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0월 7일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기습 공격해서 1000여명이 넘게 사살하고 150명의 인질을 납치하여 끌고갔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입을 엄청난 피해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마스 입장에서는 가자 지구의 민간인이 많이 학살당하면 당할수록 좋다는 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가자 지구의 주민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피해는 감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팔레스타인의 사망자 수가 이스라엘 사망자 수의 두배가 넘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가자 지구에 진입하여 하마스를 멸절시키겠다고 다짐합니다. 앞으로 몇천명이 죽을지, 몇만명이 더 죽을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오직 복수심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하마스-이스라엘간의 전쟁을 보면서 인간들 어리석음의 끝판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착잡합니다.
두 진영의 강경파 중에는 기꺼이 순교자가 되겠다는 순수하고 열렬한 신앙심과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들 순수하고 열렬한 순교희망자들은 상대방을 악마로 간주하고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상대방을 박멸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합니다. 그들의 순교는 고귀하고 용기있는 행동으로 보이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자기에 대한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상대방과는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과 전의를 불태우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 보복을 다짐하지만, 그 전에 자신들이 행했던 팔레스타인 주민을 살상한 것은 당연하다는 식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하마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비참한 상태를 강조하지만, 하마스의 선제 공격으로 이스라엘 주민이 살해당한 것은 정당하다는 식입니다.
양시론이나 양비론이 결국 강자의 편을 드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해결하려면 양시, 양비론을 적용할 수 밖에 없을 듯합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이스라엘의 한 가운데 위치하게 나두면 그들이 나중에 이스라엘에 대해 엄청난 테러와 직간접적인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이스라엘인의 걱정은 일리가 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억울하게 자신들의 거주지를 뺏기고, 세상에서 제일 큰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지내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절망과 분노도 이해해야 합니다. 하마스가 기습공격하여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상한 일은 옳지 못하다고 말해야 하고,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사냥하듯이 살상하는 이스라엘도 옳지 못한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양측의 강경파는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고, 그 덕분에 이 지옥같은 참상이 내내 지속되고 있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현실성이 없어 보여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쪽의 극단적인 정파는 제외하고 비겁해 보이고 소신없어 보이는 중도파들이 협상을 하는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물론 어렵고 거의 불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수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순교에 비판적이면서 자기 목숨과 동족과 상대 주민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서 대화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