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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는 멋’에 대한 세계인의 궁금증이 공감과 체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연스러운 빛깔과 곡선이 아름다운 한복, 맛과 웰빙 기능이 모두 우수한 한식, 건강에 도움이 되는 온돌 등 한국식 라이프스타일은 전통적으로 가장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에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데 매우 바람직한 양식으로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세계인들이 한국식 의식주를 어떤 방식으로 체험하고 있으며, 그들이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衣’ 한국의 맵시에 빠지다
지난 9월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복을 입고 패션쇼 무대에 올라 뉴스의 한 장면을 장식한 바 있다. 이미 박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순방에서도 한국 문화를 알리는 소재로 한복을 활용한 바 있다. 민족의 특성을 알리는 수단으로 민속의상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치파오를 보면 중국이 연상되고, 기모노도 자연스럽게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중국, 일본의 전통의상과는 확연히 다른 민속의상인 한복은 한국을 연상케 하는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복에 대한 세계인들의 애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한복을 입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모습이다. ‘엑스맨’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휴 잭맨의 경우 한국과 무역업을 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한국 사랑이 유별난 스타다. 그런 그가 지난 2009년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딸과 함께 산책하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한복에 반한 세계적 스타는 비단 휴 잭맨만이 아니다. 테니스 스타 비너스 윌리엄스와 마리아 키릴렌코도 한복을 입고 자태를 뽐낸 바 있고, 중국 배우 장바이즈(장백지)와 대만 배우 첸웨이샤(전위삼)는 한국 배우보다 한복이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팬들의 감탄을 이끌어 냈다. 이밖에도 ‘팝의 요정’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홍콩 미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왕쭈셴(왕조현) 역시 빼어난 한복 자태로 눈길을 끈 바 있다.
한국 패션에 대한 세계인의 사랑은 한복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서울시의 외국인 관광객 쇼핑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1년 외국인의 주요 쇼핑 품목 중 의류는 화장품(44.9%)과 식료품(38.3%)에 이어 3위(35.1%)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의상인 한복과 더불어 한국 패션의 ‘현재’에도 세계인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명동과 동대문을 비롯해 홍대, 신촌 등 의류 매장이 밀집한 주요 상권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으며, 이들은 K팝 스타들을 모델로 내세운 매장의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류를 선도한 드라마 속 주인공이나 아이돌 가수의 패션과 화장법을 따라 하려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의 영향 이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동대문과 명동이 패션 관광지로 자리 잡은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금융의 거리에서 한류 1번지로 닉네임이 바뀐 명동은 ‘패션, 뷰티’의 거리로 변했고, 거리는 내국인보다 더 많은 외국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은 ‘한류’와 ‘화장품’을 접목한 상점의 판매원들 국적도 다양해졌다. 무려 90% 가까운 중국, 일본 국적의 판매원을 고용한 상점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한류가 만든 새로운 풍속도이자 상권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한국식 화장법과 한국 화장품에 대한 세계인의 사랑은 이제 ‘K뷰티’로 통칭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124개국에 약 9억 7787만 달러의 화장품을 수출했다. 중국과 동남아로의 수출이 급증하며 한국 화장품 수출을 견인한 것.
코트라 무역관에 따르면 ‘BB크림’이 한국 여배우의 피부 비결로 알려지면서 한국 화장품의 브랜드가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여성의 하얀 피부와 외모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해외에서는 기초 화장품은 물론 색조 화장품과 성형 의료에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시작된 K뷰티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국내 화장품 기업들의 해외 사업에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명동과 더불어 동대문도 허름한 ‘옛 시장’이란 고정관념을 탈피한 지 오래다. 이제 동대문은 유명 디자이너들의 패션쇼가 열리고 한류 스타도 직접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특히 다양한 패션을 접할 수 있는 의류 상가가 밀집해 있고, 비교적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관광객들의 평가를 얻으면서 명성이 더해가고 있다.
