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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달래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씨알
【김광섭 金珖燮(1904~1977)】 " 한 칸 무덤, 신경도 없는 밤, 자신을 지켜온 시인'
1904년 9월 22일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아버지는 인준(寅濬)이며, 3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이산(怡山)이다.
1911년 가산이 기울자 온 가족이 북간도로 이주했다가 1년 만에 돌아왔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917년 함북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20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를 중퇴하고 중동학교로 전학하여 1924년에 졸업하였다.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같은 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적을 둔 이헌구(李軒求)·정인섭(鄭寅燮) 등과 친교를 맺는 가운데 해외문학연구회에 가담·활동하였다. 1927년에는 와세다대학의 한국인 학생 동창회지인 『R』에 시 「모기장」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1932년 졸업한 후 곧바로 귀국하였다. 시인이 되어 해외문학(海外文學)·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 동인으로 시작(詩作)과 함께 해외 문학 번역 소개와 신극 운동에 참여하고, 『시원(詩苑)』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33년 『삼천리(三千里)』에 「현대영길리시단(現代英吉利詩壇)」을 번역·발표하였고, 같은 해 시 「개 있는 풍경」을 『신동아』에, 평론 「문단 빈곤과 문인의 생활」을 『동아일보』에 각각 발표하였다. 이듬해 『문학(文學)』에 「수필문학고(隨筆文學考)」, 『조선문학(朝鮮文學)』에 「현대영문학에의 조선적 관심」을 발표하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5년에는 유치진(柳致眞)의 작품을 공연하려다가 일제 경찰에 구금되었다. 「춘향전」·「마의태자」 등 역사물이나 고전 작품이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38년에 첫 시집인 『동경』을 펴냈다. 1934년 7월에는 김동인(金東仁)·이광수(李光洙)·심훈(沈熏)·강경애(姜敬愛) 등 부르주아 문단 작가와 프로 문학가 등 78명과 더불어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지지하는 성명서에 참여하였다. 문학가로서 어문민족주의에 대한 높은 관심은 이를 가능케 하는 요인이었다.
1933년 4월부터 10여 년간 모교인 중동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교 시보사를 맡아 문학적인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후원하였다. 본격적으로 시작에 들어선 것은 1935년 『시원』에 「고독(孤獨)」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 시는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한 좌절과 절망을 비유하였다. 이러한 경향성을 지닌 작품은 「동경(憧憬)」·「초추(初秋)」 등으로, 만주사변을 배경으로 한 고독·불안·허무의식 등이 주요한 바탕이 되었다. 1937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하여 연극 운동에 가담하면서 서항석(徐恒錫)·함대훈(咸大勳)·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 등과 교유하였다. 1938년 제1시집 『동경』을 간행하였다.
1940년까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수업 시간에도 일제의 민족 차별 정책, 한국어 말살 정책, 『동아일보(東亞日報)』·『조선일보(朝鮮日報)』 폐간 등 언론 탄압 정책을 비판하여 학생들의 독립사상을 앙양하였다. 1941년 2월 21일 이로 인하여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1942년 9월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 8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당시 「벌」이라는 시에서 항일적인 울분을 표현하였다.
나는 2223번
죄인의 옷을 걸치고
가슴에 패를 차고
이름 높은 서대문 형무소
제3동 62호실
북편 독방에 홀로 앉아
“네가 광섭이냐”고
혼잣말로 물어보았다
3년하고도 8개월
1천 3백여 일
그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시간을 헤이고 손꼽으면서
똥통과 세수대야와 걸레
젓가락과 양재기로 더불어
취기나는 어두운 방
널판 위에서 살아 왔다.
광복 후에는 민족주의 문학을 건설하기 위해 창작과 단체 활동을 병행하였다. 이 무렵의 시로는 「속박과 해방」·「민족의 제전」 등으로 광복의 환희와 민족의식을 표현하였다. 중앙문화협회의 창립,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민주일보 사회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국장, 미 군정청 공보국장 등을 거쳐 정부 수립 후에는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이후에는 주로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자유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위원장직을 맡아 『자유문학(自由文學)』지를 발행하였다. 1966년에는 대표작인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하였다. 198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이산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성북동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고독(孤獨)
내
하나의 생존자(生存者)로 태어나 여기 누워 있나니
한 칸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氣流)의 파동(波動)도 있어
바다 깊은 그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
내
고단한 고기와도 같다.
