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들의 초월적 자세 가장 원숙하게 표현
▲ 장발 화백의 '칠락의 묵주기도 성모'
우석의 화풍은 보이론 미술과 나비파 영향을 받은 구상(1920∼1940년대)→서체적 추상 표현주의(1964년 도미 이후∼1970년대)→독자적 성화의 세계(1980년대 중반 이후) 흐름을 보인다. 그러니까 추상 표현주의로 접어들기 직전의 작품으로 이전에 추구했던 인물들의 정적인 자세와 초월적 분위기, 장식적 채색이 가장 원숙하게 표현됐다고 할 수 있다. ▲ 제1락 원죄없으신 동정 마리아님, 기쁨 중에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 제2락 원죄없으신 동정 마리아님, 기쁨 중에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 제3락 원죄없으신 동정 마리아님, 기쁨 중에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 제4락 원죄없으신 동정 마리아님, 기쁨 중에 동방박사에게 예수님을 보여주심을 묵상합시다.
▲ 제5락 원죄없으신 동정 마리아님, 기쁨 중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되찾으심을 묵상합시다.
▲ 제6락 원죄없으신 동정 마리아님, 기쁨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 제7락 원죄없으신 동정 마리아님, 기쁨 중에 하늘에 올라 천상 모후의 면류관을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우석 장발 화백은
우석의 열정적 신앙과 창작활동에는 프란치스칸 사상이 내재돼 있다. 우석은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형 장면 박사와 함께 재속 프란치스코회(재속3회)를 창립했다. 평신도의 복음적 생활실천과 프란치스칸 영성전파에 힘쓰면서 '세상 속 수도자'의 삶을 추구했다. 우석은 1953년부터 61년까지 서울대 미대 초대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서구식 미술교육의 틀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예술은 진리 탐구의 일환"이라는 그의 예술교육 이념과 교육 체계는 이후 전국 미술대학의 기본 틀이 됐다. 교회 미술가들은 "우석이 5ㆍ16 쿠데타로 고국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한국 교회미술과 서양화단은 눈부시게 발전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우석의 12살 아래 동생 장극은 미국 가톨릭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한 세계적 항공 공학자다. 누이동생 장정온은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초대 원장 수녀다. 현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의 작은아버지이기도 하다. 선구자의 고독을 안고 백수(白壽)를 넘긴 우석은 2001년 4월 8일 미국 맨해튼 피츠버그 자택에서 숙환으로 선종했다. |
출처: 장진성 프란치스코 원문보기 글쓴이: 장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