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개울 연가」에대한 옛날 놀부님의 소고
재작년 봄 그러니까 딱 2년전에 진주 엔카마을에 입문하면서부터 알게된 초연 김은자님은 70대 후반의 연세임에도 50대의 몸과 마음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계시며 시나 수필등 문학활동을 참으로 왕성하게 하고 계신다.
참 그러고보니 그분을 감히 나의 졸필로 제 입담에 올리는 것은 분명 크나큰 실례이겠지만 또한 쓰는 것을 사전에 허락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뒤에 만나면 혼날 각오하고 그간 그분에 대한 감회를 허심탄회하게 한번 써보고자 한다.
초연 김은자님은 저보다도 한참 위인 14살이 많은 분이시지만 대화하는 도중 나는 자주 초연님을 초등학교 여친으로 착각한다. 그러다가 이내 내가 큰누님께 너무 무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지 몇번이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 괜찮다고 살짝 웃어주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해맑으시고 예쁘시다.
그리고 대화 주제가 너무나도 다양하시고 또한 그 주제에 대한 지식도 상당한 깊이가 있으신 분이시다. 비록 젊은 시절에 문단에 등단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지금까지 발표한 여러 작품을 보고있노라면 이미 본태성 문학인이셨던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 살아오신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기질의 잠재기간이 다소 길었던것 뿐이 아닐까 싶다.
며칠전 초연님께서 '돌개울 연가'를 발간하셨다. 먼저 축하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이글로 대하고자 한다.
서언에 말씀하셨던 초연님께서 멘토라고 하시는 석계 윤행원님도 모임에서 몇번 뵌적이 있다.
2년전 처음뵈었을 당시 초연님께서 인사를 시켜주시겠다고 했을때 나는 깜짝 놀랬다. 초연님께서 50대 후반의 그러니까 그 당시 내나이 또래의 그분에게 너무나도 예의를 갖추시는게 아닌가? 아무리 문학수준이 높다고해도 한참 젊게 보이는 그분한테 그렇게 까지 깍듯이 하시나 싶었다. 그런데 인사드리고 나서 또한번 깜짝 놀랐다. 석계님의 연세를 알고 나서였다. 그러니까 얼마전 팔순을 하셨다고 한다.
초연님, 석계님 두분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계신다. 작품속에서도, 만남속에서도 그리고 각종 기사속에서도, 이렇게 살면 누구보다 젊게 사는거라고 ...
돌개울 연가를 내면서(초연님)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에서부터 물이란 물은 바다에서 모이게 마련이다. 삶의 여로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느 시점에 이르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관례상 축하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나라마다 조금씩은 다르다. 병원이 거의 없던 어린 시절에 백일잔치를 하는 이유는 유아의 생존여건이 예방주사가 없어서 출생한 아기들이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던 시기라서 백일 정도 잘 넘기면 이제는 거의 살아주는 확률이 높아지므로 기념하는 잔치였지 싶다. 돌을 맞이해서 잔치를 하는 의미도 마찬가지로 안정권이라는 뜻이 헤아려진다.
요즈음에는 환갑잔치하는 경우는 드물 만큼 건강하게 살지만 평균 수명이 사십대였던 옛날에는 육십년을 살아낸 것은 축하받아 마땅한 일에 들어갔었다. “70세에는 하는 말이 저절로 남에게 위로가 되고, 하는 행동이 저절로 이치에 맞는다.”라고 공자님이 가르치는데 古稀(고희)는 70세를 표현하는 말로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는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산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라는 중국의 글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백세시대를 구가하는 시점에서 여든 살인 팔순 잔치를 하는 것은 그냥 평범한 잔치에 들어가지 않을까. 우리말에서 구어口語로는 여든 살이라 하고, 문어文語로는 팔순八旬·산수傘壽라고 한다.
내가 첫 수필집<내 귀에 말 걸기>를 발간했을 때 문운文運을 빌어주시던 석계石溪 윤행원 작가님이 벌써 팔순이 되셔서 고향의 친구분들과 문학 하는 문우들을 모시고 국일관에서 조촐한 연회를 열었다. 부산에서 대학원장을 하고 있는 윤석환 박사와 하당 음유시인과 나를 합하여 “사인방”으로 결속된 인연으로 아우들인 우리들이 주관하여 마련한 축하의 자리였다. 그 비용은 윤석환 아우가 혼자 부담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전적으로 동의하는 수순을 밟았다. 장수 시대의 사회풍토는 유행가에서도 나타난다. 어떤 여자 가수가 “8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9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10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고 부르는 가사는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형성했는지 즐겨 부르는 노래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내 문학 인생의 멘토이신 윤행원 작가님의 호는 석계石溪라서 우리나라 말로는 “돌개울”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얼굴에 주름이 없어서 공중목욕탕에서 요금을 지불하면서 경로요금을 내는데 직원이 주민등록증을 확인하자고 하면서 쉰일곱으로 본다는 말을 자랑삼아 너스레를 떠시는 인간성 좋으신 상 남자 중에 상 남자는 우리 사인방의 제일 윗분 큰 오라버님이시다. 팔순 잔치에서 축시로 <돌개울 연가> 라는 창작시를 써서 헌정하는 낭송을 했다. 나아가 내친김에 존경하는 오라버님께 헌정하는 초연의 여섯 번째 시집까지 엮기로 했다.
친구들과의 조우를 위한 일 년 예산 일천만 원을 예비해 놓으시는 긍정적인 오라버님은 유난히 여자 문인들도 많이 따르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바람기 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실버 넷 신문의 기자도 하신다. 오라버님께 세상사는 일들을 수시로 의논하는 명실공히 내 인생의 멘토의 역할을 해 주신다. 백세시대에 항상 건안하신 삶을 살아가시는 푸른 청춘의 오라버님께 한없는 존경과 신뢰를 보내며 언제나 만사형통하시길 기원한다.
이 책을 엮으면서 한상렬 교수님과 석계 윤행원 작가님과 정곡 이양우 문예춘추 이사장님께 감사드리며, 특히 윤석환 박사는 원고의 감수監修까지 맡아서 더욱 고맙다. 나의 문학의 멘토이신 존경하는 오라버님께 이 책을 헌정하는 기쁨도 적지 않다. 아울러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 문태섭 박사와 큰딸 문정두 사서, 사위 조용범 부이사관, 큰아들 문정현 박사, 며느리 이아름 연주가와 작은아들 문준호 박사와 며느리 김지은 외국어 고등학교 영어 교사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