맑은 성(性) 아름다운 꿈은 멀고
그리운 세계의 단편(斷片)은 아즐타.
오랜 세기(世紀)의 지층(知層)만이 나를 이끌고 있다.
신경(神經)도 없는 밤
시계(時計)야 기이(奇異)타.
너마저 자려무나.
({시원} 2호, 1935.4)
일제의 모진 압박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지켜온 김광섭은 창씨 개명(創氏改名)을 거부하다 끝내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치하의 가장 양심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살아온 그의 초기 대표작이자 출세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주지적 경향과 관념적 표현이 두드러지며, 식민지 시대의 지성인이 겪는 자의식과 지적 고뇌가 심각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철학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시대 상황과 관련된 존재론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이 시는 그의 시대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한 칸 무덤', '신경도 없는 밤' 등으로 파악된 외부 현실 세계 속에서 화자는 '고단한 고기'처럼 누워 잠을 청하지만, '맑은 성 아름다운 꿈'은 멀기만 하고 '그리운 세계의 단편'만이 아스라한 추억처럼 떠오를 뿐이다. 다시 말해, 화자는 삶의 능동적 자유 의지를 상실하고 '아름다운 꿈'과 '그리운 세계'는 단절된 채, '고단한 고기'가 되어 '세기의 지층'에 이끌리며, '신경도 없는 밤'을 보내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무덤'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 가는 자신을 '시계'로 객관화하여 자신의 깨어 있음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지금 자신이 깨어 있는 것은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 과정에서 터득한 '오랜 세기의 지층(知層)'과 같은 관념적이고 표피적인 지식에 근거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맹목적으로 돌아가는 시계 바늘과 같은 것으로 인식한 자기비판적 성찰의 결과로, 시계처럼 사물화되어 맹목적 생존의 상태와 다를 바 없는 식민지 치하의 무의미한 삶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동경(憧憬)
온갖 사화(詞華)*들이
무언(無言)의 고아(孤兒)가 되어
꿈이 되고 슬픔이 되다.
무엇이 나를 불러서
바람에 따라가는 길
별조차 떨어진 밤
무거운 꿈 같은 어둠 속에
하나의 뚜렷한 형상(形象)이
나의 만상(萬象)에 깃들이다.
* 사화(詞華): 아름답게 수식한 시문(詩文), 또는 뛰어난 시문.
({조광}, 1937.6)
이산(怡山)의 첫 시집 {동경}의 표제가 된 이 시는 앞의 <고독>과 같이 식민지 치하에서 괴로워하는 지성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자가 처해 있는 현실은 '이상'의 표상인 '별조차 떨어진 밤'이므로, 그는 '무거운 꿈'만 꾸게 될 뿐이다. 악몽(惡夢)처럼 괴롭기만 한 현실 속에서 화자는 '무엇이 나를 불러서 / 바람에 따라' 간다고 하지만, 그 길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이처럼 불분명하게 나타난 표현은 일제의 혹독한 검열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길을 감으로써 '하나의 뚜렷한 형상이 / 나의 만상에 깃들이'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 길이야말로 일제 치하에서 부단히 자신을 지키려 했던 자기 확인에 대한 노력이며, 암울한 시대에 처한 자신의 끊임없는 성찰 태도임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별조차 떨어진 밤'의 시대에 '사화(詞華)' 같은 뛰어난 문장으로 자신의 고뇌를 표현한다 해도 그것은 그저 '무언의 고아가 될' 뿐이며,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로 미래를 표현한다 해도 그것은 이루지 못할 '꿈이 되고 슬픔이 될' 뿐이다.