한국 패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콘셉트 코리아 S/S 2014’가 지난 9월 9일 뉴욕 링컨센터 더 스테이지에서 개최된 건, 이 같은 ‘패션 한류’의 열기를 이어가기 위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대구시, 한국패션산업연구원과 함께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뉴욕 패션위크의 창시자 펀 말리스 등 패션계 유력인사들과 하퍼스바자, 보그, 엘르 등 세계적 패션 잡지, 뉴욕타임스 등 유력 미디어들이 현장에 몰려들어 열띤 취재 경쟁을 펼치며 패션 한류 열풍을 실감케 했다.
한국의 옷 맵시가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단계라면, 한류의 열기가 뜨거운 동남아시아는 국내 패션업체들의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동남아 중산층을 겨냥한 국내 패션업계가 유통·판매망에 직접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LG패션이 동남아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로 한 이유는 국내 연예인들이 착용한 의상과 액세서리가 한류 열풍을 타고 현지 매체에 자주 노출돼 동남아 시장에서 한국 패션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류 열풍은 동남아 젊은 층에게 국내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고, 따라서 초기 단계에서도 인지도를 쉽게 높일 수 있는 장점이 됐다”고 전했다.
‘食’ 딜리셔스 코리아
한식에도 한류 열풍이 불면서 전통식품인 ‘장’ 수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은 ‘최근 10년간 전통 장류 수출 동향’에서 지난해 간장, 된장, 고추장의 수출량이 총 2만 4765톤으로 2003년(1만 2424톤)보다 99.3% 늘었다고 밝혔다. 수출액은 2003년 1760만 달러에서 지난해 4380만 달러로 무려 149%나 증가했다.
수출 물량의 증가와 더불어 반가운 사실은 한국의 장을 수입하는 국가가 교포가 많은 미국과 일본의 틀을 벗어나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들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추장과 된장이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등지로 한류 로드를 타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식 열풍이 불면서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 주방용품의 인기까지 덩달아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한국 홈쇼핑 채널의 동남아시아 진출과 한류 열풍이 맞물리면서 한식은 물론 국산 주방용품의 상승세가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식의 레시피뿐 아니라 인접 산업의 발전도 함께 도모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식의 기본이 되는 장류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전부터 한식의 세계화 가능성은 이미 점쳐진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한식으로 손꼽히는 비빔밥과 불고기는 한류가 생성되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 온 효자 음식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비빔밥과 지금의 비빔밥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식품 한류’의 대표 주자이자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내식인 비빔밥을 예로 들어 보자.
기존의 비빔밥은 교포 식당의 단골 메뉴로 그곳에서만 전통 방식대로 먹을 수 있는 별미에 속했다. 하지만 한식 한류를 마케팅하고 있는 기업들에 의해 그 성격과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CJ푸드빌이 중국 베이징에 한식 프랜차이즈 점포 ‘비비고’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인의 메뉴’로서 한식의 가능성을 자신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선 ‘전통’만을 고집해선 곤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중국인의 입맛에 맞게 현지화하는 전략적 태도 없이 한식의 세계화는 불가능하다. 한식의 틀, 고유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차별화를 추구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실제로 한 식품회사는 삼계탕을 좋아하는 싱가포르인의 입맛을 고려한 메뉴를 개발해서 좋은 성과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비빔밥과 더불어 불고기는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이다. 해외 현지에서의 조리나 재료 공급이 원활치 않아 진출하기가 어려웠지만, 최근 몇몇 기업들에 의해 철저한 유통 관리와 체계화된 서비스로 본격적인 자리 잡기가 시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식이 세계인의 식욕을 높이고 있는 것일까. 식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정답은 ‘한식의 우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음식의 독특한 맛은 물론, 김치와 간장, 된장 등 발효 음식은 항암 효과 등에 탁월해 웰빙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말이다.
