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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로(사 51:1-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35도를 오르내리는 가마솥 더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교적 서늘한 기후의 강원도 고랭지에서도, 작물이 잇따라 말라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쯤이면 배추가 온통 초록색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야 하는데,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기는 날이 잦아지면서,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무더운 폭염 속에서, 오직 선풍기 한 대로 폭염과 싸워야 하는 쪽방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힘들게 사는 이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폭염이 계속 이어지니, 매우 걱정입니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낙동강 곳곳은 “녹조라떼 저장고”가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물이 맑고, 투명하고, 시원스럽게 흘러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런 폭염 속에 살다가, 어제 오후, 태풍 종다리의 영향으로, 천둥 소리와 비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 기분을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잠깐 소나기가 내렸지만, 무더위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기상청 관계자는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에는 일시적으로 기온이 낮아지는 곳이 있겠으나, 비가 그친 후, 기온이 다시 올라 무더위가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무덥고 답답할 때,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받아야 합니까?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3:5)고 말했습니다.
지치고, 힘들고, 어려울 때, 낙심하지 마시고, 불안해하지 마시고, 답답해 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힘을 얻어야 합니다.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어, 이 피곤한 세상에서 넉넉히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 주에, “윌리엄 바클레이”라는 분이 쓴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기도문을 읽고,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슬픔 속에서 외로워하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과 고통으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하고 사람들로부터 버려져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 집에서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 육지와 바다와 하늘에서 위험 가운데 있는 사람들, 주여, 은혜로 그들을 도와주옵소서. 저는 주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있음을 압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오며, 저에게도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그리고 “힘들게 사는 이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사회적으로 암울하고, 환경적으로 가슴이 답답한 시대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받아들고, 허탄한 심정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껏 최선을 다하여 살아왔는데,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갑자기 자연재해를 당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오스 댐 붕괴로, 수많은 생명과 삶의 터전이 사라져 버리고, 갈 곳 없는 이재민들이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중부 산림지역에서는 오랜 가뭄과 고온으로, 보름째, 산불이 계속되고 있어, 막대한 피해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최악의 산불로 인하여, 생명과 엄청난 재산적 손해를 입었습니다. 간신히 불을 피해 목숨을 건진 어떤 사람은 “폼페이의 최후의 날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폭우가 그 지역을 강타하였다고 합니다. 연이은 재해로, 그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위로와 격려가 너무나도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데 누가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의 연약한 손을 잡아 줄 수 있겠습니까?
누가 내 곁에 다가와 “힘내”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힘내자. 그래 힘내어 다시 살아보자”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위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큰 위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망했습니다.
적들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고, 무너졌고, 전쟁 중에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은 쇠사슬에 묶인 채, 머나먼 바벨론으로 짐승처럼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삶이 고달팠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이, 하루하루,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죽지 못해 사라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커가는 자녀들을 보면서, “미안하다. 부모가 못나서 도와주지도 못하는구나”라고 자책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아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도움을 받으려고 나 주를 찾는 사람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석을 보아라. 너희가 거기에서 떨어져 나왔다. 저 우묵한 구덩이를 보라. 너희가 거기에서 나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정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 종류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사람, 모든 일에 정성을 쏟는 사람, 무엇을 하든지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악인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까요? 그들도 위로 받아야 할까요?
불성실한 사람,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 사기꾼이나 도둑질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위로와 격려가 필요없겠지요.
조폭이나 불량배, 힘깨나 쓰는 이들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1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과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정의롭게 살아보려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정의롭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고, 아주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와 위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버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다 품으십니다.
창세기 28장을 보면, 하나님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치는 야곱을 찾아오셔서, 그를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야곱은 지금 혼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와 함께 있겠다고 하십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을 향하여 도망가고 있습니다. 그 가는 길에 어떤 어려움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강도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지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야곱은 지금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언제 집에 돌아가야 할지,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그를 이끌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보따리 하나 어깨에 메고, 집을 나왔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여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잠에서 깨어난 야곱의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여러분 바로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바로 거기에 계시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집니다.
필요 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1절 후반부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답은 2절에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절의 “떠낸 반석과 파낸 구덩이”는 2절에서 말하고 있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의미합니다.
