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이냐
<신천성경p698>죽음은 제3의 인생(人生)으로 출생(出生)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瞬間)이 죽는 시간(時間)인 것입니다. 곤충류(昆蟲類) 가운데는 3단계(段階) 세계(世界)를 거치는 것이 많습니다. 곤충(昆蟲)은 대개 날개가 있습니다. 곤충(昆蟲)들도 이와 같이 물(水)에서, 육지(地)에서, 공중(하늘)에서 사는데‘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人間)이 지상(地上)에서만 살면 되겠습니까? 차원(次元) 높은 날개가 있는 것입니다.
잠자리도 처음에는 유충(幼蟲)이 되어서 물속에서 헤엄치고 다니다가 땅위에 올라와서 한 동안 기어 다닙니다. 그 다음에는 훌훌 날아다니며 땅에서는 먹으리라고 생각(生角)지도 못하던 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천하(天下)를 자기무대(自己舞隊)로 삼고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인간(人間)은 한 가정(家庭)의 아기로 태어났다가 사인(sirne)곡선(曲線)과 마찬가지로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합니다. 아기로 태어났다가 아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제2(第二) 복중세계(腹中世界)를 차버리고 제3(第三) 사랑세계(世界)에 호흡기관(呼吸器官)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부모(父母)의 사랑, 형제(兄弟)의 사랑을 차버리고 대우주(大宇宙)의 하나님 본체(本體)에 화(化)한 사랑의 세계(世界)로 들어갑니다.
영계(靈界)는 사랑의 공기(空氣)로 꽉 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이 지상세계(地上世界)에서 사랑의 숨을 쉴 수 있는 파이프장치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영계(靈界)의 체험(體驗)이 필요(必要)하고, 영적(靈的)사랑을 느껴 호흡(呼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천성경p711> 인간(人間)이 죽는 것은 육신(肉身)으로서는 제한(制限)된 사랑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한대(無限大)의 하나님의 참사랑의 대상적(對象的) 실권(實權)을 가지려면 제한(制限)된 육신(肉身)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無形)의 영(靈)으로 화(化)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참사랑의 이상(理想)을 온 천지(天地)와 더불어 같이 동일화(同一化)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고통(苦痛)길이 아니라 우주적(宇宙的) 참사랑을 소유(所有)할 수 있는 행복(幸福)의 문(門)을 여는 시간(時間)입니다.
죽음은 기고 걸어 다니는 지상세계(地上世界)로부터 훨훨 날아다니며 살 수 있는 세계(世界)로 옮기는 것입니다. 온 우주(宇宙)를 자기무대(自己舞臺)로 해서 참사랑으로 즐길 수 있는 여행(旅行) 자격자(資格者)가 되고, 그런 세계(世界)로 입문(入門)하기 위해서 죽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니 죽는 것이 바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뜻을 알고 난 후(後)에는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기 싫어하면 안 됩니다. 죽어야만 부활(復活)합니다.
그러면 성경(聖經)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이 영원(永遠)히 가질 수 있는 생명(生命)을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 세계(世界)의 타락(墮落)한 혈통(血統)을 이어받는 생명(生命)을 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뜻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은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人間)이 육신생활(肉身生活)을 마친 다음에는 제2의 출생(出生)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제2의 출생(出生)을 하는 곳, 죽어서 가는 세계(世界)가 바로 영계(靈界)입니다. 그 세계(世界)에 들어가서 제3의 부모(父母)인 하나님으로부터 우주(宇宙) 전체(全體)를 대표(代表)한 참사랑을 공급(供給)받습니다. 이상적(理想的)인 참사랑을 공급(供給)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靈界)에서는 통일(統一)이 안 될 수 없습니다.
죽는 순간(瞬間)부터는 제2 공기세계(空氣世界)를 차버리고 새로운 제3(第三) 사랑의 호흡기관(呼吸氣管)의 세계(世界)에 연결(連結)돼야 합니다. 부모(父母)의 사랑, 형제(兄弟)의 사랑을 차버리고 영계(靈界)로 들어가서 결국(結局)은 대우주(大宇宙)의 하나님 본체(本體)에 화(化)한 참사랑의 세계(世界)로 들어갑니다. 씨(氏)가 본체(本體)에서 나왔으니 결과(結果)를 맺고 다시 본체(本體)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710>일반(一般) 사람들은 죽으면 다 없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영계(靈界)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영계(靈界)에 가기 위해서는 지상(地上)에서 준비(準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계(靈界)에 가면 사랑으로 호흡(呼吸)하기 때문에 지상(地上)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생활(生活)해야 거기서도 자유스럽게 호흡(呼吸)할 수 있습니다.
지상(地上)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생활(生活)하지 않으면 거기에서 자유롭게 행동(行動)할 수 없습니다. 영계(靈界)는 사랑을 호흡(呼吸)하는 세계(世界)입니다. 사랑의 공기(空氣)와 같은 세계(世界)라고 생각(生角)하면 됩니다. 제2(第二)의 출발(出發)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必要)가 없습니다. 죽음은 새로운 출발(出發)의 문(門)을 여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시 하나님과 닮을 수 있는 체(體)를 입고 태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人間)은 함께 영원(永遠)히 날 수 있는 날을 고대(苦待)합니다. 그렇게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날, 그러한 몸으로 태어나는 날, 그 날이 바로 육신생활(肉身生活)을 벗는 죽음의 날입니다. 그러면 인간(人間)은 죽음을 환영(歡迎)해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슬퍼해야 되겠습니까? 물론 환영(歡迎)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는 데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참사랑, 즉 위(爲)하는 사랑을 위해서 죽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肉身)을 벗는 다는 것은 무한(無限)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活動權)에 우리가 동참(同參)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世界)를 위(爲)해서입니다.