비단 장류만이 건강한 한국 음식은 아니다. 색깔과 원재료의 맛이 각양각색인 각종 나물과 젓갈 등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한국 음식의 다양한 맛과 가치를 전파하기에 적합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의 음식을 일식과 중식 정도로만 인식했던 미슐랭의 스타 셰프들조차 한국의 발효 음식을 상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인들의 식탁엔 이미 한류가 한자리를 차지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중국의 주부들이 한국산 조미료를 선호하고 있을 정도라는 것.
이런 현상들은 자연스럽게 전파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식의 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해선 이제 다음 단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CJ제일제당은 미국에서 한국 식품의 글로벌화를 위한 본격적인 첫 작업으로 서구인들의 입맛에 맞는 고추장 소스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고추장 자체는 서구인들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스 형태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제품 출시 2년도 안 돼 입점 매장이 5000개를 돌파하면서 순항 중이라니 더욱 고무적이다.
그런가 하면 한 토종 커피 브랜드는 미국 뉴욕에 지점을 개점하면서 한국의 맛과 현지 입맛을 적절히 조화시켜 뉴요커들만을 위한 ‘미숫가루 라떼’를 내놓았다. 우리의 건강음료인 ‘미숫가루’와 커피의 절묘한 조합인 셈이다. 이렇듯 한식을 세계에 선보이기 위해선 다양한 접근 방식과 연구개발이 필요할 것이다.
‘住’ 한국식 공간 체험
한국을 찾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숙박시설은 바로 게스트하우스다. 그 중에서도 전통의 멋과 운치가 깃든 우리의 한옥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한옥에 스민 한국적인 멋에 감탄한다. 이처럼 한옥이 지닌 아름다움 때문에 한옥마을을 찾는 외국인들은 해마다 2~3배씩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을 위한 한옥 체험도 늘고 있다. 외국인이 주로 찾는 곳은 전주 한옥마을과 남산골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 등이다. 이 공간들은 단순한 숙박을 넘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병행해 한류의 심화에 기여하고 있다.
북촌 인근의 한옥 게스트하우스도 그저 한옥에 머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도와 서예를 비롯해 김치 담그기, 한복 입어 보기 등 다양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공간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외교사절단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종로구 북촌에는 약 1200여 채의 한옥이 밀집해 있다. 이곳은 경복궁과 창덕궁 등 고궁이 인접해 있고 한복과 옻칠 자수 등 전통문화 체험을 배울 수 있는 공방들이 도처에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장소다.
이 북촌의 가회동과 삼청동에 위치한 한옥 게스트하우스와 한옥 체험 살이 주택은 총 43채로, 하루 머무는 관광객 수만 500여 명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는 지난 5~7월 매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한방 의료 관광 체험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한방과 한옥의 조합으로 관광객의 관심을 끌어낸 것이다.
또한 전북 전주의 한옥마을은 지난해 500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은 명소다. 특히 한국 문화를 체험하려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한옥마을 주변에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하게 들어서 문화와 결합한 관광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사례가 되고 있다.
한국을 찾은 세계인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템플스테이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외국인들의 숙박시설 해결과 문화 체험 확대를 위해 시작된 템플스테이는 이후 불교계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이제는 내·외국인 참가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OECD가 뽑은 성공적인 5대 문화관광 상품에 꼽힐 만큼 급성장했다.
템플스테이는 사찰이라는 종교적 공간과 한옥이라는 한국식 주거 문화가 만들어 낸 시너지 효과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봄에는 간장 담그기, 봄나물 뜯기, 야생화 트레킹, 인근 유적 탐방, 별자리 관찰 등을 통해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체험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한국의 템플스테이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관광박람회에서 아시아대양주 부문 1위를 차지한 바도 있다. 그만큼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의 짜임새와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처럼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한국 주거 문화의 특성은 무엇일까.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한국의 주거 문화는 한옥에서 아파트를 비롯한 서구식 주거 형태로 급격하게 변화했다. 건축 자재도 인테리어도 서구식이 되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온돌이다.