갈대아 우르에 한 이방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 이방인을 찾아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이것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순간, 아브라함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인 아브라함과 사라를 갈대아 우르에서 떠내고, 파내어, 가나안 땅으로 옮기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거듭난 인생으로 바뀌는 것과 똑같습니다.
옛사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에베소서 2:11-13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에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이방인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자녀의 자녀들로 하여금, 한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창성한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5: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자, 하나님은 그에게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험한 세상, 이 절망적인 세상, 미래가 없는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늘을 올려보고 별을 세어보는 것입니다.
준비된 하나님의 축복을 세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저 멀리,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과 사라를 떠내고 파내어, 가나안으로 옮기셨던 것처럼, 바벨론에서 고생하고 있는 그들을 떠내고 파내어,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결혼은 했지만 자녀가 없고, 재산도 없었는데, 정말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축복하셔셔, 하늘의 별과 같은 많은 자손들을 주시고, 또 많은 물질을 그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그들의 나라인 유다는 망하고, 그들은 포로로 끌려와, 고된 노동 속에, 기약 없는 내일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서, 다시 회복된 삶, 다시 축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는 것은 그들도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아마도, 답답하고 먹먹한 마음이 뻥 뚫렸을 것입니다. 가슴이 시원했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어. 다시 웃으며 살 수 있어. 다시 내일을 기약할 수 있어. 이 아픔과 고통을, 이 가난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아도 돼. 이제 됐어.”
여러분! 지금 현실이 작고, 왜소하고, 보잘 것 없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현재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현재를 보고 택하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 때, 베드로의 현재를 보고 택하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를 보시고,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도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는 축복의 말씀이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가장 좋은 것이 여러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에게 속히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위로하십니다.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십니다. 긍휼히 여기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온은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무너졌고, 파괴되었고, 그곳에 사는 이가 없어, 70년 동안, 버려진 채, 황폐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무너지고 황폐한 시온을 다시 아름다운 땅으로 회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폐허가 된 시온을 에덴동산 같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려진 시온을 여호와의 동산 같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사업이 다시 일어날 줄 믿습니다.
망가지고, 무너지고, 황폐해진 여러분의 심령도 다시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마음교회도 일어서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시온은 황폐했지만, 하나님께서 시온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광야가 에덴처럼 변하고, 사막이 여호와의 동산처럼 변하게 됩니다.
지금 내 인생이 광야 같고, 사막 같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위로하여 주시면, 에덴 동산으로, 여호와의 동산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찬송과 기쁜 노랫소리가 가득 울려 퍼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에게 임하면,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과 기쁜 노랫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울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 한마음교회에 임하므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감사와 찬송과 기쁜 노랫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사막과 같습니다.
어디 하나 기댈 데가 없고 어디 하나 쉴 데가 없습니다.
피눈물 나는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에덴동산과 같이 만들어주시고, 강물이 흐르게 하시고, 꽃이 피게 하시고, 거기에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십니다.
찬송가 242장 1-3절 가사입니다.
1절: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구속함의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2절: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광 볼 때에 모든 괴롬 잊어버리고 거룩한 길 다니리
3절: 마른 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에 물 흐를 때에 기쁨으로 찬송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후렴: 거기 거룩한 길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여러분! 마른 땅에 새물 터지고, 사막에 물이 흐르는 놀라운 복이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속히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4-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아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의 삶에,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감사 소리, 찬송 소리, 기쁜 노랫소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그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은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은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하루하루 시간만 흘러갑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됩니다.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아라. 그리고 땅을 내려다보아라.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재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시 세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7-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아멘.
신앙생활할 때,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니까, 잘 된 것입니까?
예수님을 믿으니까, 잘 안된 것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될 때에는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잘 안될 때,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예수 믿어서 그래. 예수 믿으니까, 복을 못 받지. 예수 믿는다면서, 왜 그 모양 그 꼴이야.”라고 온갖 말들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잔소리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욕을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열심을 다해 오직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하나님의 복을 받은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들처럼 인내로써 끝까지 믿음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히 12:1)
아브라함과 사라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야곱을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온갖 고통을 겪은 욥을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힘을 얻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7절)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감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주님!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주옵소서.
우리에게서 염려와 걱정과 근심거리가 사라지게 하시고,
기쁨과 즐거움만이 가득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서 아픔과 고통과 질병이 떠나가게 하시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