사람은 병(病)이 나서 죽게 되면 혼수상태(昏睡狀態)가 벌어집니다.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모릅니다. 거기서부터 자기(自己)가 가서 살아야 할 곳의 모든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自己)가 가서 살 곳의 동지(同志)들이 와서 자기(自己)를 환영(歡迎)해 주고, 전개(展開)되는 방대(尨大)한 천국(天國)이 얼마나 호화찬란(豪華燦爛)한지 ‘나도 어서가야 되겠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로 가다보니 죽는 것입니다. 점점점 좋은 곳을 향(向)해서 1차, 2차, 3차 문(門)을 지나게 되면 저 나라에 들어가고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은 낙담(落膽)이나 낙심(落心)을 할 일이 아닙니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약(跳躍)하게 됩니다. 성화(聖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해 공포(恐怖)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죽음은 이런 자연(自然) 순환법도(循環法度)에 의(依)해서 옵니다. 더 좋은 세계(世界)로 옮겨주기 위한 절차(節次)입니다.
<신천성경p706>우리는 하나님 대신(代身)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으로 살면서 아들딸을 낳아 사랑의 목적지(目的地)에 도달(到達)하여 영원(永遠)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발전(發展)해 보이는 아담을 통(通)해서, 아담이 비로소 사랑의 주인(主人)이 되어 아들딸을 낳아 키움으로써 하나님대신(代身) 실체권(實體權)을 횡적(橫的)으로 느끼게 됩니다. 무형(無形)의 하나님, 아담의 실체권(實體權) 그 다음에는 손자(孫子)를 중심삼고는 두 나라의 결실체(結實體)가 됩니다. 이것은 영계(靈界)와 육계(肉界)의 실체(實體)가 되기 때문에 그 실체(實體)는 어디 가든지 영계(靈界)와 육계(肉界)의 완성(完成)한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은 하나의 통과기간(通過其間)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靈界)에 간 자식(子息)에 대해서 울고불고하는 사람은 타락한 내(內)의 인연(因緣)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영계(靈界)에 가면 담이 막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에서 태어나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뿌리에서 시작했으니 열매는 반드시 뿌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간(人間)이 왜 태어났느냐 할 때 이상적(理想的) 사랑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영원(永遠)한 사랑이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를 갈아치울 수 없습니다. 자기(自己)네 부부(夫婦)끼리도 갈아치울 수 없습니다. 자기(自己) 아들딸을 갈아치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귀(貴)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 시작(始作)하기 때문에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의 사랑은 변(變)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영원(永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태어난 사람은 사랑을 위(爲)해서 살다가 영원(永遠)한 하나님의 상대(相對)의 자리에 섬으로써 영생(永生)한다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703>영계(靈界)에 가서는 사랑의 노래를 하고 사랑으로 말을 합니다. 영계(靈界)에서는 오페라 식(式)으로 말하면 내가 오페라 식(式)으로 대답(對答)해야 됩니다. 춤으로 말하면 춤으로 대답(對答)해야 됩니다. 그저 영원(永遠)히 좋아하고 춤을 추더라도 영원(永遠)히 싫증나지 않습니다. 한 군데서 춤추면 천국(天國)이 전부(全部) 춤추고, 한 곳에서 노래하면 전부(全部) 노래를 합니다. 그 때는 자기(自己) 사랑하는 아내하고 춤추는 것입니다. 남의 여자(女子)하고 춤을 춘다면 ‘우리 사랑하는 아내를 너보다 더 백배 더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너하고 춤을 추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生角)하는 것입니다. 남의 여자(女子)하고 손을 잡고 춤을 춘다면 그것은 자기(自己) 사랑하는 대상(對象)과 천배, 만 배 더 자극적(刺戟的)인 사랑을 하기 위해서 이런 과정(過程)을 거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계(靈界)에 가면 일할 필요(必要)가 없습니다. 밤이 없습니다. 언제나 눈을 뜨고 있습니다. 언제나 모든 기관(機關)이 일을 화고 있는데 무슨 일을 하느냐? 영원(永遠)히 눈 뜨고도, 영원(永遠)히 잠을 자지 않고도 좋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상(理想)만 딱 지나면 ‘뭣이 나와라’하면 재까닥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본연(本然)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704>천국(天國)이라는 곳은 개인(個人)이 들어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을 중심(中心)으로 결실(結實)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相續)받은 대등(對等)한 가치(價値)에 있는 대상(對象)의 자격자(資格者)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니 우주(宇宙)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무한(無限)한 가치(價値)의 기준(基準)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과 하나 될 수 있는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성(完成)으로 벌어지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오늘날 인간(人間)이 가야할 이상세계(理想世界)입니다. 그 곳이 영계(靈界)라고 하면 영계(靈界)요, 천국(天國)이라면 천국(天國)입니다. 그러한 열매를 맺어서 들어가는 곳이 천국(天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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