이 온돌이 단순히 바닥 난방 기능을 넘어서 온돌 소파와 온돌 침대, 온돌 매트까지 다양한 형태로 상품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한국의 다양한 온돌 제품에 대한 해외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온돌의 효율성과 건강상의 이점이 알려지면서 세계 많은 나라에서 온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독일, 스위스, 덴마크 등 유럽 신축 건물의 절반 이상이 바닥 난방, 즉 온돌을 채택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전통적으로 공기를 데우는 대류 난방 방식을 사용하던 이들 국가들은 물론, 일본의 회사들도 건물을 신축할 때 상당수 온돌과 같은 바닥 난방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온돌은 이미 세계인의 난방 문화 속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文武’ 한류의 뿌리
언어는 생각의 집이고 문화의 원천이다. 그런 점에서 독창성과 우수성을 자랑하는 한글은 한류 콘텐츠 중 가장 핵심적인 자산이다.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에서 발표한 ‘2007/2008 리포트’를 보면 우리나라의 문해율은 세계 최고(99.8%)이며, 독해 능력 또한 OECD 국가 중 최상위를 차지한다.
이는 한글이 익히기 편하고 사용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IT 강국의 원동력이 한글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글은 소통의 도구를 넘어 문화 산업의 중추적 요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한류 열풍은 한글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을 증폭시키면서 한글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드라마와 K팝을 통해 한글을 접한 외국인들이 한글 배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 한국어 교육 기관인 세종학당의 연도별 수강생만 봐도 해마다 그 숫자가 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어세계화재단에 따르면 2009년 4301명, 2010년 6016명, 2011년 9348명 등 세종학당 수강생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재외 한국문화원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세종학당의 수강생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많다.
미국 LA 한국문화원이 운영하는 세종학당은 개설 초기만 해도 수강생의 75%가 재외동포였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외국인이 74%에 이르러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초급반은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며 온라인 수강 신청이 일찌감치 마감되는 등 그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2008년 ‘한글의 국제 경쟁력 제고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세종학당은 2009년 6개국 17개소로 시작해 현재 총 51개국 117개로 확산됐다. 유럽 14개국 23개, 아시아 22개국 73개, 북미 3개국 8개, 아프리카 5개국 5개, 오세아니아 2개국 2개, 남미 5개국 6개 등이다.
재외동포와 외국인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응시하는 숫자 역시 해마다 증가 추세다. 1997년 도입된 후 한류 확산과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증가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으며, 지난 1월 실시된 제29회 시험까지 결산하면 누적 지원자가 무려 100만 명을 넘어섰다.
회를 거듭함에 따라 시험을 치르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 제30회 시험은 41개국 206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진행됐는데 응시자 수는 약 5만 9000명이었다.
한편 응시 목적을 보면 한국어 실력 확인이 40%로 1위를 차지했고 한국 유학이 30.7%로 2위였다. 그 외 한국 및 한국 관련 기관 취업이 15.7%, 한국 문화 이해 등 기타가 13.6%였다.
응시 목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는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보다 더 잘 알기 위해서다. 아프리카의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세종학당 수강생들은 ‘잘 사는 나라’ 한국을 경험하기 위해 한글을 배운다. 한글을 배워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한국에 관한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이른바 코리안 드림을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과 더불어 한류의 또 다른 정신적 뿌리가 되고 있는 게 바로 태권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25차 총회에서 2020년 하계올림픽 핵심 종목에 태권도를 포함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 설립, 2002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등을 거치며 발전해 온 태권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올림픽 종목 유지가 위태로웠다. 하지만 IOC가 힘을 실어 줌으로써 명실상부한 스포츠로 입지를 굳힐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사실 태권도는 ‘스포츠’이기 이전에 정신 수양과 육체 단련을 목표로 한 ‘무도’이다. 아이들이 도장에서 배우는 인사 및 예절은 부모의 가르침보다 훈육 효과가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태권도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일찌감치 원조 한류의 첨병 역할을 했던 태권도의 인기는 여전히 격상 중이다. 멕시코에서는 푸에블라에서 열렸던 제2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매일 1만여 명의 유료 관객이 입장할 정도로 태권도에 열광적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 피지에서도 태권도의 인기가 축구 못지않다. 방과 후 교실에서 태권도 수업을 진행할 정도이며, 피지올림픽조직위원회가 전략적으로 태권도를 밀고 있기도 하다.