비 개인 여름 아침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시집 {동경(憧憬)}, 1938)
비록 5행의 짧은 소품이지만, '비 개인 여름 아침'을 한눈에 보여 주고 있다. 모더니즘의 기법으로 참신한 이미지를 제시하여 비 그친 뒤의 신선한 분위기까지 느끼게 해 주는 이 작품은 시인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어린 시절의 고향 세계이며, 일제 치하의 현실에서 그가 꿈 꾸는 이상 세계로 해방된 조국의 모습일 것이다.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문장} 5호, 1939.6)
이 시는 시인 자신의 마음을 고요한 물결에 비유하여 마음의 평화를 간절히 소망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항상 수평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진 물은 모든 사물 중에서 가장 고요한 만큼, 그 고요함이 깨지기도 쉽다. 이와 같은 양면적 속성을 지닌 물을 통하여 시인은 마음의 민감한 흔들림과 그 평온함에 대한 소망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돌을 던져' 마음의 평화를 깨는 사람과 '고기를 낚아' 현실적 이익을 취하려 하는 사람, 그리고 '노래를 불러' 그를 유혹하거나 그 고요함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시적 자아는 이러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내면 세계 속으로 침잠(沈潛)하는 인생의 방법을 취한다.
그리하여 혼자 '물가 외로운 밤'이 되었을 때, 자연의 대유인 '별'과 '숲'이 시적 자아의 주위에서 그의 평화를 지켜 주고 도와 주는 것이다. 희망과 이상을 상징하는 '백조'가 오는 날, 그의 마음인 '물가'가 혹시 고요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마음이 평화로운 밤마다 번거로운 상념들을 모두 가라앉히고 백조를 기다리는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을 덮는다'는 것은 차마 그 고운 꿈이 깨질까 하여 보호, 간직한다는 의미가 된다.
은유와 상징이 조화 있는 배합을 이룬 이 시에서 우리는 모진 현실의 삶을 떠나 어떠한 외부 세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심경을 얻으려 했던 시인의 인생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아울러 그로 하여금 그와 같은 삶을 추구하게 하였던 일제 치하의 고통스러운 현실 상황을 가히 짐작하게 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시는 고요한 서정의 세계를 형상화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한 발 물러서서 관조하는 수동적 세계관에 머무르고 있다는 한계를 보여 주기도 하다.
생(生)의 감각
여명(黎明)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다.
깨진 그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르른 빛은 장마에
황야(荒野)처럼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었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生)의 감각(感覺)을 흔들어 주었다.
({현대 문학} 145호, 1967.1)
김광섭의 문단 활동은 크게 해방 전후로 나눌 수 있는데, 해방 전의 문단 활동은 해외문학파로서의 활동, 연극평을 중심으로 한 평론 활동, 시작(詩作) 활동 등으로, 또 해방 후의 문단 활동은 해방문단에서의 좌익과 대항한 민족주의 문학 운동, 6·25 이후의 문단 활동, 투병기의 창작 활동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시는 1965년 시인이 고혈압으로 쓰러져 1주일 동안 무의식의 혼미 상태에 있다가 가까스로 깨어났던 자신의 체험을 구상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생의 감각'은 바로 '생의 자각', 곧 생명의 부활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시에는 인생론적인 면과 소생 과정의 극적인 면이 동시에 수용되어 있다. 화자는 부활의 시간적 출발점을 '여명'으로 잡고 있다. 여명은 밤으로부터 아침으로 연결되는 과도기적 시간으로, 밤이라는 절망에서 아침이라는 희망으로의 전이를 상징한다.
2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시간적으로 역순(逆順)의 짜임으로 되어 있다. 2연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절망적 상황과 극복의 순간을, 1연에서는 병마로부터 벗어난 후에 느끼는 새로운 삶의 인식을 형상화하고 있다.
1연은 재생한 삶의 첫 새벽에서 바라보는 화자의 인생론으로, 청각과 시각을 통해 생명의 부활을 감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새벽 종소리, 닭의 홰치는 소리, 개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화자는 비로소 자신이 죽음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소생한 생명의 경이로움에서 새벽별을 바라보며 그는 마침내 자신이 산 자(者) 가운데 있음을 확인한다.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에서 공동체적인 삶의 의미를 강조하기보다는 내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세계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화자의 깨달음을 엿볼 수 있다.
