체교섭을 교섭대표가 사용자와 마주앉아 ‘주고 받기식(give and take)’의 흥정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강사의 설명이 사실로 느껴졌다.
노조의 기능과 단체교섭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단체행동에 있어서 조직적 모순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단체교섭이 교섭대표들 간의 주고받기식 협상이 되다보니 현장의 불만이나 요구가 제대로 해소될 수 없고, 그 결과 일부에서 불만을 표출하며 들고양이 파업을 하는 것이다. 또 사용자가 주도권을 쥐는 기업별 대표 교섭 때문에 조합원들이 문제해결을 단위노조에 기대하기보다는 상급단체나 행정기관을 찾아가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왜곡된 단체교섭 관행의 산물로 생각되었다.
단체교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노동자의 생활상의 요구를 억제시킬 수밖에 없는 이런 교섭상황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자본주의체제 하의 노조 원리의 실천이나 단체교섭의 경험이 일천한 탓일 수도 있다. 또한 탐욕스러운 자본의 횡포가 아무리 지독하더라도 외세의 침략을 이겨낸 정의로운 민족해방의 열정으로 언제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사회주의 지향의 시장경제’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공산당 정부나 베트남노총의 초조한 사명감이 노동자의 양보를 강제하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문이 들었다. 공산당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격랑을 헤치고 고립무원의 사회주의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외 자본과 기술을 가능한 한 많이 끌어들여 경제를 키워야 하고, 따라서 노조의 협조주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민대중은 언제, 어느 수준까지 인내해야 할지를 정부가 제시해야 할텐데 방침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잘못된 제도나 관행에 길들여지는 경우 이를 제자리로 옮겨놓기까지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희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베트남 노동운동의 고민도 매우 깊겠다는 생각과 함께 노사관계의 파행을 막기 위해 베트남노총의 할 일을 생각해보았다. 베트남노총은 노동운동의 총본산으로서 운동의 목표를 정확히 세우고 노동관련 제도․정책을 개선함과 더불어 노조 조직체계를 산업별체제로 통합 및 재편하고 단체교섭, 단체행동의 전략 전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삶을 짓누르는 높은 물가와 낮은 임금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내내 든 인상은 베트남 사람들의 표정이 대체로 소박하면서도 명랑하다는 것이었다. 처음 인사를 나눈 공항의 음료수가게 여점원에서부터 노조간부에 이르기까지 그랬다. 특히 여성들의 태도가 당당했다. 베트남의 경우 그 배경에 여성우대정책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국가에 시련이 있을 때마다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도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이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수백 년 동안 외세를 이겨냈다는 역사적 자긍심과 함께 어떤 경우에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낳은 낙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베트남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가장 큰 불만은 임금수준이라고 한다. 노조간부들은 한 달 임금이 1천만 동(약 50만 원) 정도면 살 만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베트남의 단순 평균임금이 227만 동인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이 거의 다섯 배 올라야한다. 1인당 평균임금인 356만 동(약 178달러)과 비교해도 세 배 가까이 올라야 한다. 농산물이 풍부하여 식료품은 넉넉해 보이는데 물가 폭등 문제가 노동자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물가는 1980년대 베트남의 경제개혁, 개방정책 이후 높은 수준으로 올랐고, 2000년대에 들어서도 급등세는 꺾이지 않았다. 심지어 2008년에는 물가상승률이 30%에 달했고, 2010년 이후 3년간은 연평균 12% 수준을 유지하다가, 작년에 겨우 6%로 진정됐다.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고뇌와 진로
하노이 등 세 도시의 주택들은 대부분 흙벽돌로 지은 듯 낡은데다 공간마저 매우 좁아 보였다. 반면 도시 한편에는 넓은 면적에 잘 지은 집들이 꽤 많이 보였다. 다낭 인근에는 경치좋은 해변에 현대식 설비를 갖춘 리조트가 대량으로 들어섰고, 하노이에도 한국의 강남 같은 지역들이 형성되고 있었다. 시장주의의 필연적 산물인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증좌였다. 아울러 노조간부들은 관료들의 비리나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노동자들의 반감이 크다고 했다. 오죽하면 구국의 영웅 호치민을 내세워 그의 도덕성을 배우자는 운동이 펼쳐질 정도겠는가. 공산당 일당지배의 관료주의가 낳은 부산물인 부패는 베트남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임이 분명해 보였다.
베트남은 국가개발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 각종 공사에 도로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산당이 이끄는 베트남 사회주의 정부는 나라의 부강과 인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1986년 이래 대량의 국영기업에 대한 민영화를 단행하고 외국자본에 문호를 개방했다. 이른바 개혁개방을 표방한 ‘도이 머이(Doi Moi, 혁신)’ 정책이었다. 베트남 정부는 이를 ‘사회주의 지향의 시장경제’로 규정했고, 2001년 개정헌법에서는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내세웠다. 2013년 말 현재 베트남의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200억 달러를 훨씬 넘어섰고, 이는 베트남 국내총생산의 약 20%, 전체 수출량의 67%, 수입량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개혁개방 정책은 1976년 민족통일을 이룩한 이후 주변국과의 전쟁과 서방국가들의 경제봉쇄,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인민의 삶이 참담하게 무너진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후 베트남의 경제규모는 매년 6~7%에 이르는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눈에 띄게 불어났다. 삶을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인 절대빈곤 인구수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은 그 과정에서 세계자본주의의 덫에 걸려 숱한 곤욕을 치러야 했고, 민간자본과 외국자본 모두 경공업, 소비재산업이나 부품소재산업에 치중되어 있다. 베트남은 저임금의 유인이 감소하면 외국인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인데다, 초과이윤의 단맛을 본 민간자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한사코 확장하려 할 것이다. 결국 베트남 사회주의 정부는 외국자본을 붙잡아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시장경제의 폐해를 막고 사회주의의 정의를 실현하며 인민대중의 삶을 개선해야 하는 모순된 이중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족혁명에서 계급혁명으로 이행해야 할 단계에서 당면한 역사적 명제다. 모순은 시장경제가 베트남 인민을 위해서가 아닌, 무한경쟁과 초과이윤을 위한 것이라는 본질에서 비롯된다.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은 중대한 실험대 위에 올랐다.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과연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 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를 실현해 낼 수 있을 것인지 기대된다.
출처: <한국노동사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