중국 대륙에도 태권도 바람이 훈훈하다. 하얼빈시 팡정현 제1중학교는 태권도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해 일주일에 1회 배울 수 있도록 진행한다. 한글 교육도 병행하며 태권도의 덕목인 인성 교육에 힘쓸 계획이다. 팡정현 제1중학교를 필두로 향후 중국 23개 성 내 각 10개 학교씩 230여 곳에서 태권도의 정규 과목 채택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세계 각지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한글과 태권도. 조선시대 나라를 떠받쳤던 문인 정신과 무인 정신처럼 한글과 태권도가 한류의 뿌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한국식 라이프스타일의 국제표준화
‘국가의 표준 전략’은 기술 발전은 물론 경제적 효과도 매우 크다. 한국식 라이프스타일, 특히 한식의 경우 표준화를 통한 시장 및 기술(특허 등) 선점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치는 세계의 다양한 채소 저장 방법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우리만의 발효 식품이다. 절임 이후 갖은 양념으로 2차 침채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때 일본의 ‘기무치’가 먼저 알려지며 부끄러운 논란이 일었지만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김치의 규격명을 ‘김치(Kimchi)’로 규정해 우리 김치의 특성이 인정되었고, 기무치란 이름은 사용할 수 없게 된 사례가 있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단지 한식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다양한 김치의 분류 체계를 도입하고 규격화해야 한다. 김치의 매운맛을 표준화해 상품에 표기하고, 다양한 전통 김치를 규격화해 풍부한 문화적 전통과 함께 적극적으로 세계에 발신해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가 ‘한식세계화지수’를 개발해 지난해 4월 5개국 5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식은 조사 대상 12개국 가운데 7위에 머물렀다. 조사는 39개 항목으로 구성됐는데 이미지, 가격 대비 품질, 서비스 등에서 모두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해외에서 한식의 가치와 매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푸드 한류를 위해서는 우선 고품격 이미지 확립이 시급하다. 현지화와 대중화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국제표준화다. 그런 점에서 농촌진흥청이 김치 양념, 전통 양념장의 표준화, 고추장의 매운맛 표기 등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국제표준화는 음식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대영백과사전에 오른 ‘온돌(ONDOL)’이라는 단어는 한국의 ‘온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국제온돌학회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내세울 세 가지만 들라고 하면 한글과 금속활자 그리고 온돌이라고 한다.
‘35℃ 한류 열풍’이라 불리는 온돌도 국제규격화(ISO)의 또 다른 성공 모델이다. 온돌은 에너지 절감 성능이 뛰어나며 청결하기 때문에 추운 유럽 국가에서 한국형 아파트가 건립되는 등 복사 냉난방 산업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김치와 온돌의 사례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사실과 함께 세계화를 위해서는 표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세계적 건축가들이 인정하는 한국의 문화유산
종묘와 창덕궁, 불국사, 수원 화성은 한국인만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기리고 감상하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이는 단순히 유적지라거나 우리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종묘를 예로 들어 보자.
종묘의 독특한 형식과 건축미는 세계적 건축가들까지 위대한 건축물로 인정할 정도다. 미국의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오직 종묘를 보기 위해 방한하기도 했다.
또 실질적인 조선의 정궁 기능을 했던 창덕궁은 자연미가 빼어난 궁궐로 지난해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창덕궁 달빛 기행’이 진행돼 “모든 풍경과 모든 순간이 인상적이었다”는 외국 참가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산세와 지형을 최대한 살린 공간이 주는 자연미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건축 철학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이밖에도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당시 “역사는 200년밖에 안 됐지만 성곽의 여러 건축물이 제각각 특별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들은 바 있다.