2연은 죽음에서 극적으로 소생한 과정의 회상으로,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갖기 전까지 화자가 겪은 고통과 시련의 극복 순간이 형상화되어 있다. 화자가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육체적 고통과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와 같은 정신적 혼란을 겪으며, 소멸하는 생을 뜻하는 '무너지는 둑'에 서 있었던 중, 그 곳에 '무더기로 피어난' '채송화'가 자포자기 상태이던 그의 생명에 새로운 삶의 의지를 깨우쳐 준 것이다. 60세라는 생의 원숙함에서 비롯된 개인적 체험이 모든 이의 보편적 정서로 확대됨으로써,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깊은 자아 성찰 의식에서 진한 감동을 받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고통과 절망으로 이어진 투병 체험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생명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성북동(城北洞)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었다.
({월간 문학}, 1968.11)
이 시는 6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으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성북동 비둘기'를 통해 보여 주는 작품이다. 따라서 비둘기는 사랑과 평화, 축복의 메시지 전달자라는 일반적 상징을 뛰어넘어 근대화, 공업화로 소외되어 버린 현대인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며, 그에 대한 관찰자 내지 비판자로 형상화되어 있다.
기·서·결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1·2연에서 묘사를 통해 비둘기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다음, 3연에서 명시적으로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번지가 새로 생겼다'는 표현은 주택가가 들어섰다는 뜻이지만, 문명의 침투로 인한 자연의 파괴를 의미하며, '번지가 없어졌다'는 표현은 비둘기가 보금자리를 잃어버렸음을 뜻한다. 또한,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 '채석장 포성' 등은 현대 문명의 병폐를 의미하며, '가슴에 금이 갔다'는 것은 이러한 문명의 병폐로 인해 파괴된 인간성, 즉 사랑이나 평화가 모두 사라졌음을 뜻한다. 그리고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와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와 같은 구절은 현대 문명에 의해 파괴된 인간 존재의 애처로움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기계 문명으로 인해 점차 세속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이제는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어 버린 그들이 '금방 따낸 돌 온기에'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비극적 정경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자연의 파괴로 말미암아 생존의 터를 상실한 비둘기가 채석장 포성에 지향없이 쫓기며 넉넉했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비극적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오늘날의 황폐화된 인간 삶과 그에 대한 연민을 통해 참다운 삶의 회복을 희구하는 한편,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사랑과 평화가 상실되어 가는 현대의 비극적 상황의 폭로와 고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를 통해서 현대 문명의 비정함과 소외의 비극을 제시하여, 사랑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인간성 회복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근원에의 향수와 사회 비평 의식에 입각한 김광섭의 시는, 이 작품에서 보여 주고 있듯 현대적 의미의 관념을 깊이 간직하면서도 관념어의 구사나 표현의 추상적 부분을 말끔히 제거하여, 구체적 표현의 미를 세련된 솜씨로 나타낸 것이 특징이다.
산(山)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不動)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神)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高山)도 되고 명산(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창작과 비평}, 1968.여름호)
해설 생략
시인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 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동아일보}, 1969.5.3)
이 시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두고 시를 써 온 노경의 시인이, 시인의 세계와 그 일생을 진지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화자가 생각하는 시인이란 존재는 '꽃'과 '사랑'으로 대유된 아름다움과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부귀 영화에 대해 온몸을 내던지지만, 시인은 오직 시 한 편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해서 탄생시킨 시 한 편의 고료는 겨우 2, 3천원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의 부귀와는 분명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이 시인의 타고난 천성(天性)이다. 한편, 시인은 '늙어서까지' 시간과 정열을 아껴쓰는 부지런한 정진을 통해 일견 어리석고 궂은 것처럼 보이는 '비극적 사랑'을 평생 동안 고독하게 노래하는 사람들이며, 때로는 '술 한 잔'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인생의 긴 여정을 쓸쓸히 가는 사람들이다. 신명이 나지 않을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쌀알 만한' 가치라도 있는 글감이라고 생각하면 놓치지 않고 그것을 작품화시킨다. 어떤 소재를 선택하든지 간에 시인은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어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음으로써 마침내 그것을 살아 번득이는 하나의 위대한 예술품으로 만들어 낸다.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이 흘러가도 시인의 정신은 한 편의 시로 남아 있음에 비해, 시인의 육신은 이미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이렇듯 김광섭은 시인을 세속적 욕망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고독의 깊은 늪에서 평생을 자신과 싸우며 오직 시 한 편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거룩한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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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달래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씨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