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화가에 또 하나의 태풍이 예고되고 있다. 영화 <태풍>의 개봉
첫 주 기록이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관객을 동원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록을 앞질렀다 한다. 150억원이라는 최고의 순제작비가 투입되었고
타이의 방콕과 크라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한국의 부산과 고흥 등을
오가며 10개월 동안 촬영했다 한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을 하기에 앞서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는 어휘에
관해 알아 볼 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사이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급속히 높아지자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곤경에 처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돈을 왕창 들여서 굉장한 영화 만들고, 그 영화로 단숨에 돈을
걷어 들이자는 발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첫 번째로 만든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인데 예상대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특수효과로 무장한 영화, 액션영화, 전쟁영화들을 만들어 전 세계에
살포하여 수많은 자본을 거두어들였다. 이렇게 특정한 시즌을 겨냥하여
대규모 흥행을 목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들여 제작한 영화를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 한다. ‘블록버스터’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사용되었던 폭탄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국 공군이 사용했던 이 폭탄은,
한 구역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 하여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이를 영화 평론계에서
도입해 쓰고 있는 것이다.
영화 <태풍>은 액션과 거대한 스펙터클한 장면을 담은 대표적인 ‘블록버스터’로서
볼거리가 많다는데 이의가 없다. 다양한 나라의 풍경을 배경 삼은 첩보 스릴러와
군사 액션 장르 안에 뼈아픈 분단의 고통을 담아낸 점도 볼만하다. 그러면서도
액션 장르에 못지않게 애잔한 가족코드와 신파다 싶을 드라마적 내용이 포함
되 있다. 액션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객까지 유인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영화 <태풍>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한국에서는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대규모 짐벌(Gimbals)장치(항공기나 선박 같은 큰 규모의 세트를 상하좌우로
자유로이 조종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해 특수 수조 세트와 결합하여 촬영해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씬 역할을 잘 소화해낸 장동건은 야생에서
뒹굴며 자란 짐승처럼 독기를 뿜어낸다. 슬퍼보이는 눈, 날렵한 얼굴은
좀체 싫증이 나지 않는다. 다소 둔해 보이지만 강세종 역의 이정재 역시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고통 속에 살아온 여인 최명주 역을 연기한
이미연은 혼으로 연기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영화 <태풍>은 과학이 동원되고, 국경을 넘나들고 역사를 횡단하는 등
스케일이 크고 배우들의 연기와 액션의 리듬 하나하나가 볼거리다. 그러나
태풍처럼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하고 밋밋하다.
또 이야기의 비약이 심하고 스케일에 비해 감정의 진폭을 만들어 내는 자상함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설득력이 부족하다. 정책에 의해 짓눌린 한 개인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데 주력했지만 주인공이 지니게 된 분노의 근원을 심도 있게
파헤치지 못했다. 씬과 강세종의 교감도 의아하고 죽으러가는 길인 줄 알면서도
씬과 동행하는 해적들의 심정 또한 생경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지닌 결정적인 문제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서적 진액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태풍>은 엄연히 탈북자가 주인공이고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소재다. 이런 소재의 성격으로 보아서는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이, 거대함보다는 섬세함이 필요했던 영화다. 비록 상업적 휴머니즘이라
할지라도 차라리 씬과 그 누이가 해후하는 코끝 찡한 장면 같이 기꺼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가련한 남매의 이야기가 영화 전편을 지배했다면 더 큰 호응을
받았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쥐어짜는 신파라 해도 이 시점에서는 절대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성적 측면이 강조되거나 전면을 지배하도록 만들지 못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감독의 미숙에 기인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 된다.
억측이라 할지 모르나 오늘날 우리사회의 이념적 현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소재를 가지고 무엇인가 만들려고 했지만 현 이념적 상황 아래에서는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액션과 스케일을 동원 한 것인데 그러다 보니
단순한 오락성 액션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지한 문제의식도 제공하지 못한
얼치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 <태풍>은 종전의 영화들과는 이념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 있다.
탈북자들의 애환을 부분적으로나마 들어냈다고 하는 점 또 현 정부나 우리 군을
폄하하지 않았다고 하는 면에서 그렇다. 종전의 6.25전쟁과 남북한 관련 영화는
북한의 입장에서도 수입하여 상영하고 싶을 정도로 이념적으로 좌편향 되어 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하고, 미군은 말할 것 없고 남한의 국군을
잔인하게 그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 <태풍>만은 북한에서 상영할 수 없는 영화일 것이다. 아무리 주인공 씬이
가족들을 몰살시킨 북한군에게 적개심을 표출하지 않고, 남한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고 있다 해도 그가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오려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탈북자들은 이 영화가 자신들의 입장과 고난을 어느 정도는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미진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준 감독에게 감사해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